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24)
424화.
“이게 성물…….”
온갖 감정이 뒤섞인 눈으로 검을 바라보는 것은 유론뿐만이 아니었다.
이루엘은 지금 당장에라도 눈물을 쏟을 것만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두 엘프는 서우진의 손에 들린 ‘마테아의 징벌’을 보며, 감격해했다.
“받으세요.”
서우진이 손을 내밀었다.
검집이 따로 없었기에 두 손으로 검면을 받친 채, 조심스럽게 건넸다.
이루엘은 자신도 모르게 성물을 향해 손을 뻗다 멈칫했다.
자신의 역할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흠흠.”
그녀가 헛기침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서자, 유론이 앞으로 나섰다.
“정말 감사해요.”
말은 짧았지만, 그 어떤 때보다 진심이 담긴 감사인사였다.
“별말씀을.”
서우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얻은 걸로 따지자면, 자신이 더욱 크다.
‘마테아의 징벌’이 지니고 있는 진짜 능력을 얻었으니까.
신살의 검.
강림 전쟁에서 그 어떤 것보다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힘이었다.
그런 것을 얻었으니, 오히려 감사 인사는 서우진 쪽에서 해야 할 판이었다.
“한번 확인해 보시죠.”
서우진의 말에 유론이 아주 조심스러운 태도로 검을 살펴보았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검.
심지어 진수라 불릴 수 있는 능력이 빠져나갔기에, 그릇으로의 역할도 끝난 껍데기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유론은 미소를 지었다.
“아무런 문제도 없어요. 이것이 있다면, 다시 신목을 싹틔울 수 있을 거예요.”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루엘 역시 유론의 말에 동의했다.
“다행이네요.”
서우진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신살의 능력이 사라져, 신목을 옮겨 심는 것이 불가능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마테아의 징벌’은, 그 자체만으로도 신목의 번식이 가능한 성물인 듯했다.
비록 신살의 능력은 서우진이 가져갔지만 엘프들에게 중요한 건 신목이지, 신살이 아니었다.
신목을 부활시킬 수 있다면, 그런 사소한 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유론은 자신의 겉옷을 벗어 천천히 성물을 감쌌다.
조금의 흠집이 나는 것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마력까지 동원해 단단히 밀봉했다.
그러곤 서우진을 향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저희의 미래를 지켜주어 정말 감사해요.”
서우진이 가지고 온 것은 단순한 검이 아니다.
엘프의 미래, 그 자체였다.
그 중대함을 알았기에 서우진은 가만히 마주 인사했다.
“그런데 혹시…….”
유론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어둠은 물리칠 방법이 없을까요?”
숲의 대부분이 이미 어둠에 물들어 죽은 상태다.
하지만 이제라도 어둠을 몰아낼 수 있다면, 그들은 다시 재건할 자신이 있었다.
엘프였으니까.
“으음…….”
서우진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드류나크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어둠은 소멸시킬 방법이 없었다.
‘신목을 베어낼 때의 검을 재연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당장은 불가능했다.
다시 그 경지를 이룩하는 것보다, 숲이 사멸하는 게 훨씬 더 빠를 터였다.
“죄송합니다.”
서우진이 한숨을 내쉬며 말하자, 유론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서우진 님이 사과하실 일이 아니에요.”
유론은 손을 내저으며 그 사과를 거부했다.
그의 말대로 사과할 사람은 서우진이 아니었으니까.
“원인이라도 알면 좋을 텐데…….”
이루엘이 무거운 음성으로 말하자, 서우진이 잠깐 고민했다.
‘말을 해줄까?’
서우진은 드류나크에게 이 어둠의 정체를 들었다.
마왕의 강림지.
조만간 ‘팔로타인 라세’로 마왕이 강림한다는 뜻이었다.
서우진은 잠시 고민하다 이내 결심했다.
‘저들도 아는 게 좋겠지.’
비록 충격은 받겠지만, 한시라도 빨리 이 숲을 떠나야 한다.
