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20)
420화.
“저기예요!”
어느 순간부터 비명보단 환호를 지르던 나에르가 소리쳤다.
물론 서우진은 녀석이 말해주기 훨씬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다 모여 있군.’
신목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나무 주변에는 천여 명의 엘프가 운집해 있었다.
‘천오백? 아니, 천육백에 더 가깝겠군.’
적지 않은 수였다.
하지만 ‘팔로타인 라세’의 크기를 생각해 보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었다.
‘다른 쪽으로 간 엘프들도 있는 건가? 아니면 본래 수가 적은 건가?’
둘 중 어느 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상관없었다.
어차피 서우진이 해야 할 일은 하나였으니까.
‘‘마테아의 징벌’을 뽑아주기만 하면 돼.’
드류나크에게 전달하는 것은 엘프들이 대신해 줄 것이다.
서우진은 조금씩 속도를 늦췄다.
“어? 왜 느려져요?”
어마어마한 질주를 즐기던 녀석은 조금 아쉬운 모양이었다.
“갑자기 나타나면 다들 놀랄 테니까.”
“아…….”
그 말에 나에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이상현상이 벌어지고 있는데, 서우진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면 다들 기절초풍하고 말 것이다.
천천히 속도를 줄인 서우진은, 이내 평범한 걸음걸이로 발을 내디디며 엘프들을을 향해 다가갔다.
“누구죠? 정체를 밝혀요!”
경계를 서고 있던 엘프들이 그런 서우진을 발견하고는 활을 겨누었다.
“저는 서…….”
“아저씨!”
서우진의 말을 끊고, 나에르의 음성이 터져 나왔다.
“나에르? 나에르가 맞나요?”
녀석의 얼굴을 알아본 엘프들 중 한 명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네! 저예요!”
나에르는 서우진의 어깨에서 폴짝 뛰어내리고는, 앞을 향해 달려갔다.
‘역시 숲에선 빠르군.’
신목의 영향 때문인지, 이 근방은 어둠에 먹히지 않은 상태였다.
덕분에 나에르의 움직임은 아까와 전혀 달랐다.
마치 날아가는 듯한 속도로 이동한 것이다.
서우진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멈추세요! 당신은 누구죠? 왜 나에르와 함께 있었는지 설명해야 할 거예요!”
잠시 누그러졌던 경계심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느낌이었다.
서우진은 전혀 긴장하지 않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요른의 부탁을 받고 온 서우진이라고 합니다.”
“요른 님?”
이번에도 그의 이름은 먹혔다.
활을 겨누고 있던 엘프들의 얼굴에 놀람이 서렸으니까.
“그걸 어떻게 증명…….”
“서우진 님!”
아직 완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질문을 이어가려는데, 일단의 무리가 뛰어나오며 서우진의 이름을 불렀다.
‘누구지?’
저렇게 반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면, 안면이 있는 사이인 건 확실했다.
하지만 서우진은 그들이 누구인지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가 지금까지 만나본 엘프라고는 요른과 변종 마수의 처리를 할 때 본…….
“아!”
그제야 생각이 났다.
저들은 그때, 주둔지에서 용사들과 함께 변종 마수들과 싸웠던 이들이 분명했다.
“오랜만… 은 아니네요.”
서우진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솔직히 누가, 누구인지는 모르겠다.
그들과 통성명을 하고, 친분을 나눌 정도로 여유가 있던 때가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못 알아보는 것보단, 이렇게라도 아는 척을 하는 게 더 나을 터.
서우진의 인사에 다들 고개를 숙였다.
“여기서 뵙게 될 줄은 몰랐네요.”
“이분은 용사세요, 그것도 몹시 강한!”
그들이 서우진의 신분을 증명해 주었다.
“용사라고요?”
서우진을 처음 보는 엘프들이 깜짝 놀라 기다란 귀를 꿈틀거렸다.
그들은 용사를 처음 봤기 때문이었다.
