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39)
439화.
“그대는 누구죠?”
아인델이 꼿꼿하게 허리를 세운 자세로 물었다.
비록 상황이 좋진 않았지만, 그래도 귀족의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었다.
그것을 본 서우진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당당하게 느껴지기보단, 애잔했기 때문이었다.
통치하던 도시를 잃고, 백성을 잃었으며, 죽음의 위기 앞에 놓인 영주.
하지만 타인의 앞에서 애써 당당한 모습을 보이려는 어린 소녀의 모습은, 너무도 애잔했다.
서우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저는 서우진이라고 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소환된 용사들 중 한 명이기도 하죠.”
그 말에 아인델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이제야 자신이 살았다는 사실을 실감한 듯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아까 듣자 하니, 다른 용사들과 함께 왔다고 하던데…….”
말하며 서우진의 뒤를 살짝 살펴본다.
왜 혼자 밖에 없냐는 뜻이었다.
“그렇습니다. 다른 동료들은 지금 마수들을 토벌하는 중이라 저만 먼저 왔습니다.”
토벌이라는 단어에 모두 얼굴이 환해졌다.
그들은 감히 여덟 개의 눈을 지닌 붉은 마수들에게 토벌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없었으니까.
저렇게 말을 할 정도면, 충분히 놈들을 몰아낼 수 있을 것이라 여긴 모양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
서우진은 ‘신룡안’을 통해 전투 상황을 모두 확인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위험에 빠지는 이가 없는지 체크하기 위함이었다.
다행히 지금까진 별문제가 없었다.
조금 전 다른 동료들이 도착하고 나선, 전투가 훨씬 더 수월해진 것이다.
이대로라면…….
“한 시간, 그쯤 걸릴 것 같군요, 마수들을 모두 쓸어버리는 건.”
“그, 그게 사실인가요?”
아인델이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고작 한 시간이라니?
믿기 힘든 말에 자신도 모르게 당황한 까닭이었다.
어찌나 놀랐는지 눈알이 빠져나오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영주님.”
그것을 본 시녀 중 한 명이 슬쩍 주의를 주었다.
귀족의 체통을 잊지 말라는 뜻인 것 같았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평소라면 기사의 행동이 옳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결코 평범한 상황이 아니었다.
이런 때까지 귀족의 모습을 강요할 필요는 없을 텐데.
서우진은 곧바로 표정을 관리하는 아인델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조금 불편해졌다.
저 나이에 이런 큰일을 겪은 데다, 귀족으로써의 책임까지 해야 한다니…….
‘부담감이 크겠군.’
서우진으로선 감히 짐작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안쓰럽다고 해서, 자신이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저들에겐 저들만의 방식이 있었으니까.
이방인인 서우진이 끼어들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이곳에서 기다리고 계시면, 토벌을 끝낸 제 동료들이 올 겁니다.”
“…그렇군요.”
대답하는 아인델의 음성은 잘게 떨리고 있었다.
아직도 두려움이 완전히 가시진 않은 듯했다.
서우진은 잠시 생각을 하다 입을 열었다.
“토벌 장면을 한번 보시겠습니까?”
단순한 구경을 하자는 말이 아니었다.
생존자들의 고향을 파괴하고, 가족들을 해친 놈들의 최후.
그것을 직접 보며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안을 얻었으면 했기 때문에 한 제안이었다.
덤으로 두려움도 가실 테고.
물론, 서우진이 곁에 있을 테니 위험할 일도 절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서우진의 말에 모두가 눈을 크게 떴다.
“저, 저희가요?”
“그게 가능, 합니까?”
아인델은 물론이고, 기사들까지 놀란 표정이었다.
설마 그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을 테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위험하진 않을 겁니다. 그건 제가 보증하죠.”
손에 든 ‘카 라니엘’을 툭- 치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지만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직접 보고 싶은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결정하기가 쉽진 않았다.
그만큼 마수들이 그들에게 심어준 두려움은, 강렬했다.
그때였다.
“좋아요.”
가장 먼저 서우진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아인델이었다.
그녀는 떨리는 육체를 애써 부여잡으며,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영주님!”
“위험합니다!”
기사들이 그녀를 말리기 위해 소리쳤다.
아무리 서우진이 보증한다고 해도, 성밖으로 아인델을 내보낼 순 없었다.
그녀는 나단의 상징이었으니까.
자신들을 이끌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으니까.
그 위험한 곳에 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아인델은 단호했다.
“비키세요.”
기사들을 향해 엄중한 눈빛으로 명령을 한 것이다.
그런데도 기사들은 비키지 않았다.
“불가합니다.”
“밖은 위험하니, 이곳에서 토벌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셔야 합니다.”
그들은 아인델보다도 단호한 태도로 그녀의 움직임을 막았다.
‘흐음.’
서우진은 뒤쪽에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기사들이 걱정하는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영주성에 몰려들었던 마수들은 서우진이 모조리 처리했으니까.
시체들이 산을 이루고 있는 탓에, 다른 놈들도 접근하지 않고 있었고.
아인델을 비롯한 생존자들의 손끝 하나도 다치게 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인델을 제지하는 기사들의 행동을 막을 수도 없었다.
저들도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영주를 수호하는 일 말이다.
위험할 가능성이 아주 조금이라도 존재한다면, 저들로선 아인델을 말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여기서 기다리는 것이 나쁜 건 아니다.
조금 아쉽기야 하겠지만, 차라리 폐허가 된 도시의 모습을 최대한 늦게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서우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명령입니다.”
“따를 수 없습니다. 후에 기사의 직위를 박탈당한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사들의 태도는 완강했다.
설마 이렇게까지 막아설 줄은 몰랐는지, 아인델의 얼굴에 당황이 서렸다.
