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82)
281화.
성왕이 죽었다.
이 소식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아이에르 전역에 퍼져 나갔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의 정체가 사실은 사도였다는 소문이었다.
“에이, 설마.”
“무슨 기만 작전 같은 거 아니야?”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성왕이 사도라니?
근래 성왕의 행보가 이해하지 못할 수준으로 파격적이긴 했다.
그 덕에 전쟁이 벌어졌고, 아이에르는 최악의 상황으로 번졌으니까.
백성들의 성왕에 대한 불신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중이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성왕이 사도였다는 이야기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차라리 용사가 마왕이었다는 얘기를 믿고 말지.
그만큼 신빙성이 없는 소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와중 총교단에서 아이에르 전역에 성지(聖旨)를 발표했다.
[간악한 마왕의 종자가 성왕 전하를 가장하여 혼란을 가져왔노라. 이에 주신의 검, 프레이야 경이 길었던 은거를 깨고 복귀하여 악을 멸하였도다.]성지의 내용은 길었다.
허나 요약하자면, 핵심적인 내용은 몇 가지 되지 않았다.
첫째, 사도가 성왕을 살해한 후 그의 행세를 했다.
둘째,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모두 사도가 벌인 짓 때문이다.
셋째, 은퇴했던 전 신성기사단장 프레이야가 그 사실을 눈치채고 돌아와 사도를 참하였다.
넷째, 이제 곧 모든 것이 정상화가 될 것이니 백성들은 경거망동하지 말고 생업에 종사하라.
성지를 확인한 아이에르의 백성들은 모두가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웃기지도 않는 헛소문이라 치부했던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그 누구보다 마왕의 척결에 앞장서야 할 성왕이 사실은 사도였다니!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는 혼란이 벌어졌다.
사실을 직접 확인하겠다며 총교단으로 출발한 이도 있었고, 오히려 성지를 내린 존재가 마왕의 주구라 여긴 이도 있었다.
셋 이상 모인 자리에선 싸움이 일어나기 일쑤였고, 치안을 유지하기 위한 인원이 부족했기에 아이에르는 혼돈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그것은 전쟁 중이던 주변국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레닌스탕의 총사령관 바스티안은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눈앞의 사내에게 물었다.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사내는 손에 쥔 사과를 베어 물며 관심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중요한 일입니다. 만약 아이에르의 총교단에서 내린 성지가 사실이라면…….”
“푸하!”
사내는 바스티안의 말에 폭소했다.
“이봐, 바스티온 백작이라고 했나?”
“…바스티안입니다.”
“그래, 바스티안이든 바스티온이든. 한번 생각을 해봐. 이 타이밍에 왜 저런 성지가 내려왔을까?”
사내의 물음에 바스티안은 입을 다문 채 가만히 쳐다만 보았다.
그러자 사내는 혀를 차곤 말을 이었다.
“성왕은 숙청된 거야. 분수에 맞지 않게 깝치다가 자기 부하들한테 목이 잘린 거라고. 그다음에 대충 그럴듯한 죄목을 갖다 붙여서 발표한 거지.”
아삭-!
다시 한번 사과를 한 입 크게 물었다.
“이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 죽었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하고 물러나라, 이런 뜻인 거지.”
“하지만…….”
“내 말이 맞아. 그러니까 바스티온 백작은 그냥 원래 하려고 했던 대로 계속 아이에르를 점령해 나가면 돼.”
사내의 말도 아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니, 상당히 신빙성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에르는 일반적인 왕국과는 궤를 달리하는 국가다.
주신에 대한 신앙으로 똘똘 뭉친 놈들이, 과연 성왕을 자신의 손으로 숙청할 수 있을까?
수백 년을 이어져 온 그들의 성향을 떠올려 봤다.
‘그럴 리가 없지.’
불만이 아무리 쌓였다 해도 그들은 절대로 자신들의 왕을 숙청할 수 없었다.
정치가 아닌, 신앙으로 뭉친 국가였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바스티안은 자신의 생각을 굳이 말하지 않았다.
사내가 저리 생각하고 있다면, 그냥 따르는 것에 신상에 이롭다.
왜냐하면 그는 레닌스탕의 유일한 공작이자, 초극의 경지에 이른 존재.
“디아로크 공작 각하.”
불에 미친 마법사, 디아로크였기 때문이었다.
* * *
서우진은 이제 매시브 가디언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약속했던 일주일이 다 되어가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조금 부족할 것 같긴 했지만, 휘라테온의 도움을 받고 ‘신속’을 사용해서 달린다면 충분히 약속 시간 안에는 도착할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서우진은 아직 아이에르의 총교단을 떠나지 못했다.
“남아서 돕거라.”
“…제가 왜요?”
프레이야의 말에 서우진은 뚱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네놈 때문에 벌어진 일 아니더냐?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아니, 그게 왜 저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까? 제가 한 거라곤 사도 놈들을 족친 것밖에 없는데. 수고했다고 여비나 좀 줘서 보내주지는 못할망정, 책임이라뇨?”
무슨 물에 빠진 놈을 건져 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것도 아니고.
“보상이라면 해주마. 아이에르의 보고를 탈탈 털어서라도 네가 쓸 만한 것을 찾아주지. 그럼 되겠느냐?”
솔깃하다.
하지만 서우진을 설득하기엔 좀 부족했다.
“거절합니다. 아니, 애초에 제가 여기서 뭘 할 수 있다는 겁니까?”
마르데타인과 바론은 죽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바론은 아직 살아 있긴 했지만.
어쨌든 가장 큰 적 두 명은 처리를 했다.
남은 것이라곤 엉망진창이 된 아이에르의 국정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건 오직 저들이 몫이었다.
