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317)
317화.
잊힌 골짜기.
이 협곡에 그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곳이거든요.”
아샨타가 협곡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유가 뭡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궁금하진 않았다.
하지만 설명하고 싶어 근질근질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샨타의 얼굴을 보니, 그냥 무시할 수가 없었다.
“이 협곡은 4차 강림 전쟁의 여파로 생긴 장소예요.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이긴 한데, 마왕과 용사의 마지막 결전에서 생긴 흔적이라고 하죠.”
“으음.”
그러니까 여느 동네에서나 전해져 내려오는 옛날이야기의 판타지 버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협곡 안쪽에서 가끔 마기가 치솟아 오르는 현상이 목격돼요.”
“마기가?”
그건 좀 흥미로웠다.
“실제로 호기심에 이곳에 방문했다가 마기에 중독되어 사망한 이들이 존재해요. 오래된 기록을 찾을 것도 없이, 당장 2~3년 전에도 벌어진 일이죠.”
그렇다면 정말로 저 안에 마기를 뿜어내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덕분에 이 골짜기에 찾아오는 이들은 거의 없어요. 그래서 로스트 밸리라는 이름이 붙은 거고요.”
아샨타는 하고 싶은 말을 다했는지, 속이 시원한 표정을 지었다.
“흐음…….”
하지만 서우진은 그 반대였다.
그녀의 얘기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것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죽음의 숲이었나?’
마왕의 추종자들이 숨어 있던 곳.
서우진은 그곳에서 피에 미친 광대, 루운발리를 죽인 전적이 있었다.
‘익숙하네.’
왠지 모르게 죽음의 숲과 로스트 밸리의 분위기가 매우 흡사했다.
물론 거기와는 달리 거대한 마기의 장막 같은 건 없었지만…….
“정말로 루운발리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서우진의 조용한 혼잣말에 아샨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도 그렇게 판단하고 있어요.”
지금껏 정보 길드가 보여주었던 능력을 생각해 보면, 맞을 확률이 높았다.
“그걸 확인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지.”
서우진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디아로크와 아샨타가 따랐다.
로스트 밸리와 점점 가까워질수록 서우진은 확신할 수 있었다.
‘놈이 있다.’
마기의 행기가 풍겨왔기 때문이었다.
거리가 좁아지면 좁아질수록 그건 더욱 짙어졌다.
이 정도면 사도 급의 추종자, 정확히 말하자면 루운발리가 있는 게 확실한 듯했다.
“당신은 여기서 기다리는 게 좋겠네요.”
서우진이 말하자 아샨타는 표정을 굳히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저도 한 사람 몫은 충분히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까드득-
“전 그 빌어먹을 새끼의 면상을 꼭 봐야만 해요.”
이를 가는 소리와 함께, 분노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몰살을 당했다던 마을의 주민들을 떠올린 듯했다.
하지만 서우진은 허락해 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실력은 상급 기사에 근접한 수준.
약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만약 아샨타가 루운발리를 마주한다면, 놈의 마기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전신이 마비되고 말 것이다.
그만큼 사도의 마기는 강렬했으니까.
최소한 최상급 기사 정도가 되지 않으면, 저항은 꿈도 꾸지 못한다.
“혹시 마기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걱정할 필요 없어요.”
서우진의 마음을 눈치챈 것일까?
아샨타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며 말했다.
‘은패?’
낯이 익은 물건이었다.
“마기 저항 마법이 부여되어 있는 아이템이에요, 하늘탑에서 직접 제작한.”
“알고 있습니다.”
본 적이 있다.
크루시엘과 백은기사단이 저것을 지니고 죽음의 숲에 진입했으니까.
마법의 효과는 확실했다.
사자와 사도의 마기 앞에서도 충분히 운신할 수 있었으니까.
물론 그게 놈들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최소한 움직일 순 있지.’
서우진은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그걸 대체 어디서 난 겁니까?”
저 아이템은 아직 대량 생산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래서 특수한 임무를 하는 극히 소수의 인원만 지니고 있었다.
