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40)
440화.
서우진은 성벽 위에서 가만히 전투를 지켜봤다.
‘빠르네.’
전투가 시작된 지 고작해야 한 시간 정도밖에 흐르지 않았다.
놀랍게도 동료들은 그사이에 수천 마리에 달하는 마수들을 거의 다 처리한 상태였다.
‘한 세 시간 정도는 예상했는데.’
서우진이 생각한 것보다 몇 배는 더 빠른 속도였다.
아무래도 조금 무리를 한 모양이었다.
‘하긴.’
자신이어도 그랬을 것이다.
도시 전체에 사람들의 시체가 가득했으니까.
대부분 마수들에게 뜯어 먹혀 생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을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걸 눈으로 직접 확인하며 싸우는데, 눈이 돌아가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분노는 이성을 마비시켰고, 그 결과 뒤를 생각하지 않고 놈들을 학살했을 게 분명하다.
‘나쁘진 않지만…….’
그래도 다음부터는 조심해야 할 것 같았다.
앞으로 벌어질 전쟁이 지금처럼 계속 수월하게 치러질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힘을 배분하는 법과 적당히 이성을 유지하는 법은 잊지 말아야 했다.
“…대단하네요.”
옆에서 전투를 보고 있던 아인델이 말했다.
“저 괴물 같았던 놈들을 저렇게 쉽게 처리하다니.”
그녀의 시력으로는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고작해야 전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하는 게 전부일 터였다.
그런데도 아인델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마수들을 토벌하고 있는 존재들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 말이다.
“용사들은 모두 저렇게 강한가요?”
그녀의 물음에 서우진은 다른 용사들을 떠올려 봤다.
‘흐음…….’
저만한 실력을 보일 수 있는 이들이 거의 없었다.
서우진은 고개를 저었다.
“저 녀석들은 용사들 중에서도 조금 특별합니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온 용사들과는 쌓아온 경험이 달랐다.
심지어 레벨도 높지 않은가.
저들에게 비견할 수 있는 건, 고작해야 셋 정도가 전부였다.
김태진, 박진한, 임태은.
S급 용사인 그들이라면, 서우진의 동료들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거기까지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그런가요?”
아인델이 놀란 눈동자로 다시 전장을 살폈다.
스킬을 한 번 사용할 때마다 마수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수십, 수백 마리씩 죽어 나자빠지는 것이다.
‘다행이군.’
거리가 있어 아인델이 그 모습을 온전히 확인할 수 없다는 게 참으로 다행이었다.
아직 어린 나이의 그녀가 보기엔 너무도 잔혹한 광경이었으니까.
지금처럼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감사해요.”
아인델이 서우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자신들을 구해준 것에 대한 인사는 이미 했으니, 이번엔 다른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라도 가슴의 응어리를 풀어주셔서.”
“별말씀을.”
서우진이 작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물론, 이것만으로 모든 앙금이 해소될 리는 없었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죄책감과 두려움을 희석시킬 순 있을 것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서우진이 본 아인델은 강했다.
겉모습은 유약했지만, 내면은 귀족답게 강인했다.
그녀라면 이 정도만으로도 금세 정신을 차리고, 본래의 위치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 남아서 저를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아인델이 물어왔다.
“으음…….”
나단은 멸망했다.
남아 있는 이라고는 고작해야 백여 명에 불과하고, 도시는 폐허가 되었으며, 백성의 시체와 마수의 사체가 가득하다.
이런 곳을 재건시키려면, 몇 년도 부족할 게 뻔했다.
서우진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나단을 다시 세우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일.
“강림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벌어진 건, 그 서전(緖戰)입니다.”
그 말에 아인델의 눈이 커졌다.
“시, 시작되었다고요?”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도 한 왕국의 대귀족이었으니까.
당연히 전쟁을 위한 대비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미처 그것을 제대로 써먹어보지도 못하긴 했지만 말이다.
“아직 마왕이 강림한 것은 아닙니다만…….”
이런 마수가 갑자기 출몰했다는 건, 이미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하필……!”
아인델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왜 하필이면 가장 먼저 공격을 당한 것이 나단이란 말인가.
“차라리 마수들이 제국 쪽으로 향했다면 이런 피해는 입지 않았을 텐데!”
감추고 있던 분노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진정하시지요.”
서우진이 그런 아인델을 말렸다.
그러자 그녀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러곤 얼굴을 붉혔다.
방금 자신이 한 말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깨달은 것이다.
차라리 제국 쪽으로 갔어야 한다니?
귀족답지 않은 옹졸한 생각에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방금 그 말은 잊어주세요.”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속삭였다.
“알겠습니다.”
서우진이 대답하자, 아인델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그러니 이곳을 도울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아니, 애초에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게 더 정확하겠죠.”
강림 전쟁이 시작된 마당에, 한가로이 도시를 재건하고 있을 여유가 있을 리가 만무하다.
“그런가요?”
아인델은 서우진의 말을 알아듣고는 얼굴을 굳혔다.
“결국 저도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뜻이군요.”
“그렇습니다.”
이어지는 공격에 당하지 않으려면, 나단을 떠나야만 했다.
평생을 살아오고, 자신이 통치하던 영지를 버려야 한다니.
아인델은 괴로운 듯 신음했다.
하지만 남겠다고 고집을 부릴 수도 없는 일.
그녀는 빠르게 결심했다.
“어디로 가는 길이셨나요?”
