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88)
187화.
하늘탑은 언제나 그렇듯 고요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마법사가 그 안에 처박혀 온갖 실험과 연구를 반복하고 있었음에도, 작은 소음 하나 새어 나오지 않았다.
“여긴 여전히 조용하구나.”
브리아니가 작게 투덜거렸다.
떠들썩하고 활기찬 분위기를 좋아하는 그녀에게 하늘탑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공간이었다.
황실에 마목을 제거하는 것에 성공했다는 보고를 끝낸 브리아니는, 곧장 하늘탑을 찾아왔다.
서우진이 발견한 알의 정체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흠, 이건 대체 뭘까?”
손에 든 두꺼운 가죽 주머니를 쳐다봤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알이 들어 있는 그 주머니엔 마법적인 처리가 되어 있었다.
덕분에 따뜻하던 온기도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가만히 주머니를 지켜보던 브리아니는 이내 어깨를 으쓱하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안에 들어가서 물어보는 게 빠르지.”
어차피 혼자 고민해 봐야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녀는 때리고 부수는 것에 재능이 있었지, 연구하고 지식을 탐구하는 것에는 영 관심이 없었으니까.
끼이익-
브리아니가 하늘탑에 다가가자, 문이 열렸다.
“어? 대공께서 오셨네요?”
“그래, 오랜만이지?”
항상 서우진을 맞이해 주었던 바로 그 소년이었다.
브리아니는 반갑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러게요. 이게 대체 얼마만이죠?”
둘은 꽤나 친한 사이였는지, 문앞에 서서 한참동안이나 수다를 떨었다.
“아참, 내 정신 좀 봐.”
그러다 문득 브리아니가 정신을 차리고는 이마를 탁- 하고 쳤다.
“마르테스는 안에 있니? 볼일이 좀 있어서 왔는데.”
“물론이죠. 이미 기다리고 계세요.”
이번에도 마르테스의 말을 듣고 미리 마중을 나온 듯했다.
“그러니? 그럼 이만 들어가자.”
브리아니는 소년과 함께 하늘탑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는 진짜 여전하네.”
평화롭고, 한산하며, 적막하다.
그리고 무한한 마력이 흐르며, 안에 들어선 이를 압도했다.
브리아니는 괜히 위축되는 느낌을 떨쳐 내기 위해 몸안으로 마력을 순환시켰다.
그러자 끝도 없이 광대하던 압박감이 사라졌다.
“괜찮으세요?”
소년이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내가 한두 번 와보니? 괜찮아, 괜찮아.”
브리아니가 웃으며 대답하자, 소년은 안심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한쪽으로 안내를 시작했다.
“그분께선 집무실에 계세요.”
“집무실에?”
“요즘 왠지 모르게 바빠 보이시더라고요. 저 같은 말단은 그분이 무얼 하시는지 짐작도 못하지만요.”
“또 쓸데없는 거나 연구하고 있는 거겠지.”
브리아니는 농담을 건네며, 소년의 뒤를 따라 마법진에 들어섰다.
“여기서도 내 이능이 통하면 너도 좀 편했을 텐데.”
비정상적일 정도로 마력이 응집된 하늘탑 안에서는, 브리아니의 공간조종이 통하질 않았다.
덕분에 이렇게 방문할 때마다 소년이 마중을 나오곤 했다.
“전 괜찮아요. 이렇게라도 뵙게 돼서 좋은 걸요.”
헤헤- 웃으며 말하는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하여간 말은 잘해.”
두 사람이 잡담을 하는 사이 마법진이 발동했다.
우우우웅-!
밝은 빛과 함께 주변의 풍경이 변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책장.
그 안에는 도저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책이 꽂혀 있었다.
“도착했어요.”
소년이 말하자, 브리아니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마법진을 빠져나왔다.
“고마워. 다음에 또 보자?”
“저야 영광이죠. 그럼 일 잘 보고 돌아가세요.”
