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06)
406화.
서우진이 가장 분노했을 때는 언제일까?
지금껏 화를 낸 적은 적지 않았다.
백시우, 성유라, 루운발리, 레이나 등등.
수많은 전투 속에서 분노하고, 화를 폭발시켰다.
하지만 서우진은 단언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가장 분노한 건 바로 이 순간이라는 것을 말이다.
고오오오오오오오오-!
별다른 스킬은 사용하지 않았다.
오직 혼돈기와 ‘카 라니엘’만을 사용할 뿐이었다.
‘스킬을 사용하면 너무 쉬우니까.’
최대한 고통스럽게.
그리고 최대한 잔혹하게.
사자에게는 결코 편안한 죽음 따위를 내려주고 싶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살려둔 채로 수천 조각을 내버릴 생각이었다.
“비켜라.”
쩌어어어어억-!
막대한 양의 혼돈기가 담긴 ‘카 라니엘’이 휘둘러지자, 앞을 막고 있던 변종 마수들이 반으로 쪼개지기 시작했다.
자비는 없다.
천여 마리의 변종 마수 뒤에 숨어 사태를 지켜보고 있는 사자를 죽이려면, 이딴 놈들에겐 단 1초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카 라니엘’이 허공에 선을 그린다.
한 개… 열 개… 백 개… 천 개…….
그저 찰나의 순간 동안, 수천, 수만 개의 선이 허공에 새겨졌다.
“비키라고.”
촤아아아아아아악-!
전신이 잘려 나간 변종 마수들이 피를 폭포처럼 뿜어대며 쓰러졌다.
대체 몇 마리나 죽은 것일까?
서우진은 굳이 일일이 셀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길을 막고 있는 장애물에 불과한 놈들이었으니까.
조금이라도 빨리 치우고, 진짜 목표인 사자를 붙잡아야만 했다.
그 흉포한 기세 때문일까?
이성이 존재하지 않는 변종 마수들조차 쉽사리 달려들지 못하고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막아라.”
하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사자의 명령에, 변종 마수들은 다시 움직였다.
엄청난 숫자의 변종 마수들이 죽어 나자빠졌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놈들이 훨씬 많았다.
“다리를 붙잡고, 피로 놈의 시야를 빼앗아라. 팔이 잘린다면 이빨로 물어뜯고, 목이 잘린다 해도 들이받아라. 마지막 숨이 끊어질 때까지 놈을 막아서라.”
잔혹한 명령이었다.
하지만 변종 마수들은 따랐다.
놈들은 사자의 손으로 만들어진 병기였으니까.
어떻게든 서우진의 체력을 조금이라도 소진시키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자신들이 받은 명령처럼, 완전히 죽는 그 순간까지 서우진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쯧.’
너무 많았다.
방어를 도외시한 채 오직 죽이기 위해 달려드는 변종 마수들은, 마치 끊임없이 몰아치는 파도와도 같았다.
죽여도, 죽여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쯧.’
서우진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대로 계속 ‘카 라니엘’만 휘둘러도 몰살시킬 순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자신이 도저히 상대할 수 없을 것이라 판단이 되면, 사자는 변종 마수를 방패 삼아 도망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둘 순 없지.’
서우진은 차분히 놈들을 베어 넘기며, 혼돈기를 모았다.
분노로 머리가 뜨거워지기는 했지만, 남아 있는 일말의 이성이 냉정을 유지시켜 주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끼야아아아악-!
순식간에 다섯 조각으로 나뉘며 쓰러지는 변종 마수 사이로, 서우진은 사자를 노려보았다.
검은 쉴 새 없이 움직였지만, 시선은 단 한 순간도 사자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을 알아차린 놈이 눈에 호선을 그렸다.
‘어디 한번 와보거라.’
그렇게 도발하는 듯했다.
서우진은 당장에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분노를 간신히 잠재우며 차분하게 때를 기다렸다.
가장 짧은 시간, 가장 많은 피해를 입히고, 사자에게 닿을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을 때까지.
그렇게 몇 마리의 변종 마수를 베었을까?
적어도 백오십 마리 이상을 죽였을 때쯤.
