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47)
447화.
“멈추시오! 제발 멈추란 말이오!”
왕의 외침이 연회장을 뒤흔들었다.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시비를 걸던 귀족이 쓰러지고, 구동환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거기까지만 하죠.”
서우진은 구동환에게 이제 충분하다는 듯 손짓했다.
“쩝.”
구동환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뒤로 물러났다.
“대, 대체 왜 이러는 것이오?”
왕이 다시 한번 서우진을 향해 말했다.
그는 당황했는지, 손까지 떨고 있었다.
오늘 이 자리가 이런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뭐, 그걸 예상했으면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진 않았겠지.’
왕은 용사들과 친분을 다지기 위해 이 자리를 만든 것일 터였다.
그것을 저 천지분간 못하는 귀족 놈이 언질도 없이 뒤집어엎은 것이었고.
당연히 왕의 입장에서는 이 상황이 당황스럽기 그지없을 것이다.
서우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어린 왕을 향해 다가갔다.
‘지아보다도 어리네.’
저 나이에 한 왕국을 다스리는 위치에 앉다니…….
부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서우진은 그런 왕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실수는 왕이 한 게 아니었으니, 이 정도의 대우는 해줄 수 있었다.
“되, 되었소.”
왕이 움찔한다.
위협은커녕 최대한 예를 갖추었음에도, 방금 전의 모습에 겁을 집어먹은 듯했다.
서우진은 고개를 들고 왕을 쳐다봤다.
애써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지만, 확실히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이었다.
서우진이 그런 왕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희를 부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단도직입적인 질문.
피차 속 편히 웃으며 대화를 나눌 사이는 아니었기에, 서우진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저 인사나 하자고 왕궁에 초대를 하신 건 아닌 듯합니다만.”
그랬다면 이만한 귀족들을 불러 모으지는 않았을 터.
단순히 연회만을 위해 초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기엔 꽤나 높은 직위의 대귀족처럼 보이는 이들도 있었으니까.
강림 전쟁이 시작된 지금, 그딴 연회를 즐기기 위해 한자리에 모일 여유 따위가 있을까?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생각이 적중한 것일까?
왕은 도움을 요청하듯 귀족들을 쳐다보다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그대의 말이 옳소.”
왕좌에 주저앉는다.
그러곤 입을 열었다.
“그대들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 부른 것이었소.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
부탁이라…….
처음 보는 왕국의 왕이 자신들에게 할 부탁이 뭐가 있을까?
‘뻔하지.’
브로바이슨을 지켜달라는 것.
그 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마수들에 의해 파괴된 나단의 생존자들을 구해내었다 들었소.”
“그렇습니다.”
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강림 전쟁의 첫 번째 격전지가 될 곳이 아국이라는 것도 알고 있을 테지.”
이번엔 대답하지 않았다.
왕도 딱히 기대를 하지 않았던 듯, 말을 이어갔다.
“놈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목표는 아이에르일 것이오. 허나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것은 그 길목에 존재하는 아국일 터.”
왕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부탁했다.
“부디 우리를 도와주시오, 강림 전쟁의 희생자가 되어 망국이 되지 않도록.”
예상했던 말이다.
하지만 곧장 그것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지금 당장이야 상관없다.
강가스테어와 마수들이 노리는 곳은 아이에르였고, 그것을 위해선 브로바이슨을 통과해야만 했으니까.
어차피 이곳에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되겠는가?
점차 이 세계로 넘어오는 판데모니엄의 군세는 늘어날 테고, 결국엔 대륙 전체로 뻗어나갈 것이다.
그러니 브로바이슨에만 머물며 전쟁을 수행할 순 없었다.
‘거기에 우리는 따로 할 일이 더 있으니까.’
특임대의 임무.
마왕의 권속들을 비롯한 규격 외의 괴물들을 처리하는 것 말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도 그 부탁은 들어줄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서우진이 사과했다.
거절을 뜻하는 완곡한 표현이었다.
왕의 표정이 굳어졌다.
귀족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설마 이토록 단칼에 거부당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귀족들의 분위기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카, 칼라인 때문이오? 그것이라면 짐이 사과하겠소. 그러니 부디…….”
재고해 달라는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그것이 아닙니다.”
서우진이 말을 끊었기 때문이다.
물론 칼라인이라는 저 귀족 때문에 기분이 상한 것은 사실이었다.
칼덴의 일과 더불어 브로바이슨에 그리 좋지 않은 감정을 심어주었으니까.
하지만 서우진은 그런 것으로 일을 결정할 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왕께서 원하는 건 브로바이슨의 안위입니까? 아니면 전쟁의 승리입니까?”
서우진의 질문에 왕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이었다.
강림 전쟁에서 패배한다는 건, 곧 세상의 멸망을 의미하니까.
“그, 그건…….”
왕이 말을 더듬었다.
“저희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할 일이 많습니다. 그저 왕국 하나를 보호하기 위해 낭비할 시간은 없습니다.”
서우진의 대답은 단호했다.
하지만 왕과 귀족들은 입을 더는 열지 못했다.
‘다른 용사들이었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한곳에 머물며 거점방어를 하는 식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도 있었으니까.
왕이 기대한 것도 그런 것이었을 터였다.
하지만 서우진과 동료들의 입장은 다른 용사들과 조금 달랐다.