소년은 꾸벅- 인사를 하곤 다시 마법진을 사용해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잠시 쳐다보던 브리아니가 몸을 돌렸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는 없던 커다란 책상과 인형처럼 생긴 여자아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이구나.”
여자아이, 마르테스가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아는 척을 했다.
“응,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브리아니 역시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 몸이야 한결같으니라.”
마르테스가 말을 하며 손을 휘젓자, 책상 앞에 푹신해 보이는 소파가 만들어졌다.
자연스럽게 그곳에 늘어지듯 앉은 브리아니가 손을 내밀었다.
“이걸 좀 확인해 줄래?”
둥실-
알이 든 가죽 주머니가 허공에 떠올라 마르테스에게 향했다.
“무엇이더냐?”
“전에 그 어린 다크 엘프가 말해줬던 마목 있잖아? 그걸 제거했거든. 거기서 나온 요상한 알이야.”
브리아니는 서우진과 함께 헬데인에서 겪었던 일들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호오?”
마르테스가 관심을 내비쳤다.
하지만 그녀가 주목한 건 주머니 안에 든 알이 아닌, 바로 서우진에 관한 것이었다.
“초극의 경지에 들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만, 벌써 그 정도라니. 믿기가 어렵구나.”
“그치? 직접 본 나도 눈을 의심했다니까? 대체 어떻게 그리도 강해진 건지…….”
마르테스에게 맞장구를 치던 브리아니가 말끝을 흐렸다.
서우진의 비밀 중 하나를 알고 있었기에, 말을 아낀 것이다.
다행히 마르테스는 그런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었다.
“확실히 범상치 않은 아이였느니라. 그 등급과 레벨에 맞지 않는 무언가를 지니고 있었지. 게다가 석연치 않은 것을 숨기고 있는 듯도 하니.”
브리아니가 움찔- 했다.
그러곤 조심스럽게 물었다.
“…석연치 않은 것?”
“듣지 못하였느냐? 지나한과 죽음의 숲에서 나타난 ‘검은 존재’와 그 아이가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있느니라.”
“‘검은 존재’?”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브리아니의 눈이 커졌다.
그녀도 ‘검은 존재’에 대한 소식은 들었다.
제국의 다섯 수호자 중 하나였으니, 그런 중대한 위협을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
하지만 서우진과 관계가 있다는 건 전혀 듣지 못했다.
“혹 듣지 못했더냐?”
브리아니의 표정을 본 마르테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확실한 정보야?”
“아그나가 직접 전해온 소식이니라. 신뢰성이 꽤나 높지. 하여 황실에서도 그 아이에게 제약을 걸었다고 하더구나.”
그 말에 브리아니는 고개를 갸웃했다.
제약이라니?
그런 것은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루덴 가르도’를 하사하였다.”
“이런 미친!”
브리아니가 경악했다.
‘루덴 가르도’라니?
그 저주받을 마갑을 용사에게 주었다는 말에, 그녀는 어이가 없다 못해 황당할 지경이었다.
“대체 황실의 것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확실하지도 않은 정보 때문에 용사를 버릴 셈이야? 그것도 초극의 경지에 오른 녀석을?”
만약 서우진이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용사가 아니라 적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지.’
서우진이 자신의 정신을 파괴하려고 한 이들과 같은 편에 서서 싸울 리가 없었다.
그렇게 되면 제국은 너무도 커다란 적을 마주할 수도 있었다.
“나 역시 너와 같은 생각이니라.”
마르테스도 황실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서우진이 감추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차치하고,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격이었다.
아무리 의심스럽더라도, 이런 방식을 사용해서는 안 됐다.
위험해도 너무 위험하니까.
“허나 어쩌겠느냐? 황제가 직접 정한 일. 너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느니.”
제국에서 황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는다.
하늘탑의 주인이든, 초극의 경지에 오른 황족이든.
황제의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었다.
그만큼 황제와 황실의 힘은 막강했다.
“…그 아이는 아직 눈치채지 못했겠지?”
“‘루덴 가르도’의 저주는 하늘탑의 마도사들도 쉽사리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니라.”
