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369)
369화.
눈을 떴다.
잘 떠지지는 않았지만, 억지로 힘을 주자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위로 올라갔다.
‘…여긴?’
아일린은 잠시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그러곤 속으로 ‘아!’ 하는 탄성을 터트렸다.
정신을 잃기 전에 벌어졌던 일들이 떠오른 것이다.
“으윽!”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아일린이 신음을 흘렸다.
“아직은 누워 있는 게 좋을걸요. 다 나으려면 꽤 오래 걸린다고 했으니까.”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박혜경이라는 이름의 용사가 의자에 앉아 자신의 활을 닦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에요. 조금만 더 늦었으면 정말 생명이 위급했을 거라고 하던데. 에헤이, 그냥 누워 있으라니까.”
“…감사합니다.”
아일린은 그녀에게 인사를 하려고 다시 몸을 일으키다 제지당했다.
“전적으로 그쪽의 실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체력이 버텨줘서 살아난 거예요. 나는 그냥 막타 치고 경험치만 얻어먹은 거지, 뭐.”
막타라는 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박혜경은 정말로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별다른 감흥이 없어 보였다.
“그러니까 나한테 감사 같은 건 안 해도 됩니다. 오케이?”
“그래도…….”
“아아, 거기까지만 하시고. 어디 왕국 사람이에요? 기사시던데, 제국 소속은 아닌 것 같아서.”
그녀는 재빨리 아일린의 말을 끊고는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시온. 매시브 가디언의 수호를 맡고 있는 푸른 방패 기사단 소속의 상급 기사, 아일린입니다.”
말을 길게 하자 따끔한 통증이 몰려왔다.
아무래도 정신을 잃은 상태로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듯했다.
“시온? 매시브 가디언?”
박혜경은 생소한 이름에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이내 뭔가를 떠올렸는지, 눈이 살짝 커졌다.
“거기 서우진이라는 사람을 지원하는 데 맞죠? 북쪽에 있는 작은 왕국?”
‘작은’이란 단어가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실제로 시온이 작고 약한 왕국인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아일린은 생명의 은인에게 그런 걸 따져 물을 정도로 생각이 짧진 않았다.
“그렇습니다.”
고개를 끄덕이자, 박혜경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들고 있던 활을 내려놓았다.
“그 양반 요즘 뭐해요? 그 매시브 가디언인가 뭔가에 돌아갔다는 소문이 돌긴 하던데.”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용사들 사이에서 서우진은 그야말로 미스터리, 그 자체였다.
고작해야 D급 ‘검병’으로 알려져 있던 그가 SSS급의 백시우도 잡았고, 평범한 용사들은 꿈도 꾸지 못할 일들을 해결하고 다닐 정도였으니까.
그런 사람이 갑자기 아카데미를 나가 다른 용사들과 함께 매시브 가디언이라는 시골로 갔다니,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좀 친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어서 좀 아쉬웠거든요.”
꽤나 관심이 컸던 모양이다.
“그곳으로 오긴 했었습니다.”
딱히 숨길 일도 아니었기에 순순히 대답을 해주었다.
“그래요? 거기서 뭘 하던가요?”
“그냥 훈련도 하고, 몬스터 토벌도 참여했습니다. 다른 동료 분들과 함께.”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말해주진 않았다.
하지만 박혜경은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한 듯했다.
“굳이 아카데미를 나간 걸 보면, 그쪽이 훈련하기 더 좋은 환경인가? 어쩌면 그렇게 강해진 이유가 거기에 있는 걸지도……. 혹시, 여유가 생기면 저도 방문할 수 있나요?”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박혜경이 문득 물었다.
“상관없습니다. 시온은 용사들을 환대하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가봐야 우진 씨를 만날 순 없을 겁니다.”
“네? 왜요?”
“동료들과 함께 얼마 전에 떠났으니까요.”
그 말에 박혜경이 아쉽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쩝, 계속 타이밍이 어긋나네.”
그러곤 입맛을 다시며 다시 활을 집어 들어 손질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혹시…….”
