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07)
206화.
전마(戰馬)의 투레질 소리가 평원에 울려 퍼졌다.
순백의 성스러운 갑주를 입은 기사들은 그 위에 앉아 비장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천이백.
집결한 신성기사단의 수가 무려 천이백에 달했다.
병사의 수가 5만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지나치게 많은 수였다.
‘왕국의 모든 기사를 동원한 건가?’
최상급 기사 오이언은 자신의 뒤에 도열해 있는 동료들을 보며 생각했다.
간악한 제국을 징벌하기 위한 전쟁.
‘성녀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함이라고 했지.’
오이언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성왕께선 진정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 판단하시는 건지…….’
아이에르는 강대국이다.
대륙의 수많은 왕국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강력하다.
한때는 제국조차 위협할 정도의 힘을 지녔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제국은 차원이 다르다.
괜히 국가명도 없이 오직 ‘제국’이라 부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진심을 다하면 왕국 몇 개 정도는 순식간에 멸망시킬 수 있다.’
아이에르 역시 마찬가지다.
강력하긴 하지만, 제국과는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성왕은 선전포고를 했다.
주신의 뜻이라면서 말이다.
오이언이 손을 들어 목 언저리를 쓰다듬었다.
작은 목걸이가 만져진다.
신앙을 증명하는 주신의 징표였다.
‘이게 과연 옳은 것입니까?’
그리 질문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신은 답을 주지 않았다.
“신의 이름으로!”
그때 누군가 외쳤다.
‘슈테오른 경인가?’
오이언과 같은 최상급 기사이자, 이번 원정의 총사령관.
그의 음성이 기사와 병사들이 집결해 있는 평원에 울려 퍼졌다.
“신의 이름으로!”
“성왕 폐하를 위하여!”
외침 속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신성력에 잔뜩 고무된 병사들이 전의를 불태웠다.
그 모습에 오이언이 쓴웃음을 지었다.
‘성녀의 복수를 위한다는 말은 안 나와서 다행인가?’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명분으로 삼기엔 너무도 빈약한 이유.
그런데도 성왕은 전쟁을 일으켰다.
‘대체 얼마나 많은 피가 흐를지 짐작도 되지 않는구나.’
정말로 많은 이가 죽을 것이다.
아이에르는 물론이고, 제국의 병사들까지.
전 대륙의 힘을 모아 마왕의 침공에 대비해야 할 때에, 이런 피해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가 있었다.
오이언은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돌이키기엔 너무 늦었다.
아니, 애초에 고작 자신의 힘으론 막을 수도 없었다.
그저 전쟁이라는 광기의 축제에 휘말려, 한 명의 체스말로 쓰일 뿐.
“진격하라!”
슈테오른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리고 아이에르의 5만 병력과 천이백 명의 기사가 천천히 데르한의 국경을 넘기 시작했다.
…길을 막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 *
“시작됐나?”
서우진은 엄습해 오는 불안함에 눈살을 찌푸렸다.
아주 멀리.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거리에서부터 살기와 광기가 느껴졌다.
이 감각이 사실이라면, 아이에르의 진군이 시작된 것일 터.
서우진은 한숨을 내쉬며 주위를 둘러봤다.
‘지금은 못 빠져나가겠는데.’
한창 에이션트 오크의 토벌을 진행 중이었다.
그아아아-!
“목을 쳐!”
“‘데들리 블로우’!”
대충 봐도 수백 마리는 될 듯한 에이션트 오크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 용사들.
수만 보자면 비교도 되지 않게 열세였지만, 당연하게도 밀어붙이는 건 용사 쪽이었다.
다만 첫 전투인만큼 이런 대규모 전투가 익숙하지 않은데다, 에이션트 오크들의 조직적인 대응에 예상보다 시간이 조금 걸리고 있었다.
‘걱정할 필요는 없겠네.’
하지만 용사들은 강하다.
개개인의 무력이 너무도 압도적이었기에, 연계는 좀 부족해도 압도적인 공세를 퍼붓고 있었다.
그중 가장 선전하고 있는 것은 단연 서우진의 동료들이었다.
그들은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적의 진영을 박살냈다.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김우람조차 이전과는 달리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다.
‘반 슬레인이 잘 가르쳐 줬나 보네.’
갑작스러운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훈련 도중에 나오긴 했지만, 그간 열심히 노력한 태가 보였다.
‘하긴…….’
반 슬레인의 교육방법을 생각해 보면, 열심히 하고 싶지 않아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안 그랬다간 정말 죽지 않을 정도로 쳐맞았을 테니까.
다른 용사들도 나름대로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처음 트롤과 실전경험을 했을 때와는 천지차이였다.
손을 쓰는 데 망설임이 없었고, 에이션트 오크의 살기에 움츠러드는 머저리는 없었다.
그들은 마치 살인 기계라도 된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중에서도 엘리트 친구들은 여전히 압권이었다.
백시우와 성유라가 없었음에도, 남은 세 명은 에이션트 오크들을 그야말로 학살하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서우진이 고개를 돌렸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위험한 상황에 대비해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서우진은 그들 중 한 명에게 걸어갔다.
“루데인 경.”
바로 이번 훈련의 책임자이자 최상급 기사인 루데인이었다.
그는 서우진이 다가올 때부터 주시하고 있었기에, 당황하지 않고 용무를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무래도 시작된 것 같네요.”
루데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서우진이 한 말의 뜻을 알아차린 것이다.
“확실합니까?”
그가 알기로, 서우진은 지금까지 이곳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아차린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100퍼센트 확신할 순 없어요. 하지만 제 감은 그렇다고 하네요.”
아마 틀림없을 것이다.
지금의 경지에 오른 이후, 이런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으니까.
