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55)
455화.
서우진은 달렸다.
그리 힘이 들지는 않았다.
고작 마수 천여 마리를 베어낸 것 정도로 지치기엔, 그의 경지가 너무도 드높았다.
하지만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점점 속도가 느려지는 것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너무 많다.’
순식간에 세 마리의 마수를 조각낸 서우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토록 거침없이 질주했음에도, 아직 강가스테어와의 거리는 좁혀지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날이 새도 놈을 향해 ‘카 라니엘’을 휘두를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할까?’
뒤쪽에서는 전투가 시작됐다.
늦지 않게 나온 동료들이, 마수들을 상대로 격렬한 방어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을 돕기 위해서라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마수를 죽여놓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장 강대한 적인 강가스테어를 그냥 둘 수도 없었다.
만약 놈이 움직인다면, 단번에 전투의 양상이 바뀔 게 분명했으니까.
서우진은 선택을 해야만 했다.
마수의 수를 줄이느냐, 적의 머리를 자르느냐.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그렇지만 반드시 결정해야만 했다.
서우진은 쉬지 않고 마수들을 베어넘기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렇게 약 200마리 마수의 머리를 자른 뒤 결심했다.
‘강가스테어를 친다.’
지금은 동료들의 힘을 믿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어떻게든 마수들을 상대로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믿어야만 했다.
“후우-”
서우진은 깊게 심호흡을 했다.
‘그래도 그냥 갈 순 없지.’
처음 계획했던 것과는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역시 마수들의 수는 조금 줄여두는 편이 나을 듯했다.
후우우우우웅-!
혼돈기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지금껏 천여 마리의 마수를 썰어대면서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힘을 끌어올린 것이다.
드드드드드드-
서우진이 딛고 있는 땅이 진동하며 갈라졌다.
너무도 거대한 힘을 버티지 못하고, 대지에 균열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조금만 더.’
너무 많은 힘을 쓸 순 없었다.
강가스테어가 얼마나 강한 놈인지 아직은 알지 못했으니까.
놈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여력은 남겨두어야만 했다.
그렇다고 고작 몇 천 마리 정도의 마수들을 죽이는 건 무의미했다.
적정선.
‘그래, 딱 1만 정도만 잡자.’
그 정도면 동료들에게도 조그마한 도움이 될 수 있었고, 너무 많은 혼돈기를 낭비하지 않아도 될 수준이었다.
적당히 계산을 끝낸 서우진은 끌어올린 혼돈기를 ‘카 라니엘’에 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십이천공검.”
하늘에서 열두 개의 빛줄기가 떨어져 내린다.
하나하나가 웬만한 빌딩보다도 거대한 크기인 빛의 검이었다.
그것들은 마치 ‘신의 지팡이’처럼 그대로 대지를 향해 내리꽂혔다.
쿠우우우우웅-!
그 아래 깔린 백여 마리의 마수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피떡이 되어 짓뭉개졌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의 피해를 입히려고 사용한 스킬이 아니다.
일격에 그 정도 숫자의 마수들을 잡아 죽이는 건, 그저 혼돈기를 담아 ‘카 라니엘’을 힘껏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가능했으니까.
광검(光劍)은 대지에 꽂힌 상태에서 점차 광자(光子)로 변해갔다.
수십, 수백, 수천, 수만… 그리고 이내 셀 수 없이 많은 숫자의 빛 구슬.
마수들 사이로 별자리가 만들어졌다.
아니, 은하수다.
수없이 많은 별로 이루어진 은빛의 강.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지는,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은하수가 회전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분쇄시키는, 파멸의 순환이었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곽-!
피안개가 피어올랐다.
빛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회전톱날에 휘말린 마수들이 가루가 되며 허공에 비산한 것이다.
그 수는 정확히 서우진이 의도한 대로였다.
1만.
단 한 번의 스킬에 무려 만 단위의 마수들이 갈려 나갔다.
‘흐음.’
서우진은 붉게 물든 대기를 바라보며, 남아 있는 힘을 가늠해 보았다.
‘아직 충분해.’
약간의 탈력감이 들기는 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감수할 만했다.
서우진이 주변의 상황을 확인했다.
방금 전까지 빼곡히 둘러싸고 있던 마수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오직 텅 빈 공터만이 남았다.
무려 1만이라는 숫자의 마수가 가루가 되어 날아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덕분에 서우진 주변에는 피 안개만이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중이었다.
‘됐다.’
서우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도움은 줬다.
‘뒤는 맡긴다.’
마수들과 피 튀기는 전투를 벌이고 있는 동료들을 향해 속으로 부탁하곤, 땅을 박찼다.
쿠웅-!
작은 진동과 함께 서우진의 신형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신속’.
더는 혼돈기를 아끼며 마수들을 사냥해야 할 이유가 없었기에, 서우진은 스킬을 사용해 강가스테어가 있는 쪽으로 몸을 날렸다.
마치 날아가듯, 그의 신형이 허공을 갈랐다.
아직도 10만이 훌쩍 넘는 숫자의 마수가 아래에 군집해 있었다.
서우진은 그런 놈들을 살기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공격을 하진 않았다.
지금은 저딴 마수들이 아닌, 진짜 적을 상대해야 했으니까.
‘저긴가?’
서우진은 강가스테어의 위치를 가늠하곤, 허공을 밟으며 나아갔다.
그야말로 가공할 속도.
순식간에 마수들의 바다를 가로지른 서우진의 눈동자에, 이질적인 존재의 모습이 들어왔다.
‘놈이다.’
마수들보다 족히 두 배는 되어 보이는 키.
코끼리 두 마리를 합쳐 놓은 것보다 더 큰 덩치.
그리고 끔찍할 정도로 짙은 마기까지…….