결코 알아내지 못할 것이란 뜻이었다.
물론 서우진은 처음부터 진실을 알고 있었고, 그 저주마저도 파훼했지만 말이다.
두 사람이 그것을 알 리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브리아니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서우진에게 호감을 품고 있었다.
물론 감추고 있는 것이 있긴 했다.
하지만 세상을 파괴할 음모를 꾸미거나, 검은 속내를 감추고 있을 만 한 위인은 아니었다.
브리아니는 자신의 눈을 믿었다.
그것은 마르테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세계의 뜻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눈을 가졌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눈은 서우진에 대해 브리아니와 조금 다른 판단을 내렸다.
마르테스는 이전에 서우진에게 경고한 적이 있다.
서우진의 선택에 따라 세계의 운명이 크게 바뀔 것이라는 경고.
옳은 결정을 한다면 좋겠지만, 만약 반대의 결정을 한다면?
“그 아이는 세계를 파괴할지도 모른다.”
“…그건 또 무슨 참신한 헛소리래? 서우진이 세계를 파괴한다고?”
헛웃음이 나왔다.
“네 예지가 대단하다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이번엔 틀린 것 같다, 마르테스.”
딱딱하게 굳은 음성으로 말했다.
그러자 마르테스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그러길 바라노라.”
잠시 침묵이 흘렀다.
둘은 서우진에 대한 생각에 빠져, 서로 대화를 나눌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런데 이 알은 뭐지?”
본래의 목적을 생각해 낸 브리아니가 물었다.
고민을 할 때 하더라도, 일단은 하늘탑에 찾아온 이유부터 해결한 뒤에 하기로 한 것이다.
“흐음-”
마르테스는 브리아니가 건네준 가죽 주머니를 풀어, 안의 내용물을 꺼냈다.
푸른색으로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커다란 알.
그것이 주머니에서 나오자, 훈훈한 온기가 주변을 달구기 시작했다.
“이건…….”
마르테스의 눈이 살짝 커졌다.
“뭔지 알겠어?”
그 표정을 본 브리아니가 기대감 서린 음성으로 물었다.
하지만 마르테스는 그 기대를 저버리듯, 고개를 저었다.
“처음 보는 것이니라.”
“아니, 그럼 왜 아는 것처럼 반응하는 건데?”
브리아니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그러나 짐작이 가는 것은 하나 있구나.”
“뭐, 뭔데?”
괜히 궁시렁거렸다며 속으로 후회하고는 다시 한번 물었다.
“신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느냐?”
신수(神獸).
단어 그대로 신의 짐승을 뜻하는 단어였다.
마수와는 정확히 반대되는 개념의 짐승이었다.
하지만 고작해야 평범한 동물이 마기를 흡수해서 만들어지는 마수와는 그 격의 차이가 컸다.
정말로 신들이 선택한 존재.
신의 축복을 한 몸에 받아 탄생하며,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반신(半神)이다.
“…이게 신수의 알이라고?”
브리아니의 눈이 부릅떠진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나타난 신수는…….”
기록 상 마지막에 등장한 신수는 무려 2천 년 전이었다.
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목격되지 않았고, 존재의 실재조차 확실치 않은 전설로 회자될 뿐이었다.
“확실치는 않느니라.”
정말로 신수의 알이라는 것을 증명해 내려면, 꽤나 공을 들여 연구를 거듭해야 할 터였다.
“어쨌든 신수의 알일 수도 있다는 거잖아. 그런 대단한 게 왜 세계수도 아니고, 마목의 안에 있어?”
브리아니는 소름이 돋았다.
마목은 마기에 침식된 세계수의 줄기.
다크 엘프나 다른 사도들이 알의 정체에 대해 파악하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대체 이것으로 무엇을 꾸미고 있었던 것인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이것을 잃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게 된다면, 어떻게든 되찾기 위해 일을 벌일 수도 있겠다.”
마르테스가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조만간 큰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는, 강력한 예감이 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