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12)
211화.
제노니아는 전율했다.
자신을 향해 떨어져 내리는 저 거대한 ‘재앙’.
그 앞에서 한없는 공포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는 이 느낌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제노니아가 아직 평범한 인간이었을 시절.
절대적이고 압도적인 존재와 마주한 적이 있었다.
‘아아…….’
무한한 마기의 힘에 압도되어, 몸과 마음을 모두 꺾어버린 존재.
마왕 카데마인.
일곱 번째로 이 세계에 강림한 판데모니엄의 지배자이자, 가장 최근에 모습을 드러냈던 악마.
제노니아는 그의 힘을 받아들여 영원한 추종자가 되었다.
결국 카데마인은 용사의 손에 명을 달리했지만, 그녀는 음지에 숨어 새로운 왕이 강림할 때까지 힘을 길렀다.
그런데…
‘어째서 그분과 비슷한 기운을 품고 있는 거지?’
정확하게 말하자면 다르다.
카데마인은 끝없는 심연과 같은 마기의 소유자였고, 눈앞의 ‘검은 존재’는 모든 것이 뒤섞인 혼돈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제노니아는 ‘검은 존재’가 왕과 동격의 존재처럼 느껴졌다.
도저히 자신의 힘으론 어찌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
그 앞에서 느껴지는 무력감이 동일했기 때문이었다.
‘왕이시여.’
제노니아는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았다.
본능이 굴복하라 끊임없이 외치고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의 몸과 마음은 모두 판데모니엄의 지배자에게 묶여 있었으니까.
그 제약은 고작 공포 따위에 끊어질 정도로 느슨하지 않았다.
으직-!
입술을 깨물었다.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며 턱을 적셨다.
아릿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덕분에 정신이 조금 또렷해졌다.
어느 정도 운신이 가능해지자 제노니아는 왕에게 받은 마기를 순환시켰다.
우우웅-!
수백 년간 갈고닦은 마기가 흉포한 이빨을 드러냈다.
동시에 전신을 적시고 있던 피가 둥실- 하고 떠오른다.
카데마인에게 직접 부여받은 권능이었다.
이전에 서우진이 마경 헬데인에서 루데인과 함께 잡았던 부르타엘과 비슷한 능력.
‘혈종’.
하지만 마수에 불과한 부르타엘과는 비교도 될 수 없는, 높은 격의 권능이었다.
마왕의 추종자들 중에서도 선택받은 몇 명만이 지니고 있는 성흔(聖痕)의 일종이었다.
제노니아의 혈액은 순식간에 그 크기를 부풀리더니 거대한 방패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녀를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는 ‘천공검’과 비교해도 결코 밀리지 않을 크기였다.
“감히 내게 그분을 떠올리게 만들다니……!”
이를 갈았다.
근본도 알 수 없는 미천한 존재를 보고 왕을 떠올린 것에 분노한 것이다.
“그 죄는 죽음으로도 씻지 못할 터.”
제노니아의 눈이 붉게 충혈된다.
육신의 한계를 넘어선 힘의 운용에 눈동자의 핏줄이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주르르륵-
피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제노니아는 그것마저도 자신의 ‘혈종’에 포함시키며 손을 뻗었다.
“갈기갈기 찢겨져 죽어라!”
피의 방패가 ‘천공검’을 향해 쏘아졌다.
쿠아아아아아앙-!
‘흠…….’
서우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봤다.
제노니아의 마기가 기하급수적으로 치솟아 오르는 것을 느끼곤 조금 놀라긴 했다.
하지만 그뿐.
그녀의 힘으론 현재의 서우진을 감당할 수 없었기에.
그래도 최선을 다하겠노라 말을 꺼냈기에, 서우진은 끊임없이 혼돈기를 운용했다.
덕분에 ‘천공검’은 이전에 선보였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힘을 지닌 채, 제노니아를 향해 내리꽂혔다.
그러다 피의 방패가 만들어지는 광경을 봤다.
하지만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이전에도 본 것이기에 신기하지도 않았다.
그저 저게 자신의 검을 얼마나 막을 수 있을지.
