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90)
189화.
필로얀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불경하게도, 감히 신궁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제국의 황실.
그곳은 듣던 대로 화려하기 짝이 없는 공간이었다.
‘쯧.’
아이에리의 총교단도 그 어떤 곳보다 아름답다 자부했는데, 신궁은 그의 상상을 아득히 넘어섰다.
그러니 배알이 꼴릴 수밖에 없었다.
신의 선택을 받은 아이에르보다, 제국이 훨씬 더 부강하다는 사실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티도 내지 않았다.
필로얀은 그 정도로 생각이 부족한 인물이 아니었다.
속내를 감추며, 웃는 낯으로 제국의 귀족들을 대했다.
“과연 제국의 황궁은 명불허전이오. 듣던 대로 대단하외다.”
대신 의도적으로 신궁을 황궁으로 낮춰 불렀다.
그의 기준에서 신이라는 이름이 붙을 수 있는 건, 오직 아이에르뿐이었으니까.
그것을 눈치챈 제국의 귀족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딱히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아이에르의 귀족들이 얼마나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괜히 단어 하나하나에 반응했다가는, 끝도 없는 설전에 돌입할지도 모른다.
그냥 무시하는 게 정답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마음인 건 아닌 모양이었다.
“아이에르의 왕궁도 이에 못지않다 들었소만.”
제국의 재상, 드류나크 후작이었다.
그는 필로얀이 신궁을 황궁으로 낮춰 부른 것처럼, 총교단을 단순한 왕궁으로 격하시켰다.
순간 주변의 기온이 뚝- 떨어진 것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허허-”
필로얀은 헛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제국의 실세라고는 하나, 자신 역시 신성왕국의 주교.
직위로 따지자면 공작 위에 달하는 초고위 귀족이었다.
드류나크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신분이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이리 나오시겠다?’
제국이 아이에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느낄 수가 있었다.
‘고얀지고.’
필로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제국의 재상이라 들었는데, 말씀에 주의를…….”
“주교님.”
필로얀이 드류나크에게 한마디를 하려 할 때였다.
뒤에서 들려오는 여인의 음성이 그의 입을 막았다.
“그쯤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루페나 경.”
그녀는 바로 30인의 추기경 중 하나인, 루페나였다.
청초하고 성스러운 느낌이 가득한 분위기의 루페나는, 송구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지금은 성왕 전하의 명을 이행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녀는 성왕의 이름을 팔았다.
필로얀이 움찔- 한다.
“그대의 말이 옳도다. 이런 생산성 없는 설전으로 낭비할 시간에, 그분의 뜻을 행하는 게 맞다.”
필로얀은 루페나의 말에 수긍했다.
“그대와는 다음에 시간을 내어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듯하네.”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드류나크를 쳐다보며 말한다.
“언제든지 오시오. 내 방문은 항상 열려 있으니.”
드류나크가 도발하듯 말했다.
하지만 필로얀은 더 이상 걸려들 생각이 없다는 듯, 미소를 머금으며 몸을 돌렸다.
“그나저나 황제폐하의 알현은 준비가 다 되었는지 모르겠소. 슬슬 시간이 된 듯한데.”
황제의 알현에는 준비할 것이 많았다.
하물며 타국의 사절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마침 준비가 다 되었다 합니다. 이제 자리를 옮기시지요.”
“허허, 그렇소이까?”
필로얀은 마침 잘됐다는 듯, 소파에서 일어나 뒤쪽에 대기하고 있던 시종장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의 뒤로 추기경 루페나와, 아이에르가 자랑하는 신성기사단 15명이 따랐다.
알현실을 향해 이동을 시작한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드류나크가 문득 입을 열었다.
“목적이 무엇이라 보는가?”
그러자 귀족들 중 한 명이 다가오며 고개를 숙였다.
“크루시엘에서 파악 중이라 합니다. 다만 단순한 사절로 온 것이 아닌, 다른 목적이 있어 방문한 건 확실한 듯합니다.”
