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04)
203화.
서우진은 착 가라앉은 눈빛으로 눈앞의 황제를 바라봤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
하지만 대륙 최강의 국가 주인답게, 황제는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위압감을 내뿜고 있었다.
‘대단하긴 하네.’
벌써 몇 번이나 봤다.
그런데도 서우진은 마력 한 줌 느껴지지 않는 황제에게서, 매번 커다란 압박감을 느꼈다.
“이야기는 들었느니라.”
길었던 침묵이 끝나고, 황제의 입이 열렸다.
“그렇습니까?”
서우진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러자 황제는 허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암공과 싸워 이겼다고?”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닐 텐데요.”
“감히……!”
서우진의 불손한 태도에, 황제의 뒤에 있던 수호 기사들이 분노를 토해냈다.
검에 손까지 가져다대는 그들의 모습에 서우진이 픽- 웃었다.
“그거 뽑으면 다칩니다.”
농담이 아니었다.
서우진의 눈동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물러나거라.”
그것을 눈치챈 것일까?
황제가 자신의 기사들을 향해 엄히 꾸짖었다.
척-!
단 한 마디의 항변도 하지 않고 뒤로 물러나는 기사들의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황제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새삼 다시 느껴진 것이다.
“그래, 중요한 건 그런 것이 아니었지.”
기사들이 물러나자,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는 것이 있더냐?”
“암공을 통해 말씀드렸습니다만.”
“너를 건드리지 말아달라는 것 말이로구나.”
“저는 그거면 족합니다.”
싸늘한 긴장감이 흐른다.
황제는 입을 다물었고, 뒤에 있던 기사들은 언제든 달려들 만반의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서우진은 태연했다.
지금 이곳에서 자신이 경계해야 할 존재는 단 한 명.
자신의 존재감을 지울 수 있는 이능을 지닌 기사뿐이었다.
‘어디 있을까?’
혼돈기를 최대로 운용하고 ‘신룡안’까지 사용했음에도, 그 기사의 기척은 잡히질 않았다.
만약 그 존재를 몰랐다면 숨어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서우진은 확신했다.
‘분명 있어.’
그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서우진은 이능을 지닌 기사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황제의 대답을 기다렸다.
숨이 막힐 듯한 침묵이 지나고.
마침내 황제의 입이 열렸다.
“짐이 너의 말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느냐?”
순간 질문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스트레인에게 했던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먼저 건드리지만 않으면 난 아무 짓도 하지 않겠다고 했었지.’
너희가 바라는 대로 마왕을 쓰러트린 뒤, 지구로 돌아갈 것이라고.
황제는 서우진의 그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냐고 물은 것이었다.
“뭐, 각서라도 쓸까요?”
그것은 전적으로 황제의 마음에 달린 것이었다.
이쪽에서 아무리 약속을 한다고 해도, 황제가 믿지 못하겠다 생각한다면 그걸로 끝이었다.
“각서라…….”
서우진은 비꼬듯 말한 것이었지만, 황제는 의외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굳이 그리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구나.”
‘정말로 각서를 쓰자고 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 따위를 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황제가 고개를 저었다.
“내 너의 말을 믿어보도록 하겠노라.”
황제의 말에 서우진은 조금 허탈해졌다.
뭔가 생각도 못해본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하거나,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밀고 당기는 기 싸움이 벌어질 줄 알았는데…….
‘고작 말 한마디에 받아들인다고?’
허탈하다 못해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이렇게 쉽게 받아들일 거면 그동안 왜 그리도 귀찮게 굴었는지 모르겠다.
서우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황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지금 이 순간부터는 너에 대한 모든 조사가 중지될 것이니라. ‘검은 존재’와의 연관성 역시 불문에 부칠 것이며, 그 어떤 의구심도 품지도 않을 터. 허니 너는 오롯이 용사로써의 본분을 다 하거라.”
요약하자면, 귀찮게 안 할 테니 마왕이랑 잘 싸워달라는 뜻인 듯했다.
바라던 바이긴 했지만, 너무도 쉽다는 생각에 서우진은 좀 찝찝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싫다고 할 순 없었으니, 서우진은 고개를 숙였다.
“저도 폐하를 믿겠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예의는 갖추었지만 당당하다.
그런 서우진의 모습에 황제는 만족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좋구나. 허면 약속의 대가로 한 가지 부탁을 들어줄 수 있겠느냐?”
‘그러면 그렇지.’
황제의 이어지는 말에 서우진의 입술이 뒤틀렸다.
아무런 조건도 없이 서우진의 말을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무엇입니까?”
귀찮음과 의심을 피하기 위해, 웬만한 건 들어주자고 마음먹었다.
“아카데미의 모든 용사가 곧 데르한으로 훈련을 떠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
브리아니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서우진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황제는 잘됐다는 듯 말했다.
“그곳에서 아이에르의 침공을 막아줄 수 있겠느냐?”
애초에 데르한으로 훈련을 떠나는 것이 전쟁을 억제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황제가 이렇게 말을 한다는 건, 그 이상의 뭔가를 해달라는 뜻이었다.
“어떤 방식을 원하십니까?”
서우진이 물었다.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사용해서 막아내거라. 단, 아이에르에게 빌미를 주어서는 안 되느니라.”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니까 안 걸리고 잘 막아달라는 것이다.
‘그게 어떻게 하는 건데?’
서우진은 그렇게 물으려 했지만, 황제의 눈을 보곤 입을 다물었다.
‘농담이 아니야.’
황제는 그 어떤 때보다 진중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서우진은 다시 한 번 황제의 말을 되짚어봤다.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
‘…그런 뜻이구만.’
