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346)
346화.
“더는 이곳에서 배울 건 없을 듯하군.”
소복이 쌓인 눈 위를 죽어라 굴러대는 용사들을 바라보며, 반 슬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아직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서우진에 비하자면 수련할 시간도 부족했고, 중간에 많은 일이 생기며 집중적인 단련도 힘들었다.
그런데도 반 슬레인은 이제 저들을 보낼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괜찮겠습니까?”
옆에서 그를 보좌하던 아일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무리 레벨보다는 스스로의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지만, 결국 저들은 용사네.”
레벨을 올려 강해지는 존재들.
이곳에서 기본기는 충분히 다졌으니, 이제 밖으로 나가 레벨을 올리며 성장할 때가 되었다.
“자네 역시 마찬가지네. 그간 많은 성장을 이루어냈으니, 다시 한번 그 아이의 곁에서 도움을 주도록 하게나.”
아일린이 고개를 숙였다.
“저는 아직 부족합니다.”
“허허-”
그녀의 겸양에 반 슬레인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십대 중반의 나이로 거의 최상급에 다다른 이가 몇이나 될 것 같은가? 자네를 무시할 수 있는 기사는, 대륙 전체를 뒤져보아도 없을 걸세.”
“…아직 최상급에 도달하진 못했습니다만.”
“자네에게 필요한 것은 한 걸음뿐이야. 그 한 발자국으로 종잇장과 같은 벽만 넘어선다면, 도달할 수 있을 거네.”
최상급 기사.
용사들에 비하자면 한없이 부족하긴 했지만, 결코 낮은 경지가 아니었다.
하물며 이십대 중반에 그곳에 이르렀다는 건, 언젠간 초극의 경지에 발을 디딜 가능성이 차고 넘친다는 뜻도 되었다.
“서우진. 그 아이 옆에서 쉬지 말고 정진하게나. 그러면 한계를 능히 뛰어넘을 수 있을 터이니.”
아일린의 표정이 황망해졌다.
“제가 어찌 감히…….”
초극의 경지라니.
꿈을 꿔본 적도 없었다.
“스스로를 틀에 가두는 우를 범하지 말게.”
반 슬레인은 정말로 아일린이 그 드높은 경지에 발을 디딜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에겐 넘치는 재능과 결코 쉬지 않는 성실함이 있었으니까.
‘계기만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최상급을 넘어 자신과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아일린이 우물쭈물하다 고개를 숙였다.
이번엔 감사의 의미가 담겨 있는 행동이었다.
“그건 그렇고, 지금 그 아이는 어디에 있다 하던가?”
반 슬레인이 흐뭇한 표정으로 잠시 아일린을 쳐다보다 문득 물었다.
“마지막으로 전해온 소식은 드나로 타가스를 들렀다가 아이에르로 향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드나로 타가스…….”
반 슬레인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마왕이 그곳에 있단 뜻인가?”
“소식을 전해온 정보 길드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왕이라니.”
반 슬레인이 고개를 저었다.
“판데모니엄에서 강림한 진정한 왕은 아닐 테지.”
그랬다면 세상이 지금처럼 조용할 리가 없다.
서우진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지금으로선 결코 막아낼 수도 없을 테고.
‘그 아이가 감추고 있는 힘을 모두 사용한다 해도 마찬가지일 터.’
서우진의 묻지 말아달라는 부탁에 지금껏 입을 다물고 있긴 했지만, 반 슬레인은 ‘마왕화’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 상태의 서우진이 얼마나 강한지도.
그런데도 반 슬레인은 여전히 마왕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지금까지 전승되어 온 기록의 절반만 신뢰해도, 마왕은 신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래, 아직까진 감당할 수 없다.’
객관적으로 내린 판단이었다.
그래서 드나로 타가스에 있는 존재는 진짜 마왕이 아니리라 확신했다.
“시간이 꽤 흘렀으니, 이미 그곳의 일이 마무리되었겠군.”
