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00)
199화.
“‘성녀’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제국에서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필로얀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황제를 향해 선언했다.
“책임이라…….”
하지만 늙은 황제는 심드렁한 태도로 일관했다.
보좌에 앉아 턱을 손으로 괴고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주교는 농담을 진담처럼 들리도록 말하는 재주가 있구나.”
“…농담?”
필로얀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지금 제 말을 고작 농담으로 치부하신 것입니까?”
노기가 가득 담긴 음성이었다.
“농담이 아니었던가? 책임이라니, 그걸 왜 짐과 제국이 짊어진다는 말이더냐?”
“정녕 몰라서 물으시는 것입니까? ‘성녀’는 다른 용사에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바로 이곳, 제국의 아카데미에서 말입니다. 폐하께서도 그것을 모른 척하실 수는 없을 겁니다.”
필로얀은 자신의 말이 억지스럽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몰아붙여야만 했다.
그래야만 자신들이 의심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일은 분명 성왕 전하께서 뜻하신 일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성녀’가 갑자기 미칠 리가 없었다.
아마도 따로 명을 받은 루페라 추기경이 뭔가를 한 것일 터.
필로얀은 그 사실을 철저히 감춰야만 했다.
“흐음.”
황제는 필로얀의 말에 심기가 상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것이 아이에르의 뜻이더냐?”
“그럴 것이라 믿고 있사옵니다.”
무거운 질문에 필로얀은 당당히 대답했다.
“이번에 벌어진 불미스러운 일에 대한 사과를 원한다면 해주마.”
황제가 마치 선심을 쓰듯 말했다.
그러자 필로얀이 속으로 반색했다.
‘되었다!’
황제의 입에서 사과라는 말이 나왔다.
그 말은 곧, ‘성녀’의 죽음을 제국이 책임지겠다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필로얀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더욱 몰아붙이려 했다.
아이에르가 조금이라도 더 큰 이득을 취할 수 있도록 말이다.
‘성녀’를 잃었으니, 그 이상의 대가를 받아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황제는 그의 생각처럼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허나, ‘성녀’를 죽인 아이는 제국의 지원을 받는 이가 아니니라.”
“그게 무슨?”
“책임을 묻겠다 하면 제국이 아닌, 서우진의 지원을 맡고 있는 시온에 하는 것이 옳을 터.”
황제의 안광에서 빛이 번뜩였다.
“사과로 만족하거라. 그 이상을 바란다면, 짐은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니라.”
늙은 노구에서 강렬한 기세가 뿜어졌다.
마력이 아니다.
황제라는 위치가 가져다주는 지엄한 권위에서 비롯한, 절대적인 지배력이었다.
필로얀은 입술을 짓씹었다.
‘여기까진가?’
황제의 말대로 더 이상의 압박은 악효과만 가져올 듯했다.
“폐하의 전언을 성왕께 전하겠나이다.”
“물러나라.”
황제의 축객령.
황제는 시종일관 자신을 대우해 주는 모습이었지만, 그 내면에는 아이에르를 향한 무시가 숨어 있었다.
“평안하시길.”
예를 갖추고는 알현실을 빠져나왔다.
“…괜찮으십니까?”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신성기사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만큼 필로얀의 표정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루페라는 어찌 되었느냐?”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필로얀의 눈이 가늘어졌다.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혹여 일이 틀어진 건 아닐지 걱정되었다.
“일단 숙소로 돌아간다. 추기경이 돌아오면 곧장 아이에르로 복귀할 수 있도록 준비하거라.”
“알겠습니다.”
기사들은 필로얀을 둘러싸며 이동을 시작했다.
‘그 일만큼은 제대로 성공해야 할 터인데.’
부디 루페라가 무사히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오길 기도했다.
* * *
루페라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하늘탑을 빠져나왔다.
마르테스에게 딱히 해를 입은 것은 아니다.
공격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보내주었으니까.
하지만 마공을 마주하고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실 자체가, 루페라에게는 큰 압박으로 다가왔다.
하늘탑에 가득차 있는 마력에서 벗어났음에도, 여전히 그녀는 무엇인가가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느낌이었다.
‘어서 돌아가야…….’
임무는 실패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애초에 성공이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신이 하늘탑에 몰래 숨어들려던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줄이야.
예지에 가까운 능력.
그것이 있는 한, 하늘탑에서 알을 훔치는 것은 영원히 이뤄질 수 없을 것이다.
루페라는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애써 외면한 채, 천천히 숙소로 돌아갔다.
‘주교께선 어찌 되었을까?’
황제의 부름을 받은 필로얀 역시 자신 못지않은 압박감을 느꼈을 것이다.
어쩌면, 엄청난 곤혹을 치렀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루페라는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필로얀의 성왕을 향한 믿음과 충성은 결코 깨지지 않을 정도로 굳건했으니까.
아무리 황제가 겁박한다 해도, 그라면 견디고 견뎌 자신의 뜻을 관철할 게 분명했다.
지금은 필로얀을 걱정하기보단, 임무의 실패에 대한 대책 마련을 걱정해야만 했다.
루페라는 한 걸음, 한 걸음을 힘겹게 옮겼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마침내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돌아오셨구나.’
저택 안에서 필로얀과 신성기사단의 기운이 느껴졌다.
루페라는 한결 안도한 표정을 지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추기경님!”
루페라가 힘겹게 모습을 드러내자, 깜짝 놀란 신성기사들이 빠르게 다가왔다.
“주교께 안내를…….”
그들에게 상황을 설명할 기운이 없었다.
어서 필로얀과 만나 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파악해야만 했다.
