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86)
285화.
‘혼돈 세계’.
다시 한번 그 기괴한 세계가 펼쳐졌다.
개념이 뒤바뀌고, 현상은 뒤틀렸다.
너무도 이질적인 광경.
서우진의 절대적인 제어 아래 놓인 세상은, 이름 그대로 혼돈으로 가득찼다.
“이, 이건……?”
디아로크의 눈이 부릅떠졌다.
마법사인 그는, ‘혼돈 세계’가 얼마나 모순되고 말이 되지 않는 공간인지 그 누구보다 정확히 알아차렸다.
“말도 안 된다!”
경악에 가득찬 음성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그 외침은 그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소리를 전달해 줄 매개체인 대기가 제멋대로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확인한 디아로크는 혼란에 빠졌다.
대체 어떻게 이런 세계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무슨 방법을 사용해야 이런 세계를 구현할 수 있는 것인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압박감 속에서도 진리를 탐구하는 마법사 특유의 학구열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반면 유다인은 조금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도 ‘혼돈 세계’에 조금 놀란 것 같긴 했다.
서우진이 처음 나타나 손을 걷어찼을 때보다도 눈이 더 커졌으니까.
하지만 디아로크와는 달리, 이 현상을 규명하기보단 적응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 세상 속에서, 자신이 싸울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고 관찰했다.
그리고 초극의 경지에 이른 존재답게, 빠른 속도로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상반된 둘의 모습을 보며 서우진은 눈을 가늘게 떴다.
‘‘셀레스티얼 윙’은 안 써도 되겠어.’
눈앞의 둘은 바론에 비하자면 조금 부족한 수준이었다.
그런 이들을 상대로 ‘셀레스티얼 윙’까지는 사용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저 녀석이 조금 마음에 걸리기는 하는데…….’
서우진이 유다인을 쳐다봤다.
놈은 놀라운 속도로 ‘혼돈 세계’에 적응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그 속도만 보자면 바론을 웃돌 정도다.
‘분명 바론의 수준은 아니야.’
‘신룡안’을 통해 본 유다인은 위협이 될 정도의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서우진의 감각은 계속해서 위험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마치 예리한 검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너무도 날카로워 주변의 모든 것을 베어버릴 수 있을 것만 같은 마검.
‘주의가 필요하겠어.’
여차하면 ‘셀레스티얼 윙’을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하곤, 한 발 앞으로 내디뎠다.
스윽-
고작 한 걸음이다.
별다른 스킬을 사용한 것도 아니고, 혼돈기를 운용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서우진은 유다인의 앞에 나타났다.
마치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혼돈 세계’의 뒤틀린 개념이 서우진과 유다인 사이의 거리를 ‘삭제’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유다인의 시선이 날카로워지는 것이 보였다.
서우진은 지체하지 않고 ‘카 라니엘’을 내리 그었다.
아무런 기척도, 소리도 나지 않는 무음의 참격.
그 속도는 빛살과도 같아, 웬만한 이들은 인지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
하지만…….
쩡-!
놀랍게도 유다인은 서우진의 검을 막아냈다.
아니, 단순히 막아낸 것이 아니었다.
아래에서 위로 올려친 검은 ‘카 라니엘’의 검날을 따라 미끄러지더니, 그대로 서우진의 목을 노리고 휘둘러졌다.
완벽한 공방일체(攻防一體)의 한 수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움직임에 서우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스아아아악-!
살짝 고개를 돌리자, 유다인의 검이 섬뜩한 기세로 스쳐 지나갔다.
귓불을 건드렸는지, 따끔한 통증과 함께 핏방울이 맺히는 것이 느껴졌다.
서우진은 당황하지 않고 ‘카 라니엘’을 유다인의 목에 찔러 넣었다.
카가가가가각-!
검과 검이 맞물리며 거친 쇳소리가 터져 나왔다.
“제법이다.”
유다인은 놀라운 움직임으로 ‘카 라니엘’을 빗겨내곤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뜬금없는 칭찬이었지만, 서우진은 아무런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강하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유다인은 정말로 강했다.