서우진의 눈이 번뜩였다.
‘지금이다.’
꾹꾹- 눌러 담았던 혼돈기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그리고 동시에 서우진의 입이 열렸다.
“나락천공검.”
스킬이 발동됐다.
허공에서 검은색의 거대한 구멍이 만들어지며, 그 안에서 끔찍할 정도의 거검(巨劍)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목표는 서우진과 사자 사이에 있는 모든 변종 마수.
“길을 열어라, 이 징글징글한 새끼들아.”
거대한 검은 마치 운석처럼, 그대로 땅을 향해 내리꽂혔다.
—–!!!
폭발음은 없었다.
아니, 인간의 청력으로 감지하기엔 너무도 커서 오히려 들리지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
그저 검은 구멍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재앙은, 지상을 지옥으로 뒤바꾸고 있었다.
짓이겨지고, 터지고, 압축됐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변종 마수가 거검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갈기갈기 찢겨져 나갔다.
광활했던 대지는 폭발과 함께 들끓어올랐다.
붉게 녹아버린 암석이 액체가 되어 흘렀고, 화산이라도 터진 것 같은 광경을 연출했다.
화아아아아아아아악-!
뒤늦게 후폭풍이 들이닥쳤다.
서우진의 살갗이 발갛게 익어버릴 정도로 뜨거운 공기가 주변을 휩쓸었다.
끼에에에에에에에엑-!
변종 마수들이 비명을 질렀다.
웬만한 용사들의 공격도 받아낼 정도로 튼튼하던 녀석들이, 바람에 섞인 열기를 견뎌내지 못하고 녹아내렸다.
그야말로 인세에 펼쳐진 지옥도, 그 자체였다.
서우진은 그 와중에도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은 채, 오직 사자만을 노려봤다.
씨익-
미소가 지어졌다.
방금 전까지 둘 사이를 빽빽하게 가로막고 있던 장애물들이 모두 사라졌던 것이다.
“열렸다.”
아직 살아 있는 변종 마수의 수는 결코 적지 않았지만, 최소한 더는 앞을 가로막는 놈이 존재하지는 않았다.
서우진의 미소를 본 사자가 몸을 흠칫- 하며 떨었다.
아직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음에도, 그 살기에 놀란 것이다.
서우진은 미소를 지우고, 아무런 감정도 내보이지 않는 얼굴로 걸음을 내디뎠다.
타악-
동시에 사자가 몸을 돌리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도망을 쳐볼 생각인 것 같았다.
하지만…….
“어림없다.”
서우진은 결코 놈을 곱게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신속.”
텅텅- 비어버린 혼돈기를 억지로 쥐어짜 내며, 스킬까지 사용했다.
서우진의 신형이 한줄기의 빛이 되어 사자를 향해 날아갔다.
“삭월풍!”
그것을 느낀 사자가 뒤를 향해 잿빛 바람을 쏘아냈다.
이전의 서우진이었다면 결코 받아낼 수 없었을, 가공할 위력의 공격.
하지만 지금의 서우진은 예전과 다른 존재였다.
그저 ‘카 라니엘’을 한 번 휘두르는 것만으로 바람을 잘라냈다.
사자의 표정이 굳어졌다.
설마 자신의 공격이 이토록 쉽게 막힐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지금의 서우진은 그가 두려워하던 ‘마왕화’를 한 상태가 아니었기에, 충분히 통할 것이라 여긴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짧은 착각의 대가는 컸다.
바람을 잘라낸 ‘카 라니엘’이 바닥을 쓸며 휘둘러졌다.
서걱-!
예리한 절삭음과 함께 피가 튀었다.
“크으윽!”
사자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오며, 빠르게 도망치던 모습 그대로 땅을 굴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쪽 다리가 잘려 나갔으니까.
아무리 초극의 경지에 이른 존재라 할지라도, 한쪽 다리로는 달릴 수가 없었다.
서우진은 그런 사자의 머리맡에 섰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냉막한 눈동자를 본 사자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래도 내가 죽어 있던 시간이 길었나 보다.”
서우진은 이전의 그가 알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너는 나를 못 이겨.”
“그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혼돈의 왕’이여.”
