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13)
212화.
‘생각보다 입이 무겁네.’
아쉽게도 서우진은 제노니아에게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다.
다 죽어가는 와중에도 그녀는 입을 꾹 다문 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서우진은 상관없었다.
‘뭐, 내가 경찰도 아니고.’
증거를 찾아 법을 통해 처벌할 생각 따위는 하지도 않았다.
그저 약간의 확신.
그것만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서우진은 그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역설적으로 제노니아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다.
‘묵비권만큼 의심스러운 것도 없지.’
서우진이 그녀에게 물어본 것은 두 가지였다.
이 전쟁을 일으킨 것이 마왕의 추종자들인가?
그리고 아이에르의 중추에 너희가 있는가?
제노니아는 그 두 가지 질문에 모두 대답을 하지 않았고, 서우진은 그것을 긍정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럼 남은 건 누구냐는 건데…….’
아이에르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 있게 하려면, 보통 큰 권력을 갖고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했다.
많아봐야 다섯 명을 넘지 않을 터.
서우진은 일단 주교 세 명과 성왕을 용의자로 생각해 두었다.
‘물론 그 추기경도.’
성유라와 같은 기운을 품고 있던 여자.
물론 지금 그들을 찾아가 어떻게 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황제가 서우진에게 부탁한 일은 그저 아이에르의 진군을 막아달라는 것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이 아니라도, 조만간 캐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들 중 정말로 마왕의 추종자가 있다면, 이런 일이 또 일어날지 몰랐으니 말이다.
서우진은 제노니아를 죽이지 않았다.
아직 알아봐야 할 것이 많았다.
그저 기절을 시킨 뒤, 포박해 무너진 건물의 잔해 사이에 숨겨두었다.
부상을 입긴 했지만, 초극의 경지에 오른 제노니아를 포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무리 단단한 밧줄을 이용해도 실처럼 끊어낼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
그래서 서우진은 다른 방법을 사용했다.
“이런 것도 가능할 줄은 몰랐는데.”
스킬 ‘염라’의 응용.
지옥에서 올라온 쇠사슬만을 따로 빼내어 사용했다.
평소에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마왕화’를 한 지금은 가능했다.
‘이런 걸 할 수 있으면, 앞으로 다양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겠는데?’
머릿속으로 비슷한 응용 방법이 몇 가지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다.
제노니아를 숨겨둔 서우진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쪽인가?”
근처에서 가장 강력한 기운을 품고 있는 존재가 느껴졌다.
서우진은 그 방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화아아악-!
마치 바람처럼, 순식간에 공간을 가로지른 서우진이 발을 멈추었다.
저벅-
작은 발소리와 함께, 기사 한 명이 뒤를 돌아보는 게 보였다.
‘신성기사.’
순백의 갑주를 보아하니, 아이에르가 자랑하는 신성기사들 중 하나였다.
‘최상급 정도 되어 보이고.’
진중하게 보이는 얼굴과 놀라긴 했지만 굳게 닫혀 있는 입술을 보아하니, 꽤나 강단이 있는 인물처럼 보였다.
“‘검은 존재’…….”
기사의 입에서 신음과 같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기사, 오이언은 즉시 검을 빼어 들며 서우진을 겨누었다.
“더 이상의 학살은 용납할 수 없다!”
그의 검에서 갑주와 같은 순백의 오러가 피어올랐다.
상당한 신성력이 담겨 있어, 그 기세가 제법 매서워 보였다.
서우진은 기사를 잠시 지켜보다 입을 열었다.
“나도 더 죽일 생각은 없어.”
벌써 천 명에 가까운 병사들을 죽였다.
죽을 만한 짓을 한 놈들이었기에 죄책감도 느껴지진 않았다.
그래도 지금은 약탈도 멈추었고, 도시 안에 주둔하고 있던 병사들도 모두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굳이 따라가 모두 죽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서우진이 어깨를 으쓱- 하며 말하자, 오이언의 얼굴에 당황이 서렸다.
설마하니 ‘검은 존재’의 음성이 저리도 평범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악의로 가득찬 괴물이라고 여겼는데, 의외로 어리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목소리였다.
그런 사실에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서우진이 말을 이었다.
“대신 몇 가지 대답을 좀 해줘야겠어.”
“거절한다. 주신의 기사는 마왕의 추종자 따위와는 그 어떤 거래도 하지 않는다.”
단호하게 거절하는 오이언의 태도에 서우진이 실소를 지었다.
“마왕의 추종자? 내가?”
차라리 마왕이라고 했다면 이렇게까지 웃기진 않았을 텐데.
“대충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건진 알겠는데 말이지.”
서우진은 손을 들어 머리에 돋아 난 뿔을 긁적였다.
“나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거든? 오히려 반대에 가깝지.”
그 말에 오이언의 눈썹이 꿈틀- 거렸다.
“반대? 무슨 뜻이지?”
설마 마왕의 적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아닐 거라며 속으로 부정했다.
“네가 방금 떠올린 생각 그대로지.”
하지만 서우진은 오이언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흠칫-
“나는 마왕의 추종자가 아니고, 오히려 그놈들을 때려잡기 위해서 이렇게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는 거거든.”
놀란 오이언을 보며 서우진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말하려던 오이언이 입을 다물었다.
실제로 그가 들었던 소문에 의하면, ‘검은 존재’는 사도와 여룡을 참살한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에르의 병사들을 죽인 것도, 솔직히 죽을 만했잖아?”
약탈하고, 강간하고, 온갖 전쟁범죄들을 저질렀다.
그놈들은 죽어도 할 말이 없었다.
