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304)
304화.
해가 지고, 한참 뒤에서야 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실낱같은 얇은 그믐달이었다.
새벽녘 아주 잠깐 자신의 존재감을 풍기던 달은, 이내 잔뜩 낀 구름 사이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두 존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열두 개의 머리와 열두 개의 날개를 지닌 순백의 드래곤과 전신에서 불길한 마기를 뿜어대고 있는 인간.
크라토스와 백시우였다.
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천천히 설원을 가로질러 드넓게 펼쳐진 초원에 들어섰다.
“얼마나 남았지?”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백시우가 물었다.
[거의 도착했다.]“그래?”
크라토스의 대답에 백시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말이지.”
오직 초원만 펼쳐져 있을 뿐이다.
생명의 기운이라곤 간간이 느껴지는 야생동물 몇 마리가 전부였다.
아무리 둘러봐도, 이곳엔 백시우가 ‘사냥’할 만한 놈이 없는 듯했다.
[너 따위가 인지할 수 있는 차원의 존재가 아니다.]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말투에 백시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반박할 순 없었다.
크라토스의 말이 옳았으니까.
[전방 3백 미터 앞이다. 그곳에 네가 사냥을 해야 할 놈이 있다.]“…그래?”
친절하게 정확히 위치까지 가르쳐 줬음에도, 백시우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쯧.’
자존심이 상했다.
지구에선 자신이 가장 뛰어났다.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그 누구보다 재능이 있었고, 항상 빛이 났었다.
덕분에 모두가 자신을 부러워했고, 질투했으며, 경외했다.
그런데 여기선 아니다.
자신을 능가하는 존재가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았다.
굳이 서우진을 끌고 올 필요도 없었다.
눈앞의 크라토스도 자신 따위는 발가락 하나로 눌러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대한 존재였으니까.
지금 사냥하러 온 놈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가까이에 접근했음에도 아무런 기척도 느낄 수가 없었다.
크라토스의 말대로 놈은 자신보다 한 차원 높은 격의 소유자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굴욕은 여기까지다.’
백시우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오늘 놈을 죽이고, 왕의 격을 얻고 말 것이다.’
그 후, 크라토스와 마왕의 추종자들이 돕는다면 그 빌어먹을 서우진을 뛰어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 터.
지금까지 깎인 자존감과 자존심은 그때 회복할 생각이었다.
“서두르지.”
괜히 조급해지는 마음에 크라토스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멈추는 것이 좋을 것이다.]그런데 크라토스가 그런 백시우의 움직임을 막아섰다.
“…왜지?”
왠지 심상찮은 놈의 음성에, 백시우는 제자리에 멈춰 섰다.
[잠시만 기다려라. 아직은 적당한 때가 아니다.]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대체 그놈의 때가 정확히 언제인지 모르겠군.”
사자도 그랬고, 크라토스도 마찬가지다.
항상 백시우에게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다며 기다리라고만 했다.
덕분에 그 말이 진절머리가 날 정도였다.
“일분일초가 아까운 시간에 언제까지 기다려야 한단 말이냐.”
살기가 가득 담긴 음성에 크라토스가 입을 열었다.
[달이 완전히 지고, 새로운 태양이 뜰 때. 놈이 가장 쇠약해지는 시간이다. 우린 그때를 노려야만 한다.]크라토스의 음성은 단호했다.
“굳이 그래야 할 이유는? 너와 내가 함께 공격을 한다면, 그 누구라도 견뎌내기 힘들 텐데?”
백시우의 의문은 일리가 있었다.
둘의 합공을 견뎌낼 수 있는 존재는, 이 세계를 통틀어 다섯도 채 되지 않을 게 분명했으니까.
하지만 크라토스는 고개를 저었다.
[놈은 강하다.]그 한마디로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
“…설마 우리 둘이 덤벼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란 말인가?”
백시우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크라토스는 초월적인 존재에 가까웠다.
비록 서우진에게 패배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의 강함을 과소평가할 순 없었다.
적어도 지금의 백시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자임이 틀림없었으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크라토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결코 상대할 수 없다. 오직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시간에만, 놈을 상대할 수 있으리라.]놀라운 말이었다.
“대체 어떤 존재이기에 네가 이토록 몸을 사리는 거지?”
백시우가 물었다.
그러자 크라토스는 열두 개의 머리로 하늘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최초의 마수, ‘알로 페쿠스’다.]* * *
‘이거 또 시작이네.’
서우진은 이전에 몇 번이고 느껴보았던 낯익은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불안감이었다.
‘이럴 땐 꼭 안 좋은 일이 벌어졌는데 말이지.’
‘신룡안’을 최대 영역으로 펼쳐 이 근방을 샅샅이 뒤져 보았다.
하지만 몬스터 몇 마리가 배회하는 것을 제외하면, 딱히 감지되는 것은 없었다.
‘아무래도 꽤 먼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인데.’
당장은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았지만, 왠지 찝찝해졌다.
“무슨 일이 있소?”
그때, 옆에 있던 오이언이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서우진은 고개를 저으며 별일 아니라는 듯 대꾸했다.
하지만 그는 뭔가 미심쩍다는 기색을 지우지 못했다.
그만큼 서우진의 표정이 심상찮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물어본다고 해도 대답을 해줄 것 같지도 않았으니까.
“그보다, 기대가 되겠네?”
서우진이 씨익- 웃으면서 묻자, 오이언이 작게 끄덕였다.
“프레이야 경을 다시 뵐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요.”
오늘 아침, 매시브 가디언에서 전령이 도착했다.
