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71)
270화.
프레이야는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오직 한 명, 추기경 이안뿐이었다.
“참으로 오랜만이구나.”
세월의 흔적이 가득 묻어 있는 음성.
프레이야의 말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20년 만입니다.”
이안이 아직 견습 사제에 불과했던 시절, 둘은 지금처럼 함께 걸은 적이 있었다.
물론 그때는 지금과 달리 단순한 산책에 불과했지만, 두 사람은 당시와 별다를 바 없는 감정을 느꼈다.
“전장으로 향하는 분위기치고는 썩 나쁘지 않아.”
프레이야의 눈가에 주름이 진다.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었다.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이안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프레이야를 다시 만났을 때, 그는 주신의 은혜라 생각했다.
전직 기사단장이자 초극의 경지에 오른 그녀라면, 지금의 사태를 충분히 해결하고도 남을 테니까.
하지만 막상 적들을 앞에 두자 반가움에 잊고 있던 걱정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이 늙은이의 몸은 걱정할 필요 없다.”
바로 프레이야가 노쇠했다는 것.
아무리 초극의 경지에 이르렀다 해도 세월은 막을 수 없는 법이다.
만약 시온의 검귀나 하늘탑의 마공처럼 젊음을 되찾는 경지가 아닌 이상은…….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아직 어린 시절 보았던 프레이야는 강인한 기사의 모습이었다.
당시에도 적지 않은 나이이긴 했지만, 육체는 강건하고, 정신도 굳건했다.
하지만 지금의 프레이야는 달랐다.
내색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힘에 겨워하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끌끌- 나도 다 생각이 있느니라.”
이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프레이야는 웃음을 잃지 않고 천천히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나갔다.
결국 이안은 더 입을 열지 못하고 그녀의 뒤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슬슬 프레이야의 체력이 걱정될 때쯤.
저 멀리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드-!
먼지구름과 함께 땅이 약하게 진동하는 것이 느껴진 것이다.
“마중을 나오는 모양이구나.”
프레이야는 마침 잘됐다는 듯 걸음을 멈추고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단장님!”
깜짝 놀란 이안이 소리쳤지만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손을 휘저었다.
“쓸데없는 소리를 하려면, 그냥 닥치고 앉거라.”
프레이야는 더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저쪽에서 알아서 와준다는데 굳이 힘들게 걸을 이유가 없다고 여기는 듯했다.
“왜? 추기경이라는 자리에 있으니, 체면이 마음에 걸리느냐?”
이안이 머뭇거리고 있자 프레이야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런 건 아닙니다.”
“아니긴. 그 새하얀 사제복이 더러워질까 저어하는 것이 내 눈에는 딱 보이는구먼.”
그 말에 이안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눈앞의 프레이야를 말로 이기는 것은 너무도 힘들었다.
“아무리 적이라 하나, 가만히 앉아서 맞이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저는 아이에르를 대표하는 추기경들 중 하나이니까요.”
맞는 말이었다.
물론 프레이야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코웃음을 쳤지만, 더는 앉으라 권하지는 않았다.
먼지구름이 점차 가까워지며 이제는 다가오는 이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브로바이슨의 자유기사단이구나.”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저 짙은 남색의 망토도 오랜만에 보는군.”
프레이야의 주름진 얼굴에 그리움이 서렸다.
과거에도 아이에르는 브로바이슨과 농담으로라도 좋은 사이라 말할 수 없는 관계였다.
덕분에 자유기사단과도 여러 차례 부딪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참으로 치열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가장 신나게 검을 휘두르던 시절이었다.
그때 질리도록 싸워댔던 녀석들을 다시 만나볼 수 있다는 생각에, 일말의 기대감까지 들 정도였다.
두두두두두두-!
녀석들이 가까워질수록, 불타오르는 듯한 투기와 전의가 느껴졌다.