“브로바이슨의 수도로 향하는 중이었습니다. 도중에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혹시나 하여 들른 것이죠.”
“떠나실 때, 저희도 데려가 주세요.”
백여 명의 생존자.
저들의 안전을 보장하려면, 수도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서우진은 잠시 고민했다.
‘어찌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키지가 않았다.
저들을 보호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함께 이동하다 보면, 시간이 지체되기 때문이었다.
마수들이 대거 등장한 이상, 서둘러서 움직여야만 했다.
그런데 백여 명의 일반인을 이끌고 이동하려면, 예상했던 것의 몇 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게 분명했다.
‘그럴 여유는 없어.’
나단에 들르느라 이미 시간이 지체되었다.
여기서 더 늦을 순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두고 갈 순 없는데…….’
저들에겐 아무런 물자도 없었다.
이런 참사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았으니, 장거리를 이동할 체력도 없을 것이다.
‘식량이나 돈 정도는 도시를 뒤져 챙긴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무리일 것이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결국 서우진은 대답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을 혼자서 결정할 수 없었으니까.
머리를 맞대보면 좋은 방법이 생길 수도 있었고.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아인델은 별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망할 법한데도, 겉으로는 전혀 티를 내지 않는 것이다.
그것을 확인한 서우진은 괜히 미안해져 시선을 돌렸다.
“끝난 모양입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전투가 끝났다.
‘신룡안’을 사용해 나단 전체를 훑어보았지만, 살아 있는 마수는 단 한 마리도 감지가 되지 않았다.
“저분들을 만나 뵈어야겠어요.”
“이리로 올 겁니다.”
동료들은 이미 서우진의 위치를 확인한 지 오래였다.
전투도 끝났으니, 곧 이쪽으로 올 터.
만남은 그때 하면 된다.
“흐윽!”
전장을 지켜보던 생존자들이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비록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한 것은 아니었지만, 복수했다는 사실에 감정이 복받쳐 오른 것이다.
심지어는 기사들조차도 눈시울을 붉히며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오직 한 명.
아인델만이 무표정을 가장한 채, 슬픔을 숨기고 있었다.
서우진은 자신의 가슴께도 오지 않는 그녀의 옆에 서서, 그들이 울음을 그치길 가만히 기다렸다.
하지만 동료들이 도착할 때까지 그들은 여전히 눈물을 흘렸다.
“다들 고생했어요.”
서우진이 동료들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저씨! 우리 진짜 힘들었어요!”
그런 서우진을 향해 이지아가 달려들며 칭얼거렸다.
“그래, 힘들어 보이네.”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었다.
서우진이 느낀 이지아의 마력은, 그야말로 바닥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힘을 조절해 가며 싸웠다면 이 정도로 지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분노로 인해 눈이 돌아가서 싸우다 보니, 거의 탈진 직전까지 마력을 쏟아붓고 말았다.
그것은 이지아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동료가 같은 상태였던 것이다.
그나마 계수지 정도만이 조금 나았을 뿐, 모두가 당장에라도 바닥에 주저앉고 싶은 듯한 표정이었다.
“일단 좀 쉬죠, 오늘 움직이는 건 무리일 것 같으니.”
서우진의 말에 다들 앓는 소리를 내며 벌러덩 누워버렸다.
더는 서 있을 힘도 없었던 것이다.
“아저씨, 우리 많이 강해진 거 맞죠?”
이지아가 물었다.
조금 전의 전투로 직접 체감했을 텐데도, 확인받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서우진은 스승이나 다름없는 존재였으니까.
다들 내색은 않았지만, 서우진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맞아, 내 생각보다 더 강해졌어.”
그 말에 다들 표정이 환해졌다.
방금 전까지 힘들어하던 것이 거짓말이라는 듯, 활기까지 돌 정도였다.
“이 정도면 강림 전쟁에서도 꽤 활약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방심하지는 말고.”
들뜬 이지아가 소리치자, 서우진이 강제로 내리눌렀다.
“강해지긴 했지만, 아직 고쳐야 할 점이 많다는 건 여전하니까. 다들 알고 있죠?”
서우진이 묻자, 끄응-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흥분을 한 탓에 뒷일은 생각도 하지 않고, 미쳐 날뛰었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이야 별문제가 없었지만, 앞으로는 다를 겁니다. 점점 더 강력한 놈들이 나타날 테니까.”
지금처럼 싸운다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서우진이 아인델에게 말한 것처럼, 오늘은 그저 서전에 불과했으니까.
“네에…….”
“알았음요.”
방금 전까지 들떴던 기색은 사라지고, 모두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잘 싸웠어요. 특히 김우람.”
서우진이 한쪽 구석에서 널브러져 있는 김우람을 쳐다봤다.
“레벨이 올랐던데. 고생했다.”
99레벨.
초극의 경지에 이르기까진 고작해야 1레벨만 남은 상태였다.
“…감사합니다.”
김우람은 쑥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이제 저 녀석만 100레벨이 되면, 전원이 다 벽을 넘는군.’
괜히 뿌듯해진다.
아카데미에서 대련을 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모두 어엿한 강자가 된 것이다.
모든 과정을 함께해 온 서우진으로선 가슴이 벅찰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감상을 느끼는 것도 잠시.
뭔가를 떠올린 서우진이 손뼉을 쳐서 동료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함께 의논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요.”
아인델과 생존자들의 거취.
그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해야만 한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