서우진은 놈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쐐애애애애액- 쿠웅-!
서우진은 날아오던 속도 그대로 땅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 있던 마수들이 피를 뿌리며 날아갔다.
속도에서 비롯된 힘의 여파를 버텨내지 못한 것이다.
“후우-”
작게 한숨을 내쉬며 강가스테어를 올려다봤다.
가까이서 확인하니, 그 크기가 더욱 실감되었다.
‘드레이카스 정도인가?’
얼추 비슷한 듯했다.
하지만 그런 몬스터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파악이 안 돼.’
놀랍게도 강가스테어는 서우진조차도 그 힘이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파악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신룡안’을 발동시켜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뿌연 안개의 장막에 시야가 완전히 가려진 듯한 느낌이었다.
서우진은 이번 싸움이 결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어쩌면 ‘마왕화’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으면 승부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용사인가?]그때, 강가스테어에게서 지독하리만치 역겨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서우진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마기야 별로 문제될 것은 아니다.
애초에 마기는 처음부터 서우진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으니까.
그런데도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놈의 음성이 그만큼 거슬렸기 때문이었다.
서우진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입을 열어 대답하진 않았다.
괜히 그랬다간, 욕지기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던 것이다.
그런데 강가스테어의 태도가 조금 이상했다.
뭔가를 확인하듯, 서우진을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적갈색의 눈동자들이 번뜩였다.
‘뭐지?’
단순히 자신의 힘을 가늠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근본적인 뭔가를 꿰뚫어 보는 듯한 시선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았다.
[너는 용사가 아니로구나.]강가스테어는 당황과 분노가 뒤섞인 음성으로 서우진을 향해 말했다.
[‘혼돈의 왕’이여‘ 내가 그대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더냐?]서우진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젠장.’
지금은 ‘마왕화’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놈은 서우진의 정체를 눈치 챘다.
‘혼돈기 때문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본질을 꿰뚫는 눈 따위를 지니고 있을 수도 있었고.
하지만 중요한 건 어떻게 알아봤느냐 하는 것이 아니었다.
서우진이 ‘혼돈의 왕’이라는 예언 속의 존재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린 놈의 능력이 문제였다.
‘나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어.’
그 말은, 강가스테어가 마왕이 되었던 백시우보다도 상위의 존재일 가능성이 있다는 뜻도 되었다.
“나는 그 별명 싫어하는데.”
결국 서우진이 입을 열었다.
무겁게 가라앉은 음성에 강가스테어가 웃음을 터트렸다.
끄윽끄윽- 하는 소리가 고막을 긁어내는 것만 같았다.
[싫다 하여 부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라.]강가스테어는 서우진의 반응이 우습다는 듯, 고개를 모로 꼬았다.
[허나, 싫어한다는 감정에 한해서는 나와 같구나.]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
마기가 흘러나왔다.
지금껏 서우진이 경험해 보지 못한, 지독하고도 농도 짙은 기운이었다.
오죽하면 마기에 친화적이었던 서우진도 얼굴을 굳히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날 정도였다.
‘좋지 않은데.’
예상했던 것보다 강했다.
지금 이 상태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하지만…….
곧장 ‘마왕화’를 사용할 순 없었다.
‘해볼 수 있는 데까진 해보고.’
굳이 ‘마왕화’가 아니더라도, 서우진은 자신의 힘을 증폭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여럿 있지 않던가?
언제나 그래왔지만, ‘마왕화’ 스킬은 최후의 최후에서나 선택해야 할 수단이었다.
[어디 한번 ‘혼돈의 왕’이 예언대로의 존재인지 확인해 보자꾸나.]강가스테어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동시에 마기가 뻗어 나오며, 순식간에 주변을 오염시키기 시작했다.
평범한 생명체였다면, 반항도 하지 못하고 전신이 썩어 들어가며 즉사했을 정도.
하지만 서우진은 평범한 존재가 아니다.
“확인 같은 소리하고 있네.”
혼돈기를 끌어올렸다.
폭발적으로 뻗어 나온 회색의 기운이 마기와 충돌하며 밀어내기 시작했다.
콰득- 콰드드득-!
무량(無量)한 기운의 격돌에 공간이 부서졌다.
허공에 거미줄과 같은 균열이 생기며,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차원간의 장벽이 붕괴되며 틈이 만들어진 까닭이었다.
그에에에에에에엑-!
마수들이 빨려 들어가며 비명을 내질렀다.
놈들이 아무리 강하다 하나, 물리법칙을 송두리째 박살내는 위력 앞에서는 한낱 먼지나 다름없었다.
물론, 서우진과 강가스테어는 예외였다.
마치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잡아당기는 인력(引力)이 속박했지만, 둘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으음…….’
하지만 서우진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단 한 번의 격돌.
그것도 직접 손을 쓴 게 아닌, 고작해야 기운의 충돌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놈이 나보다 강해.’
혼돈기가 마기에 밀린다.
가까스로 버티고는 있었지만, 이내 한계에 부딪힐 게 분명했다.
‘역시 이대로는 안 되겠구나.’
서우진은 이를 악다물었다.
힘이 부족하다면, 키우면 될 일.
서우진이 눈을 가늘게 뜨며 입을 열었다.
“‘혼돈세계’, ‘셀레스티얼 윙’.”
하나의 스킬과 하나의 마법이 동시에 발동됐다.
그리고…….
서우진의 혼돈기가 순식간에 몇 배나 증폭되며, 마기를 갈가리 찢어버리기 시작했다.
강가스테어의 적갈색 눈동자에 당황이 서렸다.
그것을 본 서우진은 등뒤로 돋아난 날개를 활짝 펼치며 말했다.
“어디 한번 제대로 붙어보자, 이 역겨운 새끼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