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93)
292화.
사이론은 입을 열지 못했다.
용사.
처음엔 그 단어의 뜻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서우진의 말을 이해한 사이론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것은 다른 신성기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용사!”
“왜, 왜 용사가 여기에?”
전혀 예상치 못한 때에,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마주쳐서일까?
그들의 표정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가만, 서우진이라면…….”
문득 신성기사들 중 한 명이 미간을 찌푸렸다.
서우진이라는 이름이 너무도 낯이 익었기 때문이었다.
그럴 수밖에!
“‘성녀’ 살해자다.”
아이에르에게 서우진의 이름은 성유라만큼 유명했으니 말이다.
사이론은 놀란 표정을 수습하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뭐,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했지.’
서우진이 자신의 정체를 숨긴 이유들 중 하나였다.
이렇게 이름을 말한 이상, 더는 호의적인 대접을 받는 게 불가능할 것이다.
실제로 신성기사들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달려들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 시선 속에 섞여 있는 감정은 분명 ‘적의’였다.
서우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저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분쟁을 피하기 위해선 불가피하게 정체를 밝혔어야만 했다.
‘이놈만 아니었다면 별일 없이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서우진은 옆에서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디아로크를 흘깃- 노려본 뒤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자유기사라는 건 거짓말이었지만, 프레이야님의 부탁을 받아 움직이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명령이 아닌, 부탁.
그렇게 말을 바꾸는 것으로, 저들을 압박했다.
프레이야가 직접 부탁할 정도로 중요한 일을 처리하는 중이니,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사이론은 그 말뜻을 정확히 알아들었다.
“검을 거두어라.”
그가 살짝 입술을 깨물곤 부하들을 향해 명령했다.
신성기사들이 잠시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명령에 불복종할 순 없었기에 서우진을 겨누고 있던 검을 회수했다.
‘쩝.’
그 모습을 본 서우진이 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자신이 아이에르를 구하려고 얼마나 애를 썼던가.
기만자 마르데타인도 죽였고, 바론도 산산이 조각내 묻어두었다.
물론 그건 헛수고로 돌아가긴 했지만 말이다.
‘거기에 레닌스탕 군도 막아줬건만…….’
솔직히 서우진이 아니었다면, 아이에르는 멸망의 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딱히 대가를 바라고 움직인 건 아니긴 한데.’
굳이 바라는 게 있다면, 강림 전쟁에서 아이에르가 제 역할을 다해주는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자신을 적대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니 조금 섭섭하긴 했다.
‘뭐, 어쩔 수 없나?’
성유라를 죽인 대가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서우진은 상념을 털어내고는 사이론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좀 알고 싶은데요.”
지금 중요한 건 저들의 태도 따위가 아니었다.
바론의 사체.
그것을 회수해서 제대로 봉인을 해두어야만 했다.
…가능하다면 말이다.
* * *
“아저씨, 아저씨, 아저씨.”
이지아가 구동환을 부른다.
“왜, 왜, 왜?”
오늘도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구동환은 영혼 없이 대꾸했다.
“오늘로 며칠째죠?”
주어가 없는 질문이었지만, 무엇을 묻는지는 알고 있었다.
지난 며칠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계속 똑같은 것을 물어보았으니까.
“13일째다.”
구동환이 대답하자, 이지아가 제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아니, 벌써 13일이나 됐어요?”
그 모습에 구동환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는 ‘아니, 벌써 12일이나 됐어요?’ 하면서 펄쩍 뛰었으니까.
‘그 전날에도 그랬고.’
아무리 봐도 서우진이 돌아올 때까지는 계속 저럴 작정인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지. 함부로 약속을 어길 사람은 아니니까.”
“아니, 그래도! 일주일 후에 돌아온다고 약속했는데, 벌써 2주가 다 되어가거든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으면 소식이라도 전해줘야 하는 거 아닐까요? 기다리는 사람 걱정하지 않게?”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하지만 구동환은 해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대화 역시 몇 번이나 반복한 덕분이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소울리스, 그 자체인 태도에 이지아가 눈을 가늘게 뜨며 구동환을 노려봤다.
“지아야, 그만해. 동환 씨 힘들겠다.”
잔소리 폭격이 터져 나오기 직전.
뒤에서 계수지가 그런 이지아를 만류했다.
“아니, 언니! 생각을 해보세요. 이 정도로 소식도 없이 돌아오지 않는 걸 보면,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하다니까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도 있어. 우진 씨가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면, 연락이 없을 리가 없지.”
계수지는 웃으며 이지아의 말을 되받아쳤다.
그녀는 이 조그마한 동생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걱정되니까 찾으러 가면 안 될…….”
“응, 안 돼.”
포기도 하지 않는다.
정확히 약속한 일주일이 지나자마자 서우진을 찾으러 가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훈련해야지. 만약 우진 씨가 돌아왔을 때, 너 혼자 다른 사람들에게 뒤쳐져 있으면 어떡할래? 많이 실망하시지 않을까?”
“늦게 온 아저씨 잘못이에요!”
몇 번이나 써먹은 탓일까?
지금까진 잘 먹혀왔던 말이, 이번에는 통하질 않았다.
“언니이, 진짜 걱정돼서 그래요.”
자신의 팔에 매달리는 이지아를 본 계수지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닌데.’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 역시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서우진의 실력을 믿지만, 이번엔 무려 전쟁을 막기 위해 떠난 것이었으니까.