“그렇겠지. 이리도 갑작스럽게 방문한 것을 보면 말이야. 그게 대체 무얼까?”
드류나크의 눈이 가늘어졌다.
“용사들과 접촉하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방금 전 보고를 했던 귀족이 슬쩍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하지만 드류나크는 고개를 저었다.
“고작 그딴 이유로 주교가 나설 리가 없지.”
용사를 포섭하기 위해 추기경이 나섰다고 해도 놀랄 판인데, 무려 주교가 직접 나섰다.
그런 단순한 이유일 리가 없었다.
“아그나에게 서두르라고 전하게.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으니.”
“그리하겠습니다.”
귀족의 신형이 사라진다.
“흐음.”
사절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드류나크의 시선이 한참 동안이나 머물렀다.
“부디 별일 아니었으면 좋겠군.”
강림 전쟁이 머지않았다.
제국의 분위기도 뒤숭숭하고, 크고 작은 사건들도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주교가 무슨 일이라도 저지른다면?
‘꽤나 성가셔질지도 모른다.’
드류나크는 그러지 않길 바라며 몸을 돌렸다.
황제와 나눈 이야기는 금방 보고가 들어올 터.
그때까지 자신은 최대한의 정보를 끌어모으며, 다가올 일에 대비를 해야만 했다.
“따르도록.”
드류나크의 뒤를 따라, 수많은 귀족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네 레벨이 정확히 몇이지?”
실내 연무장으로 온 서우진은, 김다혜의 실력을 다시 점검하기 시작했다.
예전이었다면 레벨보단 실질적인 전투력을 측정했겠지만, 지금은 경우가 조금 달랐다.
김다혜가 바라는 것을 이루려면, 무엇보다 마력이 가장 필요했으니까.
그럼 레벨이 중요했다.
“54요.”
“…벌써?”
아무리 높아도 40대 후반쯤 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C급에 불과했으니, 레벨 업 속도가 다른 동료들에 비해 현저히 늦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50을 넘겼다니?
다른 A급 용사들과 비견될 정도의 레벨이었다.
“어떻게 올렸어?”
서우진이 놀란 표정으로 묻자, 김다혜가 멍하니 대답했다.
“열심히 함요.”
“으, 응. 역시 그렇겠지?”
캐물어봐야 제대로 된 대답이 나올 것 같지 않았기에, 서우진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환석’은?”
“다 씀요.”
이전에 넘겨주었던 ‘소환석’은 이미 다 쓴 모양이었다.
서우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리 준비해 두었던 것을 꺼냈다.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팍팍 쓰자.”
마르테스에게 받았던 ‘소환석’은 이미 한 개씩 나누어줬음에도 꽤 많은 수량이 남아 있었다.
서우진은 그것들 중 한 개를 꺼냈다.
“혹시 몬스터 도감 가지고 있어?”
제이로닌의 도감.
서우진 역시 ‘소환석’을 사용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던 책자였다.
“있음요.”
김다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품에서 책자 하나를 꺼내 들었다.
대체 저 작은 몸의 어디에 감춰져 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서우진은 그러려니 하며 도감을 받아들었다.
“경험치를 많이 주는 놈들이 누구더라…….”
두꺼운 책자를 뒤적이던 서우진이 한 페이지에서 멈추었다.
“이 녀석이 좋겠다.”
무르타르.
공격력은 막강하지만, 그에 비해 방어력은 형편없는 몬스터.
속도가 조금 빠르긴 하겠지만, 그 정도는 김다혜에게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시작할까?”
“좋음요.”
김다혜가 스케치북에서 무언가를 ‘소환’했다.
온갖 파츠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K-2 소총이었다.
‘저것도 발전시켰구나.’
김다혜는 잠시도 정체되어 있지 않는다.
볼 때마다 새로운 무기와 새로운 공격 방식을 사용했다.
