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390)
390화.
동이 틀 무렵.
어스름한 새벽빛을 뚫고 손님들이 찾아왔다.
이미 진즉에 그것을 눈치챈 서우진은 주둔지를 빠져나와, 밖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다행히 다들 무사하군.’
일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탓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주둔지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이들은 두 명.
바로 디아로크와 아샨타였다.
두 사람은 별다른 부상을 입은 것 같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한 대로 일이 잘 풀렸다는 뜻이었다.
서우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둘을 기다렸다.
그렇게 잠시 후.
디아로크와 아샨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음?”
마치 날아오는 것 같았다.
아니, 날아오고 있었다.
‘마법인가?’
아무래도 디아로크가 아샨타를 배려해 마법을 사용한 듯했다.
‘하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샨타의 경지로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터.
괜찮은 선택이었다.
화아아아악-!
그들이 도착하는 것과 동시에 마력 섞인 바람이 휘몰아쳤다.
서우진은 손을 휘저어 그것을 모두 잠재운 뒤, 입을 열었다.
“다들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그건 저희가 하고 싶은 말인데요? 그 난리 속에서도 무사히 빠져나오시다니, 정말 다행이에요.”
그날, 제국의 수도와 신궁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었다.
제국의 기나긴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 벌어졌으니까.
신궁이 공격받고, 뚫렸으며, 결국 무너지기까지 했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두 명의 수호자가 부상을 입었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오고 있었으니…….
이번 전대미문의 사태는 수도뿐만 아니라, 대륙 전역에 큰 충격을 가져다줄 정도였다.
그런 일을 일으킨 장본인이 이토록 무사한 것을 보니, 놀랍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당신이 준 도움이 아니었다면 힘들었을 겁니다.”
서우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확실히 요한과 아샨타, 그리고 정보 길드의 요원들이 아니었다면 결코 쉽게 탈출할 순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정체를 들키는 것만큼은 피할 수 없었을 터.
서우진은 진심을 담아 아샨타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물론, 그 옆에서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녀석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너도 고맙다.”
디아로크를 향해 말했다.
물론 녀석은 서우진의 인사를 보는 둥, 마는 둥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애초에 감사인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정도의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었으니까.
서우진도 굳이 더는 말을 걸지 않았다.
요즘 몇 번이나 도움을 주긴 했지만, 디아로크는 여전히 성가신 녀석이었다.
“요한이 당신한테 전해주라고 한 정보들이에요.”
인사가 끝나자, 아샨타가 품속에서 종이뭉치를 꺼내 들었다.
“내용을 보니까 용사들의 위치가 적혀 있는 것 같던데…….”
요한은 아직 자신의 측근들에게도 용사 폐기 계획에 대한 사실을 알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디아로크 때문인가?’
그럴 수도 있다.
무슨 생각인지 지금은 자신을 돕고 있었지만, 그는 결국 레닌스탕의 공작 위에 올라 있는 고위 귀족.
그 빌어먹을 계획과 연관이 되어 있을 확률이 높았다.
속으로 고개를 끄덕인 서우진이 종이를 받아 들었다.
“제가 부탁한 겁니다.”
“왜요? 어디에 쓰시려고요?”
호기심이 가득한 음성으로 물었다.
정보를 다루는 길드의 지부장을 맡고 있어서 그런지, 궁금함은 참지 못하는 듯했다.
“나중에 요한에게 들으시는 게 더 좋을 것 같군요.”
아직은 말해줄 수 없다.
비밀은 아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으니까.
아샨타는 실망한 눈치였지만, 딱히 기대하진 않았는지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한번 읽어보세요, 어젯밤까지 확인된 정보니까. 만약 변화가 생기면, 바로 연락이 올 거예요.”
“좋군요.”
서우진은 망설이지 않고 종이를 살펴보았다.
이곳에 있는 18명을 제외하고 총 80명의 용사가 적혀 있었다.
이름과 위치, 그리고 놀랍게도 등급과 직업까지.
서우진조차 모르는 정보가 대부분이었다.
