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92)
291화.
종전(終戰).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대륙의 운명을 크게 뒤흔들 뻔했던 전쟁이 종식됐다.
모든 왕국의 위정자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도 이 시국에 벌어진 전쟁은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세 왕국의 모든 병력이 철수한 이후에도 아이에르의 백성들은 신음했다.
그 짧은 전쟁의 기간 동안 너무도 많은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것은 주변국들에 의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이 점령한 도시를 구휼하고, 도와주었으니까.
백성들을 수탈하고 쥐어짠 것은 바로 그들이 믿고 따르던 성왕이었다.
비록 그가 사도였고, 처단되었다는 성지가 내려오긴 했으나, 해결된 건 하나도 없었다.
여전히 평범한 이들은 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으니까.
“흠…….”
총교단을 향해 돌아가던 서우진이 얼굴을 구겼다.
중간에 들른 작은 소도시의 광경이 너무 암울했던 것이다.
직접적인 전쟁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는 곳이었음에도 그랬다.
“상황이 그리 좋아 보이진 않는군.”
옆에서 이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디아로크였다.
“누가 전쟁만 일으키지 않았어도 이렇진 않았겠지.”
서우진이 그를 비꼬았다.
하지만 디아로크는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았다.
“그래, 전부 성왕의 잘못이지. 아니, 사도인가?”
실제로 이 사태를 자초한 건 마르데타인이었다.
만약 레닌스탕이 먼저 전쟁을 벌였다고 해도, 디아로크는 미안함 따윈 전혀 느끼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쩝.”
서우진은 입맛을 다시며 머리를 긁적였다.
굳이 저런 미친놈이랑 말다툼하느라 심력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서우진이 입을 다물고 이동하는 데 집중하자, 디아로크 역시 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아, 내가 왜 이놈이랑 같이 가야 하는 거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레닌스탕 군을 철수시키는 것에 성공한 뒤, 서우진은 마음 편히 총교단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아이에르의 보고에 잠들어 있는 보물들을 챙길 생각에 기대감 가득한 표정으로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디아로크가 함께 가야겠다며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당연히 서우진은 거절했다.
함께 이동할 정도로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저 미친놈이랑 같이 돌아다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고 받아들인단 말인가?
하지만 디아로크는 막무가내였다.
심지어는 함께 가지 않는다면, 철군을 하지 않겠다는 말 같지도 않은 협박까지 했다.
결국 서우진은 동행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괜한 일을 벌인다면 가차 없이 반쯤 죽여놔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다행히 지금까진 별문제를 일으키진 않았는데…….’
디아로크는 자신의 광기를 억지로 짓누르고 있는 것인지, 평범한 행색으로 서우진의 뒤를 따랐다.
물론 방금처럼 비아냥거리는 등의 시비를 걸기는 했지만, 결코 선을 넘진 않았던 것이다.
덕분에 아쉽게도 서우진은 디아로크를 팰 수가 없었다.
찝찝한 마음으로 소도시를 가로질렀다.
그런데 그때였다.
“음?”
디아로크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신성기사다.”
이런 작은 도시에 주둔하기엔 지나치게 많은 수의 신성기사가 느껴졌다.
서우진 역시 그쪽을 바라봤다.
‘50명 쯤 되나?’
그중엔 상급에 달하는 기사가 다섯 명이나 있었다.
이 정도면 웬만한 기사단을 능가할 정도로 강한 전력이었다.
“멈추십시오!”
두 사람이 바라보고 있자, 신성기사 중 한 명이 그들을 발견하곤 다급히 소리쳤다.
‘무슨 일이지?’
설마 또 무슨 일이 벌어진 건 아닌지 불안해졌다.
걸음을 멈추자, 신성기사들이 빠르게 다가왔다.
“실례 좀 하겠습니다. 저는 제3신성기사단 소속의 사이론이라고 합니다.”
다섯 명의 상급 기사 중 가장 강력한 신성력을 품고 있는 자였다.