병사들의 그런 행동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오이언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다 놀라 멈추었다.
“믿고 안 믿고는 네 마음이다만.”
솔직히 서우진의 입장에선 오이언이 믿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서우진이 진심으로 대답을 듣고자 한다면, 들을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혼돈기가 흘러나온다.
지금까진 의도적으로 감추고 있었지만, 협조하지 않겠다면 강제적인 방법을 동원하겠다는 뜻이었다.
오이언은 그 끔찍한 위압감에 몸이 덜덜- 떨려왔다.
방금 전까지는 그냥 기괴하게 생긴 사람의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아니다.
마치 거대한 ‘재앙’을 눈앞에 둔 것만 같았다.
“…뭐가 듣고 싶은 거지?”
오이언은 떨리는 몸을 가까스로 진정시키며, 한번 들어나 보자는 생각에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서우진이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 전쟁을 결정한 게 누구지?”
* * *
“이상하네…….”
이지아는 계속해서 주변을 둘러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직도 우진 씨 찾고 있는 거야?”
그 모습에 계수지가 웃으며 물었다.
“아니, 이상하잖아요. 훈련을 왔는데 벌써 며칠째 코빼기도 안 보이니까.”
“교관님은 잠시 일이 있어서 자리를 비운 거라고 말했잖아.”
“그러니까요. 대체 이 낯선 왕국까지 와서 볼일이 뭐가 있다고.”
사실 의문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계수지 역시 그 부분을 이상하게 여기고는 있었다.
하지만 서우진이라면,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굳이 깊게 파고들지 않았다.
돌아오면 언제나처럼 설명해 주겠지라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지아는 궁금함을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우리가 사냥한 에이션트 오크의 수가 벌써 수천 마리는 될 걸요? 근데 아저씨는 첫날을 빼곤, 그동안 한 번도 토벌에 참가하지 않았어요.”
에이션트 오크는 강했다.
각각의 개체는 용사에 비할 바 없이 약했지만, 놈들의 진가는 집단전에서 나타났다.
토벌 중 몇 번이나 용사들이 위험에 처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은 그 위기를 모두 견뎌내며, 성공적인 토벌을 진행할 수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꽤 많은 용사가 레벨 업을 경험하고 있었다.
수가 많다 보니, 경험치가 상당히 쏠쏠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서우진은 빠져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레벨 업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어요? 마왕이 강림하기 전에 최대한 레벨을 올려놔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 텐데.”
서우진의 진짜 실력을 알지 못하는 이지아로선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용사들 중 가장 강한 실력을 자랑한다지만, 아직 마왕을 막을 정도는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빠르게 레벨 업을 할 수 있는 토벌에 참여하지 않고, 다른 일을 보러 갔다는 걸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네가 생각해도 이상하지, 다혜야? 그치?”
이지아가 김다혜에게 동의를 구했다.
“맞음.”
계수지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김다혜를 보자,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그러곤 화제를 돌리기 위함인지, 그녀에게 물었다.
“요즘 우진 씨랑 따로 훈련하던데. 혹시 어떤 걸 하고 있는지 가르쳐 줄 수 있어?”
그러자 이지아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눈을 반짝이는 것이, 그동안 꽤나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음…….”
김다혜는 갑자기 자신에게 관심이 집중되자, 손발을 꼼지락거렸다.
우물쭈물하는 그 모습에 계수지가 급히 손을 내저었다.
“말하기 곤란하면 억지로 얘기 안 해줘도 돼.”
괜히 불편하게 만든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김다혜는 잠깐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만요.”
그녀는 기다리라는 듯 말하고는, 스케치북을 꺼내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스킬을 사용한 덕분에 그림은 순식간에 완성이 되었다.
“‘소환’요.”
화아아악-!
빛이 뿜어져 나온다.
동시에 김다혜가 그린 그림이 현실로 ‘소환’되기 시작했다.
과연 뭐가 등장할지 기대에 찬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던 이지아와 계수지의 눈이 커다래졌다.
“……아X언맨?”
김다혜의 옆에는 금속으로 이루어진 슈트가 서 있었다.
누가 봐도 한 시대를 풍미한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이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이, 이걸 입고 싸우려고?”
계수지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김다혜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이건 누가 입어?”
이지아가 물었다.
그러자 김다혜는 입술을 꼼지락 거리며 대답했다.
“병사들.”
왠지 부끄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김다혜의 반응에 다른 두 사람은 눈을 끔뻑였다.
“왜?”
특히 계수지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김다혜의 ‘소환’은 많은 마력을 소모한다.
그것을 굳이 병사들을 위해 사용할 필요성이 있을까?
본인이 직접 활용하는 것에 집중한다면, 훨씬 더 효율이 좋고 위력적인 무기들을 사용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게다가 김다혜의 마력으로 몇 명의 병사들에게 저런 슈트를 입힐 수 있을까?
백? 이백?
전쟁의 규모를 생각해 보면, 그 정도 숫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할 게 뻔했다.
김다혜는 질문을 한 계수지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곤 서우진에게 했던 것처럼, 당당하게 대답했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이 살리고 싶음요. 무의미한 희생을 최대한 막고 싶음요.”
지금까지 김다혜가 이렇게 길게 이야기했던 적은 없었다.
처음이다.
그녀가 자신의 생각을 지금처럼 확실하게 밝힌 것은.
이지아와 계수지는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김다혜의 모습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병사들의 생명에 대한 것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다혜는 달랐다.
병사를 숫자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생명 역시, 자신들의 생명과 똑같은 무게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똑바로 직시하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