용사들 중에서도 최정예인 그들은, 쉴 새 없이 돌아다니며 적들을 죽여 나가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 특임대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인 것이 아니던가.
서우진은 실망한 표정의 왕을 쳐다보며 조금의 희망을 던져 주었다.
“다만, 당분간 지켜 드리는 것 정도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서우진의 말에 왕이 눈을 크게 떴다.
“그게 정말이오?”
실망감은 사라지고, 기대로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물론, 그리 긴 시간은 아닐 겁니다. 강가스테어, 그놈을 사냥할 때까지는 보호해 드리겠습니다.”
왕과 귀족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 정도면 된다.
충분하진 않지만, 가장 위험한 순간을 넘길 수는 있었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왕이 옥좌에서 일어나 서우진을 향해 연신 감사의 인사를 했다.
‘역시 왕 노릇하기엔 너무 어려.’
제국의 황제였다면, 저토록 쉽게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더 뜯어내기 위해 머리를 굴렸겠지.
하지만 브로바이슨의 왕은 아직 어린데다, 순진하기까지 했다.
서우진은 그게 마음에 들었다.
“그럼 이야기는 끝난 것으로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저들이 원하는 부탁을 완벽히는 아니지만, 조금이나마 수락했다.
그러니 더 나눌 대화는 없을 터.
“식사라도…….”
엉망이 되긴 했지만, 연회장의 음식들은 아직도 산더미처럼 남아 있었다.
그 누구도 손을 대지 않았으니까
왕은 서우진을 비롯한 용사들과 조금이라도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러고 싶은 생각까진 들지 않았다.
“그건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하지요.”
서우진은 고개를 저었다.
밥은 그냥 동료들과 함께 마음 편히 즐기고 싶었다.
“아, 그리고.”
몸을 돌리려던 서우진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멈춰서더니 한쪽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정신을 잃고 널브러져 있는 귀족이 있었다.
‘칼라인이라고 했었나?’
관심이 없다 보니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그딴 이름이 아니었으니까.
“저분이 정신을 차리면, 저희가 있는 곳으로 찾아오라는 말 좀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혹시나 서우진이 그에게 해코지라도 할까 싶은 표정이었다.
“초극의 경지에 오른 분이더군요.”
“그, 그렇소.”
브로바이슨의 가장 큰 비밀 중 하나였지만, 숨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들통났을 것이라 예상했으니까.
“앞으로 전쟁을 수행하려면, 고양이의 손이라도 빌려야 합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초극의 경지에 이른 존재를 감춰놓기만 할 순 없죠.”
그 말은 곧, 칼라인을 전쟁에 써먹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그것을 깨달은 왕이 뒤늦게 거절하려고 했지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브로바이슨을 지키기 위해선, 서우진과 용사들의 힘이 반드시 필요했으니까.
괜히 거부했다가, 서우진이 말을 바꾸면 큰일 아닌가?
결국 왕은 그 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귀족들은 소심하게 반발했지만, 왕의 결정을 바꿀 수는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서우진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이만.”
서우진은 일행을 대표해 인사를 건네곤 몸을 돌려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저벅- 저벅-
무거운 분위기 사이로 발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내가 기대한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옆에서 이지아의 허탈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럼 뭘 기대한 건데?”
“연회요. 아저씨들이 방해해서 열리지도 못한 바로 그 연회요.”
무슨 왕실 무도회 같은 걸 상상했던 모양이었다.
이지아다운 상상이었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그딴 걸 할 수 있는 때가 아니다.
“다음에 하자, 다음에. 강림 전쟁에서 승리한 뒤에 거하게 하자.”
정말로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과연 저 녀석은 알고 있을까?’
서우진은 이지아를 달래며, 속으로는 브로바이슨의 어린 왕을 떠올렸다.
용사 폐기 계획.
그가 계획에 일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기엔 나이가 너무 어렸으니까.
하지만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이, 모른다는 뜻은 아니었다.
기록으로 봤을 수도 있고, 선대에게 전해 들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고위귀족들에게 듣던가.
그런데도 서우진은 왠지 어린 왕이 그 계획에 대해 아는 것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엔 너무도 저자세였으니까.’
용사들이 언제든 폐기가 가능한 병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렇게 반응할 것 같지 않았다.
부탁은 하되, 비굴하지 않는 태도를 취했을 테니까.
하지만 어린 왕은 정말로 간절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물론 그저 소심한 성격 때문일 수도 있다.
‘한번 확인해 볼까?’
만약 정말로 모르고 있다면.
그리고 용사들에게 호의를 품고 있다면.
브로바이슨도 자신의 세력에 포함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한번 찔러보는 것 정도는 나쁘지 않겠지.’
서우진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밖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 와중에도 옆에서 이지아의 투덜거림은 끊이질 않았다.
“그래서요. 엄청 맛있어 보이는 게 있었거든요? 아카데미에서는 못 먹어본 걸로 봐선, 여기 토종요리 같은데, 한번 먹어보고 싶…….”
귀가 조금씩 따가워졌다.
“좋아. 그게 그렇게 먹고 싶다면, 오늘 저녁 밥은 그걸로 하자.”
서우진이 지친 표정으로 말하자, 이지아가 방방- 뛰었다.
자잘한 소란이 끝나고 찾아온 평화로운 저녁이었다.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할, 짧은 평화였지만 말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