그만큼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한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다른 동료들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김다혜는 그중에서도 특히나 열심이었다.
서우진은 그런 김다혜가 기꺼웠다.
그러니 이렇게 직접 도움을 주기 위해 시간까지 낸 것이었고.
화려해진 K-2를 잠깐 확인한 서우진이 ‘소환석’을 사용했다.
화아악-!
밝은 빛과 함께 무르타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커다란 도끼 네 자루를 든 기괴한 외형의 몬스터.
두 쌍의 팔과 세 쌍의 다리가 위협적이었다.
“방어는 신경쓰지 말고 공격해.”
서우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K-2에서 마력탄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투다다다다다-!
연발로 놓고 당기는데도, 마력탄은 단 하나도 빗나가지 않고 모조리 급소에 파고들었다.
그어어어어-!
형편없는 방어력의 무르타르는 비명을 지르며 도끼로 몸을 가렸다.
따다당-!
도끼에 가로막혀 마력탄이 튕겨 나갔다.
그러자 김다혜는 곧장 K-2를 소환 해제했다.
그오오오오오-!
자신을 괴롭히던 공격이 멈추자, 무르타르는 이때라는 듯 돌진했다.
여섯 개의 다리가 움직이자, 둘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어딜.”
하지만 더 이상의 접근은 불가능했다.
서우진이 손을 뻗어 놈의 머리를 붙잡은 것이다.
그어-?
마력도 끌어올리지 않은 채, 순수한 근력만으로도 놈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넌 그냥 샌드백 역할이면 족해.”
무르타르는 서우진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단 1㎜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사이 김다혜는 새로운 무기를 ‘소환’했다.
이전에도 본 적이 있었던 RPG-7이었다.
“콰앙.”
김다혜는 직접 입으로 폭발음을 내뱉으며 탄두를 쏘아냈다.
콰아아앙-!
무미건조하던 그녀의 음성과는 달리,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확실히 강해졌어.’
레벨이 오른 탓일까?
이전에 헬데인의 미궁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강한 위력이 느껴졌다.
그어어억-!
무르타르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직 숨이 끊어지지는 않았지만, 그것도 시간문제였다.
상반신의 70%가 날아간 이상, 트롤 이상의 회복능력을 지니지 않고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었으니까.
“고생했어.”
서우진이 무르타르의 머리를 놓자, 털썩- 하며 쓰러진다.
그리고…….
화아아아악-!
김다혜가 레벨 업을 했다.
“응? 벌써?”
서우진이 깜짝 놀랐다.
원래 50레벨 대부터는, 레벨 업이 지독하게도 어려웠다.
서우진 역시 경험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곧장 레벨이 오르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역시 버스가 답이다.’
사실 무르타르는 김다혜 혼자 사냥할 수 없는 수준의 몬스터였다.
서우진조차도 60레벨을 넘어 70레벨 대에서나 사냥했을 정도였으니까.
만약 서우진이 놈의 움직임을 봉쇄하지 않았더라면, 당하는 것은 김다혜였을 것이다.
그런 놈을 잡았으니, 경험치를 많이 얻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좋아.’
서우진이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대로라면 생각보다 빨리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감사요.”
김다혜가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녀 역시 서우진의 도움이 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감사는 무슨.”
앞으로 김다혜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성장할 것이다.
벌써부터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은 너무 일렀다.
“그럼 계속할까?”
레벨 업을 하며 체력과 마력이 모두 회복되었을 터.
“좋음요.”
김다혜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미소.
서우진은 그것을 보고는 마주 웃어주었다.
“그럼 준비해. 오늘 안에 ‘소환석’ 하나 다 쓰고 나가자.”
남은 소환 회수는 아홉 번.
그럼 최소한 레벨 3개 정도는 더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넴.”
김다혜는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한번 전투 준비를 했다.
화아아악-!
다시 한번 몬스터가 소환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