“…무슨 일입니까?”
서우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혹시 이 사람을 본 적 있으십니까?”
그가 손에 든 종이를 펼쳐 보였다.
거기엔 웬 여인 한 명이 그려져 있었다.
‘몽타주?’
김다혜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꽤나 잘 그려져 있는 그림이었다.
“무슨 현상수배범인가?”
디아로크는 코웃음을 치며 종이를 받아 들어 살펴봤다.
왠지 심심했는데 잘됐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서우진은 괜한 일에 말려들지 않길 바라며 대충 그림을 살펴보는 척했다.
그런데…….
‘낯이 익은데?’
그림 속의 여인은 서우진의 기억 속에 있는 얼굴이었다.
‘누구였지?’
잘 떠오르지가 않았다.
본 지 오래된 사람인 것 같았다.
“본 적 있으신 겁니까?”
서우진의 표정을 확인한 사이론이 다급히 물었다.
“글쎄요…….”
기억이 날 듯, 말 듯했다.
‘이름이라도 알면 떠오를 것 같은데.’
서우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사이론에게 여자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그리고 대답을 들은 서우진은 여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루페라 추기경입니다. 현재 중죄를 짓고 도망을 치는 범죄자이기도 하죠.”
“아!”
솔직히 이름은 몰랐다.
하지만 추기경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바로 떠올랐다.
아카데미에서 필로얀이라는 주교와 함께 성유라를 찾아왔던 바로 그 여자였다.
‘분명 마르데타인과 비슷한 기운을 품고 있었어.’
어딘지 모르게 뒤틀린 듯한 신성력.
딱히 신경쓸 정도로 대단치 않았기에 잊고 있었는데…….
“보신 적이 있습니까?”
서우진의 모습에 신성기사들이 기세를 끌어올렸다.
“이 여자도 마왕의 추종자인 겁니까?”
마르데타인과 같은 종류의 신성력을 지니고 있었으니 확실할 것이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차차창-!
신성기사들이 검을 뽑아 들며 서우진과 디아로크를 겨누었다.
‘이거 아무래도 심상찮은 일을 벌인 것 같은데?’
마르데타인이 죽자, 남아 있던 루페라라는 추종자가 뭔가 큰 죄를 저지르고 도망을 친 듯했다.
“재미있군.”
옆에서 쿡쿡- 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지난 며칠간 잠잠했던 광기가 가득 들어차 있는 음성이었다.
‘쯧.’
이대로 뒀다간 괜한 신성기사들이 다칠 것 같아, 서우진이 먼저 나서 오해를 풀었다.
“프레이야님의 명령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던 자유기사입니다. 검을 거두시죠.”
용사라는 사실은 숨겼다.
괜히 소문이 나서 좋을 게 없었으니까.
“프레이야 경?”
다행히 프레이야의 이름은 잘 먹혔다.
본래부터도 아이에르의 영웅이었는데, 이번에 성왕으로 위장한 사도를 처단했단 소문이 퍼지며 그 위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드높아졌다.
심지어는 같은 신성기사였으니, 프레이야를 향한 그들의 존경심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에 대한 증명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사이론이 물었다.
하지만 추궁하는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이전보다도 더욱 정중해진 모습이었다.
“아쉽게도 없습니다만……. 총교단에 도착하면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사이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우진의 담담한 대답이 신뢰를 준 모양이었다.
“그럼 이분은?”
옆에서 기묘한 표정을 짓고 있던 디아로크를 가리키며 묻는다.
“죄수입니다. 자세한 건 말씀드릴 순 없지만, 그분의 명령에 따라 총교단으로 이송하는 중이죠.”
거짓말이 아주 술술 나왔다.
만약 죄수라는 말에 디아로크가 발작하면 그 핑계로 좀 패려고 했는데, 그는 의외로 잠잠했다.
“그렇군요.”
