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07)
407화.
사자는 죽었다.
서우진이 장담한 것처럼, 평범한 죽음은 아니었다.
디아로크가 차마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로, 참혹한 상태였던 것이다.
서우진은 전신에 놈의 피를 가득 묻힌 채, ‘카 라니엘’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콰앙-!
갑자기 그 옆에 폭발이 일어났다.
디아로크의 마법이었다.
그는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사자의 시체를 완전히 터트려 버렸다.
아샨타를 위한 조치인 것 같았다.
“괜찮냐?”
눈살을 잔뜩 찌푸린 디아로크가 물어왔다.
하지만 서우진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괜찮지 못했으니까.
사자를 수천 개의 조각으로 다져 놨음에도, 전혀 기분이 나아지질 않았다.
오히려 가슴속에 품은 분노만 더욱 거대해질 뿐이었다.
서우진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잠깐 기다려라.”
걸음을 옮겨 세 구의 시신이 있는 쪽으로 이동했다.
끔찍한 전투가 벌어졌지만, 시신에는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질 않았다.
서우진이 최대한 신경을 썼기 때문이었다.
남아 있던 변종 마수들이 그 사실을 깨닫고, 시신들을 이용하는 바람에 전투가 조금 지저분해지기는 했지만…….
어떻게든 지켜냈다.
서우진이 그들의 머리맡에 앉았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채, 눈도 감지 못하고 죽어버린 용사들의 눈을 하나씩 감겨주었다.
‘첫 희생자인가?’
서우진의 손에 죽은 백시우와 성유라를 제외하면, 이번이 처음으로 발생한 희생자들이었다.
그 둘은 죽을 이유가 충분했지만, 이들은 아니다.
이런 곳에서 죽어서도 안 됐고, 이렇게 고통스럽게 죽어서는 더더욱 안 됐다.
그들을 향한 죄책감이 왈칵- 밀어닥쳤다.
서우진이 미안해할 일은 아니다.
죄는 사자가 지은 것이고, 이 세계가 지은 것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서우진은 그들에게 미안했다.
구해주지 못해서.
조금 더 빨리 움직이지 못해서.
이유는 단순했다.
하지만 그 무게감까지 가볍지는 않았다.
으드득-
이를 악다문 서우진이 천천히 이진호의 시신을 들어올렸다.
“…설마, 용사들인가요?”
서우진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아샨타가 물었다.
그러자 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아샨타는 솔직히 이번 일을 쉽게 생각했었다.
사자와 변종 마수들이 강력하다고는 하지만, 딱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녀의 곁에는 서우진과 디아로크라는 절대적인 강자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 용사가 죽어 있다.
그것도 세 명이나.
강림 전쟁이 시작하기도 전에 전사자가 나온 것이다.
이건 실로 중대한 위협이었다.
아직 온전히 성장하지 못한 용사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퍼진다면, 세상은 혼란에 잠식되고 말 터.
서우진은 눈동자를 떨고 있는 아샨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조금 도와주시겠습니까?”
세상이 혼란에 빠지든 말든.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서우진은 이 시신들을 양지 바른 곳에 묻어주고, 넋을 기리는 게 훨씬 더 중요했다.
“아, 알겠어요.”
아샨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디아로크의 옆구리를 찔렀다.
함께 거들라는 뜻이었다.
이번에는 디아로크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움직여 주었다.
세 사람의 어깨에 시신이 한 구씩 둘러메졌다.
“이 근방에서 가장 경치가 좋고, 아름다운 곳이 어딥니까?”
서우진이 물었다.
그러자 아샨타는 빠르게 주변의 지형을 떠올렸다.
“저를 따라오세요.”
다행히 적당한 곳이 기억났는지, 아샨타가 먼저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세 사람이 한참을 걸어 도착한 곳은 나지막한 언덕이었다.
울창한 숲도 없고, 신비로운 풍경도 없는, 그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장소.
