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48)
448화.
칼라인이 찾아온 것은, 저녁 식사가 끝나고 휴식을 취할 때였다.
서우진은 숙소 1층에 마련되어 있는 식당에서 차를 마시다, 그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곤 찻잔을 내려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고, 초췌한 얼굴의 칼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흠칫-
서우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걸까?
안으로 들어오던 칼라인이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
어색한 표정.
일단 불러서 오긴 했다만,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한 모양이었다.
“앉아.”
서우진은 그런 칼라인에게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난데없는 하대에 칼라인의 표정이 거북해졌다.
하지만 별다른 반발은 하지 않았다.
자신의 힘이 서우진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끼기긱-
의자가 낡은 나무 바닥을 긁으며 거슬리는 소음을 냈다.
그 위에 앉은 칼라인은 여전히 입을 다문 채 가만히 기다렸다.
‘흐음.’
서우진은 그런 칼라인을 보며 ‘신룡안’을 발동했다.
확실히 초극의 경지에 이른 존재였다.
물론, 지금껏 봐왔던 강자들과 비교하자면 한참 부족했다.
기껏해야 벽을 간신히 넘어 한 발 걸치고 있는 정도?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실력자인 것만큼은 확실했지만…….
‘조금 애매하네.’
어떻게든 써먹어보기야 하겠지만, 조금 불안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반 슬레인 정도의 실력자였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서우진은 살짝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곤, 입을 열었다.
“칼라인 공작이시라고?”
“…그렇다.”
왠지 비꼬는 듯한 말투에 칼라인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끓어오르는 화를 참아내기 위해 애를 쓰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서우진은 신경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초극의 경지에 오른 지는 얼마나 됐지?”
칼라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계속되는 하대에 기분이 점점 나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왜 그걸 가르쳐 줘야 하지?”
당연히 좋은 반응이 나올 리가 없었다.
서우진은 피식- 웃었다.
“말해줘야, 아니, 말해야만 할 걸?”
화아아아아아악-!
혼돈기가 새어 나왔다.
왕궁에서 그를 두들겨 팼던 구동환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힘이 뻗어 나오며 칼라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끄, 끄윽-!”
그의 몸이 덜덜- 떨려오기 시작했다.
초극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서 다 같은 게 아니다.
서우진은 칼라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차원에 올라선 존재였으니까.
고작해야 힘을 조금 끌어올리는 것만으로도, 그의 육체와 정신을 속박시킬 정도로 말이다.
“자, 잠깐. 잠깐만!”
단 몇 초도 흐르지 않았지만, 칼라인은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다급히 소리쳤다.
“3년! 3년이다!”
혹시나 해코지라도 당할까, 곧장 대답했다.
‘3년?’
예상대로 초극의 경지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 경지를 이루었다기보단, 그저 운이 조금 좋아서 도달한 게 분명해 보였다.
‘심지어 전투 경험도 별로 없어 보이고.’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온, 아카데미의 용사들보다도 적어 보였다.
만약 실전을 통해 경지에 이른 것이었다면, 지금처럼 병신같이 행동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강단도 없고, 실력도 부족하고, 경험도 없어.’
아직 100레벨에 도달하지 못한 김우람과 싸워도, 별다른 반항조차 하지 못한 채 패배할 수준이었다.
‘실망스럽네.’
왕궁에서도 느끼긴 했지만, 이렇게 다시 확인하니 실망감이 들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브로바이슨의 왕에게 말했던 것처럼, 지금은 고양이의 손이라도 빌려야 할 처지였으니까.
혼돈기를 거둔 서우진이 찻잔을 다시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당분간은 우리와 함께 움직일 거니까, 그렇게 알아둬.”
“…함께?”
혼돈기의 압박에서는 풀려났지만, 여전히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던 칼라인이 숨을 몰아쉬며 반문했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지금 브로바이슨은 위험하다.”
강가스테어라는 권속이 아이에르를 노린다면, 반드시 브로바이슨을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나단에서 벌어진 사태와 같은 일이 또다시 생길 가능성이 한없이 높다는 뜻이었다.
“적이 어떤 힘을 지니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으니, 최대한 전력을 집중시켜야 해.”
강가스테어가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서우진과 동료들의 힘으로 막아내지 못할 것이란 걱정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로 인한 여파도 생각해야만 했다.
‘피해를 줄이려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힘이 필요해.’
놈의 힘이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을 터.
서우진은 거부는 용납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칼라인을 쳐다봤다.
대답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왕의 명령에 내키지 않은 몸을 이끌고 찾아오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서우진은 칼라인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가 않았다.
“이건 제안이 아니야. 부탁은 더더욱 아니고.”
싸늘한 음성이 칼라인의 귀에 틀어박혔다.
덕분에 놈의 몸이 다시 굳어졌다.
“명령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편하겠지.”
“…나는 브로바이슨의 공작이다. 나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건 오직 한 분밖에 없다.”
브로바이슨의 어린 왕.
비록 꼭두각시에 가까운 존재이긴 했지만, 일단은 이 왕국의 적법한 지배자였다.
공작의 직위에 앉아 있는 칼라인에게 명령이라는 이름의 부탁을 할 수 있는 건, 그가 유일했다.
“그래?”
서우진은 칼라인의 대답에 뺨을 긁적였다.
“자존심을 내세울 때는 아닌 것 같은데…….”
귀족이란 명예와 체면에 목숨을 건 족속들이라는 사실은 이미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도 많았지만, 대부분은 그럴 것이다.
