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09)
208화.
오이언의 표정은 한없이 어두웠다.
그가 걸치고 있는 순백의 성스러운 갑주와는 반대되는 안색이었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애초에 이번 전쟁부터 탐탁지 않았다.
하지만 주신과 성왕을 모시는 기사로써 자신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참전했다.
그런데…
‘저들이 어딜 봐서 주신의 뜻을 따르는 신자들이란 말인가?’
지금 오이언의 눈앞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식량은 최소한만 챙겨라! 어차피 다음 도시에서 보급받을 수 있으니까!”
“대장, 이거 보십쇼! 보석입니다!”
“챙겨, 챙겨. 그것도 다 보급품이니까, 싹 다 챙기란 말이야!”
보급이라는 이름의 약탈.
원정군 총사령관 슈테오른은 자신들의 요구를 거부한 작은 도시를 약탈하라 명했다.
오이언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지만, 병사들은 아니었다.
그의 황망함을 뒤로하고, 그대로 도시를 침공해 모든 것을 빼앗고 있었다.
‘이건 성전이 아니다.’
자신이 믿는 신은, 약자의 것을 빼앗으라 말씀하신 적이 없었으니까.
저들은 성전으로 포장이 된, 침략을 자행하고 있었다.
그러다 한 병사가 부녀자를 겁탈하려는 장면을 보곤, 오이언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움직였다.
“거기까지.”
바지를 반쯤 벗어 엉덩이를 훤히 드러낸 놈의 뒤에 서서 말했다.
“앗! 기사님이 먼저 하시겠습니까?”
귀가 더러워진다.
“그만하고 일어나도록.”
오이언은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는 여인의 모습에,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심상찮은 분위기를 느낀 것일까?
병사가 바지를 추스르며 엉거주춤 일어났다.
“왜, 왜 그러시는지…….”
눈알이 데루룩-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돌아가서 네 본분을 다해라.”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목을 치고 싶었다.
감히 주신의 이름을 욕보이는 이 빌어먹을 놈의 목을 말이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런 일이 벌어진 원인은, 바로 슈테오른이 묵인했기 때문이었으니까.
오이언이 아무리 최상급에 다다른 기사라 하지만, 총사령관인 슈테오른에게 항명할 순 없었다.
결국 병사를 다른 곳으로 보내 버린 뒤, 그는 흐느끼고 있는 여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미안하오.’
이런 악몽 같은 일을 겪게 해서.
그리고 더 이상의 도움을 줄 수 없어서.
오이언은 굳은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한 곳은 이 작은 도시의 중심에 있는 영주성.
바로 슈테오른이 머물고 있는 임시 숙소였다.
“충!”
정문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오이언을 발견하고는 군례를 했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고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 조금은 마음이 풀리는 듯했다.
적어도 모든 병사가 밖에서 약탈하고 있는 이들과 같지는 않다는 것을 안 덕분이었다.
“슈테오른 경을 뵈러 왔다.”
“안쪽에 기별을 넣겠습니다.”
오이언의 말에 병사들 중 한 명이 영주성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들어오시랍니다.”
오이언은 고개를 끄덕이며 병사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입장했다.
‘화려하군.’
영주성 내부는 아직 약탈을 당하지 않은 듯, 평소의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겼다.
하긴, 감히 총사령관이 머무는 곳을 약탈하러 올 정도로 멍청한 병사가 있을 리가 없었다.
오이언은 이 성의 본래 주인인 영주가 어떻게 되었을지 걱정되었다.
‘설마 죽인 건 아니겠지?’
그랬다간 협정 위반이었다.
아이에르는 데르한이 길을 열어주는 대가로 절대 침략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까.
사실 약탈을 자행한 시점에서 그 협정은 반쯤 파기된 것이나 다름없긴 했지만…….
‘그래도 약탈과 귀족 살해는 그 무게감이 다르지.’
오이언은 제발 슈테오른이 섣부른 행동을 하지 않았길 빌었다.
