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97)
196화.
루페라는 조심스럽게 하늘탑으로 접근했다.
항상 입고 있던 순백의 사제복까지 벗어던지고, 평범한 의복을 걸친 채였다.
덕분에 그녀는 그 누구의 이목도 끌지 않은 채 하늘탑의 근처까지 올 수 있었다.
‘잠입은 힘들겠네.’
하늘탑 주변은 텅 빈 공터였다.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제국의 수도였지만, 이 근처만큼은 한산하다 못해 적막할 정도였다.
이런 상황이면 아무리 그녀라 하더라도, 몰래 잠입하는 건 무리였다.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지.’
루페라는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다른 사제들과는 다른, 오직 성왕의 은혜를 직접 받은 이들만 사용할 수 있는 기운.
그녀는 그것을 이용해 최대한 자신의 기척을 지우며, 은밀하게 하늘탑으로 다가갔다.
‘아직까진 괜찮아.’
평범한 사람들은 그녀가 눈앞을 스쳐 지나가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곳은 하늘탑.
대륙에서도 손에 꼽히는 마법사들이 상주하는 곳이다.
루페라는 결코 방심하지 않고,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좋아.’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까?
고작해야 5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거리였음에도, 한 시간 이상은 흐른 듯했다.
하늘탑의 크기에 비하면 초라하다 못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작은 문 앞에 섰다.
이것만 따고 들어가면, 그 누구에게도 걸리지 않고 하늘탑에 잠입할 수가 있었다.
‘이런 문쯤이야.’
루페라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그녀는 성왕의 명에 따라, 지금껏 수많은 적을 암살해 온 경력이 있다.
이런 문 하나 몰래 따고 들어가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벌컥-!
갑자기 문이 열렸다.
그러곤 그 너머로 소년 한 명이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누구세요?”
소년이 화들짝- 놀라고 있는 루페라에게 물었다.
“나, 나는…….”
설마 이렇게 일이 틀어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에, 그녀는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죽인다.’
루페라의 눈에 살기가 깃들었다.
하늘탑에서 나온 걸로 봐선 마법사인 듯했지만, 기껏해야 마력사나 마술사 수준일 터.
그 정도라면 일수에 죽일 수 있었다.
루페라가 손을 뻗었다.
아니, 뻗으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소년의 움직임이 더욱 빨랐기 때문이었다.
“들어오세요. 안 그래도 안에서 기다리고 계시거든요.”
“뭐?”
자신이 이곳에 몰래 잠입하려 한다는 사실을 아는 건 오직 주교, 필로얀밖에 없었다.
그런데 기다리고 있다니?
‘대체 누가?’
소년을 죽이겠다는 생각도 잊어버린 채, 루페라는 몸이 굳어버렸다.
“아, 어서요. 바쁘니까 빨리 들어오세요.”
소년은 그리 말하고는 먼저 쌩- 하니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일단 들어간다.’
잠입은 실패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상관없었다.
굳이 누군가를 죽이지 않아도, 알만 챙겨서 나오면 된다.
루페라는 눈에서 일렁이는 광기를 속으로 감춘 뒤, 소년의 뒤를 따라 하늘탑으로 들어갔다.
‘흐읍!’
동시에 어마어마한 압력이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미친……!’
상상을 초월하는 막대한 마력이다.
신성력이 절로 일어나며 그것에 대항하려 했지만, 애초에 그녀의 힘 따위론 불가능한 일이었다.
“좀 빨리 오실래요?”
앞서 걷던 소년이 퉁명한 음성으로 재촉했다.
루페라는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은 저항을 포기하고 소년의 뒤를 따르기로 했다.
‘누가 기다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직접 그를 만난 뒤에 다음 행동을 결정해도 늦진 않을 것이다.
루페라는 계속해서 몸을 짓누르는 마력을 가까스로 견뎌내며, 소년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이 힘들었지만, 의외로 목적지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여기로 들어오세요.”
마법진이었다.
‘이동마법진인가?’
아이에르의 총교단에도 설치되어 있는 종류처럼 보였다.