그런 물건을 갖고 있었으니, 서우진이 당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저희 길드 능력이 좀 뛰어나거든요.”
아샨타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하하…….”
다시 한번 느꼈다.
요한의 정보 길드는 정말로 감탄스러울 정도의 능력이 있었다.
“이게 있으니 저희도 따라가도 되겠죠?”
놀랍게도 은패는 아샨타만 갖고 있는 게 아니었다.
십여 명에 달하는 길드원들 역시 모두 소지하고 있는 듯했다.
“그럽시다, 그럼.”
결국 서우진은 더 반대할 명분을 찾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절대 함부로 나서진 마세요. 그 은패가 목숨까지 지켜주지는 못하니까.”
“그럴게요.”
아샨타에게 강력한 경고를 한 뒤에야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지독하군.”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디아로크가 문득 입을 열었다.
“뭐가?”
“마기 말이다. 이만한 마기는 오랜만에 느껴본다.”
“…그러게.”
서우진이 그 말에 동의했다.
‘사실 잘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마기는 서우진에게 아무런 불쾌감도 주지 못했다.
이 세계에 처음 왔을 때부터 오히려 편안한 느낌을 받았으니까.
혼돈기를 얻고 난 뒤엔 그게 더욱 강해졌다.
마기나 마력이나, 서우진에겐 그저 자연의 일부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사실을 곧이곧대로 말할 순 없었으니, 대충 맞장구를 칠 수밖에.
“저희는 괜찮으니까 신경 안 써주셔도 돼요.”
서우진이 돌아보자, 아샨타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아이템의 성능이 생각보다 더 좋은 모양이네요.”
“비싼 값을 하니 다행이죠.”
농담하는 것을 보니, 정말로 크게 영향을 받지는 않는 듯했다.
“그나저나 밖에서 보는 것하고는 달리 안쪽은 꽤 음산하네요. 마기 때문인가?”
그녀의 말대로 협곡 안쪽은 스산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었음에도 어둑하기까지 했다.
“단순히 빛이 들어오지 않아서라고 보기엔 너무…….”
“으응? 누구야?”
아샨타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할 때였다.
기괴하고 천진한 음성이 협곡 안을 울려 퍼졌다.
모든 말을 의문문으로 끝내는 특이한 말투.
서우진의 기억에 똑똑히 남아 있는 목소리였다.
‘루운발리.’
미치광이 광대 놈이 분명했다.
“누가 내 집에 왔어? 응? 누구야?”
목소리가 협곡에 메아리치며 사방에서 들려온 탓에, 놈의 위치를 찾을 수가 없었다.
‘쯧.’
서우진은 속으로 혀를 차고는 ‘신룡안’을 발동했다.
화아아아아악-!
혼돈기가 주변으로 널리 퍼져 나가며, 마치 레이더처럼 주변의 모든 정보를 받아들였다.
‘저기다.’
서우진의 시선이 한쪽을 향했다.
협곡의 구석.
다른 곳보다도 훨씬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곳이었다.
“나와라, 루운발리.”
“으응? 나를 알아?”
서우진의 말에 의문에 가득찬 음성과 함께 루운발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누구… 너! 너어? 서우진?”
은신을 깨고 나타난 놈이 서우진의 얼굴을 보곤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루운발리는 서우진에게 죽었으니까.
그것도 마치 벌레처럼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머리가 터져 나갔다.
죽음에서 살아 돌아왔다지만, 그때의 공포를 모두 지워냈을 리가 없었다.
실제로 루운발리는 서우진을 보곤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와, 왕…….”
“오랜만이네, 루운발리.”
놈의 입에서 왕이라는 말이 나오려 하자, 서우진이 급히 끊었다.
이곳에는 디아로크와 아샨티가 있었으니, 괜한 의심을 심어주는 일은 피하는 게 좋았다.
“흡! 아, 아무 말도 안 했어? 나 조용히 있었어?”
