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74)
273화.
솔직히 서우진은 나이가 많은 분들에게 약했다.
그것은 비단 그가 유교의 왕국, 한국인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릴 적 부모님을 여의고, 조부모의 손에 자라온 탓이 컸다.
때문에 서우진은 프레이야의 부탁 아닌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흘흘- 이 늙은이의 말을 들어줘서 고맙구나.”
결국 서우진은 프레이야와 함께 길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어차피 방향이 같으면 같이 가는 편이 심심하지 않고 더 낫죠.”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하자 프레이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옳다. 이렇게 즉흥적인 동행이 또 나름의 맛이 있는 법이니.”
그녀는 뭐가 그리 좋은지 계속해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음, 곤란한데.’
서우진은 최대한 빠르게 총교단으로 향하려고 했었다.
반 슬레인에게 약속한 일주일 안에는 매시브 가디언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속도로 이동을 한다면, 총교단에 도착하는 것에만 일주일이 넘게 걸릴 듯했다.
도착한 뒤에도 문제였다.
서우진이 그곳으로 향하는 목적은 하나.
성왕의 목을 베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프레이야는 아이에르를 돕기 위해 은거를 깨고 나온 전 신성기사단장이었다.
그녀가 서우진의 행동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가 없었다.
‘어떻게든 방해하겠지.’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녀가 지금의 자신보다 높은 경지에 도달해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것이 꼭 승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
프레이야의 체력과 근력, 지구력까지.
마력을 제외한 모든 것이 자신에 비해 열세였다.
그러니 프레이야를 상대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이렇게 가면서 친해진다는 게 문제지.’
서로 안면을 트고 관계가 가까워진다면 서우진은 매정하게 그녀를 상대로 검을 뽑을 수 있을까?
반드시 싸워야 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힘들겠지.’
솔직한 심정으론 프레이야를 해하고 싶지 않았다.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아이에르까지 와서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고 그냥 돌아갈 순 없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하누.”
서우진이 생각에 잠긴 채 입을 꾹 다물고 있자, 프레이야가 물었다.
“아, 아닙니다.”
고개를 저으며 별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살아온 세월이 적지 않은 만큼, 그것이 거짓이라는 걸 단번에 간파해 냈다.
“아니긴 뭘, 얼굴에 고민이 있다고 딱 쓰여 있는데. 말해 보거라. 이 늙은이의 지혜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당신과 동행하는 게 곤란하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고는 때려 죽여도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서우진은 조금 말을 돌리기로 했다.
“성왕은 왜 이런 전쟁을 자초했을까 생각 중이었습니다.”
“…성왕 전하?”
프레이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무리 그녀라도 이것에 대한 해답은 알지 못할 것이다.
설마 성왕이 마왕의 추종자, 그것도 사도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어찌 짐작할까?
“그건 나도 알 수가 없구나.”
사실 프레이야가 누구보다 그 이유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었다.
대체 자신이 은퇴하고 시골에 처박혀 있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성왕 전하께선 그 누구보다도 현명하고 자애로운 분이셨건만. 어찌…….”
프레이야가 기억하는 마르데타인은 성왕이라는 자리에 그 누구보다도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결코 이런 자충수를 둘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
“그래서 총교단으로 가시는 겁니까?”
이번엔 서우진이 물었다.
제대로 걷는 것도 힘들어 하는 이가 왜 다시 세상에 나왔을까?
혹시 그녀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 총교단으로 가서 성왕을 만나기 위함은 아닌지 궁금했다.
“본래는 도움을 요청했기에 나왔느니라.”
프레이야는 아이에르의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 소문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의 촌구석에 있었으니까.
그저 죽기 전에,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겠다는 생각으로 은거를 깨트린 것이다.
그런데 막상 세상에 나와보니, 상황이 이상했다.
누가 봐도 아이에르의 잘못으로 발발한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뭔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쯤, 이안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확신했다.
지금 성왕은 이전의 그가 아니라고.
“그래서 확인해 보기로 했다. 내 눈으로 직접 그분을 보고, 물어야만 한다.”
왜 이런 짓을 저질렀느냐고 말이다.
프레이야의 말에 서우진은 속으로 께름칙한 기분이 들었다.
‘본래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고?’
그럼 성왕은 그 긴 시간 동안 연기를 해오고 있었단 말인가?
‘아니, 그건 불가능해.’
성왕은 사도다.
그 말은 곧 초극의 경지에 이른 존재라는 뜻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상상을 초월하는 마기를 지녔을 터였다.
‘평범한 사람은 속일 수 있어. 격차가 심하니까. 하지만…….’
프레이야 앞에서 마기를 숨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같은 초극의 경지에 이른 그녀라면, 마기를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성왕이 아무리 깊은 곳에 숨겼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럼 뭐지? 나중에 사도가 된 건가?’
서우진은 계속해서 프레이야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어쩌면 바꿔치기 당한 걸 수도 있어.’
게임, 소설,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소재 아닌가?
누군가를 죽이고 대신 그 행세를 하는 악역 말이다.
‘나도 직접 확인을 해봐야겠군.’
어떤 게 진실인지는 아직 모른다.
성왕이 모종의 방법을 써서 마기를 감추고 계속 연기를 해왔던 것일 수도 있고, 정말로 다른 존재로 뒤바뀐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가능성이 낮긴 하지만, 프레이야가 은퇴한 이후 마왕의 추종자가 된 것일지도 모르고.
하지만 그 셋 중 어느 것이 진실인지 모른다 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있었다.