이번엔 아일린이 물었다.
“저와 함께 있던 소년은 어디에 있는지 못 보셨습니까?”
리나르에 대한 질문이었다.
“아, 그 녀석이요? 의사한테 치료를 받더니, 곧바로 사라졌어요.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안 보이더라고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건지, 원.”
박혜경이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녀의 능력으로는 몸을 숨긴 리나르를 찾을 수 없었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다행히 무사한가 보네.’
아일린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자신의 판단 때문에 녀석이 잘못되었다면, 그녀는 결코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튼 당신보다는 상태가 훨씬 양호했으니, 크게 걱정하진 않아도 될 거예요.”
박혜경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나저나 제국엔 무슨 일로 오신 거죠? 혹시 지원이라던가……?”
“지원?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일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제국이 시온 같은 약소 왕국에 지원을 받을 일이 뭐가 있다고?
“아, 모르셨나 보네. 지금 제국은 온통 난리거든요.”
“난리요?”
“마수들이 제국 전역에 출몰하고 있어요.”
그 말에 아일린이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이렇게 다친 이유도 바로 그 마수 때문이었으니까.
그런 놈들이 여기뿐만 아니라 제국의 모든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면, 난리라는 말이 나올 만도 했다.
“인력이 꽤 부족해요. 그래서 주변국들에 도움을 요청한 상태라는데, 아직 뚜렷한 변화는 없네요.”
박혜경은 짜증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지금도 저를 뺀 다른 녀석들은 토벌을 나간 상태예요. 하여간 하루에도 몇 번씩 출동을 해야 한다니까요.”
‘그 정도나?’
상황이 그녀의 생각보다 더 심각한 모양이었다.
“덕분에 레벨은 잘 오르긴 하지만, 조금 힘에 부치는 것도 사실이에요.”
“원인은 밝혀냈습니까?”
“그걸 알면 이렇게 X뺑이를 치고 있긴 않겠죠. 그래도 여기저기 들쑤시는 중이라고는 하는데.”
딱히 지금까진 밝혀낸 게 없는 듯했다.
‘마수라…….’
아일린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는 북방에서 마수나 몬스터에 대한 생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이들 중 하나였다.
‘그 멧돼지는 분명 이 근방에서 출몰할 만한 놈이 아니었지.’
여기보단 훨씬 남쪽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마수였다.
‘그 말은 놈들을 컨트롤할 수 있는 존재가 있을 수도 있다는 뜻.’
여기까진 제국에서도 파악했을 것이다.
크루시엘이 바보는 아니었으니까.
‘가능성이 가장 큰 건 사도 중 한 명인 베노인.’
그는 마수와 몬스터를 조종하는 힘이 있었다.
서우진의 말에 따르면, 자르반 평원에서 에이션트 오크들을 움직여 대규모 전투를 일으킨 것도 베노인이었다.
그러니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다.
하지만 아직은 단정하기엔 너무 일렀다.
‘조사가 필요할까?’
크루시엘이 어련히 알아서하겠지만, 그렇다고 내 일이 아니라며 손을 놓고 있을 순 없었다.
‘문제는 나와 리나르만으로 가능하냐는 건데…….’
시온이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곳엔 아일린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아주 많았으니까.
하지만 제국에선 무리다.
여기엔 그녀를 도와 조사를 해줄 만한 이들이…….
‘음?’
뭔가 머릿속을 번뜩하고 스쳐 지나갔다.
‘도와줄 사람이 있긴 하네.’
매시브 가디언에서 서우진의 소식을 계속 전달해 주었던 정보 길드.
거의 실시간에 가까울 정도로 정보를 확인할 정도의 수준이라면, 원흉의 뒤를 쫓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제국에도 그들의 지부는 많았고, 그곳을 찾는 방법도 알고 있다.
“좋아.”
아일린이 생각을 끝내고 고개를 들자,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박혜경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뭐가 좋아요?”
“음…….”
아일린이 침음성을 흘렸다.
