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90)
289화.
서우진이 목적했던 바는 이루었다.
아쉽게도 유다인을 처리하고 레벨을 올린다는 건 실패했지만, 가장 큰 목표였던 레닌스탕 군을 막아내는 건 성공했으니까.
그런데도 서우진은 곧장 매시브 가디언으로 돌아가진 못했다.
자신을 바스티안이라 소개한 레닌스탕 군의 총사령관이 디아로크가 깨어나기 전엔 돌아갈 수 없다고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살살 할 걸 그랬나?’
디아로크는 생각보다 강했다.
그래서 과하다 싶을 정도로 힘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놈이 깨어나려면 시간이 꽤나 걸릴 듯했다.
‘늦어지면 곤란한데…….’
이놈들이 회군하기 전까진 서우진도 돌아가지 못한다.
대충 사태가 마무리되긴 했지만, 저 미친 돌아이가 정신을 차리면 무슨 짓을 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다시 서우진과 싸우기 위해 군사를 움직인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놈이었다.
결국 서우진은 놈이 깨어나 레닌스탕 군이 아이에르의 국경 밖으로 물러날 때까지 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차라도 드시겠소?”
서우진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다는 걸 본 바스티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차 말고, 술은 없나?”
맛도 없는 걸 마시느니, 술 한 잔 하면서 시간이나 죽이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한번 찾아보도록 하지.”
부상자들의 소독을 위해 준비했던 독한 위스키가 보급품에 섞여 있을 것이다.
즐기기 좋은 술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것뿐이었다.
바스티안은 부하에게 위스키 한 병을 챙겨오라는 명령을 내리곤, 다시 서우진 앞에 앉았다.
딱히 대화를 나눌 만한 사이가 아니었기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문득 바스티안이 물었다.
“사실이오?”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서우진은 그 안에 숨어 있는 뜻을 읽어냈다.
‘사도를 잡기 위해 이곳에 온 게 맞냐는 거겠지.’
흠을 잡을 데 없는 이유이긴 했다.
하지만 타이밍이 너무도 공교로웠다.
거기에 전쟁을 끝내고 돌아가라는 제안까지 했다.
바스티안의 입장에선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이야.”
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바스티안은 조금 더 무거워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추궁하기 위함이 아니오. 나 역시 더 이상의 전쟁은 원치 않으니까. 그러니 사실을 말해주시오. 정말 아이에르와는 아무런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 확실하오?”
질문의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확신을 하는 듯했다.
“하아-”
서우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알면 바뀌는 게 있나?”
중요한 건 결과다.
이제 와서 숨겨진 이야기를 알게 되어봐야 바뀌는 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바스티안은 반드시 듣고 싶어 하는 듯했다.
“좋아. 솔직히 아무런 관계가 없진 않아.”
서우진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총교단에서 내린 성지의 내용이 전부 사실이라는 것과 더 이상 전쟁의 확산을 원치 않았기에 직접 나섰다는 것까지.
물론 프레이야와 한 거래에 대해선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그렇소?”
바스티안은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한 것 같군.’
서우진이 아무 생각 없이 솔직하게 대답해 준 것은 아니었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마르데타인이 정말로 사도였고, 마왕의 추종자들로 인해 전쟁이 벌어졌다는 걸 확실하게 인지시켜야 했다.
그래야만 추가적인 전쟁의 발발을 막을 수 있었으니까.
‘물론 용사인 내가 개입했다는 게 알려지면 문제가 생기겠지만…….’
바스티안이 그걸 사실대로 발설할 것 같진 않았다.
실제로 그는 비밀을 지킬 생각이었다.
“이 말은 새어나가선 안 되겠군.”
서우진의 목적이 사도가 아닌, 레닌스탕의 진군을 막기 위함이라는 게 알려진다면?
당연히 아이에르는 다시 한번 곤욕을 치를 것이다.
“그러니까 입 조심 좀 해주면 좋겠군.”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오?”
바스티안이 물었다.
그의 입장에서 용사는 그저 마왕과의 싸움에나 쓰는 병기의 일종이었다.
