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7)
#26화.
마왕.
절망의 말을 타고, 공포라는 검을 휘두르며, 절규하는 나팔을 불다, 종래에는 멸망을 가져올 자.
이 세계는 그런 마왕의 침공을 벌써 일곱 번이나 맞이했다.
그때마다 용사의 힘을 빌려 간신히 막아내긴 했지만, 그 대가는 참혹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대지가 파괴되었으니까.
때문에 마왕은 모든 국가와 종족들이 두려워하는 존재였다.
‘문제는 그게 나라는 건데…….’
서우진은 심각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를 제외한 99명의 용사가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지난 1년간 있었던 썰을 풀어댔다.
하지만 잠깐 대화를 나누다 떠난 이지아를 제외하면, 서우진에게 다가오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덕분에 그는 한쪽 구석에 처박혀 생각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일단 내 직업이 ‘마왕’이 된 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마왕’으로써 이 세계를 파괴할 마음이 드는가?
아니다.
그럴 마음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직업만 ‘마왕’일 뿐, 서우진은 지극히 상식적인 인간이었다.
‘그럼 진짜 마왕은 따로 있다는 소리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진짜 마왕과 직업 ‘마왕’.
둘은 엄연히 다른 존재이며, 용사들이 막아야 할 마왕은 서우진이 아닌 진짜 마왕이다.
‘그걸 얘들이 이해하겠냐고.’
대충 대화만 엿들어봐도 알겠다.
용사들은 지금 자신의 힘에 도취되어, 당장에라도 마왕을 때려잡고 싶다는 의욕으로 가득차 있었다.
슬쩍 자신의 직업을 밝히고 오해를 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그대로 목이 달아날지도 모른다.
아니, 반드시 잘려 나갈 게 분명했다.
물론 쉽게 죽어주진 않겠지만…….
‘혼자서 저놈들을 다 상대하는 건 무리지.’
한 손으로 열 손을 당해낼 수 없는 법이다.
서우진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저 많은 수의 용사를 혼자 감당하는 건 불가능했다.
“왜 혼자 구석에 있죠?”
그때,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아일린.”
잠시 어디를 다녀온다며 사라졌던 아일린이 돌아왔다.
“시온에선 이런 연회를 즐겨볼 틈도 없었을 텐데, 오늘 하루 정도는 쉬어도 괜찮지 않아요?”
그녀의 말대로 매시브 가디언에선 연회 따위는 구경도 해본 적 없었다.
매일이 훈련과 훈련, 그리고 훈련이었으니까.
여기엔 군대 짬밥과는 달리 맛있는 음식들도 있었고, 언제 기습할지 모르는 기사들도 없다.
즉, 마음 편히 먹고 놀아도 된다는 뜻.
“내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하지만 서우진이 끼기엔 너무도 불편한 자리인 것도 사실이었다.
그냥 여기에 처박혀 앞으로의 일을 고민하는 게 마음 편했다.
“하긴. 우진 씨가 사교성 있는 성격이 아니긴 하죠.”
아일린은 픽- 하고 웃으며 서우진의 옆에 섰다.
그녀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항상 무표정이었는데. 이제는 웃을 줄도 알고.’
그만큼 서우진이 편해진 덕분이었다.
“어디 다녀왔어?”
“조금 볼일이 있어서요.”
아일린은 어물쩍 대답을 피했다.
제국에 도착한 뒤부터 이런 모습을 자주 보인다.
‘말 못할 사정이라도 있나?’
조금 궁금해졌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강한 분들이 많군요.”
아일린은 말을 돌렸다.
“……그래, 용사들이니까.”
서우진과는 달리, 온갖 지원과 버스를 타고 강해진 용사들.
단순히 레벨과 능력만을 따지자면, 서우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아니, 일대일이라면 이곳에 있는 대부분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저분들은 더 대단하고요.”
아일린이 가리킨 이들은, 소환 첫날 봤던 다섯 명의 선남선녀였다.
그들은 여전히 찬란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죄다 S급 이상인 녀석들이야.”
S급 ‘초열법사’.
S급 ‘금강역사’.
S급 ‘드래곤 테이머’.