미래를 예지에 가깝게 볼 수 있는 마르테스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서우진의 감도 꽤나 정확도가 높은 편이었다.
루데인은 그 말을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아무래도 움직여야겠죠.”
황제와의 거래를 이행하려면, 이제 슬슬 준비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곤란합니다.”
지켜보는 눈이 많다.
이 자리에 있는 용사뿐만 아니라, 기사들 역시 서우진이 지금 사라진다면 모두 눈치를 챌 것이다.
그런 상황에 서우진이 자리를 비울 순 없었다.
그랬다가는 의심을 살 게 분명했으니 말이다.
“해가 지면 움직이도록 하죠.”
토벌은 낮 동안에만 진행된다.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는 숙영지에서 휴식을 취하니, 그때 행동을 개시하면 될 터였다.
“당분간은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어요.”
거리가 좀 되기도 했고, 하루아침에 아이에르를 포기시키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니 최소한 며칠은 토벌에 참여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핑계거리를 좀 생각해 주세요.”
“제가 말입니까?”
서우진의 요구에 루데인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지금 그런 걸 고민할 정도로 여유가 있질 않아서요.”
서우진이 웃으며 말하자, 루데인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거부하지는 않았다.
서우진이 행동하는데 최대한 협조하라는 황실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루데인의 대답에 서우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아직 토벌이 한창이다.
밤이 되기 전까진 최대한 놈들의 수를 줄이는 것에 집중해야만 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경험치를 얻을 테니까.’
에이션트 오크를 사냥한다고 해서 서우진에게 큰 도움이 되진 않는다.
하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다.
서우진은 그 조금의 경험치가 훗날 커다란 보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곤 혼돈기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잠시 후.
수백 마리에 달하던 에이션트 오크는 단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하고 모두 죽음을 맞이했다.
* * *
어둠이 내려앉았다.
피와 죽음으로 아우성치던 자르바 평원에도 적막이 흘렀고, 하루 종일 전투를 이어갔던 용사들은 모두 자신의 텐트에서 잠을 청했다.
단 한 명.
오직 서우진만이 텐트 밖으로 나와 한쪽으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오셨습니까?”
약속된 장소로 가자, 루데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슬슬 출발하려고요.”
“이것을 받으십시오.”
루데인이 미리 준비하고 있던 물품들을 건네주었다.
밤하늘을 닮은 검은색의 코트.
작은 가죽 주머니.
그리고 고급스럽게 보이는 검 한 자루였다.
그것을 본 서우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코트랑 주머니는 알겠는데, 검은 왜……?”
서우진에겐 ‘카 라니엘’이라는 전설의 검이 있었다.
이것을 사용한 이후에는, 다른 무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보다 좋은 검은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그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황제일 텐데, 새로운 검을 준다?
“폐하께서 ‘카 라니엘’은 세상에 드러내지 말라 하셨습니다.”
왜 그런 명령을 내렸는지, 루데인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서우진은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아!”
이마를 탁- 하고 쳤다.
이번 일을 진행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서우진의 정체를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 ‘카 라니엘’을 사용할 순 없었다.
그랬다간 흉수가 서우진이라는 것을 대놓고 광고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제 생각이 짧았네요.”
서우진이 머쓱하게 웃으며, 루데인이 건네주는 검을 받아 들었다.
스르릉-
‘카 라니엘’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이 검 역시 이전에 서우진이 사용했던 ‘룬 데아’와 비슷한 수준의 명검이었다.
“꽤나 신경써 줬네요.”
위장용 검이 이 정도로 뛰어나다니.
“검뿐만 아니라 그 코트도 대단한 물건입니다.”
진은(眞銀)을 가공해 만들어낸 실로 지어졌고, 대(對)마법방어진이 다섯 겹이나 새겨져 있었다.
기사의 갑주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방호력을 자랑하는 보물이었던 것이다.
서우진은 감탄한 표정으로 코트를 걸치고, 허리에 검을 착용했다.
“이건 어떻게 할까요?”
서우진이 ‘카 라니엘’을 가리켰다.
루데인에게 맡기고 갈 순 없었다.
그를 믿긴 했지만, ‘카 라니엘’이 지니고 있는 이름값을 생각하면 그 누구에게도 맡길 수 없었으니까.
서우진은 혹시 검에 감아 정체를 감출 수 있는 천이라도 있을까 싶어 물었는데, 루데인은 의외의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가죽 주머니를 열어보십시오.”
“응?”
루데인의 말에 서우진은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공간 확장 마법이 걸려 있습니다. ‘카 라니엘’ 정도는 충분히 보관할 수 있을 겁니다.”
“역시!”
서우진은 그럴 줄 알았다며 ‘카 라니엘’을 가죽 주머니에 넣어보았다.
쑤욱- 하며 너무도 쉽게 주머니 안에 들어갔다.
“그 안에는 상당량의 금화와 보석들이 담겨 있으니, 필요할 때 사용하시면 됩니다.”
돈까지 들어 있다는 말에, 서우진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제 가야겠네요.”
“서우진님.”
서우진이 걸음을 옮기려 하자, 루데인이 그를 불렀다.
더 할 말이 있냐는 듯 쳐다봤다.
그러자 루데인이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맡으신 일이 무엇인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만…….”
루데인의 눈동자가 서우진과 마주쳤다.
“부디 몸조심하시길.”
진심 어린 걱정이었다.
함께 몇 번이나 목숨을 걸고 싸워봤기 때문인지, 루데인은 정말로 서우진이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고 있었다.
물론 서우진이 강하다는 건 안다.
하지만 현재 돌아가는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
맡은 임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황제가 직접 이렇게 챙겨주는 걸 보면 단순한 건 아닐 터.
서우진은 그런 루데인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금방 처리하고 돌아올 테니까.”
대답하는 서우진의 눈은 자신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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