“아무래도 우리가 저들의 병사들을 해한 것이라 착각하고 있는 듯합니다.”
안도르를 나와 브로바이슨 군이 있는 쪽으로 이동하던 중 정찰대를 마주쳤었다.
프레이야는 당연하게도 놈들을 제압했고, 단 한 명만 놓아주었다.
소식을 전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다른 병사들을 죽이진 않았다.
그저 적당히 기절시킨 뒤, 한쪽에 잘 쌓아두었다.
그런데 브로바이슨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을 테니, 저렇게 반응하는 것도 이상하진 않다.”
이곳을 향해 달려오는 자유기사들의 사이로 감출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브로바이슨의 자유로운 기사들은 그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굳은 표정으로 말을 달렸다.
“확실히 빠르긴 빨라.”
아이에르의 신성기사들과는 달리, 저들의 움직임은 가볍기 짝이 없었다.
중갑 대신 경갑을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전마(戰馬)들도 큰 부담을 느끼지 않고,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었던 것이다.
“슬슬 일어나야겠구나.”
얼마 쉬지도 못했건만, 저들의 빠른 이동 속도는 휴식시간마저 줄여 버렸다.
“우리는 브로바이슨의 자유기사요. 그대들의 정체를 밝히시오.”
나타난 기사의 수는 삼백여 명.
그중 가장 강해 보이는 이가 나서며 물었다.
그의 시선은 이안을 향해 있었다.
딱 봐도 고위급 사제로 보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 물음에 이안이 대답하기 위해 입을 열려할 때였다.
끙차- 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프레이야가 한 걸음 내디뎠다.
화아아아아아악-!
동시에 거대한 기운이 휘몰아쳤다.
히이이잉-!
“크윽!”
겁에 질린 말이 날뛰기 시작했고, 자유기사들은 이를 악다물었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정찰병이 말한 대적 불가한 존재가 바로 눈앞의 노파라는 것을 말이다.
프레이야는 당황해하고 있는 기사들을 향해 말했다.
“드웨인은 어디 있느냐?”
“…드웨인?”
가장 앞서 있던 기사가 눈을 크게 떴다.
브로바이슨에서 그 이름을 모르는 기사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지만 자유기사는 대답 대신 프레이야를 향해 물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계속 ‘설마?’ 하는 생각을 했다.
드웨인의 이름을 아는, 초극의 경지의 여기사.
그가 알기론 아이에르에 그럴 만한 존재는 한 명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이 늙은이의 이름은 프레이야라 한다. 그러니 드웨인을 불러오거라.”
자유기사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 * *
서우진은 아이에르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여실히 느끼며 쉼 없이 이동했다.
요한이 챙겨준 지도 덕분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예상하긴 했는데, 생각보다 분위기가 더 안 좋네.”
서우진은 이동하던 도중, 몇 번이나 검문에 잡혔다.
만약 반 슬레인이 발급해 준 통행증이 아니었다면, 강제로 징집이 될 뻔한 것이다.
“싸울 수 있는 남자들은 죄다 군으로 끌고 가는 중이라니…….”
이 정도면 신성왕국이라 불릴 자격도 없는 게 아닐까?
서우진이 속으로 혀를 차고 있는데, 옆쪽에서 걷던 이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동쪽 길이 막혔다네. 물건을 빨리 납품해야 할 텐데, 이거 난감하군.”
“동쪽 길이 왜?”
“아, 왜긴 왜야? 전쟁 때문이지. 브로바이슨 군이 바로 옆에 있는 안도르의 지근거리까지 오는 바람에, 그쪽 길은 완전히 다 막혀 버렸어.”
‘브로바이슨?’
그들의 이야기를 듣던 서우진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계급이 절대적인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유와 공정을 앞세우는 국가.
왕국이라기보단, 브로바이슨 공화국 쪽이 더 어울리는 곳이다.
하지만 서우진이 그곳을 기억하고 있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분명 병규가 그곳에서 지원받고 있다고 했었지?’