이전에도 감당을 하지 못하고 도망을 쳤었으니까.
물론 그때는 서우진이 ‘마왕화’를 한 상태이긴 했지만, 결국 달라지는 건 없었다.
사자가 서우진을 감당할 수 없다는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혼돈이고 지랄이고.”
그딴 게 더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서우진에게 가장 중요한 건, 사자를 어떻게 해야 가장 고통스럽게 죽일 수 있는가였다.
그것을 눈치챈 것일까?
사자가 입을 열었다.
“거래하자. 나를 놓아준다면, 네가 궁금했던 것들을 모두 알려주겠다.”
서우진이 알고 싶어 하는 정보는 많았다.
용사의 폐기 방법이라든지, 그걸 막을 수 있는 대책이나,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마법 같은 것들.
하지만 그중 사자가 대답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아예 하나도 없는 것도 아니긴 했지만…….
“필요 없어.”
지금의 서우진은 그딴 정보보다, 사자의 죽음을 더 원했으니까.
그 대답에 놈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기껏 죽음에서 돌아왔건만…….”
이룬 게 없었다.
기껏해야 용사 세 명을 죽이고, 제국에 무의미한 희생을 낳은 게 전부.
“꽤 오랜 시간 동안 준비한 것치고는 너무도 빈약하군.”
그 말에 서우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빈약하다?”
고개를 돌려 세 구의 시신이 있는 쪽을 쳐다봤다.
주변 일대가 완전히 박살난 와중에도, 세 구의 시신이 있는 쪽은 일말의 영향도 가지 않고 온전한 상태였다.
피를 흘리며 죽어 있는 용사들의 시신을 본 서우진이 이를 악물었다.
“웃기는군.”
다시 사자를 쳐다봤다.
방금 전의 무감정하던 눈빛과는 전혀 달랐다.
당장에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분노가 이글거렸다.
“너희의 목숨 수천, 수만보다, 나는 저 녀석들 한 명의 목숨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빈약하다고?”
분노와 더불어 흘러나오는 혼돈기의 크기가 점점 더 커졌다.
살아남은 변종 마수들이 차마 달려들 생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이런 쓰레기 같은 벌레 새끼가 감히 누구 보고…….”
이 세계의 거짓말에 뒤통수를 맞은 것도 화가 나는데, 심지어 목숨까지 잃은 이가 나왔다.
서우진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기대해라. 이 세계는 잘못된 선택과 행동을 저질렀으니,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서우진이 한 걸음 내딛으며 사자에게 다가갔다.
“물론 너는 그것을 못 보겠지만.”
세상 전부를 뒤덮고도 남을 거대한 악의(惡意)가 사자를 향해 쏟아졌다.
* * *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아샨타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미친놈이 제대로 한바탕 한 모양이군.”
디아로크 역시 당황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아예 지형이 변해 있었다.
평범한 평야였던 곳에 기다란 협곡이 생겨 있었던 것이다.
마치 거대한 검을 꽂아 넣은 것처럼 말이다.
그 주변에는 끔찍할 정도로 많은 피와 살점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아무래도 변종 마수들인 것 같은데, 도무지 몇 마리였는지 짐작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디아로크는 마력을 끌어올려 주변을 경계하며, 아샨타와 함께 앞으로 향했다.
서우진의 기운이 느껴지는 쪽이었다.
그렇게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조금 걸어가자, 서우진의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우두커니 서서 가만히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체?”
디아로크는 서우진이 바라보고 있는 것을 확인하곤 얼굴을 굳혔다.
“넌 안 보는 게 좋겠다.”
“뭔데요? 대체 뭔데?”
아샨타가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빼꼼- 했지만, 디아로크는 손을 들어 그녀의 시선을 막았다.
끔찍하다.
대체 무슨 짓을 해야 한 명의 인간을 저 지경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일까?
두 사람의 기척을 눈치챈 서우진이 고개를 돌려, 이쪽을 쳐다봤다.
흠칫-
디아로크가 몸을 움츠렸다.
서우진의 모습은 마치…….
‘마왕 같군.’
디아로크는 자신도 모르게 두려움을 느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