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96)
195화.
‘……알아차렸다.’
루페라는 자리를 떠나기 전 느꼈던 서우진의 시선을 떠올렸다.
‘성녀’를 죽인 자.
그 서우진이 이번 일의 흉수가 자신임을 알아차린 듯했다.
‘젠장.’
루페라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성녀’를 미치게 한 것은 좋았다.
본래부터 그런 식으로 써먹으려고 한 씨앗이었으니까.
목적을 위해 조금 더 이르게 발아시켰을 뿐이다.
그녀가 날뛰는 사이, 하늘탑에 들어가 성왕이 말한 푸른색으로 빛나는 알을 찾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설마 그냥 죽여 버릴 줄이야.
전혀 상정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쪽을 쳐다보더구나.”
필로얀도 서우진의 시선을 알아차렸었는지, 불편한 기색으로 말을 했다.
“저희가 ‘성녀’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분위기를 보려고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가…….”
필로얀이 고개를 끄덕였다.
루페라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보단 어서 제국을 떠나는 것이 좋겠습니다. 성왕 전하께 이번 사태를 알리고, 대책을 세워야 하니 말입니다.”
서우진이 알아차린 이상, 이곳에 계속 머물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구금을 당했다지만, 안심할 순 없지.’
그는 현재 제국의 기사들에 의해 숙소에 구금되어 있다고 들었다.
강제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사건의 진상을 밝힐 때까진 운신이 자유롭진 않을 터.
서우진이 풀려나기 전에 어서 아이에르로 돌아가야만 했다.
하지만 필로얀은 그럴 수가 없었다.
“아직 그분의 명을 수행하지 못했느니라.”
“그럼 지금 바로 하늘탑에 들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리하는 것이 좋겠구나.”
필로얀이 루페라의 말에 동의했다.
지금 제국은 ‘성녀’의 죽음으로 정신이 없을 터였다.
처음 계획과는 달라지긴 했지만, 이 틈에 목적하는 바를 이루면 될 듯했다.
“제국의 간악한 성정을 생각하면, 서둘러야 할 게야.”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루페라는 곧장 하늘탑으로 이동할 준비를 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하지만 이미 늦은 듯했다.
똑똑-
누군가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움찔- 놀란 루페라가 필로얀을 쳐다보았다.
“…확인해 보거라.”
필로얀의 허락이 떨어지자, 루페라는 문을 향해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구십니까?”
“백은기사단의 로나인이라 합니다.”
루페라의 얼굴이 구겨졌다.
백은기사단은 제국의 제1기사단.
오직 황제의 명만을 받드는 최강의 기사단이었다.
저들이 이곳에 방문했다는 건…….
‘황제가 우릴 찾는다.’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빨리 일을 서두르려고 했던 것인데.
설마 그 엉덩이 무겁기로 유명한 황제가 먼저 움직일 줄이야…….
불운이 계속해서 겹치고 있었다.
루페라는 속으로 혀를 차며 문을 열었다.
그러자 화려한 금발의 잘생긴 사내가 보였다.
“…무슨 일이신지?”
루페라가 묻자, 로나인은 그녀와 필로얀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곤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주교님을 찾으십니다.”
루페라의 예상은 맞았다.
“지금 바로 이동하시지요.”
로나인은 예의를 잃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날이 서 있는 분위기였다.
그것을 눈치챈 필로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제께서 무슨 일로 이 늙은이를 보자 하시던가?”
질문하는 그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하지만 로나인은 신경쓰지 않고 대답했다.
“그분의 심중을 제가 어찌 짐작하겠습니까? 그저 명하시니 받들 뿐이지요.”
“허허-”
필로얀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한 국가의 공작과 동급의 위치에 있는 자신을 이리 오라 가라 하는 것도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심지어 그는 단순한 귀족도 아니고, 주신을 섬기는 사제들의 정점인 주교 아니던가?
그런데 이유조차 설명을 하지 않다니.
결례도 이런 결례가 또 있을까?
