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41)
240화.
순백의 기사가 앞으로 걸어나왔다.
신성왕국 아이에르에서도 가장 명예가 드높은 신실한 기사, 오이언.
그는 검은 재로 변한 병사들의 사체를 밟으며, 천천히 다가왔다.
서우진은 가만히 서서 그의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자기가 원해서 이 상황이 벌어진 건 아닌 것 같고.’
오이언의 얼굴에 드러나 있는 감정은, 후회와 자괴감이었다.
저 뒤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놈이 군을 이끄는 총사령관인 것 같았다.
‘넌 조금 이따 대가를 치르도록 하고…….’
일단 오이언이랑 대화를 좀 해야 할 것 같았다.
13만, 아니, 12만이라는 수를 모조리 죽일 순 없었으니까.
학살을 피하기 위함이 아닌, 전력을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저들을 모두 죽인다면, 훗날 강림 전쟁에서 커다란 전력의 공백이 생길 게 분명했으니까.
‘어서 끝내고 사제 한 명을 데려가야 해.’
아이에르 군을 징벌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김다혜의 안위였다.
일단은 오이언과 대화를 좀 나눈 뒤, 사제를 데리고 베이스캠프로 돌아가야만 했다.
“나는 분명 경고를 했다.”
서우진이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오이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싸늘한 말투에 그의 몸이 움찔- 하는 것이 보였다.
“내 뜻이 아니었소.”
“그랬겠지.”
서우진은 딱히 오이언을 탓할 생각이 없었다.
그의 표정만 봐도 아이에르 군을 막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잘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냥 넘어갈 순 없었다.
“결정자가 누구지?”
오이언을 향한 질문이었지만, 서우진의 시선은 이미 브리아트를 향해 있었다.
“그것을 묻는 이유를 알 수 있겠소?”
침통한 표정으로 되묻는 오이언의 모습에 서우진은 행동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딱-!
손가락을 튕겨 아주 작은 혼돈기 조각 하나를 날린 것이다.
손톱보다도 작은 기운이었지만, 그것이 초래한 결과는 결코 작지 않았다.
퍼버버버버벅-!
“끄아아아악!”
“초, 총사령관 님!”
“브리아트 경이 전사했다!”
일직선으로 날아간 혼돈기가 브리아트의 머리를 터트렸다.
서우진과 그의 사이에 있던 기사와 병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몸 한군데에 주먹만 한 구멍이 뚫린 채 모두 쓰러져 버린 것이다.
“아아아악! 내 팔! 내 팔이!”
차라리 즉사한 이들은 다행이었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신체의 일부분을 상실한 채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거나, 고통에 몸부림치다 서서히 죽어갈 게 뻔했다.
서우진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들을 쳐다보다, 고개를 돌렸다.
“이젠 네가 결정자인가? 아니면 위에 더 있는 건가? 누군지 말만 해라.”
이 순간, 오이언의 입은 살생부가 되었다.
그가 이름을 말하는 순간, 죽음이 내려앉을 테니까.
군의 고위급 참모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제발 자신의 이름이 불리질 않길 바라면서.
“…나에게 말을 하면 되오.”
다행히 오이언은 그 누구의 이름도 입에 담지 않았다.
굳이 희생을 더 늘릴 이유도 없었거니와, 브리아트가 죽은 이상 그가 실질적으로 군의 책임자에 가장 가까운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서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괜한 시간 낭비를 할 것 없이 오이언과 대화를 하면 된다.
“너에게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마.”
“기회?”
오이언의 눈동자에 희망이 깃들었다.
“그래, 기회.”
서우진은 그의 등뒤로 겁에 질려 있는 병사와 신성기사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 당장 병력을 돌려 귀국해라. 그럼 살려주지.”
두 번째로 베푼 자비다.
만약 김다혜가 위중하지만 않았다면, 적어도 오늘 이 자리에 있는 병력 중 30%는 돌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이언이 머뭇거렸다.
마음 같아서야 당장에라도 서우진의 말을 따르고 싶었다.
싸워서 이길 수 없는 자연재해에 대항을 해봐야, 다치는 것은 자신들뿐이다.