외인, 그것도 용사인 서우진이 해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프레이야는 여전히 서우진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녀의 자존심 때문인지, 부탁보단 억지를 부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레닌스탕. 지금도 여전히 이곳으로 진격을 하고 있는 레닌스탕 군을 막아야 해.”
놀랍게도 성왕에 대한 진실을 성지로 널리 알렸음에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분명 주변국들에게 모든 상황을 설명했건만…….
“브로바이슨과 트리안은 진군을 멈추고 사실의 확인에 들어갔다. 허나 레닌스탕은 여전히 검을 거두지 않았으니, 이대로라면 총교단이 무너지고 말게다.”
솔직히 말하자면 별로 끼어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냥 돌아갈 수도 없었다.
서우진이 직접 아이에르까지 온 이유는, 전쟁을 막기 위함 아니었던가?
강림 전쟁에서 희생을 줄이려면 최대한 많은 사제와 신성기사가 필요하다.
고작 국가 간의 전쟁에서 소모될 인력이 아니었다.
그래서 기껏 와서 일을 해결했건만, 아직 전쟁의 위협은 끝나지 않았다.
“그걸 제가 어떻게 해결합니까?”
이전처럼 ‘마왕화’를 해서 레닌스탕 군을 몰아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젠 레닌스탕만 막으면 되지 않습니까? 그 정도는 지금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요.”
주변의 세 왕국을 한 번에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브로바이슨과 트리안이 이탈한 지금.
아이에르라면 레닌스탕을 막아내고도 남을 전력이 있었다.
그런데 프레이야는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병사와 기사들만 막는 것이라면 서우진의 말이 틀리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레닌스탕에는 바로 ‘그’가 있다는 것이었다.
“디아로크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
“디아로크?”
프레이야의 물음에 서우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하지만 그런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누굽니까, 그게?”
이 상황에 프레이야의 입에서 나온 사람이었으니, 분명 평범한 이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들어본 적도 없었기에, 정체를 짐작할 수 없었다.
“사실 내가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 망할 녀석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녀의 말에 서우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말은…….”
“디아로크는 초극의 경지에 이른 놈이다. 그것도 지랄 맞게 강한 마법사지.”
마법사란 단어에 눈이 커졌다.
“마법사들은 모두 하늘탑에 소속되어 있는 게 아니었습니까?”
심지어는 초극의 경지에 올라 있단다.
그 정도쯤 되는 존재라면 당연히 하늘탑에서 온갖 지원을 받으며 연구나 수련을 하고 있어야 할 텐데?
“모든 마법사가 하늘탑 소속인 것은 아니다. 세상을 돌아다니거나, 한 국가에 몸을 의탁한 이들도 소수이지만 존재하지. 디아로크는 그들의 정점에 서 있는 놈이니라.”
서우진은 그제야 프레이야가 자신을 붙잡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설마 저보고 그 양반을 막아달란 소리는 아니겠죠?”
헛웃음이 나온다.
초극의 경지에 도달한 강자를 막아내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고.
‘차라리 사도 같은 녀석들과 싸우는 게 낫지.’
사도는 적이니 한 치의 거리낌도 없이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디아로크라는 이름의 마법사는 생사를 걸고 싸워야 할 적이 아니다.
죽이는 것보다 단순 제압이 몇 배나 더 어려운 것을 생각해 보면, 프레이야의 부탁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무거운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아무 의미 없는 희생이 더 늘어나선 아니 된다. 나로선 불가능한 일이니, 너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구나.”
프레이야가 서우진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하아-”
그 모습을 본 서우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일어나세요.”
주름 가득한 노인이 자신을 향해 허리를 굽히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괜히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올랐다.
“얼마나 강합니까? 그 마법사는?”
아직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대답하진 않았다.
디아로크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을 한 뒤에야 결정할 수 있을 듯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제국의 수호자들과 비교해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하더구나.”
그 말에 서우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너무 추상적인데요.”
제국의 다섯 수호자는 서로의 격차가 너무 심했다.
마공은 다른 수호자들과 비교해도 같은 경지에 이른 존재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강력했으니까.
“대공보다는 낫고, 권공보다는 부족할 듯하다. 물론 정확한 건 아니다만…….”
프레이야의 말에 서우진이 계산기를 두들겨 봤다.
권공이란 자는 만나보지 못했지만, 암공의 밑일 것이다.
‘암공 이하의 모든 수호자는 내가 감당할 수 있어.’
마공은 아직 불가능했고, 검공은 확실치 않다.
그렇다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이라는 건데…….
“부탁을 들어드리면, 제가 얻는 건 뭐죠?”
서우진이 물었다.
동료들과의 약속까지 어겨가며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다.
웬만한 보상이 아니라면 만족할 수가 없었다.
“끌끌-”
프레이야가 웃었다.
그러곤 말했다.
“아까 내가 말하지 않았더냐?”
“뭘 말입니까?”
“보상에 대해서 말이다.”
서우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둘이 나눴던 대화를 복기해 보았다.
‘그래, 아까 말하긴 한 것 같네. 뭐라고 했더라? 분명…….’
“보상이라면 해주마. 아이에르의 보고를 탈탈 털어서라도 네가 쓸 만한 것을 찾아주지. 그럼 되겠느냐?”
“보고?”
서우진의 눈이 살짝 커졌다.
“빈말이 아니었느니라. 네가 그 망할 녀석을 막고, 전쟁을 끝낸다면. 그땐 보고를 열어 네가 원하는 그 무엇이라도 내어주마.”
신성왕국 아이에르의 보고(寶庫).
제국의 비고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엄청난 가치의 보물들이 잠들어 있을 게 분명했다.
그곳에서 서우진이 원하는 건 무엇이든 주겠다니?
‘화통하구만.’
쩨쩨하게 하나씩, 그것도 수작을 부려가며 주던 황제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계약서 쓰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