SS급 ‘성녀 후보’.
그리고… SSS급 ‘검신’.
저 다섯 명의 레벨은 거의 40에 육박한다고 들었다.
‘그 정도면 반 슬레인과도 맞먹을 정도겠지?’
당연한 말이지만, 레벨이 높아질수록 성장 속도는 더뎌진다.
일종의 필요 경험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측정 불가’ 등급인 서우진 역시 매우 빠른 성장 속도를 자랑했지만, 1년간 사냥에 매진해도 저 정도의 레벨은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체 얼마나 많은 지원을 받았으면 저렇게 빨리 성장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저분이 소문으로만 무성하던 제국의 용사죠?”
아일린이 ‘검신’을 지목하며 물었다.
“맞아. 아마 여기에선 제일 셀걸?”
“최초로 SSS급을 받은 용사니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벌써부터 ‘검신’이 마왕의 목을 벨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 마왕이 내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서우진이 자신도 모르게 목을 긁적이고 있을 때였다.
“아저씨, 아저씨!”
“끄응.”
이지아의 소란스런 외침이 들려왔다.
조금 조용해졌다 했더니, 다시 돌아왔다.
그것도 혹을 주렁주렁 매단 채로.
“여기는 홍설이 언니, 여기는 진호 오빠, 그리고 여기가 다혜! 내 친구예요!”
시키지도 않은 소개를 주르륵- 나열하더니 곧장 서우진과 인사를 시켰다.
“…반갑습니다. 서우진이라고 합니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자, 그들 역시 눈을 끔뻑이며 고개를 숙였다.
“이진호입니다. 얘기는 많이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이지아가 진호 오빠라고 소개한 남자였다.
나이는 서우진과 비슷해 보였는데, 꽤나 잘생긴 외모의 소유자였다.
‘근데 왜 난 아저씨고, 쟨 오빤데?’
묘한 패배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걸 내색할 수도 없었으니, 서우진은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
“많이 들으셨다는 건……?”
“유명하셨잖아요, D급이시라는 거.”
“아, 네. 뭐, 그렇죠.”
역시는 역시였다.
하긴, 서우진에 대한 얘기라면 등급에 관한 것밖에 없었다.
그것 외에는 평범하기 짝이 없어 가십거리조차 만들어지지 않았으니까.
“실례지만 지금 레벨이 어떻게 되시죠?”
‘실례인 거 알면 좀 묻지 마라.’
이진호의 표정만 봐도 딱 알겠다.
저놈은 지금 자신을 발 아래로 취급하며, 자존감을 높일 생각이었다.
서우진은 잠시 고민하다 순순히 대답을 해주었다.
어차피 조만간 모두 알 일이었으니, 굳이 숨길 필요가 없었다.
“10레벨입니다.”
“아…….”
“등급이 낮을수록 성장 속도가 느리다더니.”
서우진의 레벨을 들은 다른 사람들이 수군댔다.
“맞아! 아저씨는 10레벨이었어. 사냥 안 하고 놀았죠? 하하!”
오직 이지아만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대놓고 놀릴 뿐이었다.
‘순수한 건지, 바보인 건지.’
그래도 악의 없이 내뱉은 말이었는지라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뒤에서 속삭이는 게 훨씬 더 짜증났다.
“10레벨이라… 많이 낮으시네요. 아, 참고로 저는 B급에 25레벨입니다.”
서우진을 깎아내리며 은근슬쩍 자랑까지 하는 이진호의 모습에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좋으시겠네요, 25레벨이나 되셔서.”
당연히 서우진의 입에서 고운 말이 나올 리가 없었다.
“말씀에 좀 가시가 있으신 것 같은데. 제가 무슨 실수라도 했습니까?”
말투는 정중했다.
하지만 그 내면에 깔려 있는 의도를 눈치채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이지아는 모를 수도 있겠다.
‘바보니까.’
옆에서 아일린과 재잘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고는 이진호를 쳐다봤다.
“그쪽이야말로 제게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것 같은데요?”
이런 종류의 비꼼과 무시는 매시브 가디언에서 수도 없이 들어봤다.