활을 거뒀다.
일족이 신원을 보증해 주었으니, 굳이 날을 세우며 경계할 필요가 없어졌다.
“요른 님의 부탁을 받으셨다고요?”
그때, 활을 든 엘프 전사들 사이로 누군가 걸어나오며 물었다.
‘누구지?’
모습을 드러낸 것은 두 명.
다른 엘프들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고위급인가 본데.’
나에르나 엘프 전사들과는 달리, 고귀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습니다.”
일단 서우진은 예의를 갖춰 대답했다.
“저는 유론. 임시로 일족을 이끄는 자예요. 이쪽에 계신 분은 이루엘.”
“만나서 반갑군요.”
두 엘프는 서우진에게 밝은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이렇게 빨리 도움의 손길이 도착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신목께서 보우하신 모양이에요.”
정확히 말하자면 신목이 아닌, 서우진이 서두른 덕분이었지만…….
굳이 내색은 하지 않았다.
저들에게 신목은 신과도 같은 존재인 모양이었으니, 괜히 자극할 필요는 없었다.
“혹시 어둠의 근원을 밝혀내셨나요?”
가장 시급한 것은 어둠이었다.
요른의 부탁을 받았다니, 그 부분을 해결해 주기 위해 온 거라 여긴 듯했다.
하지만 서우진은 고개를 저었다.
드류나크의 말에 의하면, 이 어둠은 결코 없애는 것이 불가능했으니까.
굳이 시간을 들여가며 조사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직은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아아…….”
모든 엘프의 얼굴에 실망감이 깃들었다.
서우진이 왔으니, 모든 게 단번에 해결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대신 성물을 뽑는 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정적이 흘렀다.
엘프 전사들은 물론이고, 수다스럽던 나에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오죽하면 서우진의 등장에도 평정심을 유지하던 이루엘과 유론조차도 동요하고 있었다.
“그게, 그게 가능한가요?”
서우진도 모른다.
‘마테아의 징벌’가 어떻게 생겨먹은 것인지도 아직 보지 못했으니까.
“자격이 없는 이는 손도 댈 수 없다는 말을 듣긴 했습니다만…….”
드류나크는 서우진을 콕 짚어 부탁했다.
그만한 존재가 아무런 확신도 없이 그런 부탁을 할 리가 없었으니,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었다.
“어떻게든 되지 않겠습니까?”
서우진이 미소를 띠며 말하자, 유론이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은 보기 좋지만, 성물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물건이 아니에요.”
그는 몸을 돌리며 신목을 가리켰다.
“지금도 수백 명의 엘프가 성물을 뽑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어요. 그런데…….”
아무도 뽑질 못하고 있다.
아니, 애초에 손도 대지 못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막이 존재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들의 손길을 모두 거부하기 때문이었다.
“300을 넘어 400명째인데도 마찬가지예요. 그 누구도 성물에 손끝 하나 대지 못했죠.”
물론, 서우진은 다를지 모른다.
그는 엘프가 아닌, 용사였으니까.
어쩌면 정말로 성물을 뽑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론의 표정에는 아무런 기대감도 보이지 않았다.
단순히 용사라 성물을 뽑을 수 있을 거란 짐작은, 너무도 희망적이었으니까.
그것을 눈치챈 서우진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저렇게 노골적으로 실망하는 모습은 오랜만에 보는데.’
지금의 서우진은 어느 곳을 가도 인정을 받았다.
용사들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힘이 있는데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은 일을 해결했으니까.
그 명성이 대륙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엘프들에게는 아닌 모양이었다.
애초에 서우진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이가 대부분인 것을 보면, 저렇게 기대하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밑져야 본전 아니겠습니까? 일단 한번 시도는 해보고, 그다음에 이야기 하죠.”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눈으로 직접 보여주는 것이다.
괜히 말로 떠들어봐야 신뢰감만 잃을 뿐이었다.