하지만 그래서인지 더욱 편안한 느낌이었다.
목숨을 잃은 용사들을 안치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
그곳에 도착한 서우진은 가장 햇빛이 잘 드는 곳으로 향했다.
디아로크가 마법으로 땅을 파려 했지만, 서우진은 그것을 만류했다.
그러곤 천천히 자신의 손으로 직접 땅을 파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흙이 천천히 걷어지며, 깊은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아샨타와 디아로크는 가만히 서서 그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무덤을 만드는 서우진의 뒷모습이 너무도 슬퍼 보였기 때문이다.
아무런 말도 없이 땅을 파던 서우진이, 시신을 한 구, 한 구 들어 그 안에 살짝 내려놓았다.
“후우-”
서우진의 능력을 생각하면, 결코 힘들 리가 없는 일.
그런데도 서우진은 잔뜩 지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마지막은 내가 하지.”
매장이 완전히 끝나자, 디아로크가 나섰다.
“스톤 월.”
드드드드-!
기초적인 마법이 발현되자, 무덤 앞에 자그마한 돌 벽이 만들어졌다.
“비석으로 사용하면 될 거다.”
서우진은 고맙다는 듯 고개를 한번 숙여 보이고는, ‘카 라니엘’을 뽑았다.
카가가각-!
예리한 검날에 의해 돌 벽에 글씨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부디 평안하길.]비록 고향 땅에 묻히지는 못했지만, 이곳에서만큼은 평안하길 바랐다.
“아샨타.”
글씨를 새긴 서우진이 부르자, 그녀는 무슨 말을 할지 예상이라도 한 듯 입을 열었다.
“이진호, 이현우, 이낙준. 그들의 이름이에요.”
서우진은 비석에 이름을 새겨 넣었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길 바란다는 염원을 담아서.
“길드에 이야기해 둘게요. 이곳을 보존하고, 저들에 대한 이야기를 반드시 기록해 두라고.”
“고맙습니다.”
아샨타의 배려에 서우진이 허리를 숙였다.
언젠가 모든 일이 끝나고.
이곳에 묻힌 용사들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전해지길 바랐다.
그 정도가 서우진이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보상이었다.
“다음은 어디입니까?”
“…네?”
갑작스러운 물음에 아샨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리가 가야 할 다음 주둔지. 어느 쪽입니까?”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하는 서우진이었지만, 아샨타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시려왔다.
그것이 서우진의 슬픔에서 기인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입술을 한 번 깨물고는 대답했다.
“남쪽이요. 여기서 반나절 거리에 있어요.”
“그럼 출발하죠.”
서우진이 몸을 돌려 무덤을 떠났다.
언제 다시 이곳을 방문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다시 올 땐, 다른 용사들과 함께일 것이라고 다짐했다.
서우진은 그렇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다음 주둔지로 향했다.
* * *
“그러니까 서우진은 아니다?”
아그나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묻자, 다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놈이 의심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그 어떤 증거도 찾지 못했다.”
너무도 태연한 모습에 아그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붙잡아 오기라도 했어야지. 수호자가 세 명이나 나섰는데, 빈손으로 돌아와?”
웬만한 왕국과 전쟁을 벌여도 이만한 전력을 동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250명의 암살 요원까지 지원해 주었건만, 성과가 전무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놈의 옆에는 레닌스탕의 공작이 있었으니까.”
“…불에 미친 변태 마법사?”
“그래. 양국의 관계를 생각해서라도, 쉽사리 겁박할 수 없었느니라.”
다리엘의 말에 아그나하 헛웃음을 터트렸다.
“우리가 그딴 걸 언제 신경이나 썼다고.”
레닌스탕이 제국과 우호적인 관계인데다, 강대국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하지만 제국이 그들의 눈치를 봐야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렇다는 건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뜻이다.
“서우진이 생각보다 강했나 보군.”
