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95)
194화.
숨이 막힐 듯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기사들과 용사들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맹렬하게 달려오던 요른도 발을 멈추고 눈을 부릅떴다.
그 누구도 방금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입을 열지 못했다.
그저 불신 가득한 눈빛으로 목이 잘린 성유라와 그 앞에 서 있는 서우진을 번갈아 쳐다볼 뿐.
“미, 미친…….”
용사들 중 누군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막혀 있던 댐이 터지듯, 모두가 경악성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성유라가 죽었어?”
“뭐야?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데?”
“황실에 보고하라! ‘성녀’가 죽었다고!”
서우진은 그들의 외침을 들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은 죽였네.’
후회는 없다.
그냥 시비만 거는 정도였다면 죽일 생각까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성유라는 선을 넘었다.
‘카 라니엘’에 묻어 있는 붉은 피를 털어내곤, 검집에 갈무리했다.
“서우진 씨.”
동시에 등 뒤에서 가라앉은 음성이 들려왔다.
“방금 무슨 짓을 저지른 건가요?”
뒤를 돌아보자 딱딱하게 굳은 표정의 요른이 보였다.
“미쳐 날뛰는 살인마를 죽였습니다만.”
표면적으론 그랬다.
하지만 그 말이 요른을 납득시킬 순 없었다.
“그녀는 ‘성녀’입니다. 강림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SS급 용사지요. 당신은 방금 그런 존재를 죽인 거예요.”
“수십 명의 기사를 죽인 장본인이기도 하죠.”
“…그들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성녀’ 한 명의 가치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서우진의 말에 요른은 입술을 짓씹으며 반박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용사의 힘은 기사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으니까.
요른의 말처럼 수십 명의 기사보다, 한 명의 용사가 훨씬 더 큰 전력이 될 수 있었다.
하물며 그것이 SS급의 ‘성녀’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서우진은 방금 마왕에 대항할 전력의 상당 부분을 도려낸 것이었다.
“미친년을 진정시킬 방법은 있고요?”
“시간이 조금만 더 주어졌다면 분명 찾았을 겁니다.”
“그 시간은 누가 벌고?”
서우진의 눈매가 좁아졌다.
“기사들은 불가능하니 결국 우리가 막아야 할 텐데… 그러다 희생이라도 생기면?”
요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여기서 말 한 마디 잘못하면, 용사들이 반발할 게 분명했으니까.
“우리가 여기에 온 건 마왕을 막기 위해서지, 같은 용사끼리 싸우기 위한 게 아닙니다.”
서우진은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렸다.
요른에게서 대답을 들을 생각도, 이유도 없었으니까.
“괜찮냐?”
뒤쪽에서 치료받고 있던 강병규를 향해 다가가 물었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진짜 괜찮은 거 맞아?”
강병규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서우진을 쳐다봤다.
성유라가 죽은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제국을 비롯해 아이에르와 같은 타국에서도 엄청난 비난과 항의가 빗발칠지도 모른다.
마왕을 상대해야 할 가장 큰 전력 중 하나가 꺾였으니까.
하지만 서우진은 어깨를 으쓱- 했다.
“그럼 가만둘까? 그랬다면 더 큰 피해가 발생했을걸.”
그저 미쳐 날뛰며 살인을 저지르던 성유라를 막기 위해 죽였다.
그렇게 알려지면 충분하다.
서우진의 진짜 속내가 어떠하든 말이다.
그 대답에 강병규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일어나?”
그의 상세는 꽤나 심각했다.
인간을 아득히 초월한 육체였기에 망정이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벌써 사망에 이르렀을 정도로 말이다.
그랬기에 서우진이 말리려는데, 강병규가 조용히 속삭였다.
“너라면 죽이지 않고도 막을 수 있었잖아.”
서우진은 초극의 경지에 오른 강자다.
성유라가 아무리 SS급의 용사라 하더라도, 30레벨 이상의 차이가 났다.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서우진은 막는데서 그치지 않고 죽였다.
강병규는 그 부분에 의구심을 품었다.
아니, 다른 동료들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서우진은 왜 성유라를 죽였는가?
“예전의 성유라가 아니야.”
하지만 서우진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대체 그 녀석한테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진 모르겠지만,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어.”
이건 사실이었다.
성유라는 자신의 레벨에 비해 훨씬 강력한 힘을 사용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서우진은 충분히 막아낼 실력이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서우진이 음성을 낮추었다.
“성유라를 죽여야 할 이유가 있었어.”
“뭐?”
강병규의 눈이 부릅떠진다.
“그건 나중에 다 같이 모여 있을 때 얘기해 줄게.”
성유라가 자신의 비밀 중 하나를 알게 되어 죽였다고 말할 생각은 없었다.
대신 다른 떡밥을 떠올렸다.
‘성유라와 사도의 관계.’
그것이라면 다른 용사들도 납득을 할 것이다.
서우진은 그렇게 강병규를 안심시키고는 고개를 돌려 한쪽을 쳐다봤다.
멀찍이 하얀색 사제복을 입은 노인과 여인, 그리고 순백의 기사들이 서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저 사람이 주교인가?’
아카데미에 상주하는 아이에르의 사제들보다 훨씬 화려하긴 하지만, 같은 사제복이다.
범상치 않아 보이는 것이, 어제부터 계속 이야기를 들어왔던 아이에르의 주교인 듯했다.
그는 마치 자리에 못 박힌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서서, 서우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별다른 느낌은 없는데…….’
주교는 평범한 노인이었다.
