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319)
319화.
검은 비가 내린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검은색의 뼛조각이 마치 크레모아가 터진 것처럼 쏟아져 나왔다.
서우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막아라.’
‘혼돈 세계’가 움직였다.
공간을 비틀고, 전후좌우의 개념을 바꿔 버렸다.
그리하면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놈의 공격은 결코 닿지 못할 것이다.
서우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눈을 부릅떴다.
“이런 젠장.”
루운발리의 뼛조각은 놀랍게도 서우진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왔다.
개념을 꿰뚫는 거대한 힘.
중력과 공간의 뒤틀림을 모두 무시한 뼛조각에 담긴 마기는, 서우진조차 정면으로 막아설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강력했다.
“피해!”
‘카 라니엘’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쩌저저저저정-!
뼛조각과 부딪힌 ‘카 라니엘’이 날카로운 소음을 터트렸다.
‘망할…….’
마기도 마기였지만, 애초에 뼛조각이 단단해도 너무 단단했다.
혼돈기가 담긴 ‘카 라니엘’의 검날조차도 베어내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덕분에 서우진은 연신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피해야 하는데.’
서우진이 가까스로 뼛조각들을 막아내며 뒤를 확인했다.
아샨타와 길드원들이 반복되는 시간 속에 갇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서우진은 그들의 움직임을 자유롭게 해주려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쏟아지는 공격을 막는 것에 모든 정신을 집중하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돌겠네.’
이대로 있다간 당한다.
‘카 라니엘’이 부러지지는 않겠지만, 개념마저 꿰뚫는 힘은 서우진의 예상을 아득히 넘어섰다.
길어야 몇 초.
서우진이 뼛조각을 막아낼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이었다.
‘어쩔 수 없지.’
이대로 있다간 자신이 당한다.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었다.
뒤에 있던 이들이 몸에 셀 수 없이 많은 구멍이 뚫린 채 죽고 말 테니까.
자신도 살고, 저들도 살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화아아아아아악-!
서우진이 ‘혼돈 세계’를 해제했다.
동시에 같은 행동을 반복하던 이들이 숨을 터트리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잠깐 동안 모든 진이 빠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쓰러져 있을 여유 따윈 없었다.
“피해요!”
서우진이 소리쳤다.
그러자 가장 먼저 상황을 파악한 아샨타가 벌떡- 일어나며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퇴!”
간결한 명령.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아산타의 부하들은 훈련이 잘되어 있는지,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됐다.’
뒤가 빈 것을 확인한 서우진이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탄환처럼 날아든 뼛조각이 발밑을 스쳐 지나가더니, 방금 전까지 아샨타가 서 있던 곳을 초토화시켜 버렸다.
‘제때 못 피했으면 뼈도 못 추렸겠군.’
너무도 강력한 위력에 서우진이 얼굴을 굳히며 정면을 쳐다봤다.
폭발과 함께 일어났던 먼지구름이 자욱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자폭은 아닌 것 같고.’
방금 한 것이 양패구상을 노린 자폭공격이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루운발리의 마기는 건재했다.
“괜찮나?”
옆에서 디아로크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건 내가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
녀석은 그리 운이 좋지 못한 듯했다.
옆구리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붉은 피를 왈칵- 쏟아내고 있었으니까.
아샨타에게 신경을 쓰다 보니 디아로크를 챙기지 못했다.
그래도 초극의 경지에 이른 존재이니만큼 잘 대처할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상태가 그리 좋진 않다.”
디아로크의 안색이 창백해져 있었다.
그 짧은 사이, 꽤나 많은 양의 출혈이 있었던 것 같았다.
바지가 완전히 핏물에 젖어 있을 정도였다.
‘박민성이 여기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의 물약이라면, 저런 상처쯤은 순식간에 아물게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를 데려올 여유 따위는 없었다.
“잠깐 참아라.”
“뭘 참으라는…….”
“지고화.”
화르르륵-!
검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 모습에 서우진의 말을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하던 디아로크의 눈이 커졌다.
‘누가 불꽃 성애자 아니랄까 봐.’
헛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지고화’는 이름 그대로 지극히[至] 높은[高] 격을 지닌 불꽃[火]이었으니까.
디아로크가 저렇게 눈을 빛내는 게 당연했다.
그가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종류의 화염이었으니 말이다.
“그, 그건…….”
말까지 더듬는 것을 보니,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컨트롤하기 힘든 듯했다.
“잡담은 나중에.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
먼지구름이 조금씩 걷히고, 루운발리의 마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시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어서 디아로크의 출혈을 잡아야만 했다.
“이 악물어.”
“…뭐?”
‘지고화’를 쳐다보느라 제대로 말을 듣지 못한 디아로크가 반문했지만, 서우진은 다시 말하지 않았다.
대신, 검은색 화염을 디아로크의 상처에 쏘았다.
치이이이이익-!
“이게 무, 무슨! 크으윽!”
자신을 공격하는 줄 안 디아로크가 피하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제대로 된 반응을 하기도 전에 ‘지고화’가 그의 상처를 지졌다.
고통에 찬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움직이지 마.”
서우진은 몸부림치려는 디아로크에게 경고한 뒤 ‘지고화’를 정밀하게 조종했다.
완벽하게 상처 부위만 지져 출혈을 멈출 수 있을 정도로만.
무식하기 짝이 없는 방법이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던 붉은 피가 멈췄으니까.
‘평범한 사람이라면 쇼크로 죽었겠지만……. 뭐, 괜찮겠지.’
디아로크는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으니 말이다.
“후욱- 후욱-!”
