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10)
410화.
디아로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는 떨리는 눈으로 손에 든 서류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하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그곳에는 여전히 강림 전쟁 이후, 용사들을 폐기한다는 내용의 계획이 적혀 있었다.
결국 디아로크는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정말 사실이었다고?’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다.
그저 질 나쁜 농담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그냥 웃고 넘겼다.
사실일 리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농담이나 헛소문이 아닌, 진짜였다.
서류에 찍힌 황제와 각 왕국 왕들의 인장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디아로크는 떨리는 손을 가까스로 부여잡고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서류를 살폈다.
[용사 폐기 계획서 : 적색 등급 기밀.]분노와 함께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정말 몰랐던 모양이네.”
서우진의 음성이 들려왔다.
디아로크가 고개를 들었다.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서우진의 얼굴이 보였다.
‘아니, 저건 담담한 게 아니야.’
가슴 깊숙한 곳에 모든 감정을 강제로 억누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폭발할지 몰랐으니까.
지금의 서우진은 그저 참고, 인내하고 있을 뿐이었다.
“…몰랐다.”
디아로크가 간신히 입을 열어 대답했다.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부끄러움.
용사는 이 세계를 돕기 위해 흔쾌히 소환을 허락한 이들이다.
그런데, 빌어먹을 새끼들이 그들의 등에 칼을 꽂을 계획부터 세우고 있었다.
이 세계의 일원으로써, 그리고 권력자의 하나로써.
도저히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
디아로크는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차마 서우진의 얼굴을 볼 용기도 나질 않았다.
“네 잘못도 아닌데 미안은 무슨.”
퉁명스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서우진의 말대로 잘못은 그가 아닌, 다른 이들이 저질렀다.
하지만 디아로크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어쨌든 자신도 이 세계에 속한 존재였고, ‘용사 소환 마법’에 한 손을 거든 마법사였으니까.
서우진이나 다른 용사들의 마음에는 차지 않겠지만, 자신만이라도 사과와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됐으니까 거기까지만 해라.”
서우진이 그런 디아로크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곤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툭- 쳤다.
“진짜로 사과하고, 대가를 치러야 할 놈들은 따로 있으니까 너까지 할 필요는 없다.”
서우진의 말에 디아로크가 입술을 짓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돕겠다.”
은혜도 모르는 놈들이 대가를 치르고, 눈물을 흘리며 사과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해서라도 조금이나마 속죄할 수 있도록 말이다.
서우진이 피식- 웃었다.
“그건 내가 부탁하고 싶은 말이야.”
디아로크는 초극의 경지에 오른 존재다.
그런 이가 돕는다면, 엄청난 힘이 되어줄 수 있을 터.
서우진은 디아로크의 말을 거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은 뭐지?”
디아로크는 이전의 태도를 버리고, 신중한 표정으로 서우진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쉬지 않고 용사들을 만나러 다닌 것도,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것일 터.
디아로크는 기꺼이 그 뜻에 참여하기로 하며,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도울 생각이었다.
“제국의 수도로 간다.”
“또?”
“잠입해서 정보를 빼내올 곳이 있거든.”
“…또?”
고작해야 한 달쯤 전에도 같은 일을 벌이지 않았던가?
“이번에는 신궁이 아니야.”
디아로크가 살짝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한 번 뚫린 신궁에 다시 한번 잠입한다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어디지?”
디아로크의 물음에 서우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하늘탑.”
“변종 마수의 수가 조금 줄어든 것 같지 않아요?”
아샨타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이동하며 고작 세 번밖에 마주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럴 수밖에요. 놈들을 만들어내던 사자가 죽었으니까.”
“아…….”
아샨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얼마 전, 서우진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은 터라 사자에 대한 이야기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사자나 변종 마수에 대한 사항이 위중하기는 했지만, 용사 폐기 계획은 그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일이었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임팩트가 적은 사자의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지워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럼 변종 마수는 완전히 사라지는 걸까요?”
사자가 죽었으니, 더는 놈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가 없었다.
심지어 서우진에게 천 마리가 넘는 개체수가 모조리 죽었으니…….
하지만 서우진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요. 저도 그건 잘 모르겠네요.”
예상대로라면 아샨타의 말대로 될 것이다.
하지만 서우진은 왠지 이것으로 끝난 것 같지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수가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놈들이 활보하고 있지 않은가?
‘좀 더 물어보고 죽일 걸 그랬나?’
사자를 거의 해체하다시피 조각내는 도중에, 몇 마디 물어보았다면 되었을 일이다.
용사들의 시신을 보고 이성을 잃고 행동한 것이 조금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서우진의 대답이 시원치 않자, 아샨타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설마 계속해서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얘긴가요?”
다시 물어왔지만, 서우진이라고 속 시원히 대답을 해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요한에게 말해 한번 알아봐야겠네요.”
결국은 정보 길드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끄응, 안 그래도 요즘 인력이 부족해서 힘들다고 하던데.”
서우진의 부탁 때문에 정보 길드 전체가 움직이는 상황이다.
요한부터 시작해 말단요원까지, 바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또다시 일감이 늘어나니, 아샨타가 걱정하는 것도 당연했다.
서우진은 슬쩍-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을 했다.