그녀는 입술을 짓씹고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저는 나단의 영주예요. 이 땅을 짓밟은 놈들의 최후를 볼 자격이 충분합니다.”
“위험…….”
“그만!”
결국 아인델이 소리를 질렀다.
기사들의 입이 다물어진다.
“보고 싶어요. 제 동생을 씹어 먹고, 제 어미를 찢어놓았으며, 제 백성들을 학살한 놈들. 그 개 같은 마수들이 어떻게 죽어나가는지 제 눈으로 똑똑히 확인을 해야겠단 말이에요.”
흡사 광기까지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처음 보는 영주의 모습에 기사들이 당황했다.
분노를 속으로 삭이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저렇게까지 반응할 정도일 줄은 몰랐다.
‘결판났군.’
아인델은 저들의 목을 쳐서라도 확인해야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것을 느낀 기사들이 그녀의 앞을 더 이상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가시죠.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결국 서우진이 나섰다.
기사들은 움찔했지만, 예상했던 대로 붙잡지는 못했다.
“다함께 가요.”
아인델은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생존자들에게 말했다.
그들은 여전히 머뭇거렸지만, 이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두렵기는 했지만, 그들의 분노 역시 아인델에 비해 부족하진 않았다.
“안내하세요.”
아인델이 서우진을 향해 말했다.
그녀는 당당해 보였다.
‘나쁘지 않네.’
지금까지 서우진은 수많은 귀족을 보았다.
드류나크, 반 슬레인, 브리아니, 프레이야 등등.
그 위명이 대륙 전체에 퍼져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단언할 수 있었다.
눈앞의 아인델이 가장 귀족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이다.
비록 가녀리고 아직은 어리긴 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귀족스러웠다.
‘서운해하시려나?’
반 슬레인과 브리아니를 떠올린 서우진이 속으로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시죠.”
열린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따라 백여 명의 생존자가 두려움을 이겨내며 밖으로 향했다.
* * *
“태성아!”
계수지가 소리치자, 뒤에서 마력이 움직였다.
“윈드 스피어!”
바람의 창, 수백 자루가 날아들었다.
예리하기 짝이 없는 공격에 당한 마수들은, 전신에 구멍이 뚫린 채 그대로 절명했다.
‘좋아.’
틈이 벌어졌다.
계수지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안쪽으로 뛰어들어 가며 스킬을 사용했다.
“돌개 부수기!”
거대한 회오리가 불어 닥친다.
빠르게 회전하며 수백, 수천 번의 슬격이 마수들을 강타했다.
놈들은 단 한 번도 막아내지 못하고, 그대로 박살이나며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후우-’
순식간에 수십 마리를 격살한 계수지가 숨을 골랐다.
‘몇 마리나 남았지?’
그녀의 손에 죽은 마수의 수만 해도 벌써 천여 마리가 넘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학살을 자행한 것이다.
다른 A급 용사들도 비슷한 숫자의 마수들을 처리했을 터.
‘그것만 해도 4천여 마리.’
거기에 더해 다른 동료들까지 합세했으니, 훨씬 더 많은 놈을 사냥했을 것이다.
계수지는 감각을 끌어올리며 주변을 훑었다.
‘거의 끝났네.’
남아 있는 마수는 고작해야 수백 마리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자신들의 불리함을 깨달았는지, 도주하려는 기색이었고.
이 정도면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완전히 몰살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계수지는 입술을 깨물고는 땅을 박찼다.
그러곤 가장 많은 수가 모여 있는 무리를 향해 쇄도했다.
그녀의 모습을 본 마수들이 살기를 뿜어댔지만, 그게 전부였다.
뭔가를 하기도 전에, 그녀의 팔꿈치와 주먹에 모조리 머리가 박살나며 쓰러졌으니까.
“수지 언니!”
그때, 옆에서 이지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온통 피범벅이 된 꼬맹이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이쪽은 끝났어요!”
히이- 하고 웃자, 새하얀 이가 드러났다.
붉게 물든 얼굴과는 대조적이어서 더욱 살벌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계수지는 개의치 않았다.
자신의 모습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테니까.
“여기도 마무리된 것 같네.”
가장 선두에 서서,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마수들을 사냥한 두 사람이었다.
중간에 한 번씩 위험한 순간이 생기긴 했지만, 그때마다 서로를 도우며 수월하게 넘길 수 있었다.
덕분에 두 사람은 이전보다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어휴, 힘들어.”
이지아는 투덜거리며 마수의 시체 위에 걸터앉았다.
계수지의 무릎에 맞아 복부가 터진 놈이었다.
옷에 피가 묻었지만, 그걸 신경쓸 필요는 없었다.
이미 피로 목욕을 한 상태였으니 말이다.
“맞다, 그거 보셨어요?”
갑작스러운 말에 계수지가 고개를 갸웃하자, 이지아가 신난 얼굴로 말을 했다.
“김우람 오빠요. 레벨 업을 했더라고요.”
“응? 그래?”
김우람은 동료들 중에서도 가장 낮은 레벨이었다.
덕분에 아직 100레벨을 도달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이번에 레벨 업을 한 모양이었다.
“이제 99레벨이래요. 앞으로 하나 남았네.”
김우람만 100레벨을 찍으면 된다.
그럼 동료 전원이 초극의 경지에 발을 디디는 것이다.
계수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네.”
괜히 신경 쓰였는데,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우리도 이제 꽤 강하구나.’
화가 치밀어 올라 앞뒤 재지 않고 달려들었다.
솔직히 상대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결국은 자신들의 힘만으로, 수천 마리에 달하는 마수들을 모두 처리했다.
계수지는 뿌듯한 감정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영주성처럼 생긴 곳의 성벽에서 서우진이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