황제의 말뜻을 짐작한 서우진의 표정이 서늘해졌다.
“그 부탁을 들어드리면, 다시는 저를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시는 겁니다.”
“짐의 말이 곧 법이니라.”
“‘검은 존재’에 대해서도 관심을 끊는 게 확실하겠죠?”
서우진의 물음에 황제가 허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무엇이더냐?”
너스레를 떤다.
그 반응에 서우진은 자신이 생각한 게 맞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아이에르의 침공을 막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폐하가 말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사용해서라도.”
서우진과 황제의 시선이 부딪혔다.
“짐이 바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니라.”
* * *
“이런 때에 무슨 훈련이에요?”
이지아가 투덜거렸다.
현재 제국의 상황은 혼잡, 그 자체였다.
아카데미에서는 벌써 몇 번이나 커다란 일이 터졌고, 전쟁 소식까지 들려오는 중이다.
그런데 갑자기 훈련을 떠난다며 용사들을 모두 소집했으니, 이지아가 궁금해 할 만도 했다.
“오히려 그래서 실시하는 거 아닐까?”
계수지가 이지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음? 그게 무슨 말이에요?”
“요즘 분위기가 별로 안 좋으니까. 차라리 다른 곳에 가 있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잖아.”
“그런가?”
다른 용사들은 아직 훈련지의 위치를 듣지 못한 상황이었다.
최대한 기밀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그곳이 제국과 아이에르 사이에 있는 데르한이라는 걸 아는 용사는 오직 서우진뿐이었다.
“아저씨! 정말 그런 거예요?”
이지아가 서우진을 홱- 하고 돌아보며 물었다.
“글쎄? 수지 씨의 말이 맞지 않을까?”
서우진은 모른 척하며 계수지의 말에 동조했다.
“그런가?”
이지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서우진과 계수지가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납득하는 듯했다.
“…괜찮으세요?”
계수지가 다가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뭐.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럼 다행인데…….”
서우진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자, 계수지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쪽을 향해 웅성거리는 용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확실히 저를 꺼리는 것 같긴 하네요.”
서우진은 성유라를 죽였다.
몬스터도 아니고, 그냥 사람도 아닌.
지구에서 같이 소환된 용사를 죽인 것이다.
아무리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용사들 중에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
‘살인자.’
‘개새끼.’
‘사이코패스 같은 놈.’
서우진의 귀에 자신을 지칭하는 온갖 욕들이 들려왔다.
웬만하면 신경쓰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었음에도, 너무도 뛰어난 능력 탓에 모두 들을 수밖에 없었다.
서우진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굳이 변명을 하진 않았다.
서우진이 성유라를 죽인 이유는, 대의 때문이 아니었으니까.
그냥 애써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저씨! 뭘 그렇게 시무룩하고 있어요? 욕은 아저씨가 아니라 성유라가 들어야죠! 아니, 막말로 사람을 떼로 잡아 죽인 게 누군데? 그걸 막아준 사람한테 칭찬은 못할망정 저렇게 뒤에서 욕이나 하고 말이야! 어? 할 말이 있으면 직접 와서 하던가!”
이지아가 모두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주변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이지아가 서우진을 쳐다봤다.
마치 ‘저 잘했죠?’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서우진은 피식- 웃으며 그런 이지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자신을 위해서 이렇게 나서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조금 고마웠다.
“신경쓰지 마. 저 녀석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욕을 해대는 것뿐이니까.”
“맞습니다. 그냥 무시하시죠.”
“동의요.”
위로를 해주는 건 이지아와 계수지뿐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함께 시간을 보냈던 동료들 역시 서우진의 곁으로 다가와 한마디씩 보탰다.
“난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데.”
서우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다행이고.”
강병규가 서우진의 어깨를 툭- 하고 치며 앞으로 걸어갔다.
‘뭐, 이런 분위기는 금방 사라지겠지.’
이제부턴 욕할 시간도 없다.
데르한에 도착하면, 저들은 일종의 인간 방패가 되어 아이에르의 진격을 막아내야만 하니까.
직접 싸울 일은 없겠지만, 전장의 분위기만으로도 서우진에게 신경쓸 정신 따윈 없을 것이다.
“모두 주목해 주세요!”
용사들이 모두 대연무장에 모이자, 총장 요른이 앞 단상에 올라왔다.
허리춤에 찬 녹빛의 검, ‘푸르나’가 햇빛에 반짝이며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덕분에 용사들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됐다.
“여러분은 지금부터 훈련을 떠나게 될 거예요. 훈련 내용은 그곳에 상주하는 몬스터들의 완전 토벌.”
몬스터 토벌이라는 말에 용사들의 분위기가 뜨거워졌다.
요즘 아카데미 안에서만 죽치고 앉아, 기사들이 가져다주는 몬스터들만 잡다 보니 꽤나 지루했던 탓이었다.
“이번에 잡을 몬스터는 꽤나 지능이 높고 수도 많아요. 하지만 여러분의 실력이라면, 토벌을 수월하게 끝낼 수 있을 거예요.”
요른이 도열해 있는 98명의 용사를 둘러봤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 있는 표정이었다.
몬스터와 싸울 수 있다는 사실에 기대까지 하고 있는 듯했다.
그것을 확인한 요른이 말을 이었다.
“오늘 우리가 향할 곳은 자르바 평원이에요.”
생소한 지명에 용사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전처럼 마경으로 갈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틀린 것이다.
“거기가 어디 있는 겁니까?”
누군가 물었다.
그러자 요른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제국의 바로 옆에 있는 왕국, 데르한에 있답니다.”
용사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