굳이 이런 싸움에 끼어들 이유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서우진에겐 있었다.
“강림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다시 말씀해 주시겠소?”
“이기려고 그랬다고. 너희끼리 치고받고 싸워봐야 결국 약해지는 건 이쪽이니까. 그래서 사도들도 이런 일을 꾸민 거잖아. 그러니까 나라도 나서서 전력의 손해를 막아야지 어쩌겠어.”
지고 싶지 않으니까.
져서는 안 되니까.
서우진의 진심이 담긴 말에, 바스티안은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진즉에 전쟁을 끝내고 돌아갔어야 했소. 아니, 그러려고 했지.”
총교단에서 성지가 내려왔을 때.
바스티안은 분명 더 이상의 전쟁은 무의미하다 생각하고, 군을 물리려 했다.
“하지만 디아로크 공작 각하의 생각은 달랐소.”
바스티안의 넋두리에 서우진이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놈. 좀 정신이 이상한 것 같긴 하더라.”
“하하!”
자국의 공작을 욕하는데도, 바스티안은 크게 웃었다.
“그분의 성정이 유난히 별나긴 하시오.”
“별난 정도가 아니던데?”
디아로크와의 싸움을 떠올린 서우진이 치를 떨었다.
‘돌아이 중에서도 상돌아이였지.’
어떤 마법사가 머리채를 잡고, 귀를 물어뜯으려고 한단 말인가?
마법이라도 약하면 모르겠는데, 놈의 화염 마법은 ‘초열법사’ 김태진을 아득하게 초월했다.
아직 레벨이 부족하긴 하지만, 김태진 역시 S급의 용사.
하지만 디아로크에게는 상대가 되질 않았다.
놈의 등급을 매겨보면 성유라와 비슷한 SS급 정도는 되지 않을까?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것쯤은 단점 축에도 들지 않을 정도의 강자였다.
“뭐, 그놈이 전쟁을 부르짖었으면 막기는 힘들었겠지.”
대충 상황이 그려졌다.
바스티안은 이쯤에서 진군을 멈추자고 제안했지만, 저 미친놈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겠지.
이 세계에서는 계급과 힘이 깡패였으니까.
“이해해 주어 고맙소.”
서우진이 동감을 해준 덕분인지, 바스티안의 표정이 조금 밝아진 것 같았다.
“뭐, 그러니까 괜히 아이에르는 괴롭히지 말았으면 좋겠네. 알고 보면 그놈들도 꽤 불쌍한 애들이거든.”
가장 사랑받아야 존재가 앉아야 할 자리에, 가장 증오해야 할 존재가 앉았다.
심지어는 그 대가로 인해 전 국토가 초토화 되고, 백성들이 신음을 했다.
이번 일을 먼저 시작한 건 분명 아이에르였지만, 가장 큰 피해자 역시 아이에르였던 것이다.
“강림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신성왕국이라 불리던 아이에르의 힘이 필요해.”
“…그리하겠소.”
바스티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되겠지.’
디아로크라는 미친놈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적어도 바스티안 같은 상식적인 이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을 듯했다.
괜한 뒷말이 나올 일도 만들지 않겠다니, 서우진이 원하던 목적은 모두 이룬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남은 건 레닌스탕 군이 완전히 철수를 하는 것인데…….
“대체 그놈은 언제 깨어난대?”
“치료에 모든 역량을 투입하고 있으니 곧 소식이 들려올…….”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바스티안의 말을 끊고, 밖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렸다.
“위스키가 온 모양이군.”
서우진이 부탁한 술이 도착한 듯했다.
“들어오거라.”
바스티안이 허락하자, 문이 열리고 병사 한 명이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예상했던 것처럼 싸구려 위스키 한 병이 들려 있었다.
“이곳에 두고 나가보도록.”
바스티안이 말했지만, 병사는 나가는 대신 보고를 시작했다.
“디아로크 공작님께서 깨어나셨습니다.”
* * *
“…루페라?”