그래야 괜한 피해를 막을 수 있을 테니.
에둘러 얘기를 해봐야 엘프들이 쉽게 숲을 떠날 것 같지도 않았으니, 차라리 진실을 말해주는 것이 결정하는 데 더 효과적일 터.
“마왕의 강림지라고 하더군요.”
두 엘프의 시선이 서우진에게 집중됐다.
“…지금 뭐라고 하셨나요?”
못 들은 건 아닐 것이다.
그저 믿지 못할 뿐.
서우진은 다시 한번 말했다.
“‘팔로타인 라세’에 마왕이 강림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어둠은 그 징조고.”
유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루엘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엘프는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얼굴이 험악해졌다.
‘엘프들도 저런 표정을 지을 줄 아는군.’
어둠이 근처까지 다가와도 다급히 움직일지언정, 그들의 표정은 항상 일정했었다.
그런데 저렇게 분노한 감정을 드러내다니…….
서우진이 살짝 놀랐다.
그만큼 유론과 이루엘의 분위기는 살벌했다.
“감히…….”
빠드득- 하며 이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이루엘이 말을 씹어 내뱉었다.
“우리의 터전을 더럽힌 것이, 그 개 같은 판데모니엄의 종자들이란 말인가요?”
입도 험해졌다.
고귀하기 짝이 없는 모습의 이루엘이 한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습니다. 일단 제국의 재상은 그렇게 확신하고 있더군요.”
서우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론이 두 눈을 감았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참아내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 군요.”
말까지 떨려오는 것을 보니, 엘프들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충분히 짐작이 되었다.
“결국 우리는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말이네요.”
마왕의 강림지는 없앨 수 없었다.
적어도 지금의 서우진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말은 곧,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란 뜻이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겁니다. 제가 잠시 막아두기는 했지만, 어둠은 결국 숲을 모두 잡아먹을 테니까.”
서우진이 말하자, 유론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그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조언 감사해요. 계속해서 도움만 받는군요.”
유론은 간신히 감정을 억누르고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엘프들은 오늘의 일을 결코 잊지 않을 거예요. 서우진 님이 우리를 위해 해준 일과 조언들 모두.”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닙니다.”
서우진이 고개를 흔들자, 유론은 단호하게 말했다.
조금은 유순하고 우유부단해 보이던 모습과는 달랐다.
“아니요. 엘프는 은인을 잊지 않아요. 반드시, 기필코, 오늘의 일은 보답할게요.”
‘으음.’
이게 약속인지, 협박인지 조금 헷갈렸다.
조금 찜찜한 마음을 털어낸 서우진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어쨌든 보답하겠다는데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도움이 되겠어.’
만약 일이 잘못되어 이 세계와 싸우게 된다면, 엘프들의 힘은 큰 도움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세력을 키우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으니, 서우진은 좋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디로 가실 생각입니까?”
이 근처에는 꽤 많은 숲이 있었다.
이전에 서우진도 반 슬레인과 함께 방문했던 죽음의 숲도 그리 멀지 않았으니까.
‘거기로 가진 않겠지?’
엘프들이 살기에는 마기의 잔향이 너무도 짙었다.
거기에 천여 명의 엘프가 거주하기에도 비좁았으니, 다른 곳을 선택할 것이다.
“일단은 조금 흩어져야 할 것 같아요. 근방에 숲은 많으니, 적당한 곳을 골라봐야죠. 그 이후에는 제국에 있는 요룬 님께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에요.”
아카데미의 총장을 맡으며, 제국 내에서도 큰 권력을 얻은 요룬이라면…….
‘괜찮은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겠지.’
그럼 더는 엘프들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렇군요. 부디 앞으로는 평온하길 바라겠습니다.”
서우진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러자 유론이 굳어 있던 표정을 빠르게 풀고는 눈을 크게 떴다.
“벌써 가시려고요?”
“아직 제대로 된 대접도 하지 못했는데…….”
이루엘도 깜짝 놀라며 붙잡았다.