단순한 경지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오직 검.
유다인의 검은 지극히 높은 격을 지니고 있었다.
‘어쩌면 반 슬레인만큼…….’
마기의 양이 부족해 더 높은 경지에 닿지 못했을 뿐, 그의 검은 이미 극에 달해 있었다.
‘극한에 이른 검이야.’
서우진은 솔직히 인정했다.
자신의 검은 유다인에게 미치지 못한다.
단 몇 번의 부딪힘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혼돈 세계’와 무한에 가까운 혼돈기가 아니었다면, 단 몇 초도 버티지 못하고 목이 잘려 나갔을 수도 있었다.
‘쯧, 이런 놈이 또 있을 줄이야…….’
차라리 바론이 편하다.
물론 놈은 강했다.
만약 유다인과 생사를 걸고 싸운다면, 분명 바론이 이길 테니까.
하지만 서우진은 유다인을 더 높게 평가했다.
지금은 비록 바론에 미치지 못하지만, 시간이 더 흐른다면…….
‘이놈은 적어도 마공과 동급에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고맙군.”
생각을 끝낸 서우진이 칭찬에 순순히 고마움을 표했다.
그것은 순전히 검의 극의를 본 이에 대한 존중이었다.
비록 적이었지만, 그 정도의 예의는 차려도 될 것 같았다.
물론 호의는 거기까지였다.
서우진은 ‘카 라니엘’을 들어 겨눴다.
“네가 강하다는 건 잘 알겠다. 만약 검만으로 싸웠다면, 나는 상대도 되지 못했겠지.”
대답은 없었다.
왠지 그 침묵이 긍정을 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넌 날 못 이겨.”
“…그런가?”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담담하게 물었다.
“이건 단순히 검을 겨루는 게 아니니까.”
서우진의 말에 유다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이번에도 별다른 반론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서우진은 속으로 혀를 찼다.
‘도발은 안 먹히겠군.’
유다인의 마음은 평정, 그 자체였다.
아무리 돌을 던져 봐야 아무런 파문도 일지 않을 것이다.
‘이거 진짜 쉽지 않겠는데.’
한숨이 나온다.
괜히 객기를 부렸나 싶기도 했다.
‘차라리 한 명씩 상대를 했다면, 훨씬 편했을 텐데.’
서우진이 흘깃- 디아로크를 쳐다봤다.
그는 여전히 ‘혼돈 세계’에 정신이 팔린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저 상태가 계속 이어진다면 좋겠지만, 힘들 것이다.
분석과 계산을 이어가던 디아로크의 일그러진 표정이 조금씩 펴지고 있었으니까.
‘길어야 5분일까?’
그 짧은 시간 동안 유다인을 처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말은 곧, 5분 후에는 둘을 한 번에 상대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거기에 디아로크는 죽일 수도 없었으니, 꽤나 힘든 싸움이 예상되었다.
물론…….
‘힘이 좀 든다는 거지, 할 수 없다는 얘긴 아니야.’
혼돈기가 요동친다.
“루덴 가르도.”
서우진의 호명에, 손등에 새겨진 문신에서 흑색의 갑주가 방출되며 전신을 감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휘라테온이 날아들며 서우진의 등에 달라붙어 날개로 화했다.
‘셀레스티얼 윙’을 제외하면, 마르데타인과 바론을 압도했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그건 후유증이 심하니까.’
총교단에서와는 달리, 이번엔 챙겨줄 사람도 없었다.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사용을 자제해야 했다.
‘이 상태로도 충분할 테니까.’
조금 힘들긴 해도, 어떻게든 가능할 것 같았다.
“네가 믿고 있던 게 그것인가?”
가만히 서서 서우진이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유다인이 입을 열었다.
“‘루덴 가르도’와 신수라… 자신이 있을 만하다.”
그 어떤 공격도 막아낼 수 있는 저주받은 마갑과 바람의 신수.
거기에 ‘카 라니엘’과 ‘혼돈 세계’까지.