긴급 지원을 요청하러 갔던 기사가 늦지 않게 도착했는지, 당장 반 슬레인이 지원 병력을 이끌고 출발했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전령은 잠도 자지 못한 채 급히 달려왔건만, 이미 상황이 종료된 것을 보곤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그래도 큰 피해가 없어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다른 소식들도 전해왔다.
바로 프레이야가 매시브 가디언에 도착해, 지원군과 함께 이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알렉스에게 소식을 전해달라 부탁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도착하다니.’
서우진이 놀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그만큼 급했던 거겠지.’
프레이야의 수명은 얼마 남지 않았다.
본래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덤덤히 받아들일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엉망진창이 된 아이에르를 보고 도무지 쉽게 눈을 감을 수가 없었을 테니까.
그랬기에 육체의 재구성을 이룰 수 있다는 말에 지체하지 않고 곧장 매시브 가디언으로 온 것일 테고.
“아무래도 고위급 사제들의 도움이 있었던 모양이오, 이토록 빨리 오신 것을 보면.”
프레이야가 아무리 초극의 경지에 이른 존재라 해도, 그 육체는 한없이 나약해진 상태였다.
전성기 때라면 모를까, 지금은 절대 불가능한 속도였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오이언은, 그녀가 사제들의 축복을 받으며 이동했을 것이라 추측했다.
“뭐, 다행이네,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어서.”
어떤 방법을 썼든 서우진은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그녀가 죽기 전, 육체를 재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만약 프레이야님이 젊음을 되찾는다면…….”
서우진은 그녀가 얼마나 강해질지 상상을 해보았다.
긴 세월 동안 쌓아온 마력과 경험.
그리고 깨달음까지.
“영주님도 긴장을 좀 하셔야겠군.”
마공 마르테스까진 아니더라도, 반 슬레인과 엇비슷한 실력은 될 것 같았다.
그녀가 가진 힘의 정순함은 그 정도로 뛰어났다.
“그런데, 괜찮겠소?”
오이언이 이번엔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뭐가?”
“그 방법이라는 것 말이오.”
서우진은 그에게 육체를 재구성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 혼자 시도할 것이라는 사실도.
그러니 오이언으로선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왜? 나 혼자는 부족할 것 같아?”
“그럴 리가.”
서우진이 웃으며 말하자, 오이언이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나선다면,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겠지. 내가 걱정하는 건 프레이야 경이오.”
그는 서우진의 진짜 힘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존재들 중 한 명이었다.
‘검은 존재’가 보여주었던 힘의 절반만 사용해도 차고 넘칠 게 분명했다.
그가 걱정하는 건, 서우진의 능력부족이 아니었다.
“그분의 육체는 너무 나약해졌을 것이오. 그런 상태에서 당신의 힘을 견뎌낼 수 있을지…….”
금이 간 그릇은 물을 담지 못하는 법이다.
만약 프레이야의 육체가 서우진의 힘을 견뎌내지 못하고 깨진다면?
그것은 곧 그녀의 죽음을 의미했다.
“글쎄, 그건 한번 해봐야 알 것 같은데.”
그 부분에 대해선 서우진도 확신할 수 없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진행하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부담도 없을 순 없었다.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나으니까.”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프레이야는 죽는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진리다.
그렇다면 위험 부담을 안고서라도 시도해 볼만 한 일 아닌가?
‘뭐, 생각해 둔 게 있기도 하고.’
반 슬레인에게 방법을 듣자마자 떠올린 것이었다.
그것이 있는 한, 웬만해선 실패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긴 하오.”
오이언은 무거운 표정으로 서우진의 말에 동의했다.
그러곤 진지한 음색으로 물었다.
“그럼 내가 할 일은 무엇이오?”
“주변의 경계.”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 누구도 우리의 근처에 접근할 수 없도록 막아.”
“혹시…….”
오이언 설마? 하며 운을 떼자, 서우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생각이 맞을 거다.”
서우진의 대답에 오이언은 몸을 잘게 떨었다.
“그러니까 아무도 접근을 시켜선 안 돼.”
“나 혼자서 모든 시선을 막는 것은 무리요.”
주변에는 2만 명이 넘는 병력이 있다.
심지어 프레이야는 매시브 가디언의 지원군과 더불어, 아이에르에서 온 일행과 함께 동행하고 있을 터.
혼자서 그 많은 사람의 눈과 귀를 통제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걱정하지 마라. 내 동료들도 도울 테니까.”
서우진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런 중요한 일을 한 명에게만 맡길 순 없지.”
서우진이 가장 신뢰하는 이는 동료들이었다.
비록 아직은 자신의 진정한 정체를 알진 못하지만, 훗날 밝혀진다 해도 신경쓰지 않을 정도의 신뢰 관계를 구축했다.
그들이라면 서우진의 부탁을 아무런 의문도 표하지 않고 들어줄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과 함께 주변의 경계를 부탁하지.”
총 열 명이라면,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을 것이다.
반 슬레인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건 내가 어떻게든 해야지.’
“알겠소. 부탁을 들어주겠소.”
오이언은 잠깐의 고민 끝에, 결국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서우진의 힘이 두렵기도 했지만, 프레이야가 젊음을 되찾는 일은 그로써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좋아. 그럼 오늘은 일단 좀 쉬자고. 시간도 늦었으니.”
서로 깊은 대화를 나눌 사이도 아니었고, 해야 할 이야기는 모두 끝냈다.
이제 남은 건 내일 있을 일에 대비해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었다.
“그러시오.”
서우진은 오이언에게 대충 손짓으로 인사를 하고는 몸을 돌려 헤어졌다.
그런 그의 머리 위로, 잠깐 모습을 보였던 그믐달이 서서히 자신의 흔적을 지워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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