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5)
#44화.
“……트롤?”
서우진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공식적인 아카데미 일정의 첫날.
대형 연무장에 모인 용사들의 앞에 목줄을 찬 트롤들이 나타났으니, 놀랄 만도 했다.
“용사님들 중에는 이미 트롤을 보신 분이 계실 겁니다.”
말하는 사람은 제국의 상급 기사이자, 아카데미의 교관이었다.
“10레벨쯤에 죽여본 것 같은데.”
“회복이 엄청 빨라서 놀랐었지.”
대부분의 용사들은 교관의 말대로 트롤을 본 적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서우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북방의 트롤은 눈앞에 있는 놈들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가진 개체들이었다.
‘죽을 뻔했었는데.’
웬만한 상처 정도는 호흡 몇 번 할 시간 동안 모두 나을 정도의 회복력.
백인대 전부가 달려들어도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의 괴력.
그리고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영악함까지.
트롤은 북방에서도 악명이 높은 몬스터였다.
그런 트롤이 무려 100마리나 묶인 채, 용사들의 앞에 있었다.
“오늘은 트롤과의 전투를 할 예정입니다.”
교관의 말에 용사들이 픽- 하고 웃었다.
“무슨 거창한 거라도 할 줄 알았더니, 겨우 트롤?”
“그래도 써는 맛이 있긴 하니까. 의외로 재밌을지도 몰라.”
용사들은 농담을 주고받기 바빴다.
눈앞의 트롤쯤은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였다.
‘그게 고블린한테도 발리는 너희가 할 말이냐?’
저놈들이 본 트롤들은 죽기 일보 직전인 빈사 상태였을 것이다.
칼질 몇 번, 주먹질 몇 번이면 죽었을 정도로 약화된 트롤 말이다.
그런 놈들을 몇 번 죽여봤다고 저렇게 자신에 찬 모습이었다.
“그래도 팔팔한 놈이랑 싸워본 적은 없는데…….”
“좀 위험한 거 아니야?”
물론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힌 용사들도 있긴 했다.
그 수가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게 문제이긴 했지만 말이다.
“방심은 금물입니다. 오늘 용사님들이 싸워야 할 트롤은, 이전에 봐왔던 놈들과는 조금 다를 테니 말입니다.”
교관은 차갑게 식은 눈으로 용사들을 둘러봤다.
그도 얼마 전 일어난 사태를 이미 들었다.
게랄드는 논외로 치더라도, 20레벨이 넘어가는 용사들이 고작 고블린 무리에게 모두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방심만 하지 않는다면, 고작 병사들만으로도 고블린 부락쯤은 몰살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마왕을 막을 희망이란 용사들이 겨우…….
하지만 용사들은 그런 교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시덕거리며 내기까지 하는 놈들도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교관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흘리며 설명을 이어갔다.
“이 전투는 용사님들의 실전감각을 키워주기 위함도 있지만, 정확한 실력 측정과 앞으로의 교육 방향성을 정하기 위한 목표도 병행됩니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주시길 바랍니다.”
교관의 말에 서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는 아카데미라는 곳이 딱히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본래 아카데미에서 계획했던 것은 레벨 업을 위한 몬스터의 사냥이라고 들었다.
지금껏 다른 용사들이 해온, 버스 타는 걸 아카데미에서 한다는 것만 달라질 뿐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조금씩 실전감각을 키워주고, 이런저런 교육도 겸하는 것 같았지만…….
반 슬레인에게 가르침을 받은 서우진은 그런 것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바뀌었다.
고블린 때문인지, 게랄드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카데미의 교육과정이 완전 달라졌어.’
트롤과의 전투라니?
이런 걸 할 것이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었다.
‘괜찮은데?’
솔직히 말하자면 트롤 정도는 지금의 서우진에겐 너무도 쉬운 상대였다.
매시브 가디언에 있을 때도 그랬는데, 6레벨이나 더 오른 지금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다른 용사들은 어떨까?
고블린 따위에게도 모조리 쓸려 나갈 뻔했던 놈들이, 과연 트롤을 상대로 제 실력이나 발휘할 수 있을까?
서우진은 부정적이었다.
트롤의 광폭한 살기를 마주한 용사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직접 경험해 본 서우진이 가장 잘 알았다.
“호명하는 대로 한 분씩 나와 전투를 시작하겠습니다.”
용사들은 연무장 한켠에 마련되어 있는 대기석으로 몸을 옮겼다.
그리고 가장 먼저 호명된 사람은.
“고한성 님.”
모르는 놈이었다.
* * *
처음부터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고한성은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C급 20레벨.
100명의 용사를 실력대로 일렬로 세우면, 마지막 열 명 안에 들 수준이었다.
그 사실은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용사들 중에서 자신이 그리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고한성은 콧김을 뿜으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트롤 따위는 찌르기 한 방이면 충분하지.’
그의 직업은 ‘창술사’.
그리 특이할 것 없는 직업이었다.
그저 창을 잘 쓸 수 있는 능력과 그에 관련된 스킬이 몇 개 있을 뿐.
물론 그 정도만으로도 대단하긴 했다.
실제로 고한성은 트롤 다섯 마리를 일격에 꿰뚫은 적도 있었다.
그것이 팔다리가 모두 잘린 채 반항도 하지 못하는 놈이었다는 사실은, 그의 기억에서 지워진 지 오래였다.
고한성에게 트롤이란, 커다랗고 찌르게 좋은 샌드백에 불과했다.
“준비되셨습니까?”
교관의 물음에 고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트롤 따위를 상대하는데 준비할 것도 없었다.