서우진은 시간낭비도 줄일 겸, 지금 당장 성물을 뽑을 생각이었다.
‘설마 실패하는 건 아니겠지?’
일단 호언장담을 하긴 했는데, 만약 실패한다면?
조금 민망해질 것 같았다.
‘뭐, 안되면 힘으로라도 뽑는 수밖에.’
성물이든 신목이든.
서우진이 진심을 다 한다면 버텨낼 수 있을 리가 없다.
“믿어볼게요.”
유론은 살짝 미심쩍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서우진을 믿는다기보단, 부탁한 요른을 믿는단 기색이 역력했다.
‘끄응.’
속으로 신음한 서우진이 머리를 긁적이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엘프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자신들도 모두 실패한 성물을 갑자기 나타난 용사가 뽑겠다니,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서둘러야겠군.’
서우진이 슬쩍 뒤를 쳐다봤다.
어둠이 점차 강하게 밀려들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지만, 언제 신목의 가호가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엘프들 사이로 이동해 신목의 곁에 도달했다.
‘휘유-’
속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신목이라는 이름답게, 나무치고는 너무도 거대했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보던 세계수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꽤 신비한 기운도 흐르는 것 같고.’
마력도, 마기도, 신성력도 아니었다.
굳이 꼽자면 자연? 혹은 생명력이라고 표현하는 게 가장 가까울 것 같았다.
‘이 정도쯤 되니까 엘프들이 신성시하는 거겠지.’
헬데인에서 봤던 마목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존재감이었다.
“이쪽이에요.”
유론과 이루엘은 서우진을 데리고 한쪽으로 이동했다.
“와아!”
뒤에서 쫄래쫄래 따라오던 나에르가 탄성을 내뱉었다.
그곳에는 마치 여느 예술 작품과도 같은 모습으로, 한 자루의 검이 거대한 뿌리에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저게 성물인 모양입니다.”
“맞아요. ‘마테아의 징벌’이라 불리는 것이죠.”
외형은 딱히 특별할 게 없었다.
평범한 장검의 모습이었으니까.
하지만 눈에 띄는 부분이 있긴 했다.
“검날의 중간에 박혀 있는 건 뭡니까?”
길쭉하게 뻗어나온 검날의 한복판에, 푸른색의 작은 보석 하나가 박혀 있었다.
“그건 저희도 알지 못해요.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성물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어요.”
요룬과 이루엘이 말했다.
“엘프들이 ‘팔로타인 라세’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때부터, 성물은 저 자리에 있었어요. 그 누구도 뽑지 못한 상태로 지금까지.”
“성물의 이름을 제외하면, 그 어떤 것도 밝혀진 게 없죠. 그마저도 한 기록을 보고 알아낸 것이고요.”
조사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타인의 손길을 거부한다는 뜻이었다.
“뽑으면 알 수 있겠죠, 뭐.”
서우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성물을 향해 걸어갔다.
계속해서 도전을 하고 있던 엘프들이 뒤로 물러났다.
‘뭔가에 고정이 되어 있는 것 같진 않고.’
‘신룡안’으로 봤을 땐, 정말로 단순히 뿌리에 꽂혀 있을 뿐이었다.
그 어떤 장치도 없었고, 마법적인 속박도 없었다.
서우진은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손을 뻗었다.
스으으윽-
막히는 것은 없었다.
지금까지 그 누구의 손길도 거부했던 투명한 막이, 마치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너무도 쉽게 서우진의 손을 허락했다.
그리고 이내, 손가락이 성물의 손잡이에 닿았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광-!
벼락이 내리쳤다.
오직 서우진만이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막강한 위력의 벼락이었다.
“흐읍!”
깜짝 놀란 서우진이 혼돈기를 끌어올렸다.
도저히 맨몸으로는 받아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처 방어를 하기도 전, 벼락이 정수리에 내리쳤다.
동시에 서우진의 의식이 아득해지며, 어디론가 흘러들어 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