필로얀은 노한 표정으로 로나인을 노려보았다.
“준비가 되는대로 알현할 터이니, 그대는 가서 잠시만 시간을 달라 전하게.”
“폐하께옵선 지금 바로 모셔오라 명하셨습니다.”
날카로운 기세가 흘러나왔다.
“감히…….”
그러자 루페라가 필로얀의 앞을 가로막으며 기운을 끌어올렸다.
드드드드-!
두 사람의 보이지 않는 힘이 충돌하며, 방안이 떨리기 시작했다.
로나인의 눈동자에 놀람이 서렸다.
설마 추기경의 힘이, 최상급 기사인 자신과 비견될 정도일 줄은 생각지 못한 것이다.
덕분에 로나인은 사절단 일행에 대한 경계심을 더욱 끌어올렸다.
“그만.”
그때, 필로얀이 나서며 두 사람을 진정시켰다.
동시에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 같았던 기운들이 씻은 듯 사라졌다.
“황제께서 그리 급히 부르신다니 어쩔 수 없군. 바로 가도록 하지.”
“주교 각하!”
루페라가 깜짝 놀라며 그를 말리려 했지만, 필로얀은 고개를 저었다.
“거기까지 하거라.”
이곳은 제국.
황제가 자신을 데려오라 명한 이상, 저들은 무력을 써서라도 그것을 이행할 것이다.
저들의 힘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괜히 분란을 일으킬 필요도 없었다.
필로얀이 루페라를 향해 조용히 속삭였다.
“너는 계획한 바를 실행하라.”
“…알겠습니다.”
황제가 찾는 것은 필로얀뿐이었다.
그가 황제를 알현하는 사이, 루페라는 하늘탑으로 가 목표를 확보하면 될 터.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필로얀이 앞으로 나섰다.
“가세.”
로나인에게 말했다.
“그럼 모시겠습니다.”
로나인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두 사람과 함께 건물을 나섰다.
* * *
“제국에서 급보가 도착했습니다.”
시종장이 빠르게 다가오며 말하자, 마르데타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급보라?”
설마 일이 틀어졌다는 뜻일까?
마르데타인이 시종장의 손에 들려 있던 종이를 받아들었다.
“흐음.”
그 안의 내용을 읽던 마르데타인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성녀’가 죽었다?”
바라지 않았던 이야기다.
만약 ‘성녀’가 폭주하며 용사를 단 몇 명이라도 죽였다면 상관없었다.
애초에 그렇게 쓰기 위해 씨앗을 심어두었으니까.
하지만 고작 기사 수십 명을 죽이는 것에 그쳤다.
들인 공에 비해 너무도 형편없는 성과였다.
그런데도 마르데타인이 화를 내지 않았다.
“‘성녀’가 제국에서 죽었다…….”
씨익-
생각지도 않은 상황에, 그는 새로운 계획을 떠올렸다.
“미테온과 유레아를 불러들이라.”
앞에서 시립하고 있던 시종장에게 명했다.
광명의 미테온과 신실의 유레아.
필로얀을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의 주교였다.
갑작스러운 명령에 시종장은 눈을 크게 떴지만, 이내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미테온 주교는 곧장 소환할 수 있으나, 유레아 주교는 시일이 좀 걸릴 듯합니다.”
“교단에 없더냐?”
“영지에 일이 생겨 떠난 지 나흘이 되었나이다.”
그 말에 마르데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별을 전하라. 긴히 할 이야기가 있으니, 소식을 접하는 대로 곧장 교단으로 올라오라고.”
“명을 받드옵니다.”
시종장이 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흐음…….”
혼자 남은 마르데타인은 방금 전 생각한 계획을 머릿속으로 다듬기 시작했다.
“이대로만 된다면…….”
그분이 강림하기 전, 커다란 전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였다.
“‘성녀’가 뜻밖의 선물을 안겨주고 가는구나.”
마르데타인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걸렸다.