‘모험가’와 자유의 국가.
꽤나 잘 어울리는 조합 아닌가?
‘안도르면 총교단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대도시니, 어차피 그쪽으로 가야 하긴 할 텐데……. 한 번 들러볼까?’
굳이 전투에 끼어들 생각은 없었다.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어차피 아이에르는 제대로 싸움조차 하지 못할 게 분명했으니까.
브로바이슨은 함부로 인명을 학살하는 국가도 아니라 했으니, 적당히 승리를 한 뒤 항복을 권유할 확률이 높았다.
그러니 서우진이 끼어들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도 확인하려는 이유는, 이 시대의 전쟁을 한 번 보고 싶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호기심의 충족을 위한 것이 아닌, 전략과 전술, 그리고 분위기를 익히기 위함이었다.
강림 전쟁에 대비해 미리 한 번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좋아.”
서우진은 안도르를 통과해 전장 쪽으로 가보기로 결정했다.
“대책 마련이 시급하군! 어서 상단으로 돌아가 알려야겠어!”
납품이라는 단어에서 예상했지만, 옆에서 대화하던 이들은 상인인 모양이었다.
길이 막혔다는 얘기를 들은 한 명이 다급히 몸을 돌려 왔던 길로 돌아갔다.
“…내 말 못 들었소? 그쪽 길은 막혔다니까.”
남은 상인이 서우진을 흘깃- 보며 말을 걸어왔다.
“아, 저는 안도르로 가야 해서요.”
서우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용병이오?”
그는 서우진의 허리춤에 매달린 검을 발견하곤 묻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복장을 보면 그런 험한 일을 하는 분은 아닌 듯한데?”
서우진의 모습은 사냥과 전투를 생업으로 삼는 용병이라기엔, 지나치게 깔끔했다.
귀족이 아니라면 꿈도 꾸지 못할 고급스러운 코트와 검을 본 상인의 말투가 조심스러워졌다.
“그냥 볼일이 좀 있어서요. 그런데 정작 아저씨도 안 돌아가시네요?”
다른 상인은 부리나케 돌아갔다.
하지만 정작 길이 막혔다고 알려준 상인은 여전히 안도르 쪽으로 가는 중이었다.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서우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뭐, 길이 하나만 있는 건 아니니까.”
아무래도 샛길이 있는 듯했다.
“어디까지 가시오? 방향이 맞으면 함께 가시려오? 길 안내는 내가 하지.”
순전한 호의는 아니었다.
이런 시기에 홀로 검을 차고 돌아다니는 사람이었으니, 만약의 상황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는 듯했다.
그 대가로 자신은 길을 가르쳐 주고.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만약 안도르를 지나쳐 총교단으로 바로 갈 생각이었다면,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서우진은 아이에르와 브로바이슨이 벌이는 전투를 보러 가기로 결정했으니, 그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따로 할 일이 있어서요.”
서우진의 대답에 상인이 입맛을 다셨다.
적은 대가로 호위를 구할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간 것이 아쉬운 듯했다.
“그럼 어쩔 수 없고. 아무튼 몸조심하시오. 지금 아이에르는 길 가다 모르는 사람에게 칼을 맞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니.”
상인은 서우진에게 충고를 한마디 남기곤, 그대로 먼저 휘적휘적 걸어가기 시작했다.
‘흠…….’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서우진이 머리를 긁적였다.
“누가 누굴 걱정하는지 모르겠네.”
상인에게선 마력이나 신성력 따위가 단 한 줌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전혀 불안해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본래의 성격이 대범한 것인지, 아니면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작 자기는 혼자 돌아다니고 있는 걸 보면, 뭔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서우진은 저 상인이 평범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언젠가 기회가 되면 또 볼 수 있겠지.”
왠지 조만간 다시 만날 것 같은 강한 예감에,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눈에 담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