교관은 창대를 바닥에 댄 채 건들거리고 있는 그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교관이 눈짓하자, 트롤 한 마리의 목줄이 풀렸다.
크르르르-
무슨 마법적인 처리가 되어 있었던 것인지, 얌전하던 트롤은 목줄이 풀리자마자 흉포한 살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어?’
고한성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시작되자마자 창을 들어 트롤의 머리를 꿰뚫으려 했다.
자신이 가진 스킬 중 가장 화려하고 멋들어진 ‘섬격’을 사용해서 말이다.
비록 등급은 낮지만 이 스킬로 트롤을 한 방에 죽인다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 눈도 조금은 달라질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고한성의 계획은 시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왜, 왜 몸이 안 움직이지?’
트롤의 머리를 뚫기는커녕,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가 없었다.
그저 비처럼 쏟아지는 땀줄기에 자신도 모르게 눈만 깜빡일 뿐.
크아아아-!
3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가 고한성을 향해 짓쳐들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빠른 속도였다.
“우, 우아아악!”
그제야 고한성은 움직일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자신이 계획했던 화려하고 멋진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살기에 놀라 엉덩방아를 찧고, 트롤에게서 조금이라도 도망치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를 지원한 왕국의 보물이었던 창은, 어느새 연무장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하지만 도망가는 속도보다 트롤이 달려드는 속도가 몇 배는 더 빨랐다.
순식간에 고한성의 앞에 도착한 트롤이 두 손을 뻗었다.
눈앞의 먹잇감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생각인 것 같았다.
“거기까지.”
촤악-!
다행히 고한성이 트롤 따위에게 죽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교관이 나서서 일검에 트롤의 목을 베어버린 것이다.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트롤이 무릎을 꿇었다.
아무리 회복력이 좋다고 해도, 머리가 잘린 것까지 재생할 순 없었으니까.
“푸하하!”
“저게 뭐야. 용사 망신 다 시키네.”
대기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오줌까지 지린 고한성을 본 용사들이 한심한 눈으로 그를 비웃기 시작한 것이다.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고한성은 그딴 감정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지금 그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내, 내가. 주, 주, 죽…….”
고한성은 이미 트롤이 죽었음에도 여전히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하아…….”
그 모습에 교관이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용사들의 말대로 고작 트롤 ‘따위’다.
그런데 공격 한 번 하지 못하고 오줌까지 지리다니.
제국의 일반 병사들도 보여주지 않을 추태였다.
“모시고 가도록.”
교관의 말에 시종들이 나와 얼이 빠진 고한성을 데리고 연무장을 벗어났다.
‘갑자기 왜 교육과정이 바뀌었는지 알겠군.’
교관은 고한성의 모습에서 용사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다음.”
어느새 교관의 말투에서 예의는 사라져 있었다.
* * *
꿀꺽-
누군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트롤을 마주한 용사들이 오줌을 뿌리며 주저앉은 것이 벌써 열 명이 넘었다.
공격다운 공격은 고사하고, 제대로 서 있는 것조차 하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고한성을 비웃던 용사들은, A급 27레벨의 용사가 오줌을 지린 후 더는 웃지 못했다.
‘쯧쯧.’
서우진은 속으로 혀를 찼다.
용사들의 수준이 생각보다 훨씬 더 엉망이었다.
솔직히 A급 정도 되면 조금은 다를 것이라 생각했는데…….
검 한 번만 제대로 휘둘러도 트롤은 그대로 두 동강이 날 것이다.
그런데 그 한 번을 휘두르지 못했다.
처음 마주한 압도적인 살기에 위축되어 버린 것이다.
지금껏 버스만 타온 용사들로선 도무지 견뎌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마침내 기다리던 순서가 왔다.
“서우진 님.”
교관의 입에서 서우진의 이름이 나왔다.
“…D급이지?”
“기절하는 거 아니야?”
“심장마비에 걸릴지도 모르지.”
무겁던 분위기가 살짝 바뀌었다.
100명의 용사 중 가장 낮은 등급인 서우진의 차례였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자신보다 못한 존재를 보며 위안을 삼곤 했으니까.
숙덕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서우진은 신경쓰지 않았다.
“준비되셨습니까?”
교관은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 표정으로 서우진에게 물었다.
“네.”
검을 뽑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교관이 다시 한번 눈짓을 했고, 트롤이 풀려났다.
크아아아아-!
놈은 오랜만의 자유에 억눌러 왔던 흉성을 터트렸다.
그리고 서우진을 노려봤다.
살기가 듬뿍 담긴 울음소리가 압박했다.
다른 용사들이 견뎌내지 못했던 바로 그 살기였다.
‘역시 약해.’
하지만 서우진은 북방의 트롤들을 수도 없이 잡아 죽인 경험의 소유자였다.
저런 질 낮은 살기 따위에 움츠러들 리가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할까?’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줌을 지리고 싶진 않았다.
‘그렇다고 한 방에 죽이는 건 너무 튀는데.’
최대한 관심을 덜 받는 방법.
서우진이 그것을 찾기 위해 잠깐 고민에 빠졌을 때였다.
트롤은 그 모습이 자신에게 겁을 먹었기에 굳은 것이라 착각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다른 트롤들이 그랬던 것처럼, 놈 역시 서우진을 향해 짓쳐들었다.
그리고 서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검을 휘둘렀다.
갑자기 터져 나온 살기에 몸이 저절로 반응을 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서걱-
트롤의 몸에 가느다란 실선이 생겼다.
머리부터 사타구니까지.
너무도 깔끔한 검격에, 트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양옆으로 나뉘어 쓰러졌다.
‘아, 이런…….’
서우진이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경악한 표정의 교관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