효과가 있는지, 루운발리는 재빨리 두 손을 휘저으며 변명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다른 이들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놈이 왠지 서우진을 두려워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서우진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너도 살아 돌아온 거냐?”
“응? 응! 맞아? 살았어? 왕께서 강림하셨으니까? 죽음은 그분 앞에서 아무런 의미도…….”
말하던 루운발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에?”
놈은 상황정리가 잘되지 않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 눈동자를 굴려댔다.
기괴하게 생긴 얼굴 때문에, 그 모습은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분명 왕은… 응? 이상해?”
루운발리는 ‘마왕화’를 한 서우진에게 죽었다.
덕분에 혼란스러운 듯했다.
놈은 서우진을 마왕이라 여긴 상태로 죽었으니까.
그런데 마왕의 강림으로 인해 되살아났으니, 지금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 수밖에 없었다.
‘일단 죽여야겠다.’
서우진은 그런 루운발리를 보며 ‘카 라니엘’을 뽑았다.
괜히 대화를 이어갔다가 ‘검은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건 막아야만 했으니까.
탓-!
‘신속’을 사용해 땅을 박찼다.
빛살과 같은 움직임으로 루운발리의 코앞까지 도달해, 그대로 검을 내리그었다.
쩌어어억-!
놈의 육체가 갈라졌다.
이전에는 ‘셀레스티얼 윙’을 사용하지 않고선 생채기조차 내지 못했던 방호력을 지닌 육체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달랐다.
고작 ‘신속’ 하나만을 사용했을 뿐이었지만, 마치 두부처럼 갈라졌다.
100레벨이 넘은 서우진의 검은, 그때와는 차원이 다른 힘을 품고 있었으니까.
“아아아악!”
갑작스러운 기습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루운발리가 뒤로 물러섰다.
“‘카 라니엘’?”
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고통도 고통이었지만, 이전에 당했던 기억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시간을 줘선 안 돼.’
서우진은 알고 있었다.
루운발리의 진짜 실력은 고작 이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때도 그랬다.
커다란 상처를 입은 뒤, 자신의 뼈를 갑주처럼 뒤집어쓰고 난 뒤에야 본신의 힘을 드러내지 않았던가?
놈이 변신하기 전에 죽여야만 했다.
하지만 조금 늦은 듯했다.
“안 돼애? 또 죽으면?”
루운발리의 눈동자에 광기가 서렸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마기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우드득- 으득-!
눈꼬리가 처지고, 입이 길게 찢어졌다.
갈라졌던 육체에서 뼈가 튀어나오며,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움직여 루운발리의 전신을 뒤덮기 시작했다.
후두둑-
몸속의 장기들이 땅에 떨어지는 모습이 그로테스크했다.
‘젠장.’
자신이 늦었다는 것을 깨달은 서우진이 ‘카 라니엘’을 휘둘렀다.
쩌어엉-!
하지만 놈의 뼈갑주는 단단해도 너무 단단했다.
무려 혼돈기가 깃든 ‘카 라니엘’의 참격을 정면으로 받아냈음에도, 아무런 자국도 남지 않았던 것이다.
“후우-”
숨소리와 함께 짙은 마기가 흘러나왔다.
눈 깜짝할 새 완전히 모습을 탈바꿈한 루운발리가 서우진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대화가 필요하겠군.”
정신이 나간 말투는 사라지고, 이성과 냉철함으로 가득찬 음성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너는 왕인가? 아니면 ‘혼돈’인가?”
광증이 사라지자, 제대로 된 사고가 가능해진 듯했다.
‘그때도 그랬었지.’
서우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저 상태의 루운발리는 지금의 자신으로써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만큼 강력했다.
실제로 서우진은 저 상태의 루운발리에게 머리가 밟혀 죽음을 맞이했었다.
덕분에 ‘마왕화’가 발동해 결국 전세를 역전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힘을 아낄 때는 아닌 것 같군.’
서우진은 혼돈기를 끌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한번 직접 알아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