저만한 아이템과 존재에게 도움을 받는다면,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는 게 더 이상할 것이다.
그런데 유다인의 태도가 너무 담담했다.
자신의 적이 강해지는 모습을 눈앞에서 봤음에도, 여전히 태연한 표정이었다.
마치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재미있겠군.”
그 말과 동시에 유다인의 얼굴에 처음으로 표정이라 부를 만한 것이 나타났다.
아주 미세하긴 했지만, 미소를 지은 것이다.
그리고 반응을 보인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신수? ‘루덴 가르도’?”
뒤쪽에서 디아로크의 음성이 들려왔다.
호기심을 넘어 광적인 집착까지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서우진이 고개를 돌리자 디아로크가 번들거리는 눈동자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당장에라도 달려와 ‘루덴 가르도’를 뜯어내고, 휘라테온을 해부할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진짜 저쪽이 사도인 거 아니냐?’
오히려 유다인 쪽이 전통적인 기사의 모습에 가까웠다.
“내가 그것들을 한번 봐야겠다.”
탐욕까지 느껴진다.
서우진은 그런 디아로크의 행동을 보며, 마법사에 대한 이미지가 산산이 박살났다.
‘다들 마공이나 바르시크 같은 사람들일 줄 알았는데.’
디아로크는 그들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마법사가 아닌, 차라리 매드 사이언티스트라 불리는 게 더 어울릴 것 같았다.
“하아-”
서우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디아로크의 기괴한 행동 때문이 아니었다.
“정신을 차렸네.”
예상했던 5분보다 훨씬 빨랐다.
아무래도 유다인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한 것들이 ‘혼돈 세계’보다 더 큰 호기심을 자극한 듯했다.
“뭐, 각오했던 일이니까.”
조금 이르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애초에 처음부터 둘을 동시에 상대할 생각이었다.
지금 와서 후회하는 것도 우습다.
서우진은 혼돈기를 있는 대로 끌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안 봐준다.”
* * *
루페라는 어둠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거 난감하게 됐네.”
자신이 섬기던 사도, 마르데타인이 죽어버렸다.
그토록 두렵고 강인했던 존재가, 서우진이라는 용사에게 제대로 된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목이 잘려 버렸다.
심지어 사도들 중 가장 강한 존재들 중 하나인 바론과 합공을 했음에도 말이다.
그것은 충격이었다.
그녀는 마왕의 추종자로써, 이번 강림 전쟁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하늘 위의 존재인 사도가 그렇게 쉽게 죽는 모습을 보니 믿음이 흔들렸다.
‘이러다 또다시 패배하는 건 아닐까?’
의심이 슬며시 고개를 쳐들었다.
벌써 몇 명의 사도가 목숨을 잃은 것일까?
이대로라면 전쟁의 패배는 자명할 것 같았…….
“끄으으으윽!”
거기까지 생각을 이어간 루페라가 갑자기 머리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뇌가 통째로 타버릴 듯한 통증이 밀려온 것이다.
“아아아악!”
마왕에 대한 의심을 품은 대가였다.
‘성녀’가 살아 돌아온다 해도 결코 해제할 수 없는 저주.
루페라는 마치 벌레처럼 땅바닥을 기며 의심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기 위해 애썼다.
그 노력이 통한 것일까?
차츰 통증이 사라졌다.
“하아- 하아-!”
거친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처음 느껴보는 저주의 실체는, 서우진에 대한 두려움을 씻은 듯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우, 움직여야 해!”
고통 속에 몸부림치던 루페라는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이 빌어먹을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찾아낸 덕분에 저주의 속박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바론님을 살린다.’
서우진에 의해 수백 조각으로 나뉜 바론은 죽지 않았다.
그저 땅속에 파묻힌 채 다시는 부활할 수 없도록 감시를 당하고 있을 뿐이다.
‘가능성이 있어.’
아직 루페라는 아이에르의 추기경이다.
자신의 직위를 이용한다면, 충분히 바론을 부활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터.
루페라는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총교단이 있는 방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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