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03)
403화.
수호자들은 떠났다.
서우진을 향해 이를 갈고 분노를 표출하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 어떤 적대적인 행동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순순히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서우진은 가만히 서서 주변을 둘러보다, 표정을 굳혔다.
시체, 시체, 시체…….
서우진의 것과 비슷한 검은색의 코트를 입고, 얼굴을 가린 이들.
크루시엘의 암살 요원들이었다.
200구가 넘는 시신이 서우진의 가슴을 무겁게 만들었다.
비록 자신이 저지른 일이긴 했지만, 죄책감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기분 진짜 더럽네.’
새삼 제국과 수호자들을 향해 짜증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들만 아니었다면…….
‘굳이 손에 의미 없는 피를 묻힐 필요는 없었을 텐데.’
한숨을 내쉰 서우진이 몸을 돌렸다.
뒤쪽에 서 있던 김태진, 박진한, 임태은의 모습이 보였다.
“거기 서서 뭐하냐?”
무거운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피식- 웃으며 물었다.
하지만 대답이 들려오지는 않았다.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두려운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서우진이 입맛을 다셨다.
“쩝, 할 거 없으면 와서 나나 좀 도와라. 우두커니 서 있지만 말고.”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움직였다.
근처에 널브러져 있는 암살 요원들의 시체를 한 곳으로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한 구, 두 구, 세 구…….
서우진의 손에 의해 옮겨지는 시체들을 지켜보던 김태진이 문득 물어왔다.
“왜 정리를 하는 거지?”
도무지 서우진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뭐?”
“왜 그들의 시체를 정리해 주냐는 말이다.”
서우진이 반문하자, 다시 한번 물어왔다.
“흐음.”
그 말에 서우진이 머리를 긁적였다.
확실히 이들은 적이다.
아니, 적이었다.
서우진의 목숨을 노리고 쉴 새 없이 검을 휘두르다, 그 대가를 치른 것뿐이다.
서우진이 굳이 직접 나서서 시신을 수습해 줘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도 움직인다.
서우진은 시체와 김태진을 번갈아 보다, 입을 열었다.
“이 녀석들이라고 나랑 싸우고 싶어서 덤볐겠냐? 위에서 까라니까 깐 거겠지.”
크루시엘은 정보 조직이다.
그 누구보다 서우진의 강함을 잘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런 곳에 소속되어 있는 이들이, 과연 정말로 자신들이 서우진을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까?
‘아니겠지.’
저들의 역할은 단 하나였다.
수호자들이 공격할 틈을 만드는 것.
그 웃기지도 않는 이유 하나 때문에, 자신의 목숨까지 버려가며 몸을 내던진 것이다.
물론 아무런 소용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야말로 개죽음이지.’
스스로의 의지는 무시한 채, 명령에만 따르다 결국 죽음을 맞이한 이들이다.
비록 자신을 공격하긴 했지만, 서우진은 그들에게 아무런 악감정도 없었다.
그저 가련하고, 미안할 뿐.
“그러니까 최소한 짐승 밥은 되지 말라고 해주는 거다. 괜히 여기 뒀다가 마수들 배나 채워주는 꼴을 보고 싶진 않으니까.”
거기까지 말한 서우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와주기 싫으면 말아라. 어차피 내가 싼 똥이니, 내가 알아서 치우는 게 맞겠지.”
“내, 내가 도울게.”
서우진이 투덜거리자,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임태은이 소심하게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처음부터 돕고 싶었지만, 친구들의 눈치를 보느라 선뜻 나서지 못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더는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는지, 입술을 꽉 다물고 서우진을 돕기 시작했다.
그러자 김태진과 박진한 역시 한숨을 내쉬며 거들었다.
전장을 정리하는 그들의 표정은 무겁기 짝이 없었다.
* * *
“이전에도 말했지만, 당분간은 눈에 띄는 행동하지 말고, 여기서 레벨 올리는 것에만 집중해.”
“…제국에서 일을 벌이지 않을 거라 어떻게 확신하지?”
서우진의 말에 박진한이 물었다.
담담해 보이는 음성이었지만, 서우진은 그 안에 담겨 있는 불안감을 읽을 수 있었다.
“걱정하지 마라. 놈들은 더 이상 너희에게 신경쓰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확신하냐고. 네 말만 믿고 가만있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그는 서우진이 아니다.
오늘처럼 작정하고 나선다면, 자신들만의 힘으로는 막아낼 수가 없었다.
수호자 세 명이 아니라, 그중 단 한 명만 나서도 결코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건 네 친구한테 물어봐라, 내가 왜 확신하는지.”
서우진이 턱짓으로 김태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박진한의 고개가 돌아갔다.
“…뭔데?”
너는 정말 알고 있냐는 듯한 표정.
“하아-”
갑자기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김태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고개를 끄덕였다.
“서우진의 말이 맞다. 저 녀석이 저토록 확신할 정도면, 더는 별일이 생기진 않을 거야.”
‘낙인’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는, 그 누구보다 김태진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서우진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명령을 내려도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였으니까.
저들에게도 ‘낙인’이 찍혔다면, 다시는 서우진을 향해 적대적인 행동을 취하진 못할 것이다.
“젠장, 뭐가 뭔지를 모르겠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 박진한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짜증을 냈다.
하지만 서우진과 김태진, 두 사람이 저렇게 말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게 분명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할 거다.”
이를 갈며 서우진에게 윽박을 질렀다.
“그러든지.”
물론 서우진은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말이다.