하지만 서우진은 이곳에 더 남아 있을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딱히 그럴 이유도 없었고.
“할 일이 좀 많습니다. 지금도 늦었으니, 이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
서우진의 말에 두 엘프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이렇게까지 말을 하는데, 계속 붙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언제든.”
유론이 먼저 입을 열었고, 이루엘이 말을 이었다.
“엘프의 힘이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힘이 닿는 한, 반드시 도우러 가겠다.
그것은 엘프라는 종족을 지켜준 존재에 대한 맹세였다.
“그러겠습니다.”
서우진은 미소와 함께 대답하곤 몸을 돌렸다.
“아저씨!”
그때, 뒤에서 어린 엘프의 외침이 들려왔다.
나예르였다.
녀석은 서우진을 향해 빠르게 달려왔다.
“고맙습니다! 저를 구해주셔서!”
녀석은 허리를 넙죽 숙이며 크게 소리쳤다.
서우진이 씨익- 웃었다.
“건강해라, 어른들 말씀 잘 듣고.”
어둠에서 구해준 것 말고는 별다른 인연을 맺지 않았음에도, 괜히 흐뭇해졌다.
서우진은 손을 한번 흔들어주고는, 엘프들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제 돌아갈 때였다.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으음.”
서우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팔로타인 라세’를 떠나온 지 사흘째.
기차를 탈까 하다가, 괜히 시간만 더 걸릴 게 뻔했는지라 그냥 달려서 가기로 결정했었다.
그리고 지금.
서우진은 그때의 선택을 조금 후회했다.
“도와주소! 우리를 좀 도와주소!”
누군가 서우진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은 채, 꺼이꺼이- 울며 부탁하고 있었다.
1미터나 될법한 작은 키를 보면 아이인 듯싶었지만, 음성은 걸걸한 아저씨의 그것이었다.
‘드워프라니.’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종족이었다.
엘프와 다크 엘프들은 몇 번이고 봤지만, 이 땅딸막한 땅의 종족을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존재한다는 건 알았지만…….’
‘카 라니엘’의 날을 벼린 것이 바로 저들이다.
그것뿐만 아니라, 이 세계에서 이름난 장비들은 모두 이들의 손을 거쳤다고 들었다.
그러니 드워프의 존재를 모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코빼기도 볼 수 없었기에, 신경도 쓰지 않은 종족이었는데…….
‘갑자기 나타나서 울어?’
대지를 질주하던 서우진의 앞길을 가로막더니, 다짜고짜 도움을 요청하더니 눈물을 흘렸다.
아이도 아니고, 얼굴을 모두 뒤덮을 정도로 수염이 덥수룩한 아저씨의 눈물을 지켜보는 건 꽤나 곤욕스러웠다.
“그러니까 뭘 도와드리면 되냐니까요?”
벌써 몇 번째 같은 질문을 한 것일까.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계속 같았다.
“도와주소! 우리를 좀 도와주소!”
‘그냥 패고 갈까?’
슬슬 짜증이 고개를 들 때쯤이었다.
서우진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있던 드워프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강한데?’
서우진이 살짝 놀랄 정도로 강력한 힘이었다.
별다른 마력이 느껴지지는 않았으니, 온전히 육체의 힘이라는 뜻이었다.
‘허어-’
서우진이 감탄하며 드워프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번쩍- 들고는 서우진과 시선을 마주쳤다.
“우리, 우리 광산에 마수가 나타났소! 도와주소!”
다리를 붙잡힌 지 10여 분째.
드디어 무슨 일이 생겼는지 조금이나마 들을 수가 있었다.
“마수? 혹시 변종 마수들입니까?”
“그렇소! 그렇소! 우리를 좀 도와주소!”
눈물로 범벅이 된 수염은 꺼려졌지만, 서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어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도움이 간절한 이를 외면하는 것도 도리가 아니었다.
‘혹시 또 아나?’
엘프들을 도와줬을 때처럼, 뭔가를 얻을 수 있을지?
서우진은 최대한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딥니까, 그 광산이라는 곳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