“추기경을 모셔라.”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눈치챈 기사들이 그녀를 필로얀의 방으로 옮겼다.
똑똑-
“들어오너라.”
노크하자, 안쪽에서 잔뜩 지쳐 있는 음성이 들려왔다.
“추기경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신성기사가 문을 열었고, 루페라는 그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표정을 보아하니 실패한 모양이로구나.”
루페라의 상태는 한눈에 보기에도 그리 좋진 않았다.
“죄송합니다.”
루페라는 고개를 숙였다.
도저히 필로얀의 얼굴을 쳐다볼 자신이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 보거라.”
필로얀의 말에 루페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겪었던 일을 설명했다.
“허어-”
그것을 모두 들은 필로얀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제국의 다섯 날개 중 으뜸이 하늘탑의 주인이라더니. 과연 허튼소리는 아니었구나.”
루페라가 임무에 실패한 것을 탓할 수가 없었다.
“주교께옵선 어찌 되셨는지…….”
루페라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필로얀의 표정도 자신 못지않게 안 좋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황제가 ‘성녀’의 죽음에 대해 사과를 한다더군.”
“그 황제가 말입니까?”
필로얀의 말에 루페라가 깜짝 놀랐다.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의 주인이 사과를 약속했다고?
루페라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아는 황제라면 사과를 단순히 말로만 끝내진 않을 터였다.
분명 그에 걸맞은 충분한 대가를 치를 게 분명했다.
그로 인해 아이에르는 수많은 이득을 취할 수가 있었다.
“정말 다행입니다. 이것으로 임무 실패에 대한 질책…….”
말하던 루페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더는 좋을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필로얀의 표정은 여전히 나빴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허울뿐인 사과이니라. 정작 중요한 책임소재는 제국이 아닌, 시온에게 미루더구나.”
루페라는 그제야 필로얀의 안색이 왜 이리도 어두웠는지 깨달을 수가 있었다.
‘빌어먹을.’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이번 일은 우리의 손을 떠났다. 본국으로 복귀해 성왕 전하께 아뢰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수밖에 없다.”
루페라는 필로얀의 말에 동의했다.
“지금 바로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해 두었으니, 출발하자꾸나.”
필로얀이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잠시 후.
아이에르의 사절단이 제국을 떠났다는 소식이 황실에 전해졌다.
* * *
“이게 뭡니까?”
서우진은 눈을 끔뻑이며 눈앞의 생명체를 쳐다봤다.
동료들과 이번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도중, 갑자기 하늘탑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마공 마르테스가 자신을 찾는다며 말이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기에 의아하긴 했지만, 성유라의 죽음이나 스트레인과의 전투 때문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래서 서우진은 동료들에게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하늘탑으로 향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예상과는 조금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무엇처럼 보이느냐?”
마르테스는 호기심 서린 표정으로 서우진을 쳐다보며 물었다.
“…글쎄요.”
그녀는 서우진이 도착하자마자, 대뜸 뭔가를 들이밀었다.
하늘을 닮은 색의 털뭉치였다.
“토끼… 는 아닌 것 같고.”
처음엔 그냥 어떤 생물의 털을 뭉쳐서 만든 물체인 줄 알았는데, 꿈틀거리는 것으로 봐선 살아 있는 생명체였다.
이목구비가 전혀 보이질 않아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동물은 아니야.’
그런 단순한 것이었으면, 자신을 하늘탑까지 불러서 보여줄 리가 없었다.
“이게 뭡니까?”
서우진은 다시 한번 같은 질문을 했다.
그러자 마르테스는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털뭉치를 서우진에게 건넸다.
“받거라.”
솔직히 내키지는 않았다.
뭔지도 모를 것을 만졌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고, 함부로 받는단 말인가?
하지만 마르테스의 기대감 서린 표정을 본 서우진은 거절할 수도 없었다.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밀었다.
포근-
마치 최고급 실크를 만지는 듯한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오…….’
기분이 좋아질 정도의 감촉에 서우진이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마음에 드느냐?”
“아, 네. 이거 느낌이 좋네요.”
가만히 쓰다듬고만 있어도 스트레스가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네 것이니라.”
뜬금없는 말에 서우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뭔지는 알아야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서우진은 그녀가 자신에게 호의적인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해가 될 만한 것을 주진 않았으리란 믿음이 있었다.
그래도 정체도 모르는 것을 덥썩 받아들 수는 없었다.
“휘라테온.”
처음 듣는 이름이다.
‘아니, 이름이 맞나?’
서우진이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자, 마르테스가 말을 이었다.
“마목이 품고 있던 알에서 태어난 것이니라.”
그 말에 움찔- 했다.
마목은 저주받은 세계수의 줄기다.
그것이 품고 있던 알에서 나온 것이었으니, 찝찝한 마음이 들 수밖에.
하지만 마르테스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바람을 머금은 신수이니라. 너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터.”
신수라는 말에 서우진의 눈이 조금 커졌다.
신수라니…….
왠지 심상찮은 단어 아니던가?
“2천 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존재이니, 앞으로 잘 키워보도록.”
“아, 아니. 잠시만요.”
당황한 서우진이 휘라테온인지 털뭉치인지를 앞으로 내밀었다.
신수든 뭐든, 지금 자신은 이런 걸 키울 정신이 없었다.
다 큰 녀석이라면 모를까, 갓 태어난 새끼를 언제 키워서 써먹는단 말인가?
하지만 마르테스는 돌려받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오히려 지금껏 보지 못한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받아야만 하느니라. 너를 위해서, 그리고 세계를 위해서라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