사이론은 아무런 포박도 되지 않은 디아로크를 잠시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루페라는 총교단에서 절대 유출되지 말아야 할 것을 훔쳐 달아났습니다. 그래서 전 신성기사단이 그녀를 쫓고 있는 중입니다.”
‘유출되지 말아야 할 것?’
무슨 보물이라도 되나 싶었다.
하지만 모든 신성기사가 다 나서서 추적하고 있는 걸 보면, 엄청난 가치를 지닌 물건인 것 같았다.
“그게 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제 임무와 연관이 되어 있을 수도 있어서…….”
쉽게 대답을 해주진 않을 듯해, 일부러 거짓을 섞어 물었다.
그러자 사이론이 살짝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꽤나 민감한 사안인 듯했다.
“곤란하시면 대답해 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아닙니다.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으니, 말씀드리죠.”
서우진의 사양에 사이론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해 주었다.
“신성기사와 병사 수십 명을 살해한 뒤, 중요한 물건을 훔쳐 달아났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사이론이, 누가 들을 새라 음성을 낮추고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것은 바론의 사체입니다.”
서우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이런, X발.”
옆에 있던 디아로크도 욕설을 내뱉었다.
“분명 죽였다고 하지 않았나?”
마력과 함께 광기가 휘몰아친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깜짝 놀란 신성기사들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뭐, 뭡니까!”
느슨해졌던 경계심이 극도로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 모습에 서우진은 한숨을 내쉬며 디아로크를 노려봤다.
“기운 거둬, 뒤지게 맞고 싶지 않으면.”
차가운 음성.
일말의 기운도 섞이지 않은 말이었지만, 순식간에 주변의 온도가 1도는 떨어진 것처럼 서늘해졌다.
옆에서 사이론을 비롯한 신성기사들이 자신을 향해 뭐라 소리치는 것이 들렸지만, 무시했다.
그저 디아로크를 노려보고만 있을 뿐.
“…쯧.”
서우진의 말이 결코 허세가 아님을 알고 있던 놈은, 천천히 마력을 거둬들였다.
여전히 광기에 찬 표정이었지만, 더는 경거망동하진 않을 듯했다.
“잘 생각해 봐. 내가 죽인 건 마르데타인이야. 바론은 죽질 않아서 땅에 묻어뒀다고 얘기했을 텐데?”
서우진이 말하자 디아로크는 가만히 기억을 떠올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확실히 서우진은 그렇게 말을 했었다.
남아 있던 광기마저 가라앉았다.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서우진은 그딴 것에 신경쓸 정신이 없었다.
‘바론.’
놈의 사체를 훔쳐 달아났다.
그 말은 곧, 아니, 이미 바론이 부활했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이거 곤란한데.”
그 죽지도 않는 짐승 같은 놈이 살아난다면, 반드시 자신을 찾아올 것이다.
복수를 위해서.
‘그리고 그땐 지난번처럼 쉽게 상대할 수 없겠지.’
바론이 바보가 아닌 이상, 혼자서 덤벼올 리가 없었다.
적어도 마르데타인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강자와 합공하거나, 자신을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오겠지.
어떤 방법을 쓰든 서우진에게는 그리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대답하십시오!”
상념을 뚫고 사이론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는 타는 듯한 오러까지 뿜어내며 서우진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온다.
기껏 속여놨더니, 디아로크 때문에 산통이 다 깨졌다.
짜증을 담아 놈을 한 번 노려본 서우진이 사이론을 향해 입을 열었다.
“검을 거두세요, 사이론 경. 저는 당신들의 적이 아닙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서우진의 한 마디로 그가 경계심을 푸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나?’
적도 아닌 이들과 괜히 힘을 빼가며 싸울 이유도 없었으니, 결국 서우진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기로 했다.
“예상하셨겠지만, 저는 프레이야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자유기사가 아닙니다.”
“…정체를 밝혀라.”
서우진에게 적의가 없어 보이자, 사이론이 조금은 진정된 듯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리고 서우진은 대답했다.
“제 이름은 서우진. 용사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