맞서는 것보단 피하는 것이 옳았다.
그런데도 오이언은 쉽사리 결정을 하지 못했다.
이대로 돌아간다면, 성왕이 어떤 짓을 벌일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성왕 전하께서 정말로 놈들과 연관이 있다면?’
자신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처형당할 게 분명했다.
물론 죽음이 두려운 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성왕이 전쟁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마왕의 추종자와 연관이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아이에르와 제국의 전력을 깎아내기 위해 노력할 테니까.
그리고 아이에르에서 성왕의 명령을 거역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전쟁은 이어질 테고, 그 결과는…
‘저자에게 모두 죽거나, 병신이 되고 말겠지.’
이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주 잠깐의 시간을 버는 것밖엔 되지 않는다.
무언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싫은가?”
오이언이 대답하지 않자, 서우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동시에 살기가 치솟는다.
드드드드드드드-!
혼돈기를 끌어올린 것도 아니고, 그저 죽여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만으로 대기가 비명을 질러댄다.
“아니, 아니오!”
오이언이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
이대로 있다간 정말로 재앙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손까지 내저으며 부정하는 오이언의 모습에 서우진이 살기를 가라앉혔다.
“말해라.”
하지만 싸늘한 표정과 음성은 여전했다.
“이대로 돌아간다고 해도 바뀌는 것은 없을 것이오!”
오이언은 빠르게 자신이 우려하던 바를 설명했다.
그 다급한 와중에도 성왕이 마왕의 추종자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철저히 감추었다.
자신이 그를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신성기사나 병사들이 알게 된다면, 일이 더욱 커질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큰일이 날 것이다.
그랬기에 최대한 꼬아서 말을 했다.
다행히도 서우진은 그것을 알아들었다.
오이언이 왜 그렇게 말을 하고 있는지도 말이다.
‘흠, 일리가 있긴 한데.’
성왕은 마왕의 추종자다.
베노인에게서 들은 것이니 틀림없다.
그렇다면 오이언이 걱정하는 일은 현실이 될 확률이 높았다.
결국은 같은 일이 반복될 뿐.
‘어떻게 해야 할까?’
오이언이 군의 책임자가 된 이상, 저들을 죽일 이유는 사라졌다.
그렇다고 아이에르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어디 다른 곳에 보내는 수밖에 없겠는데?’
하지만 어디로 보낸단 말인가?
잠시 고민하던 서우진의 눈이 살짝 빛났다.
‘갈 만한 곳이 한 군데 있다!’
제국과 아이에르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으며, 고질적인 인력 부족 문제로 골머리를 싸매는 왕국.
“시온으로 가라.”
“…시온?”
서우진의 말에 오이언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졌다.
시온이라니?
“설마 북방의 왕국을 말하는 것이오?”
“그래. 거기라면 아이에르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고, 제국의 오해를 살 일도 없을 거다.”
객관적인 사실로만 본다면 서우진의 말에는 틀린 것이 없었다.
하지만 오이언의 입장에서는 너무도 뜬금없는 말이었다.
“차라리 그렇다면 다른 왕국으로 피해도 될 일 아니오?”
굳이 그 척박한 시온이 아니라, 남부로 향하는 것이 더 나았다.
아니, 그전에 시온에서 자신들을 받아줄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다.
12만 명의 대군이 자신의 왕국으로 향하는데, 그것을 어느 누가 기뻐하며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그 부분은 내가 해결해 주지.”
서우진은 반 슬레인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그라면 상황을 이해하고 서우진의 부탁을 들어줄 확률이 높았다.
물론 그 과정이 조금 지난하겠지만 말이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좀 주시오.”
이런 일을 바로 결정할 순 없었다.
다른 참모들과도 상의한 뒤에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거절한다.”
하지만 서우진은 고개를 저었다.
시온을 제외한 다른 왕국은 잘 알지도 못했고, 지금은 지체할 시간 따윈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결정해라. 그것이 힘들다면, 내가 도움을 좀 주도록 하지.”
서우진의 시선이 뒤쪽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고위급 인사들을 향했다.