프레이야가 고개를 갸웃하며 미테온을 쳐다봤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이름을 들은 미테온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아는 사람이냐?”
프레이야가 물었다.
미테온이 바론의 사체를 훔쳐 달아난 놈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왠지 불안해졌다.
“알고 있소이다.”
미테온은 손까지 바들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데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게냐?”
혹시나 친했던 사람인가 싶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반응이 나올 리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미테온의 대답은 그녀의 예상을 뛰어넘는 충격을 주었다.
“추기경이오. 총교단에서 성왕을 보필하는 최측근 중 하나였지.”
“이런 미친……!”
프레이야의 눈이 부릅떠졌다.
“대체 내가 은퇴한 사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 신성한 땅에 그 더러운 놈들이 그토록 뿌리내리는 걸 방관했단 말이냐!”
이미 마르데타인이 마왕의 추종자라는 사실만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치욕을 입었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라, 추기경들 중에도 마왕의 추종자가 더 있었다니?
이 참담한 현실에 분노가 끓어올랐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색출하거라. 남아 있는 놈들이 있다면, 반드시 색출하여 뿌리를 뽑아라!”
아직 총교단에 정체를 감춘 채 숨어 있는 마왕의 추종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만약 아이에르의 중추에 단 한 명이라도 그런 놈이 더 있다면?
그래서 느리게나마 회복하고 있는 아이에르의 내부에서 다시 일을 벌인다면?
‘그땐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프레이야와 미테론이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신성기사단을 전원 동원해, 총교단 내의 모든 이를 조사하라!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부분을 발견한다면, 일단 구금 후 직접 심문하겠다!”
미테온이 명령했다.
성왕의 자리가 공석인 지금, 총교단 내에서 가장 강한 명령권을 지닌 이가 그였다.
본래도 권력의 중심이었던 주교였으니까.
심지어 지금은 미테온 혼자뿐이다.
유레아는 죽었고, 필로얀은 실종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명을 받듭니다!”
미테온의 분노에 찬 명령에, 신성기사들이 우렁찬 대답을 하곤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 역시 두 사람에 못지않게 분노한 상태였기에, 망설이지 않았다.
“후우-”
신성기사들이 자리를 비우자, 프레이야가 미간을 찌푸리며 관자놀이를 눌렀다.
계속되는 상황에 두통이 생긴 것이다.
‘말년에 이게 무슨 짓인지…….’
본래대로라면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평화롭게 죽음을 준비하고 있어야 했다.
왕국이 위기에 빠졌다며 도움을 청하는 터에 은거를 깨고 나왔건만, 그녀가 한 일은 뒷수습밖에 없었다.
‘게다가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차라리 일찍 죽는 편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군.’
그랬다면 이런 광경은 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결국 프레이야는 마력까지 돌린 후에야 두통에서 좀 벗어날 수 있었다.
“그나마 전쟁이 종결되어 다행이다.”
트리안과 브로바이슨에 이어, 레닌스탕까지 전쟁을 중단했다.
아직 레닌스탕은 완전히 돌아가지 않은 상태이긴 했지만, 서우진이 그곳에 있는 이상은 그 미친놈도 허튼 짓을 하진 못할 터.
이젠 마왕의 추종자들을 모두 뿌리 뽑고, 자격이 있는 성왕만 추대하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물론 이미 입은 상처를 회복하는 것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말이다.
“새로운 성왕 후보에 대해서는 어찌 되어가고 있지?”
프레이야가 진이 빠진 표정으로 물었다.
바로 어제, 미테온은 추기경들과 만나 그에 대한 회의를 했었다.
이미 은퇴한 프레이야가 낄 자리는 아니었기에, 굳이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아 결과는 듣지 못했던 것이다.
“적합한 후보가 한 명 있긴 하오.”
미테온의 말에 안색이 조금 밝아졌다.
“그게 누구지? 혹, 내가 아는 이던가?”
“아마 알 것이오. 허나 문제가 좀 있소이다.”
“…문제?”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하자, 미테온이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지금 본국에 없소. 자신이 이끌던 병력과 함께 시온에 있다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