그것이 조금 궁금해졌을 뿐이었다.
“갈기갈기 찢겨져 죽어라!”
제노니아의 악에 받친 외침이 들려왔다.
헛웃음이 나왔다.
그녀의 경지라면, 힘의 차이가 확연하다는 것을 느끼고도 남을 터였다.
그런데도 저리 말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마왕이라는 놈들이 대단하긴 한 것 같았다.
목숨을 잃을 게 뻔한 상황에서도 분노하며 충심으로 적을 상대하니 말이다.
“그건 이쪽의 인간들보다 낫네.”
하나로 똘똘 뭉쳐 마왕의 강림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서로 다투는 놈들보단 말이다.
서우진은 괜히 찝찝해진 기분으로 손가락을 까딱였다.
서서히 내리꽂히던 ‘천공검’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쿠아아아아아앙-!
제노니아가 만들어낸 피의 방패와 충돌했다.
가공할 폭발이 일어났다.
충격파가 도시를 뒤흔들었고, 주변 50미터 이내는 완전히 쑥대밭이 되어 평지가 되었다.
만약 서우진이 힘을 조절하지 않았다면, 도시 전체가 지도에서 사라졌을 정도였다.
후드드득-
피의 방패는 산산이 조각나 마치 비로 화한 듯, 땅을 적시기 시작했다.
서우진은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다 땅으로 내려섰다.
찰박-
피 웅덩이에서 핏방울이 튀었다.
서우진은 상관하지 않고 걸음을 내디뎠다.
제노니아가 서 있던 곳을 향해서였다.
“…대단하네.”
서우진이 감탄했다.
제노니아는 아직 살아서 숨을 쉬고 있었다.
만신창이가 되어 기식이 엄엄해 보이긴 했지만, 분명 아직 살아 있었다.
“죽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공격한 건데 말이야.”
처음에는 살려서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려고 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진심을 다하기로 마음먹고 ‘천공검’을 사용했을 때.
솔직히 서우진은 제노니아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 여겼다.
자신과 그녀 사이에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격의 차이가 있었으니까.
아무리 날고 기는 힘을 지녔다고 해도, 지금의 서우진은 무적에 가까웠다.
마왕도 아니고, 고작해야 추종자 따위가 상대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런데 제노니아는 공격을 견뎌냈다.
“흐, 흐흐…….”
바닥에 쓰러져 꿈틀거리던 제노니아가 웃음을 터트렸다.
피가 묻어 붉게 물든 치아가 드러났다.
“뭐가 웃기지?”
서우진은 자신을 쳐다보며 웃고 있는 제노니아에게 물었다.
“너, 너는, 사자가 말하던, 왕이, 로구나.”
호흡이 고르지 못한 탓에 말이 뚝뚝- 끊어졌다.
하지만 알아듣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사자라…….”
서우진은 이전에 그놈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혼돈의 왕을 말하는 거냐?”
제노니아의 눈이 부릅떠진다.
“이, 이미 알고 있, 었나.”
“사자라는 놈에게 들었거든.”
서우진의 말에 제노니아는 끅끅거리며 웃었다.
“그놈이, 너를 보고도, 우리에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겠지.”
사자가 백시우를 납치해 간 건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일 터였다.
그게 뭔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리 좋은 의도는 아닐 게 확실했다.
심지어 같은 편에게도 숨겼다니, 더욱 놈의 속내가 궁금해졌다.
“나는, 사자의 예언을 믿, 지 않는다.”
“내가 모든 세계를 멸망시킨다느니 하는 예언 말인가?”
서우진이 피식- 웃었다.
그딴 헛소리를 믿지 않는 건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애초에 예언 따위를 믿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
마치 미래가 정해져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서우진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얼마든지 운명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딴 예언은 사람을 현혹시키려는 것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뭐, 마공의 말은 좀 찝찝하긴 하지만.’
하늘탑의 어여쁜 소녀는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말을 맹신하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들어, 라. 혼돈의 왕이여. 네놈의 종말은, 그분의 강림과 함께 끝을 맞이할 거다.”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마왕이 강림하면, 너 따위는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태도였다.