성왕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피가 뚝뚝- 흘러내릴 듯한 잔혹한 미소였다.
* * *
서우진은 다리를 꼬고 침대에 누워 발을 까딱이는 중이었다.
“구금이라니.”
피식- 하고 웃음이 나온다.
‘성녀’를 죽였으니 무슨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곤 생각했는데…….
고작해야 구금이다.
“철창에라도 갇힐 줄 알았는데 말이지.”
아무래도 서우진이 초극의 경지에 이른 강자였기에, 제국에서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듯했다.
“어떻게 되려나?”
지금쯤 제국은 난리가 났을 터였다.
SS급 용사인 ‘성녀’가 다른 용사에게 죽었으니, 아무렇지도 않다면 그게 더 이상했다.
성유라가 미친 이유와 자신이 그녀를 죽인 이유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서우진은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이유를 결코 찾지 못할 테니 말이다.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정확한 증거가 없는 이상은 해가 되는 행동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고작해야 ‘루덴 가르도’ 같은 저주받은 물건을 이용하는 게 전부였다.
“뭐, 진짜 적으로 돌아서도 가만히 당할 것 같진 않고.”
서우진은 이제 진정한 강자의 반열에 올라섰다.
이전에는 제국의 수호자들과 제대로 싸워볼 생각도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한 명 정도는 어떻게든 가능할 것 같았다.
‘마왕화’를 한다면 그 이상도 충분했고.
그러니 서우진이 제국의 힘에 주눅이 들 이유가 없었다.
다만 걱정인 것은 성유라의 죽음에 사도들이 끼어들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 여자.”
나중에 듣기로는 아이에르의 추기경이라고 했다.
마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봐선 사도는 아닌 듯했지만, 분명 마왕의 추종자들과 연관이 있는 자였다.
“한 국가의 중추에 그런 존재를 심어놓을 정도라니…….”
생각보다 놈들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듯했다.
그러니 이번 일을 기회로 그들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녀석들이 무슨 꿍꿍이를 하…….”
서우진이 사도들의 속내를 짐작하고 있을 때였다.
“들어가도 되니?”
문밖에서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 소리에 서우진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네!”
대답하자 문이 열리며,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괜찮니?”
브리아니였다.
그녀는 서우진을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딱히 불편한 건 없네요.”
어색하게 웃으며 말하자, 브리아니는 한숨을 내쉬며 의자를 꺼내 앉았다.
“내가 잠깐 하늘탑에 가 있는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마르테스와 함께 알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연구를 하다 들려온 소식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성녀’가 미쳤다는 게 사실이야?”
그녀는 서우진이 성유라를 죽였다는 사실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했다.
그보단 원인에 집중했다.
“기사 수십 명을 학살했어요.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리가 없죠.”
“이유는? 알아봤어?”
“짐작이 가는 바가 있긴 한데, 아직 정확한 건 아니에요.”
브리아니의 질문에 서우진이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정확한 대답을 원했다.
“말해보렴. 그래야 널 도울 수 있어.”
“…제가 도움이 필요한 상태인가요?”
고작해야 구금이다.
그냥 오랜만에 방에서 푹 쉰다고 생각하면 되는 수준.
그런데 브리아니의 표정을 보니, 밖에서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듯했다.
“네게 통제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듯해.”
서우진은 버리기엔 너무도 강력한 패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용하기도 힘들다.
그러니 강제로라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암공이 나섰어.”
서우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스트레인이요?”
“비밀리에 움직이고 있긴 한데, 아마도 목표는 너일 거야.”
그가 나섰다면, 단순한 감시로 끝나진 않을 확률이 높았다.
‘어쩌면…….’
브리아니의 예상과는 달리, 자신을 죽일 생각까지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싸워서 질 것 같진 않지만.’
암공과 싸운다는 건 제국 전체를 적으로 돌린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자신을 죽이려고 들지 않는 이상은, 제국과 척을 지고 싶진 않았다.
제국 내에서 아직 준비할 것도 남아 있었으니까.
서우진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