‘하나 확실한 건, 놈을 죽여야 한다는 거지.’
예전에는 현명했다고?
예전에는 자애로웠다고?
이제 와서는 아무런 의미도 될 수 없는 말이다.
지금의 성왕은 사도이며, 강림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이런 전쟁까지 일으킨 장본인이었으니까.
“만약. 정말 만약에 말입니다.”
서우진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말해보거라.”
프레이야가 고개를 끄덕이자, 잠시 고민을 해보았다.
‘정말 해도 될까?’
지금 이 자리에는 자신과 프레이야밖에 없다.
이안이라는 이름의 추기경은 안도르로 돌아갔으니, 다른 사람이 들을 걱정도 없다.
서우진은 머뭇거리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성왕이 이전의 그와는 완전 다른 존재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른 존재?”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것일까?
프레이야가 고개를 갸웃했다.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면 바로잡아야겠지. 그것이 모시는 자들의 본분이니 말이다.”
“아니, 그저 실수를 저지른 것을 뜻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서우진은 기왕 이렇게 된 거, 프레이야의 의중을 한 번 떠볼 요량으로 입을 열었다.
“문자 그대로 다른 존재가 되었다면 말입니다. 가령 마왕의 추종자이거나…….”
화아아아아악-!
서우진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거대한 신성력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감히 그분을 모욕하느냐?”
옆집 할머니 같았던 모습은 사라졌다.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는 것은 주신의 가장 강한 검이자, 가장 단단한 방패였다.
‘쯧.’
이럴 거라 예상하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더욱 거친 반응이었다.
‘그만큼 성왕이 아이에르에는 중요한 존재라는 뜻이겠지.’
서우진은 속으로 혀를 찬 뒤, 혼돈기를 끌어올렸다.
프레이야의 신성력이 너무도 거대해, 그러지 않고서는 입을 뗄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우우우우웅-
서우진의 혼돈기가 그녀의 기운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살짝 힘에 부치기는 했지만, 큰 무리 없이 완전히 영역의 제어권을 찾아올 수가 있었다.
“…진정하시죠.”
서우진은 무겁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프레이야를 진정시켰다.
하지만 그녀에게 성왕이란 이름은 역린에 가까운 것인 듯했다.
“진정? 진정이라 하였느냐? 감히 이 땅에서 그분의 이름을 망령되이 불러놓고 나에게 진정하라는 말이 나오더냐!”
프레이야는 당장에라도 검을 뽑을 태세였다.
하지만 서우진의 말이 한 박자 더 빨랐다.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쿠우우우웅-!!!
신성력이 주위의 모든 것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어찌나 거대한 압력인지, 서우진이 딛고 있는 땅이 움푹 파일 정도였다.
‘으음-’
서우진이 속으로 신음을 내뱉었다.
살아온 세월이 적지 않아서인지 그녀의 힘은 가공했다.
‘그래도…….’
아직은 버틸 만했다.
서우진의 경지 역시 그녀에 비해 크게 낮지 않은 덕분이었다.
“자세히 설명하거라, 누구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만일 거짓이라 판단된다면, 이 자리에서 너를 베겠느니라.”
빈말이 아닌지, 프레이야의 눈에 살기가 서렸다.
‘저러다 쓰러지시겠구만.’
그녀의 힘은 서우진을 능가했지만, 한눈에 봐도 무리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괜히 뒷목을 잡고 쓰러질까 싶어, 얼른 입을 열었다.
“베노인이라고 있습니다. 사도 중 한 명이죠. 혹시 알고 계십니까?”
서우진이 승부수를 던졌다.
‘어떻게 반응할까?’
헛소리라며 화를 낼까?
아니면 조금 귀를 기울일까?
서우진은 프레이야의 표정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녀의 눈썹이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분노하진 않았다.
‘좋아.’
베노인은 유명한 사도가 아니다.
하지만 프레이야쯤 되는 위치에 있는 이들은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서우진의 입에서 그런 구체적인 이름이 나오자, 그녀는 조금 더 들어보기로 결정한 듯했다.
“그와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직접 들은 이야기죠.”
서우진은 한 치의 거짓도 없이 말했다.
하지만 아직은 그녀를 설득하기엔 부족한 모양이었다.
“베노인은 기만과 간교함으로 유명한 사도다. 너는 고작 그런 놈의 세 치 혀에 놀아난 것일 뿐이다.”
프레이야는 서우진의 말을 부정했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지금 성왕의 행동을 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만.”
이번엔 반박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는 것이 더 정확했다.
“신성기사단에 오이언이란 기사가 있습니다. 그는 현재 아이에르에서 가장 신실한 기사로 알려져 있죠. 그리고 그는 성왕이 사도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오이언이?”
놀랍게도 프레이야는 오이언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럼 얘기가 더 편하지.’
서우진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그가 아에론이라는 휘하의 기사를 시켜 성왕을 살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장면을 목도했죠.”
바로 그와 사자의 만남이었다.
“믿을 수 없다.”
“원하신다면 그들을 직접 만나게 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물론 매시브 가디언까지 가야 했으니, 시간이 좀 오래 걸리겠지만 말이다.
서우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노려보고만 있는 프레이야를 향해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저도 당신과 같은 마음입니다.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마왕과 싸워야 할 성왕이 그의 추종자라니. 당연히 믿고 싶지 않죠.”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프레이야가 마치 씹어뱉듯 물었다.
“지금 당장 결론을 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총교단에서 성왕이 정말로 사도인 것이라 밝혀진다면…….”
서우진이 살기 어린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