아무리 강하다 한들, 개인의 힘으로 전쟁을 막는 게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우진 씨라면 어련히 알아서 잘하고 있겠지만…….’
계수지는 이지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그래, 네 맘도 잘 알겠으니까, 방법을 한번 알아보자.”
자신들이 매시브 가디언을 벗어나 아이에르까지 갈 순 없었다.
성장을 위한 훈련에 매진해야 할 때였으니까.
하지만 서우진의 소식을 알아봐 줄 사람을 구하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계수지는 한번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일단 오늘은 훈련에 집중하자. 어르신께서 나오실 시간이야.”
“아, 버, 벌써요?”
이지아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연무장 한쪽 구석에서 몸을 풀고 있던 이들은, 계수지의 말을 듣곤 마른침을 삼켰다.
“우리가 우진이 걱정을 할 때가 아니긴 하지.”
“맞아요. 누가 누굴 걱정해…….”
강병규가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유홍설이 맞장구를 쳤다.
서우진이 무슨 상황에 처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자신들 역시 꽤나 힘든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반 슬레인과의 훈련시간.
지난 십여 일간, 그들은 이러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꼈다.
“자르반 평원에서 에이션트 오크들과 싸울 때도 이렇게 무섭진 않았는데.”
전투가 아닌, 단순히 훈련을 하며 이런 공포를 느낀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그만큼 반 슬레인의 교육 방법은 가혹할 정도였다.
“그래도 효과는 확실하잖아요.”
유홍설의 말에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다.
힘든 만큼 그들의 실력을 그야말로 일취월장하고 있었으니까.
“레벨을 올리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강해질 수 있다는 게 신기하네요.”
레벨보단 본신의 실력을 끌어올리는 것에 중점을 둔 반 슬레인의 훈련은 경이로웠다.
“이런 훈련을 1년이나 받았으니, 우진이가 강할 수밖에 없지.”
서우진이 가진 ‘마왕’이라는 직업의 특성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반 슬레인의 훈련이 엄청난 도움을 줬다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아니, 이걸 1년 동안 하면서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더 신기한데.”
근육을 풀어주던 구동환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피지컬로만 따지면 그 누구보다 뛰어난 그도 매일이 지옥 같았다.
이걸 1년이나 지속한 서우진에게 존경심이 생길 정도였다.
“잡담은 여기까지만 하고, 슬슬 준비하죠?”
반 슬레인이 연무장에 모습을 드러낼 시간이었다.
괜히 풀어진 모습을 보였다가 훈련의 강도가 세지기라도 하면 곤란했다.
계수지의 말을 알아들은 용사들이 입을 꽉- 다물고 몸을 예열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리고 잠시 후,
“좋은 아침일세.”
반 슬레인이 연무장 안으로 들어오며 인사를 건넸다.
모두의 몸이 굳어졌다.
음성만 들어도 긴장감이 밀려든 탓이었다.
“다들 어제는 잘 못 쉰 것 같은 표정이군.”
“하하…….”
다들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쉴 시간이나 제대로 주고 묻지.’
어제 훈련이 끝난 시간이 새벽 3시였다.
지금이 오전 6시이니, 잠을 세 시간도 채 자지 못한 것이다.
만약 육체 능력이 인간을 초월한 용사가 아니었다면, 절대 가능할 리가 없는 강행군이었다.
하지만 절대 티를 낼 순 없었다.
피곤하다는 내색을 하면, 체력이 부족하다며 더 힘든 하루가 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좋아, 오늘도 열심히 하세나.”
반 슬레인이 만족스러워 하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문득 뭔가 생각났다는 듯 ‘아차!’ 하며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 그대들이 기다리던 소식이 왔다네.”
“소식이요?”
이지아의 눈이 반짝였다.
그들이 궁금해하던 거라면, 단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서우진, 그 아이에 대한 것이네.”
예상대로 반 슬레인이 말한 소식은 서우진의 것이었다.
“아저씨는 괜찮은가요? 왜 안 오고 있대요? 언제쯤 오는지도 알 수 있어요?”
질문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그 모습에 반 슬레인이 귀엽다는 듯 허허-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괜찮다더군. 아이에르에서 일이 좀 생겨 돌아오는 게 좀 늦어지는 모양일세.”
“무슨 일인가요? 혹시 위험한 건 아니죠?”
모두가 궁금해하던 것이었다.
“위험하다면 위험한 일인데……. 뭐, 잘 처리했다 하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네.”
반 슬레인의 말에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서우진이라면 세상에 무너져도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도 무사하다는 소식을 들으니 안심이 되었다.
“조만간 돌아온다는 소식도 전해왔네. 좋은 선물을 들고 갈 테니. 기대해도 좋다는군.”
선물?
대체 뭘 가져올 생각이기에 기대하라는 말까지 했을까?
“언제? 언제 온대요?”
이지아가 손을 번쩍- 들며 다시 질문했다.
“흠, 보자…….”
반 슬레인은 잠깐 계산을 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늦어도 사흘 내로는 오겠군. 좀 서두른다면 더 일찍 올 수도 있고.”
희소식이었다.
서우진을 못 본 지 겨우 2주 정도밖에 되지 않았건만, 너무 오래된 느낌이었다.
그만큼 그들이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왔다는 의미였다.
“그 아이가 돌아오기 전까지, 최대한 성장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반 슬레인이 웃으며 말하자, 주변의 공기가 차갑게 내려앉는 듯했다.
“그러니 오늘부턴 훈련의 강도를 좀 더 올리는 건 어떠한가?”
용사들의 표정이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