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31)
431화.
12층은 고요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빌딩 밖에서 소란스러운 드워프들의 외침이 또렷하게 들려올 정도였으니까.
그런데도 서우진은 고요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우리 일족의 최고(最古)이자, 최고(最高)의 보물이네.”
피날레를 장식한 건, 황금색의 망치였다.
그렇다고 구동환이 요술봉으로 사용하던 것처럼, 흉악한 둔기 종류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훨씬 작고, 실용적으로 생겼다.
‘무기라기보단 차라리 도구에 가까운데?’
그것도 마치 대장장이가 사용할 법한…….
“‘라샤스’라 하지.”
늙은 드워프가 몽롱한 눈빛으로 말했다.
“뭐에 쓰는 물건입니까?”
아무리 봐도 전투에 쓰일 법한 외형은 아니기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허허- 무어라 설명을 해주어야 할지 모르겠군.”
그는 웃음을 터트리며 잠시 고민했다.
그러곤 이내 입을 열었다.
“물질의 격을 올려주지.”
“…격이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물질이라면, 의지를 담아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한 차원 높은 격에 도달시킬 수 있다네.”
서우진이 눈을 끔뻑였다.
‘이거 설마?’
강화다.
‘상태창’과 스킬도 부족해, 이제는 강화까지 나왔다.
서우진은 어이가 없어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물건을 왜 보관만 해두는 겁니까? 잘만 사용하면 훨씬 도움이 될 텐데. 아, 혹시 미끄러지거나 하면 대상이 부서지거나 하는 겁니까?”
수많은 강화 시스템의 페널티를 떠올리며 물었다.
하지만 늙은 드워프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부서지긴 왜 부서지나?”
“예? 그럼 왜……?”
“한 번.”
그는 ‘라샤스’를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것도 딱 한 번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일세. 그러니 보관만 해둘 수밖에 없었네. 일족의 보물을 함부로 사용해서 없애 버릴 순 없었으니.”
일회용이라니…….
서우진은 아쉬운 눈빛으로 ‘라샤스’를 쳐다봤다.
“이것도 저에게 주시겠단 말입니까?”
“물론일세. 지금까지 우리에겐 ‘라샤스’를 딱히 사용할 만한 물건이 없었네만, 자넨 다르지 않은가?”
늙은 드워프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우진의 허리춤을 가리켰다.
“아!”
‘카 라니엘’.
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검이다.
이만한 물건이라면, ‘라샤스’를 사용함에 있어 전혀 아깝지 않은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서우진은 조금 고민했다.
‘저걸 ‘카 라니엘’에 쓰는 게 맞을까?’
서우진의 손이 검 손잡이를 쓰다듬었다.
‘카 라니엘’은 지금도 기대 이상의 성능을 보여주고 있었다.
부러지지도 않고, 서우진의 힘을 100%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유일한 검이었으니까.
‘굳이 강화를 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보다 더 단단해지고, 예리해진다고 해서 큰 의미가 있을진 모르겠다.
물론 단순한 강화가 아니라 격의 상승을 이뤄내는 것이었으니, 생각지도 못한 능력이 생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다른 걸 강화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루덴 가르도’를 떠올려 봤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내키지 않는 모양이군.”
서우진의 마음을 눈치챈 것일까?
늙은 드워프가 웃으며 물어왔다.
“아, ‘라샤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아닙니다. 그저 ‘카 라니엘’에 사용해도 될지 잠시 고민해 본 것이라.”
“깊고, 넓게 생각하게. 어차피 ‘라샤스’는 우리의 손을 떠나, 자네에게 맡겨졌으니. 충분히 고민한 뒤 결정해도 늦지 않을 걸세.”
그는 서우진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함인지, 더는 관여하지 않을 모양이었다.
“물건들을 챙길 마법 가방도 하나 챙겨주지.”
1층에서 12층까지.
그 안에 있던 장비들은 어림잡아도 백여 개가 넘는다.
서우진의 코트에도 꽤 커다란 공간 확장 마법이 걸린 주머니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가방이 더 편할 듯했다.
“감사합니다.”
드워프들이 사용하는 것이라면, 그 성능도 뛰어날 터.
서우진은 고민도 하지 않고 감사인사부터 했다.
“이제 내려가지. 물건들은 떠나기 전에 잘 포장해서 넘겨줄 테니.”
늙은 드워프와 서우진은 다시 아래를 향해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모두 제가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장인 타워의 장비들은 드워프들의 정수나 다름없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이 모든 걸 가져가자니 조금 미안해진 것이다.
하지만 늙은 드워프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이것들은 전시가 아닌,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들이네.”
단순히 진열해 놓고 구경만 하려면, 심혈을 기울여 가며 만들 필요도 없었다.
“그러니 가지고 가게. 그래서 조금이라도 많은 이의 생명을 구해주게.”
“…알겠습니다.”
서우진은 늙은 드워프의 등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황제의 보고나, 성와의 비고를 탈탈 털 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단순히 부탁에 대한 대가가 아닌, 순수한 감사의 보답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서우진은 코를 긁적였다.
‘잘 써야겠네.’
일단은 용사들의 직업과 등급을 분류하고, 가장 잘 어울리는 장비들을 매칭시키는 게 중요했다.
서우진이 혼자 하기엔 꽤나 귀찮고 섬세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딱히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런 일에 최적화 된 이들을 알고 있었으니까.
‘여길 나가면 요한부터 찾아가야겠군.’
서우진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어느새 1층에 다다랐다.
“어딜 갔나 했더니, 여기 있었군!”
“용사 양반! 싸움을 잘하는 건 알겠지만, 술은 어떤가?”
“그건 우리한테 안 되지!”