“…이걸 다 파악하고 있었습니까?”
“당연하죠. 정보로 먹고사는 입장에서, 지금 용사들보다 중요한 존재가 또 어디 있다고.”
틀린 말은 아니다.
딱히 정보 조직들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용사에 대한 소문을 궁금해 하는 시대였으니까.
저들이 이 정도로 파악하고 있는 건 그녀의 말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요한에게도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아, 그건 나중에 직접 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좀 전에 서우진이 했던 말의 복수일까?
아샨타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해 보였다.
“그게 무슨…….”
“저희도 함께 움직일 거라서요.”
안 된다.
아니, 안 된다기보단 싫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또 디아로크와 동행한다는 게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아샨타는 그런 서우진의 마음은 신경도 쓰지 않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쩔 수 없어요. 요한의 명령이니까.”
“요한이 말입니까?”
“네.”
그 말에 서우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가 아는 요한은, 쓸데없는 짓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아샨타에게 서우진과 함께 움직이라는 명령을 내렸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게 분명하다.
‘저놈이 문제지.’
하필이면 그녀의 옆에 디아로크가 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둘만 가는 겁니까? 아니면 저 녀석도?”
서우진이 슬쩍 옆을 쳐다보며 물었다.
“쯧.”
그 시선을 느낀 디아로크가 혀를 차며 서우진을 노려봤다.
“나도 마음에 안 든다.”
“그럼 따라오지 말든지.”
입을 다문다.
서우진은 그런 디아로크를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살펴봤다.
괜히 눈을 피하는 것이 확실히 어색한 모습이었다.
“아무튼!”
그때, 아샨타가 재빨리 끼어들며 서우진의 관심을 끌었다.
그게 더 이상하긴 했지만, 서우진은 애써 모른 척하며 고개를 돌렸다.
“저희는 요한의 명령대로 서우진 씨를 따라 다녀야 하니까, 그렇게 아세요.”
왠지 다급해 보이는 그녀의 음성에 서우진이 픽- 하고 웃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꼭 그렇게 해야겠다니, 어쩔 수 없이 허락을 할 수밖에.
‘저 녀석은 잘 감시하면 되겠지.’
요한도 이 일이 얼마나 중대한 사항인지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디아로크를 동행시킨 것엔 타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서우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샨타의 표정이 밝아졌다.
“흠흠.”
디아로크 역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에 드는 눈치였고.
“그럼 조금만 기다리세요. 안쪽에 인사만 하고 바로 나올 테니.”
“저도 들어가서 얘기 좀 나눠보면 안 될까요?”
아샨타가 다시 한 번 호기심 서린 눈빛으로 부탁을 해왔다.
“안 됩니다.”
하지만 서우진은 거절했다.
괜히 소개시켜 줬다가는 시간이 지체될 것이 뻔했다.
특히 수다스럽기 그지없는 이지아와 아샨타가 만난다면?
‘오늘 하루는 종치겠지.’
아무리 빨라도 오늘 저녁은 되어야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았으니, 서우진은 단호하게 거절을 하곤 혼자 주둔지 안으로 돌아갔다.
* * *
확실한 건 하나다.
누군가 신궁에서 정보를 빼갔고, 그것이 퍼진다면 더없이 커다란 혼란이 도래한다는 것.
아그나는 절대 그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굳이 황제의 명이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범인을 잡아낼 작정이었다.
‘용사들은 위험해.’
선조들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용사를 폐기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해 두었던 것일 테고.
만약 용사들이 이 세계에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면, 본래의 질서는 무너지고 새롭게 세워질 것이다.
제국은 힘을 잃고, 왕국은 짓밟히며, 백성들은 그들을 숭앙할 게 분명하다.
그 과정에서 용사의 폐기를 계획한 자신들이 살아 있을 가능성은 없었다.
‘방법은 충분해.’
애초에 소환 때부터 그들의 머릿속에 폭탄을 심어두었으니까.
하지만 타이밍이 꼬여 버렸다.
만약 용사들이 강림 전쟁 이전에 그 계획을 알게 된다면…….
