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8)
#17화.
‘이상해.’
아일린은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슬쩍 고개를 들어 얼음 벌레의 상태를 살폈다.
‘움직임은 아직 없는데…….’
놈은 멈췄던 모습 그대로 한 치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꾸만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서우진 씨도 별문제는 없어 보이고.’
그는 열심히 칼질하는 중이었다.
유의미한 피해는 입히지 못했지만, 주위의 병사들과 합심해 계속해서 공격을 하다 보니 데미지는 착실히 쌓이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하지?’
조금 전에 저지른 실수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우였으면 좋겠… 응?’
별다른 이상함을 찾지 못한 아일린이 걱정을 접으려던 때였다.
촉수가 움직였다.
아주 미세한 움직임.
서우진을 포함한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기사인 아일린만은 그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피해요!”
다급한 경고성.
서우진과 병사들은 그것을 듣자마자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언제든 후퇴할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늦었어!’
얼음 벌레의 촉수가 조금 더 빨랐다.
마치 언제 멈춰 있었냐는 듯, 촉수는 채찍처럼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콰아앙-!
“으아아악!”
“사, 살려……!”
미처 피하지 못한 병사들이 촉수에 깔리며 비명을 토해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촉수가 미친 듯이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은.
* * *
‘미치겠네!’
아일린의 경고성을 들은 서우진은 일이 틀어졌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촉수는 그를 빗겨 다른 곳과 충돌했지만, 그 여파를 완전히 피해갈 순 없었다.
“크윽!”
충격파를 이겨내지 못한 서우진은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주, 죽을 뻔했다!’
촉수는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로 서우진의 옆을 강타했다.
만약 몸놀림이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짜부라진 육포 꼴이 될 뻔했다.
다행히 살아남긴 했지만, 상황이 그리 좋지는 못했다.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얼음 벌레는 당하고만 있었던 울분을 풀기라도 하듯,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아직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한 서우진은 쉴 새 없이 바닥을 뒹굴며 촉수를 피했다.
주위에서 병사들의 비명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젠장, 젠장!’
실수다.
아니, 명백한 잘못이다.
얼음 벌레를 그냥 두었어야 했다.
괜히 레벨 업에 눈이 멀어, 죄 없는 병사들의 목숨을 잃게 만들었다.
‘몇 명이나 죽었을까?’
10명? 100명?
모르겠다.
하지만 그 생명 하나, 하나는 서우진의 잘못된 오판 때문에 더는 삶을 이어나갈 수 없게 되었다.
‘나 때문이다…….’
서우진은 자신을 향하는 촉수의 공격보다, 덧없이 스러져 간 생명의 무게가 더욱 무서웠다.
“서우진 씨!”
아일린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녀는 서우진을 구하기 위해 광란하는 촉수 사이로 달려오고 있었다.
‘오지 말지.’
그냥 이대로 죽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럼 죗값을 좀 덜 받지 않을까?
서우진은 그런 생각을 하며 아일린을 쳐다봤다.
그냥 이대로 자신을 내버려 두길 바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아일린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기사답게 순식간에 서우진의 곁에 도착한 그녀는, 곧장 그를 안아들었다.
그러곤 상태를 확인할 새도 없이, 바로 전장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막아! 도주로를 열어!”
백인대장들의 명령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그들은 이 와중에도 병사들을 지휘하며, 서우진과 아일린이 도망칠 길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피, 피해는?”
서우진이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지만, 아일린은 대답해 주지 않았다.
몰라서 대답을 하지 못한 건지, 아니면 상황이 급박해 대답할 틈이 없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자신을 배려해서 그러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쪽으로!”
조한이었다.
그는 자신의 백인대와 함께 촉수를 필사적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아일린은 망설이지 않고 그쪽을 향해 달렸다.
다른 곳에 비해 얼음 벌레로부터 도망칠 길이 많이 열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조한의 백인대는 그 이름이 무색하게도 십여 명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젠장, 모두 후퇴해! 더는 무리다!”
병사들은 대륙에서도 알아주는 강병들답게 순식간에 정신을 차리고 저항했지만, 그것도 이젠 한계였다.
애초에 얼음 벌레는 병사들만으론 상대할 수 없는 괴물이었으니 당연했다.
용사가 도망칠 길도 열었겠다, 지금부터는 자신들의 목숨을 챙길 때였다.
서우진은 눈을 감았다.
피범벅이 된 채 필사적으로 촉수를 막아내는 병사들의 모습을 지켜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 때문에…….’
“아닙니다.”
서우진이 흠칫- 놀랐다.
자신의 속내가 정확히 읽혔기 때문이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아일린은 입술을 짓씹으며 말했다.
“하, 하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제안이었고, 그것을 받아들인 건 저입니다. 그저 예상이 조금 빗나갔을 뿐.”
위로인가?
서우진은 아일린이 그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속내는 다를 것이라고.
하지만 아니었다.
감았던 눈을 뜨자, 아일린의 눈동자에 서려 있는 감정이 확연히 느껴졌다.
‘죄책감.’
그것은 서우진이 느끼는 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그녀는 진실로 이 상황을 자신의 잘못으로 여기고 있었다.
“이런, 씨발! 피하십쇼!”