“그럴 것입니다. 안 그래도 추가적인 소식을 전해주겠다 했으니, 조만간 정보원이 방문할 것입니다.”
“그런가?”
반 슬레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그럼 소식이 오는 대로 용사들을 출발시키는 걸로 하지.”
“그에 맞춰 준비를 하겠습니다.”
아일린이 공손하게 인사를 건네곤 몸을 돌려 사라졌다.
혼자가 된 반 슬레인이 용사들을 내려다봤다.
이상 기온으로 평년보다 훨씬 추워졌음에도, 그들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인간을 아득히 넘어선 육체였음에도 한계까지 몰아세운 덕분이었다.
“저들은 강해지겠지.”
서우진만큼은 아니더라도, 아카데미에서 훈련하고 있는 그 어떤 용사들보다도 강해질 것이다.
반 슬레인은 그리 확신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
갑자기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물었다.
“그렇겠죠, 용사인데.”
그런데 대답이 들려왔다.
분명 아무도 없는 공간이었건만, 어느샌가 아직 앳된 모습의 소년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불퉁한 표정으로 용사들을 쳐다보던 소년은, 입맛을 다시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놈아, 그 아이가 너를 얼마나 찾았는지 아느냐?”
“알고 있어요.”
“그럼 나와서 인사라도 했어야지!”
“…아직은 때가 안 됐어요.”
소년, 리나르는 고집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제가 그 아저씨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건, 조금 더 강해진 후에나 할 거예요.”
“쯧쯧.”
그런 리나르를 본 반 슬레인이 혀를 찼다.
“머리만 컸지, 철이 들려면 아직도 멀었어.”
“아니거든요?”
리나르가 발끈- 하며 소리쳤다.
물론 반 슬레인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보다 요즘 수련은 어찌 되어가느냐?”
“…뭐, 열심히 하고 있어요. 전에 내준 미션은 성공했고요.”
“허허, 벌써 성공했다고?”
“그렇게 어렵진 않던데요.”
반 슬레인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리나르에게 내준 미션이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푸른 방패 기사단 전원의 등뒤를 점하라는 것이었다.
리나르가 자신의 존재감을 지울 수 있는 이능의 소유자이긴 했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푸른 방패 기사단 역시 리나르의 능력에 충분히 적응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기습에 대비해 항상 긴장을 풀지 않고 기감을 활짝 열어둔 상태로 생활했다.
먹고, 자고, 훈련하고… 심지어는 화장실에 갈 때까지.
절대 경계를 느슨하게 풀지 않았던 것이다.
덕분에 기사들의 감각은 날이 갈수록 예민해졌다.
그리고 반대로 리나르 역시 그것을 뚫기 위해 점점 더 은밀해졌고.
서로가 서로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밑거름으로 삼은 것이다.
그런데 리나르가 그 훈련의 끝을 알려왔다.
‘적어도 1년은 더 걸릴 줄 알았거늘.’
아무래도 리나르의 능력이 생각보다 더 뛰어난 듯했다.
그것이 아니라면…….
“영웅이 되겠다는 열망이 그리도 간절하던가.”
반 슬레인의 말에 리나르가 움찔했다.
영웅.
용사가 될 수 없는 리나르에게 서우진이 새로이 심어준 꿈이다.
지금껏 리나르는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영웅이 되기 위해 쉼 없이 노력했다.
반 슬레인의 짐작대로 말이다.
“나쁘지 않구나.”
반 슬레인은 순순히 리나르의 노력을 인정해 주었다.
동기가 무엇이든, 리나르는 착실히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그것이면 되었다.
이대로만 계속 나아간다면, 강림 전쟁에서도 크게 활약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네놈 덕분에 지금쯤 기사들이 분통을 터트리고 있겠구나.”
“뭐, 그렇죠.”
리나르가 어깨를 으쓱- 하며 대꾸했다.
실제로 테스테론을 비롯한 기사들이 반드시 되갚아주겠다며 이를 갈고 있는 중이었다.