다리엘이 움찔했다.
그것을 본 아그나가 미소를 지었다.
“설마 너희 셋이 한 번에 덤벼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나?”
“…헛소리는 적당히 해라.”
대답하는 다리엘의 표정이 불편해졌다.
“디아로크만 없었어도 충분히 데려올 수 있었다.”
조금 전과 같은 말이었지만, 아그나는 다르게 받아들였다.
“셋으로는 그 둘을 이길 수 없었나 보군.”
아그나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서우진과 디아로크.
그 둘이라면 수호자가 세 명이라 해도 함부로 승리를 점칠 수 없었을 것이다.
저 자존심 강한 다리엘이 저렇게 변명하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그런 게 아니래도. 그저 양국의 관계…….”
“그래, 그런 걸로 하자.”
아그나는 다리엘의 말을 무시하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암살 요원의 피해가 조금 속 쓰리긴 했다.
하지만 아그나는 애써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 정도는 얼마든지 다시 육성할 수 있으니까.
“후우-”
하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며 방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서우진이 아닌 건 확실하고?”
“…그래. 만약 그랬다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데려왔을 게다.”
아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아는 다리엘이라면 분명 그리했을 테니까.
“그럼 대체 누구일까…….”
용사 폐기 계획을 빼돌린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서우진이다.
하지만 직접 확인을 한 다리엘이 아니라고 하니, 다른 쪽도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남은 건 추종자 놈들뿐인데.”
아그나는 찜찜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사도들 중에는 그런 일을 저지를 만한 놈이 존재하긴 했다.
하지만 신궁에 마기를 지닌 존재가 발을 디딘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다.
다른 건 몰라도, 마기에 대한 방어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장소였으니까.
한 톨의 마기라도 지닌 존재라면, 근처에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신궁의 한복판에서 정보를 빼낼 때까지 몰랐다?
그건 불가능하다.
‘뭔가 있어.’
서우진과 추종자를 지우면, 남아 있는 용의자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런 능력이 있는 존재가 없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겠군.’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서우진이 아닌 건 확실…….”
“그렇대도!”
아그나의 집요한 질문에 다리엘이 얼굴을 찌푸리며 소리를 질렀다.
“끄응.”
그 격한 반응에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
‘결국엔 자그마한 단서라도 발견해야 한단 뜻인데.’
그게 쉬울 리가 없었다.
아그나는 어느새 다 피운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던져 놓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나는 다시 신궁 내부를 둘러봐야겠다. 뭔가 놓친 게 있을 것…….”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아그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지금은 방해를 하지 말라 했을 텐데?”
다리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이다.
그 시간은 황제가 찾아오지 않는 이상, 절대 방해를 해선 안 된다.
그런데도 노크할 정도라면 한 가지 경우밖에 없었다.
“코드 블랙의 소식이 도착했습니다.”
“…젠장.”
코드 블랙.
그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들어와.”
문이 열리고, 요원 한 명이 다급한 모습으로 들어왔다.
“내놔.”
아그나는 지체하지 않고 그의 손에서 종이를 받아 들었다.
그러곤 이를 갈았다.
“X발.”
다리엘 역시 코드 블랙이라는 말을 듣곤 표정을 굳히고 있다가, 아그나를 향해 물었다.
“누구지?”
“사자.”
“피해는?”
“세 명이다.”
다리엘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돌아버리겠군.”
아그나는 손에 쥔 종이를 꾸기며 새로운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벌써 다섯 명을 잃었군. 강림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말이야.”
다리엘이 허탈하게 웃었고, 아그나는 담배를 크게 한 번 빨곤 연기를 내뱉었다.
“후우- 폐하께 보고하러 가야겠다.”
“같이 가지.”
아그나는 다리엘과 함께 무섭도록 딱딱해진 얼굴로 방을 나섰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코드 블랙.
그것은 용사의 전사를 알리는 암호였으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