신성력의 향기가 풍기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성유라에게 무슨 짓을 할 능력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주교의 뒤에 서 있는 여인이 이상했다.
‘저건 누구지?’
서우진은 루페라 추기경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기에, 그녀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런데도 눈길이 가는 건,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마기는 아니다.
오히려 상극인 신성력 쪽에 가깝다.
하지만 깨끗하고 순수한 느낌이라기보단…….
‘성유라랑 비슷한데.’
혼탁한 신성력.
오염되고 불경함이 가득했던 성유라와 같은 종류의 기운이었다.
“너구나?”
서우진이 루페라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 * *
“무어라?”
황제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이에르의 지원을 받던 ‘성녀’가 사망했사옵니다.”
보고하는 아그나도 어이가 없었다.
갑자기 ‘성녀’가 미쳤다는 보고가 들어오더니, 무슨 대응을 하기도 전에 죽었단다.
그것도 서우진에 의해서 말이다.
크루시엘의 수장인 아그나로선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그녀가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변수가 벌어졌으니 말이다.
“흉수는 D급 용사 서우진. 현재 그를 숙소에 구금시켜 둔 상태입니다.”
아그나의 계속되는 보고에 황제가 헛웃음을 지었다.
“어찌 된 일이더냐?”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선 정확한 과정을 들을 필요가 있었다.
해서 아그나는 아카데미에서 벌어진 일들을 자세하게 보고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모든 상황을 파악한 황제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주교가 방문한 이유가 이 때문인 듯하구나.”
“신도 그리 생각하나이다.”
“허나 왜 이러한 짓을 벌인단 말이더냐?”
아이에르는 그럴 이유가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됐다.
강림 전쟁을 앞둔 상태가 아니라면 납득했을 것이다.
저 빌어먹을 신성왕국은, 언제나 제국과 대립각을 세웠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마왕이라는 거대한 적을 앞에 두고, 제국 내에서 공작을 꾸민다?
다 같이 죽자는 게 아니라면 말이 되지 않는다.
“현재 크루시엘의 모든 요원을 동원해 조사 중입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아이에르에 파견 나가 있는 요원들까지.
그야말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으니, 이유를 밝혀내는 것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을 터였다.
“모든 수단을 동원하라. 황명으로 허락하노니.”
“명을 받드옵니다.”
아그나는 허리를 숙여 대답하곤 알현실을 빠져나갔다.
혼자가 된 황제가 수심에 빠진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곤란하게 되었구나.”
‘성녀’가 미쳐 날뛴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서우진이 그녀를 죽였다는 것이었다.
명분은 완벽했다.
정신이 나가 기사들을 살해하는 걸 막기 위함이었다는 이유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성녀’의 뒤에는 아이에르가 있었다.
이번 일을 꾸몄을 것이라 예상되는 그 신성왕국 말이다.
“만약 이 모든 것을 노리고 저지른 것이라면?”
그들은 결코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분명 무슨 행동을 취할 것이고, 그건 제국에 그리 좋은 일은 아닐 게 뻔했다.
“암공.”
황제의 부름에, 암공 스트레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다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등장이었다.
그는 여전히 검은 그림자로 전신을 휘감은 채, 무거운 기운을 뿜어대고 있었다.
“어찌 생각하느냐?”
황제가 스트레인의 의중을 물었다.
“서우진을 조사해 보는 것이 좋지 않겠나이까?”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
“그 아이를?”
황제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 까닭을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의심스러운 구석이 많은 녀석이옵니다. 이번 일 역시 ‘성녀’를 아무렇지도 않게 베어낸 것이…….”
“마음에 걸리느냐?”
“그렇사옵니다.”
그림자가 일렁이며, 긍정의 대답이 들려왔다.
“그 아이의 말로는 다른 이들을 지키기 위함이라던데.”
“초극의 경지에 이른 자입니다.”
그 한마디로 대답을 대신했다.
황제는 그런 스트레인을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에르는 아그나에게 맡기겠노라. 하니 암공은 그 아이를 조사하라. 또한 그 과정에서 무언가 더 의심스러운 구석이 발견된다면…….”
황제가 말끝을 흐린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황제가 단호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참하라. 이 모든 것을 암공의 재량에 맡기노니,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니라.”
“황명을 받드옵니다.”
스트레인이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주인의 뜻에 따르지 않는 칼은 부러뜨리는 것이 옳다.”
아무리 좋고, 뛰어난 명검이라 한들.
제멋대로 날뛰다 주인의 손에 상처를 내는 검은 폐기를 해야만 했다.
황제에게 서우진은 그런 존재였다.
“‘루덴 가르도’로 통제를 해보려 했건만……. 쯧.”
아쉽게도 열매가 채 열리기도 전에 가지를 쳐내야 할 것 같았다.
황제가 온갖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는 보좌에서 몸을 일으켰다.
“게 누구 없느냐?”
“부르셨나이까?”
알현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종장이 급히 안으로 들어오며 허리를 숙였다.
“아이에르의 주교가 아직 떠나지 않았을 터. 짐이 보고자 하니, 그를 신궁으로 불러들이라.”
“지금 바로 소환하면 되겠나이까?”
“그러하니라.”
“명을 받드옵니다.”
일단은 주교를 만나 대화를 해볼 생각이었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밝히진 않겠지만, 반응을 보면 짐작은 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황제는 알현실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뚜벅- 뚜벅-
발소리가 조용한 알현실을 울렸다.
마치 앞으로 다가올 거대한 재앙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황제의 발걸음은 무겁기 짝이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