그곳의 병사들에 비하면, 이진호는 순한 맛 그 자체였다.
그러니 상처를 받기는커녕 우습기까지 했다.
“이거, 좋게 대해주려고 했는데 예의가 너무 없으시네.”
이진호가 가면을 벗어 던졌다.
그나마 정중해 보였던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웬 양아치 새끼만 앞에 남았다.
“그래도 같은 용사라고 잘 지내보려고 했더니, 혹시 등급이 인성이랑 비례해서 정해지나?”
‘그랬으면 너는 F급쯤 나왔겠지.’
주변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시끌벅적 나누던 대화는 중단됐고, 어느새 모든 용사가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D급에 고잘 레벨 10짜리가 무슨 낯짝으로 여기까지 와서 나대는 건지 모르겠네.”
이진호는 모두 들으라는 듯 크게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댁이 놀고 있을 동안, 목숨 걸고 몬스터이랑 싸우면서 레벨을 올렸거든요? 아니, 등급이 낮으면 노력이라도 하던가. 10레벨이 뭐야, 10레벨이.”
실소가 절로 흘러나왔다.
목숨을 걸고 싸워? 누가? 너희가?
기사가 던져 주는 빈사 상태의 몬스터들 목이나 자르면서 레벨을 올린 놈이.
뭐? 목숨을 걸었다고?
우습다 못해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서우진이 어떤 환경을 헤쳐 나왔는지 아는 사람은, 이곳에서 아일린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
덕분에 그를 바라보는 용사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한 명을 제외하면.
“잠깐! 잠깐, 잠깐!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에요? 분위기가 왜 이래?”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던 이지아는 갑자기 변해 버린 상황에 당황한 표정이었다.
“아니, 서로 친해지자고 만든 자리에서 왜 싸워요? 누가 먼저 시비 걸었어요? 대체 왜 그러는데에.”
이지아는 서우진과 이진호 사이로 몸을 들이밀며 싸움을 말리려 했다.
하지만 기회를 잡은 이진호는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은 듯했다.
“제가 틀린 말 했습니까? 지아 씨는 억울하지도 않아요? 우리는 세상 구하겠다고 개고생하고 있는데, 누구는 노력도 안 하고 숟가락만 얹으려 하잖아요.”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라며 말을 덧붙이는 모습에, 서우진은 더 참지 않기로 했다.
쥐뿔도 없을 때도 테스테론을 들이박으려 했던 그다.
물론 죽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저지른 일이긴 했지만,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
이젠 참는 것도 지쳤다.
“꼬우면 덤벼, 병신아.”
죽일 생각은 없다.
죽여서도 안 되고.
하지만 며칠 동안은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게 해줄 생각이었다.
B급에 25레벨이라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B급이든 S급이든 상관없다.
계속해서 개소리를 시전하는 놈의 치아를 모조리 털어버릴 힘은 충분하니까.
“하, 진짜 뒤지려고 환장하셨나.”
서우진의 도발에 이진호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러곤 목을 돌리며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그래. 어디 한 번 X나게 맞아봐야 지가 뭘 잘못했는지 깨닫겠지.”
쓸데없는 허세다.
만약 지금 이 상황이 정말 목숨을 건 싸움이었다면, 서우진은 벌써 이진호의 목을 열 번은 베고도 남았을 터였다.
“잠깐……!”
이지아가 다시 한 번 싸움을 말리려고 했지만, 이미 기호지세였다.
다른 놈들도 호기심 서린 눈빛만을 보낼 뿐, 말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진호는 서우진의 코앞까지 다가가 이마를 들이밀었다.
“한번 쳐봐, D급 주먹 맛 한번 보게. 얼마나 센지 구경 좀 하자.”
그는 서우진의 주먹을 버틸 자신이 있었다.
“그럼 한번 맛이나 봐라.”
그리고 당연하게도 서우진은 거절하지 않았다.
쾅-!
단 한 방이었다.
안면에 정확히 주먹이 꽂힌 이진호는, 새하얀 치아를 허공에 뿜어대고는 그대로 정신을 놓아버렸다.
“또 덤빌 사람?”
서우진이 주변을 돌아보며 물었다.
물론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