‘그전에 찾아서 막아야 한다.’
이를 악다문 아그나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느긋하게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는 늙은이 한 명이 보였다.
“다리엘.”
검공이었다.
그는 눈까지 감은 채로 손에 든 차를 음미하고 있었다.
“이번 일은 절대 실패해선 안 된다. 폐하의 진노가 나로 끝나진 않을 테니까.”
“…알고 있다.”
다리엘이 찻잔을 내려놓는다.
평온한 표정이었지만, 그 눈동자는 분노로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누구인지 짐작은 가나?”
“흐음, 글쎄…….”
아그나의 물음에 다리엘이 잠시 고민하다 오히려 되물었다.
“네 생각은?”
“서우진.”
그녀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
서우진이 범인이라고 확신하는 표정이었다.
“서우진이라… 그 검귀가 키워냈다던 애송이 말이로군.”
“그렇게 부르기엔 너무 컸지. 네가 상대하지 못하는 아르데타인도 놈이 죽였으니까.”
다리엘은 게랄드마저도 홀로 상대할 수 없어, 크루시엘의 정예 암살자들과 힘을 합쳐 싸웠다.
그마저도 게랄드는 온전하지 않은 상태였고.
그렇게 해서야 간신히 놈을 해치울 수 있었다.
아르데타인은 그런 게랄드를 아득히 넘어서는 힘을 지닌 존재다.
그리고 서우진은 그런 괴물을 죽인 것이고.
“확실히 이젠 애송이라 부를 수 있는 수준이 아니군.”
다리엘은 순순히 아그나의 말을 인정했다.
“어쨌든 내 생각도 너와 같다.”
“…그 망할 놈이 의심된다는 뜻이지?”
“그래.”
다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느껴진 기운은 마력이 아니었다. 워낙 꽁꽁 숨겨진 탓에 느끼기는 힘들었지만.”
그날의 기억을 떠올려 봤다.
직접적인 공격을 받지 않아 확신을 할 순 없었지만, 마력이나 마기와는 완전히 다른 기운이었다.
“이전에 그 아이에게서 느꼈던 것과 아주 비슷했지.”
찰나의 순간, 아주 미약하게 느꼈다.
“역시…….”
아그나가 이를 갈았다.
자신과 다리엘이 동시에 의심하는 사람이라면, 확실하다고 해도 무방했다.
하지만 이내 들려온 다리엘의 음성이 그녀의 마음을 가라앉혔다.
“확신하지는 마라. 정보를 다룬다는 녀석이 개인의 감정에만 집중해서야, 쯧쯧.”
그 말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서우진에게 너무 집착한 나머지 시야가 너무 좁아졌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젠장.”
아그나가 욕설을 내뱉었다.
저 망할 늙은이에게 조언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도움이 된 것은 사실.
“고맙군. 덕분에 머리가 식었어.”
아그나는 심호흡하곤 책상에 앉아 서류더미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래도 놈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것만은 부정할 수 없으니, 내가 좀 뒤를 캐볼까?”
다리엘이 은근히 물어왔다.
아무래도 속에 다른 뜻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아그나는 그 사실을 눈치챘지만, 짐짓 모른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리엘이 직접 나서서 서우진을 쫓는다면, 꽤나 그럴싸한 증거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몰랐으니까.
“지금 서우진은 C-71 주둔지에 있다.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가보든지.”
대수롭지 않게 툭- 내뱉은 말.
그것을 들은 다리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너희 애들 몇 명 데려가도록 하지.”
“그러던지.”
아그나가 서류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대답하자, 다리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은 소식을 가져오마.”
남아 있는 차를 단번에 털어 넣은 그가 몸을 돌려 방을 빠져나갔다.
“…서우진.”
혼자 남은 아그나가 그 망할 이름을 속삭였다.
다른 평범한 용사들과는 여러 의미로 다른 존재.
“이번에야 말로 네놈이 감추고 있는 게 무엇인지 밝혀내 주마.”
크루시엘뿐만 아니라 제국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라도.
아그나의 눈동자가 불타올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