똑똑-
“오이언 경이 도착했습니다.”
“들어와!”
슈테오른의 음성이 들리고, 문이 열렸다.
“오, 어쩐 일인가?”
오이언의 눈살이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영주의 집무실로 보이는 방 안에서, 슈테오른은 방탕한 자세로 누워 값비싼 와인을 들이켜고 있었다.
‘대체 몇 병이나 마신 거지?’
성 내의 와인은 죄다 갖다 마신 듯, 집무실 안에는 수도 없이 많은 와인 병이 굴러다녔다.
“슈테오른 경.”
“그래그래, 어서 말 해보게.”
슈테오른이 불콰해진 얼굴로 실실거렸다.
그 모습에 오이언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병사들을 이대로 두실 겁니까?”
“응? 그게 무슨 말인가?”
슈테오른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진정 모르시는 건 아니겠지요?”
오이언이 낮은 음성으로 묻자, 슈테오른이 인상을 썼다.
“설마 보급 방법에 대해 불만을 품은 건 아니겠지?”
“그건 보급이 아닙……!”
순간 울컥했다.
하지만 곧 감정을 수습하고는,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그건 보급이 아닙니다. 부녀자를 강간하고, 아무런 죄도 없는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고 있습니다. 세상은 그걸 약탈이라고 부르지요.”
손이 떨려왔다.
조금 전의 참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분노가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꿈틀-
오이언의 눈썹이 살짝 일그러졌다.
“이번 전쟁은 성왕께서 명하신 성전일세. 주신의 뜻을 전파하기 위한 신성한 전쟁을 방해하는 자들의 것을 조금 사용한다 하여, 죄가 되지는 않는다는 말이야.”
궤변이다.
아니, 광신의 개소리다.
“주신께선 강간과 살인을 허락하신 적이 없……!”
콰아아아아앙-!
오이언이 결국 참지 못하고 분노를 토해내는 것과 동시에.
밖에서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났다.
“무슨 일이냐!”
슈테오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어느새 술기운은 모조리 사라진 듯한 모습이었다.
오이언 역시 얼른 창가로 다가가 밖을 살폈다.
“저게 무슨?”
그리고 보았다.
세상을 태울 듯한 거대한 불길 위에 서있는 정체불명의 ‘검은 존재’를.
* * *
서우진은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이동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아이에르 군의 이동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다는 것을 안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쯧.”
눈앞의 광경에 서우진이 혀를 찼다.
“좀 늦었네.”
아이에르는 서우진의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이동을 한 듯했다.
‘여기까지 왔을 줄이야…….’
아이에르 군은 그레이젠이라는 작은 도시에 머물고 있었다.
서우진이 예상한 것보다 하루는 더 빨랐다.
“젠장, 어쩔 수 없지.”
그래도 괜찮다.
크게 엇나간 상태는 아니었으니까.
서우진은 그라이젠 내부의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성벽으로 뛰어올랐다.
“…얼씨구?”
놀랍게도 아이에르 군은 약탈하고 있었다.
‘듣기로는 식량만 빠르게 보급받고 곧장 움직였다고 했는데.’
그 소문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이번에만 다른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나 확실한 건, 저 망할 새끼들이 평범한 이들을 유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할까?’
서우진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어두운 밤하늘에 별들이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시간은 딱 좋고.”
저들에게 공포라는 감정을 심어주기 위해선, 낮보단 밤이 더 좋았다.
“명분도 있네.”
그저 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전쟁에 끌려온 병사들이라면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에르의 병사들은 너무도 태연하게 약탈과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죄책감은 갖지 않아도 되겠어.”
일방적인 학살이 될 게 분명하다.
아무리 서우진이라 할지라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리가 없다.
하지만 저런 모습을 보니, 마음이 꽤나 가벼워졌다.
이유 없는 학살이 아닌, 죄에 대한 징벌이란 명분을 가져다 붙일 수 있었으니까.
