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83)
182화.
숨이 막힐 정도로 무거운 적막이 흘렀다.
환하게 빛나던 별무리가 사라지자, 갈기갈기 찢겨진 시체들의 모습이 보였다.
족장인 타이론도, 살아 있던 엘더들도, 무게를 잡고 등장했던 수호단도.
사십 명에 가까웠던 인원이 서우진의 ‘십이천검’에 전신이 찢겨져 죽음을 맞이했다.
시체들 사이에서 두 다리로 서 있는 것은 오직 둘뿐이었다.
엘더 한 명과 수호단 한 명.
놀랍게도 그 두 명은 서우진의 공격에서도 목숨을 지켜냈다.
하지만 숨만 붙어 있을 뿐이었다.
온몸에는 상처가 가득했고, 두 다크 엘프 모두 한쪽 팔이 잘린 상태였다.
어찌나 출혈이 심한지, 두 사람의 다리 밑으로는 핏물로 웅덩이가 만들어질 정도였다.
“…그래. 너희는 내가 인정해 줄게.”
서우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쳐 주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서우진은 그들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카 라니엘’을 휘둘러 둘의 목을 베어냈다.
털썩-
바닥에 고인 핏방울이 튀며, 시체가 된 다크 엘프들의 시체가 땅에 몸을 뉘였다.
“으음.”
서우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산혈해.
시체의 산과 피의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 하루 서우진이 죽인 다크 엘프의 수가 거의 2백 명에 달한다.
그럼에도 서우진은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이것도 좀 이상하긴 하네.’
아무리 적들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 조금은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만…….
단순히 몬스터나 마수가 아닌, 인간과 흡사한 모습의 다크 엘프를 무려 2백 명이나 죽였음에도 아무런 충격도 느껴지지 않는다니.
게다가 서우진은 지금, 이 많은 생명을 앗아갔음에도 레벨 업을 하지 못했다는 것에 실망을 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 자체가 조금 찝찝했다.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니겠지?’
혼돈기를 창조해 내며, ‘마왕화’ 상태에서도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니 무슨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결국 서우진은 그냥 살육에 적응한 덕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쨌든 나도 옛날로 돌아가기는 힘들겠네.’
이십대의 평범한 대한민국 청년은 사라졌다.
강림 전쟁에서 승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예전과 같은 삶은 살 수 없을 것이다.
“어쩔 수 없지.”
그렇다고 해서 적들을 모두 살려줄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서우진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렸다.
‘저놈까지 잡으면 레벨 업을 할 수 있겠지?’
막연한 기대를 하며 걸음을 옮겼다.
콰과과과과광-!
브리아니와 베히아모스의 전투가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는 전장을 향해서.
* * *
“하악, 하악-”
브리아니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크읏!”
하지만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순 없었다.
머리를 향해 쏘아진, 세 발의 마기탄환을 피해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젠장, 실수했어!’
욕설이 절로 나왔다.
아래로 향한 그녀의 얼굴 앞에, 베히아모스의 무릎이 빠르게 쳐올려지는 중이었던 것이다.
콰득-!
재빨리 피하려 했지만, 이번엔 늦었다.
“……!!”
오른쪽 뺨에서 거대한 충격이 느껴졌다.
우득-!
어금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브리아니는 그 거대한 충격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이, 이동!’
정신이 아득한 와중에도, 그녀는 가까스로 공간이동을 해 거리를 벌렸다.
“퉤-!”
몇 초가 지나자 흔들렸던 시야가 제자리를 찾고, 정신도 맑아진다.
입에 고인 피를 뱉어낸 브리아니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
전투의 양상은 백중세.
방금은 당하긴 했지만, 그녀 역시 베히아모스에게 적지 않은 타격을 입혔다.
하지만 놀랍게도 놈은, 브리아니에게 입은 상처를 경이로운 속도로 회복했다.
고작 몇 초가 흐르기도 전에 완전히 처음의 상태로 회복한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몬스터와 마수와 싸워봤다.
그중에는 트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회복 속도를 지닌 놈들도 많았다.
하지만 베히아모스는 그런 놈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상처가 아문다는 것보단, 마치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 너는 시간을 다루는 모양이구나?”
머리가 차가워지자, 베히아모스가 지니고 있는 능력의 정체가 짐작되었다.
시간.
베히아모스는 시간 조종의 권능을 지니고 있는 게 분명했다.
“신 정도는 되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공간을 다루는 능력자들은 의외로 많다.
자신과 게랄드가 그러했고, 황제를 보호하는 수호기사들 중에도 비슷한 능력을 지닌 이들이 몇 있었다.
하지만 시간?
지금껏 그걸 다루었다는 존재는 듣도 보도 못했다.
옛 강림 전쟁에 대한 것들이 적혀있는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비록 베히아모스의 능력은 자신의 육체로 한정되어 있는 듯했지만, 그것만으로도 골치가 아팠다.
이쪽은 계속해서 체력과 마력이 소모되고 있지만, 저놈은 아니었다.
그냥 육체의 시간을 되돌려 처음의 상태로 만드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시간을 끌면 진다.’
지금까진 막상막하였지만, 이대로 전투가 지속된다면 당하는 것은 자신일 게 분명하다.
‘어떻게든 해야 할 텐데…….’
브리아니가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에 빠졌을 때였다.
“도와드릴까요?”
뒤에서 낯익은 음성이 들려왔다.
화들짝 놀란 브리아니가 뒤를 돌아보자, 아니나 다를까 서우진이 미소를 지으며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벌써?’
싸움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다.
호흡이 흐트러질 정도로 치고받긴 했지만, 시간 자체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서우진의 도움은 떠올리지도 않았었다.