눈앞의 칼라인 역시 명령이라는 말에 반발감을 보이는 것을 보니, 단순히 말로 해서는 따르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냥 팰까?’
체면이고 명예고.
압도적인 폭력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서우진은 칼라인의 자존심이 한 시간도 되지 않아 꺾일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선택을 하진 못했다.
“응?”
고개가 돌아갔다.
‘신룡안’을 통해, 아주 익숙한 마력이 수도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서우진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돌아왔군.”
칼라인의 일은 조금 더 뒤로 미뤄야 할 것 같았다.
잠시 헤어져 있던 녀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 * *
어둠은 죽음이 되고, 죽음은 곧 마(魔)의 힘이 되었다.
푸르렀던 ‘팔로타인 라세’는 부패한 마기와 썩은 향기만이 가득한, 마경(魔境)으로 화해 버렸다.
[용사들인가?]음울한 음성이 죽어버린 숲에 울려 퍼졌다.
탐색 겸 신성왕국을 향한 길을 열기 위해 보낸 자식들이 모두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 수는 무려 1만 7천.
적어도 도시 몇 개 정도는 철저하게 파괴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는데, 얼마 가지도 못해 전멸을 해버린 것이다.
덕분에 이동하던 강가스테어는 다시 강림지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 혼자선 모든 일을 해낼 수가 없었으니까.
[그 저주받을 존재들이 다시 대업을 방해하는구나.]모든 마수의 주인, 강가스테어의 입에서 흉포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파스스스-
짙디짙은 그 기운에, 주변의 나무들이 가루가 되어 스러졌다.
[열흘.]남은 시간은 고작해야 10일이었다.
판데모니엄의 지배자이자, 세상에 종언을 고할 진정한 왕이 강림할 때까지 남은 시간은.
그 안에 더러운 주신의 안방까지 길을 뚫어놓아야만 했다.
그것이 자신의 지상명제였으므로.
[일어나라.]부패한 늪에서 새로이 태어난 존재들이 몸을 일으켰다.
하나, 둘…….
도저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강가스테어의 자식들이었다.
[부족하다.]하지만 이 정도로는 용사들에게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적어도 지금보다 배는 되어야,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완벽히 수행할 수 있을 터.
강가스테어는 마기를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이렇게 무리한다면 당분간은 자식들을 만들어낼 수 없게 되겠지만, 상관없었다.
지금은 힘을 아낄 때가 아니었으니까.
[복수. 그에 더하여 나의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그의 자식들이 끊임없이 태어났다.
1만? 2만?
그 정도로는 표현이 되지 않는 거대한 군집이었다.
강가스테어의 입꼬리가 잔혹하게 올라갔다.
가벼운 탈력감이 느껴졌지만, 그마저도 왕에 대한 충심으로 여겼다.
[이 정도면 충분할 터.]세상에 존재하기 시작한 이래로, 이만한 힘을 사용한 적은 처음이었다.
당연히 이 정도로 많은 수의 자식들을 만들어낸 것도 처음이었고.
용사들이 아무리 강력하고, 벌레들이 사력을 다해 반항한다 한들.
결코 막아낼 수 없는 전력이었다.
어쩌면 왕께서 세상에 강림하기도 전에, 홀로 그분의 위업을 달성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강가스테어는 자신감으로 가득찬 표정을 지으며, 자식들에게 명령했다.
[길을 열어라. 왕께서 직접 걸음하실 고귀한 마역을 선포하라.]강가스테어의 말에, 마수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프스스스스스-
각양각색의 외형을 지니고 있는 마수들이 ‘팔로타인 라세’라 불리던 강림지를 벗어나기 위해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개미떼가 이러할까?
마치 숲 전체가 한 번에 이동하는 것과 같은 광경이었다.
강가스테어는 흡족한 기색으로 자식들의 뒤를 따랐다.
프스스- 프스스-
그의 걸음이 닿는 모든 곳이 썩어 들어가며, 짙은 마기를 풍기기 시작했다.
길을 여는 자라는 이명을 지닌 강가스테어가, 마침내 전력을 이끌고 아이에르를 향한 걸음을 뗀 것이다.
무려 십만이 넘는 자식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강가스테어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뭔가를 느낀 것처럼, 표정을 굳힌 상태였다.
[설마…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는 존재가 있었단 말인가?]아주 멀리 떨어진 곳.
그곳에서 아주 기분 나쁜 기운이 느껴진 것이다.
자신과 자식들의 천적과도 같은 존재가 풍기는 기운이었다.
[결코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 존재의 속도는 너무도 빨라, 강가스테어조차도 따라잡을 수가 없을 정도였으니까
까드득- 하며 이빨을 갈았다.
기운의 잔향을 느낀 것만으로도, 끝없는 불쾌감이 느껴졌다.
[기다리거라. 반드시 산채로 찢어 그 피와 살을 마셔줄 터이니.]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 존재가 향하는 곳은, 자신의 이동경로와도 겹쳐 있었다.
조금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이대로 간다면 무조건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강가스테어는 애써 분노와 불쾌감을 억누르며, 자식들의 걸음을 재촉했다.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찢어 발기거라. 그 누구도 막아서도록 용납하지 말라. 그리하여 위대한 영광이 이 땅에 깃들도록 하라.]서전은 허무하게 끝이 났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진정한 강림 전쟁은 지금부터 시작이었으니까.
강가스테어는 잔혹하기 짝이 없는 미소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자신의 길을 막고 서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 말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