서우진이 혼돈기를 끌어올렸다.
고오오오오오-
거대하다 못해 끝이 보이지도 않는, 무한한 크기의 기운이 풀려 나오기 시작했다.
“먼저 잘못한 건 너희야.”
서우진이 속삭였다.
아무도 그 말을 듣진 못했겠지만, 그런데도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너희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러라.”
공간이 일그러지고, 대지가 두려움에 떨었다.
혼돈기를 발판 삼아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제야 서우진의 존재를 눈치챈 기사들이 경악하며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늦었어.’
서우진의 입을 통해, 마침내 최강의 스킬이 발동되었다.
“마왕화.”
회색빛 혼돈기가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머리에서 뿔이 자라고, 등뒤에선 날개가 솟아났다.
쩌저저적-!
피부가 갈라지며, 그 안에서 단단한 비늘이 육체를 뒤덮었다.
동시에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전능감이 차올랐다.
이 상태라면 제국이든 아이에르든.
신경을 거스르는 놈들은 모조리 박살을 내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아아-”
서우진은 길게 늘어뜨린 짙은 흑발을 귀찮다는 듯 넘긴 뒤 병사들을 내려다보았다.
오만한 시선.
평소와는 달리 싸늘한 눈동자가, 마치 하찮은 벌레를 보는 듯했다.
혼돈기 덕분에 ‘마왕화’ 상태에서도 이성을 유지할 순 있었지만, 약간의 성격변화만큼은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죽어라.”
자신을 향해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병사들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지고화.”
콰아아아아앙-!
검은 불꽃이 수백 명의 병사를 일거에 불살라 버리며 폭발했다.
“으아아아아악!”
“사, 살려줘어어!”
멀찍이 떨어져 있어 죽음을 피한 이들은, 그 열기에 피부가 녹아내리며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시끄럽다.”
서우진은 황제가 위장용으로 준 검을 뽑아 들고는 그대로 허공을 그었다.
촤아아아아악-!
뼈와 살이 잘리며, 피가 분수처럼 치솟아 올랐다.
장난스러운 일 검에 죽은 이가 무려 사십여 명.
상식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일을 목도한 병사들이 공포에 빠져, 쉽사리 다가오지 못했다.
“정신 차려라! 저 괴물을 죽여!”
“마왕의 추종자다! 권속이 분명해!”
“주신의 이름으로 놈을 참해야 한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신성기사들이 병사들을 독려했다.
하지만 움직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단 몇 초 만에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존재가, 자신들을 오연하게 내려다보고 있었으니까.
마치 한 걸음이라도 움직이면, 그 자리에서 목을 잘라 버리겠다는 듯한 살기를 뿜으면서 말이다.
“이익!”
결국 참지 못한 신성기사 한 명이 이를 악다물며 서우진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신앙심이 깊구나.”
공포에 빠진 가운데서도 저렇게 달려들 수 있다니.
서우진은 그 신성기사를 향해 감탄 섞인 칭찬을 해주었다.
그러곤 그대로 육체를 반으로 쪼개 버렸다.
쩌어어억-
어떻게 죽은 건지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서우진의 말과 동시에 정수리부터 사타구니까지.
일직선으로 잘리며 양옆으로 쓰러졌을 뿐.
“……‘검은 존재’.”
누군가 서우진을 보며 중얼거렸다.
“‘검은 존재’다.”
“소, 소문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들 역시 ‘검은 존재’에 대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적인지, 아군인지조차 판단이 서지 않는 정체불명의 존재.
다만 인간의 것이라고는 보기 힘든 외형과 마기를 풍긴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왕의 추종자들 중 하나일 것이란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그 ‘검은 존재’에 대해 믿는 이는 별로 많지 않았다.
‘검은 존재’는 오직 제국에서만 몇 차례 목격된 게 전부였고, 그마저도 목격자가 많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실이었다니?
서우진은 자신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있는 이들을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내가 너희가 말하는 ‘검은 존재’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