루페라는 잠시 경계했지만, 소년이 먼저 들어가자 조심스럽게 따라 들어갔다.
화아아악-!
밝은 빛과 함께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여긴?”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었다.
테이블 몇 개와 커피향이 은은하게 풍겨오는 것으로 봐선, 카페 비슷한 곳인 것 같았다.
“어서 오너라.”
그 안에 있는 유일한 사람.
마치 인형처럼 생긴 예쁜 여자아이가 루페라를 향해 말을 걸었다.
인자하고 기품이 가득한 음성이었지만, 그것을 들은 그녀는 온몸이 굳어졌다.
저 아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공!’
대체 왜 그녀가 여기서 나타난단 말인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람이 대공이라니!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수고했느니라.”
“그럼 전 가볼게요. 이야기 나누세요.”
마르테스의 치하에 소년이 헤헤- 웃으며 마법진을 통해 다시 사라졌다.
오직 둘만 남은 공간.
숨이 막힐 듯한 상황에, 루페라는 눈동자를 굴렸다.
‘도망칠 수 있을까?’
불가능했다.
힘든 게 아니라,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공은 제국의 수호자들 가운데서도 가장 강한 축에 속하는 괴물이다.
어쩌면 성왕보다도 윗줄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존재 앞에서 도망을 친다?
한 걸음도 채 떼기 전에 전신이 짓이겨져 죽어버리고 말 것이다.
루페라는 마른침을 삼키며 마르테스의 눈치를 살폈다.
“앉거라.”
그 시선을 느낀 것일까?
마르테스가 찻잔을 들어 커피 향을 음미하면서 말했다.
하지만 루페라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대공의 앞에 마주앉는다?
하늘탑의 물건을 훔치기 위해 온 그녀에게, 그 이상으로 위험한 일은 없었다.
“저는 괜찮…….”
“앉으라 하였느니라.”
쿠웅-!
심장이 내려앉는다.
처음과 다를 것 없는 음성이었지만, 마치 벼락에 맞은 것 같은 거대한 충격이 전신을 휩쓸었다.
루페라는 몸을 컨트롤할 수가 없어 비틀거리다, 이내 마르테스의 말대로 그녀의 앞에 앉고 말았다.
“좋은 원두가 들어왔으니, 한번 마셔보는 것도 좋을 터.”
마르테스는 그런 루페라의 커피잔에 커피를 따라 주었다.
쪼르륵- 하며 검은 액체가 잔에 채워졌다.
커피 특유의 향기로운 냄새가 풍겼지만, 루페라의 눈에는 마치 극독처럼 보일 뿐이었다.
“마르데타인이 보냈느냐?”
떨리는 눈동자로 커피를 쳐다보던 루페라의 귀로, 마르테스의 음성이 들렸다.
흠칫-
갑자기 정곡을 찔러왔다.
루페라는 마른침을 삼키며 대답할 말을 골랐다.
하지만 그녀가 대답을 할 필요는 없었다.
마르테스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녀’를 이용해 관심을 돌리고, 본탑에 들어와 마목이 품고 있던 알을 찾으려던 생각이 아니더냐?”
담담한 음성이었지만, 마르테스의 말이 이어질수록 루페라의 표정이 무너져 내렸다.
“허나 ‘성녀’의 죽음까진 예상치 못한 듯하구나.”
마르테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알은 내어줄 수 없느니라.”
“…알겠습니다.”
루페라가 쥐어짜듯 대답했다.
마르테스가 모든 것을 눈치챈 이상, 성왕의 명령은 이행할 수가 없었다.
“돌아가라.”
루페라가 고개를 쳐들었다.
‘돌아가라고? 살려준다는 뜻인가?’
믿을 수가 없었다.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하늘탑에 들어온 자신을 이대로 보내주다니.
그녀의 눈에 희망이 스쳐 지나갔다.
“돌아가서 성왕에게 전하거라. 그대의 뜻을 짐작하는 바. 더 이상의 행동은 하늘탑의 주인이자, 마법의 종주로써 용납하지 못한다고.”