움찔-!
“헙!”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차디찬 눈동자에 그들은 몸이 굳어졌다.
“우, 우리는 오이언 경의 말을 따르겠소!”
“우리의 의견은 신경쓰지 마시게!”
서우진이 말하는 그 ‘도움’이라는 것이 뜻하는 바를 눈치챈 이들이 소리쳤다.
그 모습에 오이언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자기 목숨을 지키기 위해 저렇게 반응해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다시 바뀔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의 말대로 하겠소.”
오이언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우진이 저렇게 말을 한 이상, 남은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시온으로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오?”
“일단은. 나중 일은 다음에 생각해 보도록 하지.”
“알겠소.”
아직 남은 문제는 많았다.
시온으로 향하려면 중간에 두 개의 왕국을 지나쳐야 했고, 그동안 군을 유지하기 위한 보급도 필요했다.
신성기사와 사제, 참모들의 불만도 잠재우는 것도 중요했으며, 병사들의 탈영과 일탈을 막는 일도 결코 쉽지 않았다.
12만 대군.
그 정도 숫자쯤 되면 이동하는 일보, 일보에 모두 신중을 기해야만 했다.
“그 문제는 방법을 알아보겠다. 일단은 북쪽으로 가라.”
오이언에게는 심각한 문제들이었지만, 서우진은 그리 어렵지 않게 생각했다.
‘보급이야 황제에게 말하면 될 테고, 타국을 가로지르는 것 역시 그리 힘들진 않을 거야.’
데르한과 시온 사이에 있는 두 개의 왕국은 모두 제국의 제후국들이었으니까.
아이에르 군이 전쟁을 피해 시온으로 간다고 하면, 황제는 그들에게 흔쾌히 길을 열라 명할 것이다.
군의 장악이야 오이언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고.
생각을 정리한 서우진은 오이언에게 군을 이동시키라고 말한 뒤, 고위 사제 한 명을 차출했다.
회복에 가장 특출한 능력을 보이는 사제라고 했다.
신앙심과는 별개로, 서우진의 모습에 벌벌- 떨고 있는 그를 데리고 날아올랐다.
‘이 정도로 정순한 신성력을 지니고 있으니, 다혜를 충분히 치료할 수 있겠지.’
서우진은 거의 졸도하기 직전인 사제에게, 일만 똑바로 한다면 머리카락 하나 상하지 않고 돌려보내 주겠다 약속했다.
물론 서우진과 ‘검은 존재’의 연관성에 대해선 함구하라는 협박 역시 잊지 않았다.
혼돈기까지 끌어올리며 겁을 준 덕분인지, 사제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 * *
아일린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이더냐?”
그 모습에 반 슬레인이 물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수련 중에 감히 한눈을 팔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황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 녀석을 생각한 게로군.”
하지만 반 슬레인은 그녀의 마음을 짐작했다는 듯,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것 아닙니다.”
아일린의 얼굴에 얼음이 내려앉았다.
“얼굴을 못 본 지 꽤 되었으니, 이해하느니라.”
물론 반 슬레인은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들이 수련을 명목으로 매시브 가디언으로 돌아온 지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서우진의 소식을 간간이 듣기는 했지만, 직접 만나지는 못했으니…….
아일린이 궁금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저 날씨가 유독 궂기에 쳐다봤을 뿐입니다.”
“그래, 그렇다 치자꾸나.”
웃으며 말하는 그의 모습에, 아일린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나저나 그 녀석은 오늘 꽤나 늦는 듯하구나.”
반 슬레인이 혀를 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이 찾는 이가 혹시 주변에 있는지 확인해 본 것이었다.
하지만 오직 눈이 내리는 모습만 보일 뿐,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저 여기 있거든요?”
그때, 반 슬레인의 바로 뒤에서 앳된 음성이 들려왔다.
움찔- 놀란 그가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소년 한 명이 웃으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허허, 그놈 참. 점점 더 능숙해지는구나.”
초극의 경지에 오른 반 슬레인의 감각마저 속일 수 있는 소년.
“리나르.”
반 슬레인이 자신의 제자 이름을 불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