서우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뭐, 그때가 되어봐야 알 수 있는 거고.”
마왕을 직접 본 적이 없어 잘은 모르겠지만, 왠지 질 것 같진 않았다.
“지금은 그런 것보다 다른 게 궁금하거든?”
서우진이 제노니아의 머리맡에 다가가 물었다.
“이 전쟁. 너희가 일으킨 거 맞지?”
제노니아의 미소가 사라졌다.
* * *
오이언은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저곳에서 싸우고 있는 두 존재는, 자신들의 힘으론 어찌할 수 없는 괴물들이다.
천? 이천?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어.’
이 도시에 있는 5만 병력이 한 번에 달려들어도, 털끝 하나 상하게 할 수 없을 게 분명했다.
그 생각은 거대한 검과 피의 방패가 충돌하는 광경에 더욱 확실해졌다.
폭심지 근처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한참 떨어진 곳에서도 그 충격파를 견뎌내지 못했다.
병사들은 물론이고, 무거운 중갑을 걸치고 있는 기사들까지 모두 날아가 버렸다.
마치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과 같은 모습이었다.
오이언 역시 한참이나 뒤로 날아갔다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전신이 박살나는 듯한 충격에 턱이 덜덜- 떨려왔다.
하지만 이대로 넋을 놓고 가만있을 순 없었다.
“후퇴, 후퇴하라.”
‘검은 존재’가 왜 이곳에 출몰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와 싸우고 있는 여인의 정체도.
하나 확실한 건.
이곳에 있다간 제국의 징벌이고 뭐고 모두 떼죽음을 당할 것이란 사실뿐이었다.
오이언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후퇴를 명령했다.
“후퇴하라! 전원 뒤로 물러나!”
오이언의 말을 들은 기사들이 정신을 차리고는 사방에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들의 음성에는 공포와 두려움이 가득했다.
“총사령관은?”
오이언이 뒤의 기사에게 물었다.
“본국에 연락을 취하신다며 영주성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연락은 개뿔.”
슈테오른은 도망을 친 것이다.
병사들에게 약탈을 지시하고, 집무실에 처박혀 와인이나 들이켜고 있을 때부터 알아봤다.
놈은 총사령관으로써의 자질이 전무했다.
“지금부턴 내가 지휘를 맡는다.”
오이언은 슬쩍 ‘검은 존재’가 있던 방향을 쳐다봤다.
다행히 잠시 소강상태인 듯했다.
‘이때를 놓쳐서는 안 돼.’
만약 다시 전투가 시작된다면?
그래서 또 이런 충격이 덮쳐 온다면?
그때도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란 보장이 없었다.
“명령하십시오.”
기사들이 오이언의 명령을 기다렸다.
그들도 총사령관이 도망을 갔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했다.
“전군은 도시를 빠져나간다. 무기와 식량만을 빠르게 챙긴 뒤, 밖에서 전열을 다듬어라.”
“하지만…….”
기사 중 한 명이 머뭇거리며 반론을 제기하려 했다.
하지만 오이언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항명은 죽음으로 다스린다. 짐은 무기와 식량. 그 외의 것들은 용납하지 않겠다.”
살기마저 띠고 있는 오이언의 눈빛에, 기사들은 입을 다물었다.
“뭐하나! 당장 움직이지 않고! 죄다 죽어 나자빠진 뒤에서야 움직일 생각인가!”
오이언이 고함을 쳤다.
그러자 기사들은 흠칫- 놀라더니,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무려 5만이다.
그 인원이 늦지 않게 도시를 빠져나가려면 서둘러야만 했다.
홀로 남은 오이언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돌렸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
평지가 된 도시의 일부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성녀’의 죽음부터 ‘검은 존재’까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의 연속이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뭔가 거대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일단 도시를 빠져나가 그것부터 알아봐야겠다 생각하며 몸을 돌리는데…….
저벅-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날개에 검은 뿔.
그리고 검은 외피가 전신을 뒤덮고 있는 존재.
서우진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