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350)
350화.
세상의 법칙을 반쯤 벗어난 소녀는 생각했다.
차라리 섭리대로 죽음을 맞이하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라고.
하지만 되돌리기에는 너무도 늦어버렸다.
아주 먼 옛날.
소녀는 선택을 했고, 그로 인한 대가를 치를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소녀가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멀뚱히 자신의 뒤를 따라오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세상을 구할 ‘용사’이자, 모든 것을 파괴할 ‘마왕’이며, 종국에는 종말을 가져올 ‘혼돈의 왕’.
어찌 한 존재가 이토록 많은 업(業)을 지고 있을 수 있는 것일까?
‘이해할 수 없구나.’
아직 모든 이치를 깨닫진 못했으나, 그래도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그런데도 소녀는 저 존재에 대해 아무런 장담을 할 수도 없었다.
그야말로 불가해(不可解).
그 어떤 행동의 예측도 불가능하고, 앞으로의 운명을 점칠 수도 없었다.
그저 그의 선택이 옳은 길로 향하길 기도하는 것 외에는, 소녀가 할 수 있는 건 전무했다.
‘부디 모든 세계에 이로운 존재가 되길.’
빌고 또 빌었다.
그때,
“어디까지 가야 합니까?”
사내, 서우진이 물었다.
“조금 더 떨어져야 하느니라. 신수의 성장은 꽤나 과격하니.”
“…그 정도입니까? 마공과 제가 이렇게나 떨어져야 할 정도로?”
서우진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만하지.’
자신과 그의 경지는 이미 상식을 초월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런 이들이 이렇게 멀리 떨어져야 할 정도라니, 놀랄 수밖에 없었으리라.
하지만 소녀는 단호했다.
“신수를 가벼이 보지 말거라. 그들의 이름 앞에 신(神)이 붙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니.”
서우진은 모른다.
과거 신수들이 얼마나 압도적인 위용을 뽐냈는지.
만약 제대로 성장한다면, 웬만한 초극의 강자들이라 해도 가볍게 상대할 수 있을 만큼 강해질 터였다.
“그, 그렇습니까?”
서우진이 말까지 더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고 보면 알 일.”
소녀는 서우진의 감정을 뒤로한 채 앞으로 걸어나갔다.
짙은 어둠이 사이로 펼쳐져 있는 은하수 너머.
그곳에 도달한 뒤에야 소녀는 걸음을 멈추었다.
“이 정도면 될 터.”
뒤를 돌아보자 가만히 뒤따라오던 서우진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약간 혼란스러운 듯한 표정이었다.
“조금 전 한 말이 신경 쓰이느냐?”
소녀가 묻자, 빠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모든 것을 끝낼 참혹한 전쟁이라니, 그게 뭡니까?”
서우진이 물어왔다.
“문자 그대로이니라.”
“혹시 종말을 얘기하는 겁니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선문답 같은 대답에 서우진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소녀로선 그 이상의 대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자신에게는 세계의 제약이 덕지덕지 걸려 있었으니까.
덕분에 말 한마디를 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대화가 가능한 것은, 그녀의 막대한 마력과 하늘탑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소녀는 너무도 무거운 제약의 무게에 짓눌려 숨도 쉬지 못했을 것이다.
“자세히 말해줄 수 없는 것을 이해하거라. 훗날 때가 되면 자연히 모든 것을 알게 되리라.”
“흐음.”
서우진은 불만족스러운 표정이었지만, 결국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제가 무엇을 하면 됩니까?”
다시 한번 물어왔다.
그리고 다행히도, 이번 질문에는 아주 조금은 자세히 대답해 줄 수 있을 듯도 했다.
“마음을 다잡고 흔들리지 말거라. 그 어떤 미몽에도 사로잡히지 않도록 정진하거라. 내면의 힘을 더욱 갈고닦아 오롯이 홀로 서거라. 그리하면…….”
소녀는 주변에 펼쳐진 우주(宇宙)를 가리키며 말했다.
“모든 세계를 지켜낼 수 있으리라.”
쿠웅-!
마력이 요동친다.
‘너무 무리했는가?’
고작 이 정도의 대답만으로도 세계가 제재를 가한다.
우드득-!
순간적으로 짓누르는 압력 덕에 전신의 뼈가 어긋났다.
하지만 소녀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만 하면 되겠습니까?”
서우진이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하니라. 허나, 그전에…….”
소녀가 손가락을 들어 바닥에 놓인 시신들을 가리켰다.
“일단은 이것들부터 처리를 해야겠구나.”
* * *
“이야, 이게 얼마 만에 보는 흙이냐?”
구동환이 무릎을 꿇고 흙바닥에 코를 가져다대며 킁킁- 거렸다.
“…부끄러우니까 그만해요.”
계수지가 그런 구동환을 말렸다.
하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흙을 어루만졌다.
“아니, 수지 씨. 감격스럽지도 않습니까? 맨날 얼어붙은 땅이나 눈만 보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흙을 만났는데?”
매시브 가디언에서 보낸 시간은 그들에게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혹한으로 가득한 팔한지옥.
“아니, 이해는 하겠는데.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잖아요.”
계수지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말대로, 주변의 사람들이 미친놈 쳐다보듯이 이쪽을 힐끔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저씨, 아저씨. 저기에 풀이 있어요!”
이지아는 한 술 더 떴다.
낮게 자란 잡초를 보며 감격의 눈물을 글썽거리는 중이었으니까.
계수지는 두통이 생기는 듯한 느낌에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꾸욱- 눌렀다.
“오랜만에 자유를 느껴서 그런 거니까, 우리가 좀 참죠.”
유홍설이 피식 웃으며 계수지를 위로했다.
“하아- 대체 언제 철이 들는지.”