“허허, 아쉽게도 그 녀석들의 복수는 나중으로 미뤄야 될 듯하다.”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리나르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저들과 함께 떠나라는 뜻이다, 이 녀석아.”
“아, 아니, 잠깐만요. 저는 아직…….”
당황한 리나르가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반 슬레인은 자신의 말을 철회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조금 전 나눈 대화를 들었으면, 느낀 바가 있을 터인데?”
반 슬레인과 아일린이 나눈 대화.
이곳에서 더는 성장할 수 없으니, 더 큰 곳으로 나아가라 했던 말.
리나르가 입을 다물었다.
“푸른 방패 기사단에게 물을 먹인 실력이면 이제 충분하다. 그 이후의 것은 세상에서 배우려무나.”
반 슬레인이 녀석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괜찮을까요?”
리나르가 불안감이 섞인 음성으로 물었다.
“충분하고말고. 네 실력은 이 늙은이가 보증하지.”
객관적으로 볼 때, 리나르의 경지는 고작해야 중급 정도에 불과했다.
검을 잡은 시간을 고려해 보면 엄청난 성장 속도였지만, 사실 그 정도로는 어디 가서 제대로 된 명함도 내밀지 못할 수준이었다.
하지만 리나르는 평범한 녀석이 아니다.
존재감을 지우는 그 이능이 녀석의 실력과 합쳐진다면?
모르긴 몰라도, 최상급 기사의 목도 그리 어렵지 않게 벨 수 있을 터였다.
“단언컨대, 너를 만나 긴장하지 않을 존재는 열을 넘지 않을 게다.”
더할 나위 없는 극찬이었다.
리나르는 그제야 조금 자신감을 되찾는 듯했다.
“그럼 그렇게 할까요?”
입술을 삐죽이며 말하자, 반 슬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라드에게 말을 해둘 터이니, 때가 되면 함께 떠나거라.”
“…알겠어요.”
리나르가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미리 다른 이들과 작별 인사를 해두는 것이 좋겠구나.”
“그래야겠네요. 그럼 다녀올게요.”
지난 시간 동안 리나르는 매시브 가디언에서 많은 이와 정을 나누었다.
기사, 병사, 민간인 할 것 없이.
특유의 쾌활하고 장난기 많은 성격으로 인해, 이곳에서도 녀석을 아끼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 모두와 작별의 인사를 나누려면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 터.
리나르는 곧장 자신의 모습을 지우며 사라져 버렸다.
순식간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그저 멀리서 용사들이 악을 쓰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다들 떠나는구나.’
한동안은 매시브 가디언이 적막해질 듯했다.
시원섭섭한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아쉽다고 해서 언제까지 저들을 이곳에 붙들고 있을 순 없는 일.
게다가 헤어짐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테니, 그리 서운해 할 일도 아니었다.
“강림 전쟁…….”
타란 산맥과 드나로 타가스에서 나타났다는 마왕은 그의 기억 속에서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런 가짜가 아닌, 진정한 강림 의식을 통해 세상에 나타날 진짜 마왕.
그 공포스러운 존재가 올 날이 머지않았다.
‘저들을 보내고 나면, 이제 정말로 전쟁을 준비해야겠군.’
처절하고 잔혹한 때가 가깝다.
북방의 겨울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추위가 전 대륙을 향해 몰아칠 것이다.
그에 대비해 준비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가난한 시온의 왕궁에선 많은 지원을 해주지 못할 테니, 매시브 가디언에서 모든 것을 스스로 준비해야만 했다.
반 슬레인은 용사들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곤 몸을 돌렸다.
한가로이 단련하며 기다리던 시절이 끝나갔다.
‘언제든지 오너라.’
시온은, 매시브 가디언은 결코 쉽게 당하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그래 왔던 것처럼, 지옥과도 같은 혹한을 견뎌낼 수 있었다.
반 슬레인은 마음을 다잡으며 걸음을 옮겼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