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91)
290화.
눈을 뜬 디아로크는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누워서 멍하니 위만 바라보았다.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심한 부상을 입긴 했지만, 레닌스탕 군이 그를 치료하기 위해 모든 것을 동원한 덕에 후유증은 남지 않았다.
그런데도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건, 서우진에게 당한 패배의 충격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었다.
‘…내가 졌다?’
디아로크는 의식을 되찾은 뒤 몇 번이나 자문해 봤다.
혹시 꿈은 아니었을까?
처음 보는 용사 나부랭이에게 이 몸이 질 리가 없다.
분명 꿈이다.
하지만 뇌리에, 그리고 육체에 깊게 새겨져 있는 패배의 상흔은 현실이었다.
“괜찮으십니까?”
그러다 문득 들려오는 누군가의 음성에 제정신이 돌아왔다.
“…바스티온.”
“바스티안입니다. 완전히 회복되신 것 같군요.”
바스티안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모습에, 디아로크는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패배했군.”
“그렇습니다.”
“서우진이라는 이름의 용사가 맞나?”
“그렇습니다.”
바스티안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화도 나지 않는다.
기억이 사실이라면, 자신은 서우진에게 압도적으로 당하기만 하다 졌기 때문이었다.
억울한 마음이 들 정도의 수준도 아니었다.
‘마법은 물론이고, 적의 허를 찌르기 위해 틈틈이 익혔던 체술까지 모두 박살이 났지.’
잠깐은 몰아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했다.
그 이후로는 한 시간이 넘도록 처맞기만 했다.
그쯤 되니 분노보다는 허탈감이 앞섰다.
“…괜찮으십니까?”
바스티안이 다시 한번 물었다.
이전에는 상세의 회복 여부를 물은 것이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혹시나 벌떡- 일어나 깽판을 치진 않을까 걱정되었던 것이다.
디아로크의 성격이라면 그러고도 남았으니까.
당장에라도 패배의 설욕을 하겠다며, 서우진을 찾아 마법을 난사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의외로 디아로크는 얌전했다.
“나는 괜찮다.”
그저 조금 가라앉은 음성으로 조용히 대답했을 뿐이다.
그것뿐만 아니라 아주 정상적인 질문을 던졌다.
“현재 군의 상황은 어떻지? 혹시 피해를 입은 건가?”
놀라웠다.
설마하니 디아로크가 병사들에게 관심을 가질 줄이야…….
그것도 말투를 보면 걱정하는 것 같지 않은가?
“단 한 명의 피해도 입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철군을 준비하며 그간 쌓인 피로를 푸는 중입니다.”
바스티안은 놀란 기색을 애써 감추며, 디아로크가 정신을 잃은 사이 벌어졌던 일들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흠…….”
모든 것을 들은 디아로크는 잠시 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 모습을 본 바스티안이 살짝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저 눈이 다시 떠졌을 때, 본래의 성격이 튀어나오진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우려는 이번에도 빗나갔다.
“그 용사를 불러와라. 한 번 만나봐야겠다.”
싸우자는 기색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조심스러운 태도가 느껴졌다.
그 의외의 모습에 바스티안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방심하진 않았다.
저것조차도 자신이 마음을 놓게 만들기 위한 작전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으셨습니다. 하실 말씀이 있다면 제게 해주십시오. 그대로 전해 드리겠습…….”
“데려와라.”
섬뜩한 기운이 디아로크의 눈동자를 스쳐 지나갔다.
같은 말을 또 반복하게 만든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렇지만 바스티안은 움직이지 않았다.
식은땀이 등뒤를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가만히 서서 디아로크를 쳐다봤다.
“불가합니다.”
일단은 거부해 보았다.
아무리 디아로크가 미친놈이라고는 해도, 레닌스탕 군의 총사령관이자 대귀족인 자신을 어찌하진 못하리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아-”
그러자 예상대로 디아로크는 마법을 날리는 대신, 곤란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지는 알겠는데, 그런 거 아니니까 불러와.”
그의 눈동자는 잔잔한 호수와 같았다.
항상 서려 있던 광기나 집착은 없었다.
그것만 봐도 디아로크가 현재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스티안은 고민했다.
정말로 서우진을 데려와도 되는 것일까?
지금은 얌전해도, 서우진을 보면 눈이 돌아버리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쳤기에,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부탁하지.”
디아로크가 ‘부탁’이라는 단어를 꺼냈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저렇게까지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말썽을 피우진 않을 듯했다.
그가 아는 디아로크는 자존심을 굽히는 걸 선택할 바엔, 차라리 깽판을 놓을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고맙군.”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아닙니다.”
바스티안은 속으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는 문을 나섰다.
서우진을 불러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몇 걸음 가지도 않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나를 좀 보재?”
서우진이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여긴 어떻게 오셨소?”
무려 왕국의 공작이 부상을 입어 치료를 하는 장소였다.
병사들을 물론이고, 기사들 역시 허가가 없다면 함부로 접근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디아로크를 저렇게 만든 장본인이 문밖에 서 있다니?
“괜히 소란이 일어날 것 같아서 몰래 들어왔다. 저 녀석이 깨어나면 나부터 찾을 것 같아서 미리 와봤는데, 괜찮지?”
서우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더 없이 사람 좋아 보이는 표정이었지만, 바스티안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렇군.”
애써 태연을 가장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오시오. 그대의 말대로 공작 각하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바스티안은 경계심을 끌어올리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침대에 누워 있던 디아로크가 몸을 일으킨 채,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 역시 서우진의 존재를 이미 느낀 듯했다.