커다란 맥주잔을 들고 돌아다니던 드워프들이, 서우진을 발견하곤 우르르- 몰려오며 소리쳤다.
‘으음.’
술이라…….
그러고 보니 이 세계로 오고 난 뒤에는 술을 마셔본 기억이 별로 없었다.
고작해야 제국의 수도에서 흑맥주 한두 잔 정도 마신 게 전부인 것 같았다.
따지고 보면 그 망할 술 때문에 이 세계에 소환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지금까진 일부러 마실 생각도 떠올리지 않았다.
‘그래도 오늘 하루쯤은 괜찮지 않을까?’
웃고 떠드는 드워프들을 보며 서우진이 미소를 지었다.
“저도 술 좀 합니다.”
“오, 역시 용사! 하지만 주량만큼은 우리도 어디 가서 지지 않지!”
“어디 한번 마셔보자고!”
그 말에 신난 드워프들이 서우진을 데리고 술판이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래, 오늘 하루만.’
웃으며 그들의 뒤를 따른 서우진은 술잔을 높이 들었다.
“으음.”
두통이 느껴진다.
숙취 특유의 불쾌한 고통에 감겨 있던 눈을 떴다.
‘미친…….’
숙취라니.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벗어난 육체를 지녔는데, 숙취가 느껴지다니?
‘대체 얼마나 마신 거지?’
서우진은 그야말로 끝도 없이 술을 들이켰다.
맥주는 물론이거니와, 위스키와 정체불명의 액체까지.
알코올 냄새가 나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입속에 들이부었다.
주독 따위는 순식간에 분해할 수 있는 신체능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안심하고 계속 술을 마셨는데…….
‘언제부터 필름이 끊긴 거지?’
놀랍게도 서우진은 기억의 일부가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술이 들어가는 속도가, 알코올을 분해하는 속도를 아득히 넘어섰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진짜 미쳤네.’
차라리 그냥 독을 마셨어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서우진은 새삼 어제의 자신이 마신 술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개판이구만.”
침대 주변에는 드워프들로 가득했다.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이들을 보니 실소가 절로 흘러나왔다.
‘백설 공주야, 뭐야,’
왠지 동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일단 씻자.’
침대에서 내려온 서우진은, 드워프들을 밟지 않게 조심스레 걸음을 내디뎌 화장실로 향했다.
‘으으음.’
서우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화장실 안에도 기절한 드워프들이 가득했던 것이다.
대체 어제 여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온갖 곳에 드워프들이 한가득인지 모르겠다.
‘쯧, 어쩔 수 없지.’
서우진은 혼돈기를 돌려, 몸 안에 남아 있던 술기운을 모조리 배출시키고는 먼지들을 털어냈다.
방금 전까지 초췌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평소의 얼굴로 돌아왔다.
서우진이 드워프들을 헤치며 밖으로 나갔다.
“후우-”
숙소를 나서자, 상쾌한 공기가 폐부에 가득 들어찼다.
지하 깊숙한 곳이었음에도, 공기 청정 시스템이 얼마나 잘되어 있는지…….
‘놀랍네, 이건.’
적어도 이 지하 도시 만큼은, 지구보다 훨씬 뛰어난 기술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들 어디 있으려나?”
가이로나 다에로, 그리고 늙은 드워프까지.
여길 떠나려면 일단 그들부터 만나야만 했다.
감각을 끌어올려 잠시 주변을 확인한 서우진이 고개를 돌렸다.
‘마을 회관.’
세 드워프의 기운이 그곳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을 회관에는 그 셋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꽤 많은 수의 드워프가 5층 회의장에 모여 있었다.
서우진은 망설이지 않고 그곳을 향해 움직였다.
“무기 제작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지?”
“오늘부터 정상가동 할 거다. 놈들 때문에 조금 늦기는 했지만, 잠만 좀 줄이면 어떻게든 시간 안에 끝낼 수 있겠지.”
“갑주 파트는?”
“여긴 시간이 좀 더 필요해. 아무래도 무기에 비해 제작 시간이 조금 더 걸릴 수밖에 없으니까.”
“서둘러야 돼!”
“아니, 누가 그걸 몰라? 그렇게 재촉하고 싶으면 인력을 더 보충해 주던가!”
“자, 조용조용! 오늘은 제발 회의 좀 쉽게 끝내자, 이놈들아! 안 그래도 숙취 때문에 골이 울려 죽겠는데!”
문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에 서우진이 피식- 웃었다.
처음 여기에 왔을 때와 비슷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똑똑-
서우진이 노크했다.
하지만 그 어떤 드워프도 노크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저 시끄럽게 회의만 지속할 뿐.
서우진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듯 그냥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제야 드워프들이 말을 멈추고는 시선을 돌렸다.
“오, 일어났나?”
“주량이 엄청나더구만! 어때, 머리는 좀 괜찮고?”
“으하하! 용사가 아니라 주사야, 주사!”
아침 인사인지 조롱인지 모를 얘기들에, 서우진은 잠깐 민망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숙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여기로 와서 앉게! 회의는 금방 끝날 테니 조금만 기다리고!”
회의장 한 쪽에 마련되어 있는 의자를 가리킨 늙은 드워프가, 다시 회의를 진행시켰다.
‘으음.’
의자의 모습을 본 서우진이 난감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래도 드워프의 신체에 맞춘 것이다 보니, 서우진이 안기엔 꽤나 작았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의자 대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회의를 지켜보았다.
‘…전쟁 준비를 하고 있는 모양이군.’
변종 마수들로 인해 지금까지 손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으니, 이제부턴 부지런히 일을 해야만 할 것이다.
시끄러운 회의를 보고 있자, 새삼 강림 전쟁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