이지아는 둘째치고, 저 거대한 덩치로 바닥을 기어 다니는 구동환의 모습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어쨌든 나오니까 저도 좋긴 하네요.”
솔직히 유홍설의 그 말엔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없었다면, 지금쯤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을 테니까.
“그래서 이제 어디로 가면 되죠?”
계수지가 뒤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조금 더 이 기쁨을 느끼고 싶긴 했지만, 갈 길이 멀었다.
“지금 제국으로 간다고 해도, 길이 엇갈릴 가능성이 커요. 그러니 차라리 아이에르로 가는 편이 좋을 것 같네요.”
강병규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아이에르?”
“정보 길드에서 전해온 소식에 의하면, 녀석은 하늘탑에서 일을 마친 뒤 곧장 아이에르로 간다고 했으니 말입니다.”
“아, 그래요?”
그 사실까진 듣지 못했던 계수지가 고개를 주억였다.
“병규 씨 말대로 하는 게 좋겠네요.”
전투가 아닌 다른 부분에서는 강병규가 압도적으로 실력이 뛰어났다.
특히 전체적인 일정이나 행동의 방향성을 정하는 것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정말이지 저 사람이랑은 다르다니까.’
계수지가 구동환을 흘겨보며 생각했다.
나이도 그리 차이 나지 않는데, 어쩜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지 의문이었다.
“그럼 아이에르로 가는 걸로 하고, 일정을 좀 짜보겠습니다.”
강병규가 ‘로드맵’ 스킬을 사용했다.
‘탐색’과는 전혀 다른 종류였다.
현재 위치와 목적지를 설정하면, 가장 최적의 경로를 스스로 판단해 표시해 주는 스킬.
내비게이션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음성안내까지 지원해 주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이쪽 방향으로 이동하면 될 것 같습니다. 중간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도시가 여덟 개쯤 되니… 도착까지는 한 10일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순식간에 일정을 계획한 강병규의 말에 계수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 바로 움직일까요?”
“아, 하루 정도만 쉬면 안 되겠습니까?”
강병규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 역시 오늘 하루쯤은 따뜻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었던 것이다.
“흐음.”
계수지가 잠깐 고민했다.
은연중에 일행의 리더를 맡고 있던 그녀였지만, 쉽게 결정을 내릴 순 없었다.
“시간이 마음에 걸려서 그런 거라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단축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그래요?”
계수지가 눈을 반짝였다.
그녀라고 쉬고 싶지 않을 리가 없었다.
“언니! 우리 오늘 여기서 쉬어요?”
둘의 대화를 들은 것인지, 이지아가 저 멀리서 잔뜩 기대에 찬 얼굴로 뛰어왔다.
‘끄응-’
저렇게 좋아하는데 안 된다고 할 수도 없었다.
결국 계수지는 고민을 끝내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좋아요. 오늘은 여기에 숙소를 잡고 푹 쉰 뒤, 내일 출발하도록 하죠.”
“와아-!”
일행 모두가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심지어는 극도로 내성적인 진태성마저도 말이다.
“그럼 내가 숙소 알아볼게요! 다혜야, 가자!”
이지아는 멍하니 서 있는 김다혜의 손을 잡고는 호다닥- 뛰쳐나갔다.
‘…괜찮을까?’
엉덩이에 뿔 난 망아지처럼 날뛰는 이지아의 모습에, 조금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진 씨는 뭘 하고 다니는 걸까요?”
그때, 뒤쪽에서 흐뭇하게 미소를 짓고 있던 박민성이 손을 들고 물어왔다.
“본래라면 그 지옥, 아니, 매시브 가디언에서 함께 사냥도 하고, 훈련도 하기로 했었는데 말이죠.”
“그러게요?”
계수지와 유홍설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그간 미친 듯한 양의 훈련을 소화하느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전혀 듣지 못한 상황이었다.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것도, 타란 산맥이 무너졌다는 것도, 마왕이 강림했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괜히 훈련에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반 슬레인이 모든 소식을 차단시킨 덕분이었다.
“글쎄요? 아무래도 그것도 한번 알아보긴 해야 할 것 같은데.”
강병규는 일단 정보 길드라는 곳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곳이라면 서우진에 대한 소식을 자세히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던 것이다.
“일단 지아랑 다혜가 오면 숙소부터 잡고, 정보들을 좀 모아볼까요?”
“아무래도 그게 낫겠네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정보의 중요성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 녀석들은 어디까지 간 건지…….”
대화하느라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이지아와 김다혜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슬슬 걱정이 들기 시작할 때쯤.
저 멀리서 작달막한 여자 둘이 뛰어오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 오네요.”
가장 먼저 둘의 모습을 확인한 강병규가 말을 하다 조금씩 표정을 굳혔다.
신이 나서 출발할 때와는 달리, 상당히 다급한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언니! 아저씨!”
이지아는 새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일행을 부르더니, 이내 크게 소리쳤다.
“마, 마왕이 강림했대요!”
“…뭐?”
계수지가 미간을 찌푸렸다.
마왕이 강림했다니?
어디서 그런 헛소리를 듣고 돌아온 건지 모르겠다.
“일단 진정하고. 그게 무슨 얘기인지 천천히 얘기해 봐.”
순식간에 일행의 곁으로 돌아온 이지아를 멈춰 세운 강병규가 침착하게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말을 이었다.
“타란인지 테란인지 하는 산맥에 마왕이 강림했고, 서우진이라는 이름의 용사가 처단했다는 소문을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그 말에 모두가 눈을 끔뻑였다.
마왕? 서우진? 처단?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구동환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여기서 쉬고 가는 건 물 건너 갔군.”
조금이라도 빨리 서우진을 만나야 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