“괜찮아 보이네.”
디아로크의 모습을 본 서우진의 첫 마디였다.
순간 그의 마력이 치솟아오르며 주변을 휘몰아쳤다.
“고, 공작 각하!”
깜짝 놀란 바스티안이 눈을 부릅뜨며 달려갔다.
‘젠장!’
역시 서우진을 만나게 해주는 것이 아니었다며 속으로 후회를 했다.
하지만 이내, 흉포하게 날뛰던 마력이 점차 진정되기 시작했다.
“후우-”
얼굴까지 붉어진 디아로크가 심호흡을 했다.
들끓어 오르는 분노와 마력을 진정시키는 것이 꽤나 힘에 부친 모양이었다.
“나는 괜찮다.”
디아로크는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바스티안을 진정시키곤, 서우진을 쳐다봤다.
“다시 보는군, 용사.”
“그러게.”
둘의 시선이 얽히며 왠지 불똥이 튀기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숨이 막히는 긴장감이 흘렀다.
그러다 문득 디아로크가 말했다.
“둘이 할 이야기가 있으니, 자리를 비워주도록.”
“…알겠습니다.”
바스티안이 입술을 깨물며 뒤로 물러섰다.
마음 같아서야 절대 불가를 외치고 싶었지만, 둘 사이에 흐르는 분위기가 크게 나쁘지 않았다.
묘한 불편함이 흐르긴 해도 적의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밖에 기사들을 대기시켜 놔야겠다는 생각을 한 바스티안이 문밖으로 빠져나갔다.
“몸은 좀 어때?”
둘만 남게 되자 기다렸다는 듯 서우진이 물었다.
“보다시피. 그리 좋진 않다.”
그럴 것이다.
작정하고 두들겨 팼으니까.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멀쩡히 회복하면, 그게 더 놀라운 일이었다.
“나를 찾은 이유는?”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
디아로크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진중한 표정으로 서우진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성왕 마르데타인이 사도였다는 건 사실인가?”
솔직히 말하자면 디아로크는 그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바스티안에게도 말했지만, 아이에르가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짜낸 기만술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서우진의 말과 행동을 보면, 자신의 생각이 조금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해.”
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확신에 가득찬 대답이었다.
“…확신이란 말을 너무 쉽게 하는군. 그가 사도였다는 증거가 있나?”
“내가 직접 죽였어.”
서우진의 대답에 디아로크가 눈을 부릅떴다.
“성왕의 탈을 쓰고 있던 마르데타인과 바론이란 짐승 같은 놈을 함께 벴지. 뭐, 아쉽게도 바론은 도무지 죽질 않아서 땅에 파묻고 왔다만.”
“바, 바론이라고?”
디아로크는 놀람을 넘어 경악했다.
마르데타인을 서우진이 죽였다는 것도 믿기 힘든데, 심지어 바론까지 처리했다니!
“믿을 수 없다!”
서우진은 강하다.
자신을 가지고 놀 듯 상대했고, 유다인조차도 도망을 치게 만든 장본인이었으니까.
하지만 바론은 이야기가 다르다.
놈은 제노니아, 아르데토스와 함께 사도들 중에서도 특별한 존재였으니까.
“믿기 싫으면 관둬. 그렇다고 해서 사실이 바뀌지는 않으니까.”
디아로크의 강한 반발에도 서우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날 찾은 이유는 그게 다야?”
너무도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 오히려 더욱 신빙성을 느끼게 해주었다.
“…신성왕국의 성왕이 사도였다는 게 사실이라…….”
디아로크는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가까스로 이성을 유지했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큰일이군.”
아이에르와 제국, 그리고 주변국들까지 말려든 거대한 사건이었다.
만약 서우진이 나서지 않았다면, 적어도 수만 단위의 희생자들이 나왔을 것이다.
어쩌면 아이에르라는 이름의 왕국은 지도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르고.
마왕의 추종자들이 그런 음모를 꾸미고 실행했다는 사실에, 디아로크는 더없이 신중해졌다.
‘어쩌면 우리 왕국에도…….’
의심이 든다.
무려 아이에르의 중추에도 사람을 심어놓을 정도로 공을 들인 놈들이다.
신성력이 마기와는 상극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해낸 것이다.
아이에르에 비하면, 다른 왕국은 훨씬 난이도가 낮을 것이다.
디아로크는 레닌스탕에도 마왕의 추종자, 혹은 사도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들기 시작했다.
“불안하지?”
서우진이 물었다.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마왕의 추종자라는 놈들. 똑똑하긴 해. 이렇게 계획이 틀어진 상태에서도, 남아 있는 수가 있거든.”
불신.
누가 마왕의 추종자인지 알 수가 없으니,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국가와 국가, 사람과 사람.
그 사이에서 조금씩 크기를 키워가는 의심암귀는 결국 분열을 가져올 게 분명했다.
서우진의 말을 이해한 디아로크의 표정이 굳어졌다.
평소에는 미친놈처럼 불에 집착을 하고 제멋대로 행동하긴 하지만, 그는 절대 멍청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누구보다 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마법사로써 초극의 경지에 들지 못했을 테니까.
뛰어난 그의 두뇌는 앞으로 펼쳐질 상황을 예측했다.
그것은 그리 아름답지 않은 결과였다.
“큰일이군.”
딱딱하게 굳어진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서우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제 너희도 돌아가서 내실을 먼저 다지는 걸 추천하지. 레닌스탕이라고 아이에르와 같은 꼴을 당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