아무래도 대답을 해주어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이 강하게 느껴졌다.
* * *
‘이제 남은 거리는 하루.’
서우진과 일행은 데르한과 제국의 국경에 있는 무역도시에서 머물기로 결정했다.
이곳에서 쉰 다음, 내일 제국의 영역으로 들어가 기차로 갈아타기로 한 것이다.
서우진은 밤이 깊어지자, 여관을 빠져나와 지붕 위로 올라갔다.
지구와는 달리 오염되지 않은 맑은 하늘에 별이 쏟아지는 듯했다.
잠시 그것들을 감상하듯 바라보다, 문득 입을 열었다.
“알아봐 달라는 건 어떻게 됐죠?”
스으윽-
옆에서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누군가 솟아나듯 모습을 드러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얼굴을 지니고 있는 그는, 서우진도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디서 왔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요한님께서 죄송하단 말씀을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바로 정보 길드의 요원이었다.
“…그렇게 알아내는 게 어렵습니까?”
요한의 능력은 서우진이 경탄할 만큼 출중했다.
심지어 뭔가를 알아내는 것에 특화되어 있는 강병규까지 지원을 해주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니, 생각보다 깊숙이 감춰져 있는 모양이었다.
“쉽지는 않습니다. 제국 내에 있는 모든 인력을 동원했습니다만…….”
요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벌써 서른 명이 넘는 이들이 실종된 상태입니다.”
서우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말은 실종이지만,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정보 길드의 능력을 생각해 보면, 제국의 보안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강력했다.
“하지만 틈을 발견했습니다. 늦어도 일주일 안에는 유의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듯합니다.”
“일주일…….”
예상보다 너무 오래 걸린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을 해내라고 말할 때는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최대한 빨리 좀 알아봐 달라고 좀 전해주시죠.”
“그러겠습니다.”
“아, 그런데 그 녀석은 잘하고 있습니까?”
서우진이 요원에게 강병규에 대한 것을 물었다.
“물론입니다. 처음에는 조금 미숙했지만, 지금은 요한님께서 반드시 영입하고 싶다 말할 정도이니까요.”
피식- 웃었다.
“듣기 좋으시라고 하는 빈말이 아닙니다. 정말로 강병규님이 아니었다면, 요원들의 피해가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을 겁니다.”
“…그래요?”
도움이 될 것이란 건 알았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설마하니 그 요한이 욕심을 낼 정도라니.
“그럼 녀석은 지금 뭘 하고 있습니까?”
“지금쯤이면…….”
잠시 시간을 가늠해 본 요원이 주변을 둘러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만약 계획한대로 일이 잘 진행되었다면, 신궁 내부에 잠입한 상태일 겁니다.”
서우진의 눈이 커졌다.
“신궁? 황제가 있는 그 신궁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요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잠깐.”
신궁이 어떤 곳인가?
제국의 심장부, 그야말로 괴물 같은 놈들이 잔뜩 숨어 있는 장소였다.
오죽하면 서우진조차도 얼마 전에 잠입하려다 권공에게 발각되어 실패하지 않았던가?
그런 곳에 잠입하다니?
물론 강병규의 실력을 얕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위험해도 너무 위험한 호굴이었다.
“너무 무모한 것 아닙니까?”
설마 실적을 내기 위해 그런 무모한 작전을 짠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말려야만 했다.
하지만 요원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괜찮을 겁니다. 저희도 심사숙고한 끝에, 완벽한 때를 노려 숨어든 것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요한님께서 직접 참여한 작전입니다. 걱정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겁니다.”
그는 요한의 실력에 무한한 신뢰를 갖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것은 서우진 역시 어느 정도 공감하는 바였다.
‘요한이라면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진 않았겠지.’
몇 번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그의 실력만큼은 믿을 수 있었다.
서우진은 일단 그에게 맡겨보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바로 저에게 알려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요원은 그 대답을 마지막으로 다시 사라졌다.
혼자 남은 서우진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조금씩 엄습하는 듯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