네 사람이 함께 움직이니, 시신의 수습은 금세 끝이 났다.
전투의 흔적은 여전히 가득했지만, 그것까지 치울 생각은 없었다.
“남은 건 병사들에게 맡겨라. 잠시 후면 돌아올 테니.”
“어, 그래. 부탁 좀 한다고 전해줘라.”
김태진의 말에 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어디로 갈 거냐?”
“일단은 자리를 피한 두 사람을 먼저 찾아야지.”
서우진은 디아로크와 아샨타를 피신시켰다.
그때는 수호자들을 상대할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만약을 대비해 도망치라 했는데, 일이 이렇게 끝날 줄 알았다면 그냥 둬도 되었을 것 같았다.
“내가 그걸 묻는 게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을 텐데?”
김태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앞으로의 계획 말이다. 어떻게 할 생각이냐?”
“신경 꺼. 네 레벨 올리는 거에나 집중하라고 했지?”
“그래도 계획을 알아야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해…….”
“까불지 말라고.”
말을 끊은 서우진의 음성은 서늘했다.
움찔하는 김태진의 귓가로 서우진의 말이 이어졌다.
“그걸 네가 알면? 레벨 업에 온전히 집중이나 할 수 있겠냐? 거기에 신경쓰여 헛짓거리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안 그래?”
맞는 말이다.
직접 앞으로 나서는 것보다, 뒤에서 일을 계획하고 사람을 부리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게 김태진이었다.
만약 서우진이 더 자세한 계획을 가르쳐 주었다면, 분명 자신이 중간에 나서서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터.
그것은 곧 성장의 저하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레벨이나 올려. 보니까 100레벨까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하나 남았다.”
“오, 그래? 벌써 99레벨이라니, 역시 S급이 빠르긴 하네.”
서우진이 감탄했다.
물론 듣는 입장에서는 그리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감탄하는 놈은 100레벨을 뛰어넘은 지 한참 지난 괴물이었으니까.
“기만으로밖에 안 들리는군.”
박진한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옆에서 코웃음을 쳤다.
덕분에 서우진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는데 말이지.”
서우진은 진심으로 김태진의 성장 속도에 놀란 것이었다.
아카데미라는 온실 속에서 귀하게 자란 녀석이, 계수지나 구동환 같은 동료들과 비슷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으니까.
아무리 S급이라고는 하지만, 경이로운 속도였다.
“3개월. 그 정도면 몇 레벨까지 찍을 수 있을 것 같냐?”
“3개월?”
그 기간에 무슨 뜻이 있는지 생각해 보던 김태진은 이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변종 마수들의 경험치가 쏠쏠하더군. 3개월이면 못해도 115레벨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어마어마하다.
만약 정말로 115레벨이 된다면, 3개월 후에는, 마공을 제외한 수호자들도 김태진을 홀로 감당할 순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서우진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부족한 모양인데.”
그것을 본 김태진이 살짝 의기소침한 기색을 보였다.
“응? 아니. 부족하다는 건 아니야.”
3개월 후면 김태진과 같은 수준의 용사들이 적어도 다섯 명 이상은 나올 것이다.
100레벨을 돌파한 용사들은 부지기수로 나올 테고.
그 정도라면 강림 전쟁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하지만 서우진은 불안했다.
너무 많은 변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의 강림 전쟁과는 다를 것 같다.’
시기도 예상보다 훨씬 일렀고, 중간에 백시우라는 마왕도 탄생했었다.
사도들도 서우진에게 떼죽음을 당했으며, 그 와중에도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 추종자도 있었다.
‘사자라고 했었지?’
분명 놈은 마왕의 추종자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놈은 부활하지 않았다.
성유라 같은 존재도 되살아난 마당에, 사자가 부활하지 못했다?
그보다는 몸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신빙성이 높았다.
‘어쩌면 변종 마수라는 것도 놈의 작품일 수도 있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가장 큰 변수는 따로 있었다.
‘바로 나지.’
용사임에도 ‘마왕’이라는 직업을 가졌으며, 사도들에게 ‘혼돈의 왕’이라 불리는 존재.
그보다 더 이질적인 변수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그 모든 것을 생각해 보면, 이번 마왕의 강림은 이전과 꽤 다른 방식으로 전개될 확률이 컸다.
그러니 115레벨이라는 수준도 불안할 수밖에.
하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괜한 말로 불안감을 조성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내가 더 강해지면 돼.’
용사들의 힘이 부족하다면, 서우진이 더욱 강해져서 막으면 된다.
“뭐, 강하면 강할수록 좋은 거니까. 웬만하면 한 120까지는 찍으려고 노력해 봐라.”
서우진이 툭- 내뱉은 말에, 김태진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말처럼 쉬울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 너희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까, 게으름 부리지 말고.”
서우진은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할 말도 다 전했고, 수호자들도 처리를 했으니 더는 이곳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럼 우린 여기서 레벨을 올리며 때를 기다리면 된다는 거냐?”
뒤에서 김태진의 물음이 들려왔다.
“그래.”
서우진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했다.
‘다른 일은 내가 한다.’
그러니 자신을 제외한 용사들은 성장에만 주력해 주면 충분하다.
‘살기 위해서.’
마왕이든, 사도든, 이 세계든.
고향에도 돌아가지 못한 채 이 낯선 세계에서 개죽음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서우진은 입술을 깨물며 혼돈기를 끌어올렸다.
콰아앙-!
땅을 박차고 질주했다.
아샨타와 디아로크가 사라진 쪽을 향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