그 말에 루페라가 속으로 이를 갈았다.
감히 그분을 모욕하고 있다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힘으론, 단순한 항의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리 전하겠습니다.”
루페라는 치밀어 오르는 광기를 가까스로 잠재운 뒤, 고개를 숙였다.
“내 눈앞에서 사라지거라.”
축객령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루페라의 신형이 빛과 함께 사라졌다.
혼자 남은 마르테스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혀를 자극하는 씁쓸한 맛이,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결국은 벌어지고 말았구나.”
막을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일이 벌어진 뒤에야 모든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 덕분에 신수의 알을 온존할 수 있었지만, 대륙의 운명이 크게 비틀리고 말았으니.”
마르테스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혼돈이 찾아올 모양이다.”
그녀의 심상에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피와 죽음.
배신과 광기.
시체와 분노.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제국에 환란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미 굴러가기 시작한 수레바퀴는 막을 수 없었다.
“그저 피가 덜 흐르기만을 바랄 뿐.”
마르테스는 서우진을 떠올렸다.
결국 모든 열쇠는 그 아이다.
부디 올바른 선택을 하길 원하고 원했다.
스윽-
마르테스가 손을 뻗자, 허공이 갈라지더니 푸른빛을 뿜는 커다란 알이 모습을 드러냈다.
“휘라테온.”
신의 짐승.
성스럽고 고귀한 신수의 이름을 불렀다.
“푸른 바람을 품은 고대의 짐승이여, 그대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도 모르겠노라.”
마치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알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쩌저적-
그리고 이내 거미줄 같은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신수의 탄생.
무려 2천 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 * *
“그러니까, 그년이 사도와 관계가 있었단 말이지?”
브리아니의 눈이 가늘어졌다.
레이나에게 당한 게 많다 보니, 사도들에 대한 감정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었다.
“확실할 거예요. 성유라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분명 신성력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자신과 대화를 하다 실수로 그런 뉘앙스를 풍겼다는 사실도 이야기해 주었다.
브리아니는 서우진의 말을 믿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성녀’라는 SS급 용사가 갑자기 미쳐서 기사들을 죽일 이유가 없었으니까.
“문제는 그걸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건데.”
서우진의 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미 성유라가 죽어버렸으니 밝혀낼 수가 없었다.
아무리 정당한 처벌이었다 한들, 증명하지 못한다면 황제와 암공은 서우진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방법이 아예 없진 않은 것 같아요.”
“응? 그게 무슨 말이니?”
브리아니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아이에르에서 온 사절단 있잖아요.”
“주교가 왔지. 안 그래도 지금 황제에게 끌려갔다더라.”
“그들을 추궁하면, 증거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서우진의 말에 브리아니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의심이 된다 한들, 주교는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는 존재다.
“주교는 황제도 예의를 갖춰야 할 정도로 높은 위치의 귀족이야. 내가 대공의 위치에 있지만, 그를 건드리는 건 부담…….”
“주교가 아니에요.”
서우진이 브리아니의 말을 끊었다.
그러곤 미소를 지었다.
“루페라라고 했던가요? 사절단에 포함되어 있는 추기경의 이름이?”
브리아니의 눈이 살짝 커졌다.
“설마?”
“그녀가 지닌 기운이 성유라와 완벽하게 같더라고요. 그 정도면 조사해 볼 가치가 충분하지 않을까요?”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쳤다.
만약 추기경이 성유라에게 무슨 짓을 했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그래서 그녀가 미쳤고, 그것을 막기 위해 서우진이 어쩔 수 없이 죽였다는 것을 어필할 수 있었다.
덤으로 서우진이 받고 있는 의심도 조금은 지울 수 있을 것이고.
“내가 한번 알아볼게.”
서우진은 현재 구금 상태라 운신이 자유롭지 못했다.
브리아니는 대신 자신이 직접 나서 루페라를 조사하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서우진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하지만 브리아니는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그녀는 사도들에게 커다란 엿을 먹일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