그때, 뒤쪽에서 조한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그의 백인대가 막고 있던 촉수 중 하나가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왼쪽!”
아일린의 등 뒤로 그것을 확인한 서우진이 소리쳤다.
쿠웅-!
촉수가 아슬아슬한 간격으로 두 사람을 빗겨 나갔다.
서우진의 말에 일말의 의심도 품지 않고 움직인 아일린 덕분이었다.
“다시 왼쪽!”
촉수의 공격은 계속됐다.
서우진은 아일린의 품에 안긴 채 공격 방향을 가르쳐 주었다.
덕분에 그녀는 아슬아슬하게나마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얼음 벌레가 집요할 정도로 두 사람을 노리며 촉수를 뻗어왔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한 개였지만, 이내 두 개, 세 개로 불어나더니 이젠 무려 다섯 개의 촉수가 공격을 하고 있었다.
“왼, 아니! 오른쪽!”
덕분에 아일린은 미친 듯이 몸을 움직여야만 했다.
기사의 초월적인 신체 능력이 아니었다면, 죽어도 벌써 몇 번은 죽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곧 한계가 찾아왔다.
“아…….”
쉴 새 없이 피할 방향을 지시하던 서우진이 더는 입을 열지 못했다.
사방에서 자신들을 노리고 쏟아지는 촉수의 공격을 피할 사각이 보이질 않았던 것이다.
목숨 걸고 길을 열던 병사들이 힘에 부쳐 모든 촉수를 막지 못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죽나?’
머리 위로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를 보며 서우진은 생각했다.
‘그래,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자신의 잘못으로 너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아일린은 아니라고 했지만, 그녀의 말은 틀렸다.
이 모든 일은 자신이 욕심을 부린 대가였다.
‘어차피 살아도 고난의 연속이니까.’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하는 삶.
그것까지 생각하면 차라리 지금 죽는 것이 마음 편할지도 모른다.
죽고 나면 먼저 목숨을 잃은 병사들에게 사과를 해야지.
비록 자신을 괄시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죽길 바란 것은 아니었으니까.
서우진이 그렇게 삶을 조금씩 포기할 때였다.
촤아아악-!
드리우던 그림자가 사라지고, 시리도록 푸른 북방의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포기하긴 아직 이르네만.”
반 슬레인이었다.
* * *
반 슬레인이 처음 목도한 것은 병사들이 얼음 벌레를 공격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순간 흠칫- 놀라긴 했지만, 얼음 벌레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와 같군.’
드레이카스 때를 떠올리며 다시 한번 확신했다.
서우진에게는 자신이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크게 걱정을 하진 않았다.
얼음 벌레가 강력한 몬스터이긴 했지만, 움직이지 않는 놈을 상대로는 병사들만으로도 충분했으니 말이다.
때문에 반 슬레인은 일단 이쪽을 먼저 정리하기로 했다.
전사자들의 시체를 수습한 뒤 도움을 주러 가도 충분하다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건 너무 이른 판단이었다.
언제까지고 움직이지 않을 것만 같았던 얼음 벌레가 다시 행동을 재개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보는 것보다 느끼는 것이 더 빨랐다.
“아일린!”
반 슬레인은 자신도 모르게 아일린의 이름을 불렀지만, 이 거리에서 그 소리가 들릴 리가 없었다.
결국 공격은 시작됐고, 반 슬레인은 곧장 움직였다.
“여, 영주님!”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직 파악하지 못한 테스테론이 그를 불렀다.
하지만 반 슬레인은 대답하는 대신, 더욱 빠르게 땅을 박찼다.
쐐애애액-!
엄청난 속도였다.
조금 전 상대했던 얼음 벌레에게 달려들 때조차, 지금과 비교하면 느려 보일 지경이었다.
그 정도로 반 슬레인은 다급했다.
‘더 빨리!’
병사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자신의 병사들.
이런 곳에서 죽기에는 너무도 안타까운 생명들이다.
그리고 한 명 더.
‘용사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돌진하는 중에도 서우진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몇 초나 지났을까?
그는 아일린의 품에 안겨 자리를 피하고 있는 서우진을 발견했다.
‘아직 살아 있군.’
하지만 상황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병사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엄호를 해주고는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저 녀석부터 살린다!’
이 순간에도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병사들의 모습이 슬펐지만, 그래도 지금은 서우진을 구해야만 했다.
아직은 그리 믿음직스럽지 못한 인물이긴 했지만, 그는 용사다.
이 세계를 구하기 위해 온 용사.
그런 서우진을 강림 전쟁도 아니고, 고작 몬스터 토벌을 하다 죽게 만들 순 없었다.
파아아앗-!
반 슬레인의 신형이 마치 한 줄기 빛처럼 쇄도했다.
평범한 기사라면 한참을 달려야 도착했을 거리였지만, 그에게는 고작 눈 몇 번 깜빡일 시간이면 충분했다.
“흐읍!”
작은 심호흡과 함께 검이 뽑혔다.
그의 검이 공간을 베었다.
동시에 서우진을 향하던 촉수와 얼음 벌레의 거대한 육체가 피를 쏟아내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파아아앗-!
서우진의 몸에서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레벨 업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