적들의 수가 만만찮았으니, 모두 처리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 예상한 것이다.
그런데 벌써 끝냈다고?
슬쩍 뒤를 확인해 보니, 고기조각들이 널브러져 있는 게 보였다.
살아생전에는 다크 엘프라고 불렸을 살점들.
그것을 본 브리아니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목책과 함께 다크 엘프 150명을 도륙냈을 때도 느낀 것이지만, 서우진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강한 듯했다.
브리아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빨리 왔어야지.”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녀의 농담에 서우진이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데 역시 좀 강한가 봐요?”
서우진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멍하니 서 있는 베히아모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강해. 내 밑이 아니라는 말은 정말이었어.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거든?”
브리아니는 베히아모스가 시간의 권능을 지니고 있다는 것과 제대로 인지조차 하기 힘든 공격들을 해댄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시간?”
서우진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 역시 시간을 다루는 능력을 지닌 존재는 처음이었다.
용사들 중에는 비슷한 스킬을 지닌 이가 있긴 했지만, 크게 쓸모가 있는 수준은 아니었던 것이다.
‘대공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조금 쓸 만한 수준이 아니겠는데.’
적어도 저놈 혼자 왕국 하나쯤은 쉽게 날려 버릴 수 있는 수준은 될 터.
서우진은 느슨해진 마음을 다시 다잡았다.
‘우리 둘이 합공하면 세상에 못 당할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당초 예상했던 것보단, 훨씬 고생할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쯧.’
속으로 혀를 찼다.
웬만하면 빨리 끝내고 레벨 업을 한 뒤, ‘이계마왕록’을 보고 싶었는데.
‘그러긴 그른 것 같네.’
놈의 권능을 깨트릴 만한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일단 합공하자. 방법이야 부딪히면서 생각해 보면 되겠지.”
이쪽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베히아모스를 본 브리아니가 말했다.
“네, 합류하겠습니다.”
서우진이 혼돈기를 끌어올렸다.
그녀의 말대로 생각만으로 해결책을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일단 직접 경험해 가며, 약점을 찾아야만 했다.
“좋아. 그럼 먼저 간다?”
브리아니의 신형이 사라진다.
동시에 서우진이 땅을 박찼다.
콰득-!
혼돈기를 맹렬하게 돌린 탓일까?
서우진이 다크 엘프들과 싸울 때와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로 놈에게 쇄도했다.
콰과과과과-!
발길이 닿은 땅이 폭발하듯 뒤집히며, 거대한 후폭풍을 만들어냈다.
쩌엉-!
‘카 라니엘’이 베히아모스의 팔에 가로막혀 멈추었다.
완벽하게 막힌 건 아니다.
검신이 팔을 절반쯤 파고들어 갔으니까.
아무리 오러를 두르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꽤나 단단한 방어력이었다.
“지금!”
서우진은 눈살을 찌푸리곤 몸을 뒤로 날리며 소리쳤다.
그러자 베히아모스의 머리쪽 공간이 일그러진다.
우드득- 우득- 우드드득-!
그 압력을 견디지 못한 놈의 머리가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브리아니의 이능이 발현된 것이었다.
어마어마한 압력에 당장에라도 머리가 터져 나갈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스으윽-
놀랍게도 베히아모스의 찌부러진 머리는, 이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시간을 다룬다는 말이 저 뜻이었구나.’
정말로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브리아니에게 말로 설명을 들었을 때와는, 체감이 달랐다.
서우진은 놈의 머리가 완벽하게 되돌아가기 전에, ‘카 라니엘’을 다시 휘둘렀다.
이번에는 회색의 오러를 피워 올린 채였다.
“어디까지 회복되나 확인 한번 해보자.”
서거억-!
베히아모스는 브리아니의 공격을 신경쓰느라,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한 채 ‘카 라니엘’의 검신에 목을 내주었다.
둥실- 하며 맨들맨들한 머리가 떠올랐다.
서우진은 결코 방심하지 않고 ‘신속’을 사용했다.
팟- 파팟- 파파파파팟-!
놈의 머리에 수십, 수백의 선이 그어졌다.
모두가 서우진이 그린 검로였다.
순식간에 수백 조각으로 나뉜 머리가 그대로 땅에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서우진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지고화’.
검은 불꽃이 조각난 베히아모스의 머리를 태웠다.
화르륵- 하며 모든 것을 불태울 화염이 주변을 모조리 휩쓸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거 단순한 공격은 안 통하겠는데요?”
서우진이 쓴 미소를 지으며 브리아니에게 말했다.
“내 말이 맞지?”
어느새 서우진 곁에 나타난 브리아니 역시, 질린다는 표정으로 입술을 짓씹었다.
스으으윽-
놀랍게도 베히아모스는 회복이 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꺼지지 않을 것 같았던 ‘지고화’의 불꽃이 사그라졌다.
수백 조각으로 나뉜 머리가 빠르게 제자리를 향해 찾아갔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잘린 머리가 목에 달라붙으며, 상처하나 남기지 않고 완벽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서우진은 그것을 보며 깨달았다.
저놈은 결코 평범한 방법으로 죽일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브리아니의 물음에 서우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평범한 공격이 안 통하면, 평범하지 않은 공격을 할 수밖에요.”
“…무슨 말이야?”
브리아니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압도적인 힘.”
시간이고, 권능이고, 나발이고.
그 무엇도 막아낼 수 없는 압도적인 힘으로 깨트리면 된다.
“그게 가능해?”
브리아니가 묻자, 서우진이 손가락에 걸려 있는 팔찌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무리를 조금 하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