출혈이 완전히 멈추자 ‘지고화’가 사그라졌다.
“됐군.”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을 노려보는 디아로크의 모습에 서우진이 어깨를 으쓱하곤 시선을 돌렸다.
그사이 먼지구름은 완전히 걷혔고, 그 속에서 루운발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우.”
서우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놈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마치 강제로 피부를 벗겨내기라도 한 듯한 모습.
뼈갑주가 폭발하듯 터져 나오며, 놈의 피부마저 뜯어낸 것 같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중한 부상을 입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겉모습일 뿐.
루운발리의 힘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아니, 더 강해졌나?’
마기의 크기 자체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밀도가 변했다.
극한까지 응축된 마기는, 숨이 막힐 정도로 조밀한 압박감을 주었다.
“…인정한다. 너는 강하다, ‘혼돈의 왕’.”
말하는 루운발리의 길게 찢어진 입꼬리가 섬뜩한 미소처럼 보였다.
서우진은 그런 놈을 향해 코웃음을 쳤다.
루운발리는 자신에게 한 번 죽었다.
그리고 지금도 완벽하게 밀리는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 할 말치고는 너무도 오만하지 않은가?
서우진의 웃음을 본 루운발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나는 이번에도 너를 이기지 못할 테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 자리에 서우진 혼자만 있었다면, 루운발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머리가 박살 나 죽었을 것이다.
솔직히 지금도 녀석을 죽일 방법은 있었다.
‘혼돈 세계’가 실패했다고 해서, 서우진이 패배할 일은 없다.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알았으면 됐어. 그러니 순순히 죽어주면 안 되겠냐?”
서우진의 진담 반, 농담 반 섞인 질문에 루운발리가 낄낄 웃는다.
“그럴 수는 없지. 레이나의 원수에게 내 목숨을 다시 빼앗기고 싶진 않으니까.”
놈의 눈동자가 살기로 번들거린다.
하지만 경거망동을 하진 않았다.
대신 뜻밖의 말을 꺼냈다.
“해서 네게 제안을 하나 하려 한다.”
“제안?”
서우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껏 사도들과 협력 비슷한 일을 한 적이 몇 번 있었다.
베노인이 그러했고, 조금은 다르지만 유다인도 대화 끝에 놓아주었으니까.
하지만 루운발리 같은 미친놈과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았다.
놈은 아무런 죄도 없는 나약한 이들을 수도 없이 학살한 미치광이였으니까.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좀 웃기긴 한데…….’
서우진은 뜨끔한 양심을 애써 외면하며 루운발리를 향해 물었다.
“무슨 제안이지?”
받아들일 생각은 없다.
하지만 한번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궁금했고, 대화를 하다 보면 마왕이나 다른 사도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베노인 때처럼.’
서우진이 당장 공격할 생각이 없다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루운발리가 입을 열었다.
“다른 사도들의 위치를 가르쳐 주마. 그리고 새로운 왕에 대한 정보도 주지.”
“음…….”
이건 좀 솔깃하다.
사도의 위치야 그렇다 쳐도, 강림한 마왕에 대한 정보는 절실했다.
‘그런데 왜?’
하지만 솔깃한 만큼, 의심도 짙어졌다.
루운발리는 사도.
마왕의 추종자들 중에서도 선택받은 놈들만이 앉을 수 있는 위계다.
그런 놈이 싸움에서 좀 밀린다고 갑자기 배신을 한다?
솔직히 신뢰가 가지 않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무슨 꿍꿍이가 있을 텐데.’
빠르게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그래서 직접 물었다.
“원하는 게 뭐지? 그런 정보를 아무런 대가도 없이 줄 리는 없을 테고. 설마 살려달라, 따위의 부탁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낄낄-”
서우진의 말에 루운발리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리 들어도 적응이 되지 않는 기괴한 웃음소리였다.
“내가 원하는 건 하나다.”
파앗-!
놈이 두 팔을 넓게 벌리며 말을 이었다.
“피. 더 많은 피.”
‘응, 역시 미친놈이네.’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그냥 조금 더 고생을 하고 말지, 놈의 부탁을 들어줄 생각 따윈 없었다.
“헛소리는 잘 들었다. 그러니 이제 그만 진짜 죽어라.”
서우진이 다시 ‘카 라니엘’을 들었다.
하지만 루운발리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새로운 왕은 나의 왕이 아니다. 나는 그런 놈을 인정할 수 없다.”
“……뭐?”
놈의 말에 서우진이 표정을 굳혔다.
머릿속에 뭔가가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하나. 감히 왕의 이름을 사칭하는 거짓된 존재의 피를 마시는 것이다. 그것을 주겠다 약속해 준다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너에게 주마.”
새로운 왕.
왕을 사칭하는 거짓된 존재.
사자.
크라토스.
마기.
마왕.
수많은 단어와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들이 가리키는 사실은 하나였다.
“설마…….”
서우진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의 머리는 이미 한 가지 결과를 도출해 내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지? 나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나?”
루운발리가 물었다.
‘제안이고 나발이고.’
지금은 그딴 게 문제가 아니다.
“하나만 묻자.”
서우진은 대답하는 대신 질문을 던졌다.
“그 새로운 마왕이라는 새끼 이름이 혹시, 백시우냐?”
별 시답잖은 이유로 마기에 집어삼켜진 용사.
덕분에 레이나와 사자의 손에 납치를 당한 멍청한 놈.
설마 그놈이 정말로 새로운 마왕이라도 된 것일까?
서우진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렇다.”
루운발리의 대답은 서우진의 바람을 짓밟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