“인력이 부족하다면 내가 도울 수 있다.”
그때, 옆에서 입을 다물고 있던 디아로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응? 네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쳐다보자, 녀석이 어깨를 으쓱- 하며 입을 열었다.
“나는 레닌스탕의 하나밖에 없는 공작이다.”
그 한마디면 충분히 설명이 되었다.
레닌스탕은 이 세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대국이다.
그리고 디아로크는 그 왕국에서도 가장 강력한 힘이 있는 귀족이고.
녀석의 말 한 마디면, 자금이든 사람이든, 얼마든지 조달이 가능할 터였다.
서우진이 아샨타를 쳐다봤다.
디아로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냐는 물음이 담긴 눈빛이었다.
정보를 다루는 조직의 특성답게, 기밀을 유지해야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한 건 요한과 얘기를 해봐야 하겠지만, 단순한 잡무 정도라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그것만으로도 정보 길드에는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그거 다행이군요.”
서우진의 안색이 조금 환해졌다.
혹사시키는 것 같아 미안했던 감정이, 조금이나마 씻겨 나간 것이다.
“그런데 그러려면 잠시 떨어져야 한다.”
이곳은 제국이다.
여기에도 레닌스탕의 인사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제대로 된 지원을 해주려면 본국으로 향해야만 했다.
“아샨타와 함께 갔다 와라.”
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되겠나?”
디아로크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지금부터 서우진이 할 일은, 무려 하늘탑에 잠입하는 것이다.
어쩌면 신궁보다도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디아로크가 힘을 보탠다면 훨씬 수월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서우진은 상관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이번엔 네 도움을 받을 생각도 없었다. 하늘탑에서 너를 눈치 못 챌 것 같냐?”
디아로크는 마법사다.
그리고 하늘탑은 마법사들의 성지이자, 마르테스가 기거하는 장소였고.
그 신비롭기 짝이 없는 존재의 능력을 생각해 보면, 디아로크를 몰라볼 리가 없었다.
“하긴 그렇겠군.”
평소엔 안하무인으로 굴던 녀석도, 마르테스만큼은 인정했다.
세계 최고이자 최강의 마법사였으니까.
오히려 같은 길을 걷고 있기에, 그 대단함을 더욱 실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괜한 걱정하지 말고 지금 다녀와라. 빠르면 빠를수록 좋으니까.”
서우진이 아샨타를 쳐다봤다.
그녀는 과연 그래도 되는지 고민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요한에겐 제가 말해두겠습니다. 그러니까 같이 갔다 오시죠.”
지금은 고양이의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 레닌스탕의 도움을 직접적으로 받을 수 있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알았어요. 그럼 최대한 빨리 일을 마치고 돌아올게요.”
결정한 아샨타의 말에 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도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고개를 숙였다.
지금까지 도와준 일에 대한 감사였다.
“너도 괜한 짓 하지 마라.”
그러곤 디아로크를 향해 말했다.
“괜한 짓?”
“빡친다고 깽판 놓지 말라고.”
농담처럼 한 말이지만, 진심이었다.
용사 폐기 계획을 알게 된 지금, 디아로크의 성격이라면 무슨 짓을 저질러도 이상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네가 그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은 무조건 숨겨야 해.”
디아로크의 표정이 뚱해졌다.
마음에 들지 않는단 뜻이었다.
하지만 서우진의 말을 무시할 생각도 없었다.
“너나 잘해라. 괜히 하늘탑에서 걸려 죽지 말고.”
걱정인지 악담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말투로 툭- 내뱉은 디아로크가 몸을 돌렸다.
행선지가 정해졌으니, 굳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 것이다.
“간다.”
“수도에서 봬요!”
그렇게 두 사람은 순식간에 멀어지기 시작했다.
꽤나 서두르는 모양인지, 서우진이 본 중에 가장 빠른 것 같기도 했다.
둘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던 서우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잘될까?’
중간에 조금 위험한 상황이 펼쳐지긴 했지만, 어떻게든 잘 무마했다.
모든 용사에게 알리고 설득하는 것도 성공했고.
지금까진 큰 무리 없이 계획대로 되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지금부터였다.
‘어떻게든 폐기 방법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야만 한다.’
그것을 모른다면, 이 싸움은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강림 전쟁도 문제지.’
마지막으로 보았던 C급 용사 일곱 명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 이대로라면, 그들은 아마 강림 전쟁에서 살아남기가 힘들지도 모른다.
“몸이 한 열 개쯤 되었으면 좋겠는데.”
아쉽게도 분신술 따위의 스킬은 서우진에게 없었다.
결국은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해결법을 찾아야 한다는 소리였다.
‘제 시간 안에 늦지 않게. 최적의 방법을 찾아야만 해.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서우진조차도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두 손을 놓고 있을 순 없는 법.
‘서둘러야겠지.’
지금 서우진이 할 수 있는 건, 빨리 움직이는 것밖에 없었다.
“하아아-”
길게 한숨을 내쉰 서우진이 발걸음을 내디뎠다.
방향은 제국의 수도.
저벅- 저벅-
발소리가 아무도 없는 땅에 울려 퍼졌다.
너무도 무거워 숨이 막힐 것만 같은 발걸음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