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76)
476화.
‘팔로타인 라세’는 고요했다.
숲은 죽었고, 균열을 건너왔던 존재들은 모두 이동을 끝낸 상태였으니까.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이 죽음의 대지에 남아 있는 건, 오직 하나.
침묵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조금씩 그 침묵이 깨어지고 있었다.
찌직- 찌지직-
마치 천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미약하기는 했지만, 숨이 막힐 정도로 고요한 숲을 울리기엔 충분한 크기.
그것은 공간이 강제적으로 찢겨지는 소리였다.
권속과 몬스터들을 한차례 쏟아낸 후 닫혔던 균열이, 다시금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손톱만큼.
그 이후엔 손가락, 손바닥, 한쪽 팔의 크기까지.
점차 그 크기를 벌려가던 균열은 이내.
찌이이이이이이이이익-!
커다란 소리와 함께, 완전히 벌어졌다.
저벅-
모습을 드러낸 존재, 아니, 존재들.
그들은 아무런 말도 없이 주변을 살펴보다 이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누구는 남쪽으로, 누구는 동쪽으로, 그리고 누구는 북쪽으로.
먼저 도착한 세 권속이 향한 서쪽을 제외한,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균열은 닫히고, ‘팔로타인 라세’에는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 * *
계수지는 이를 악물었다.
미리 약속된 지점으로 서우진이 권속 중 하나를 날려 보내자마자, 용사들과 함께 그곳으로 향했다.
나단을 방어하기 위한 병력을 제외하면, 모두가 그곳으로 향한 것이다.
서른 명이 넘는 용사와 열두 명의 마법사.
그리고 몇 명의 사제들까지.
아쉽게도 아이에르의 지원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그들도 머지않아 도착할 것이다.
해서 계수지는 자신이 있었다.
이 정도의 전력이라면 권속 중 하나는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힘들기야 하겠지만, 충분하다고.
하지만 권속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순간, 그 자신감은 꺾이고 말았다.
‘미친…….’
두려움이 왈칵- 샘솟았다.
탈로타인에서 마수들을 막아냈을 때도 무서웠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놈들은, 그야말로 공포스러웠으니까.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짐승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저 가만히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멎을 것만 같은 충격이 전신을 뒤흔들었다.
계수지는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용사들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모두의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
그나마 동료들은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었지만, 지원을 온 용사들은 달랐다.
당장에라도 몸을 돌려 도망치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다.
심지어 하늘탑의 마법사들조차도 안색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대론 안 돼.’
아직 싸움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부터 저런 모습이라면, 이미 패배한 것과 다름없었다.
“정신 차려요.”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칭찬해 줄 만했다.
적어도 겉으로는 두려움이 새어 나오지 않았다는 뜻이었으니까.
“적은 하나예요. 그리고 우리는 많아요.”
용사만 무려 서른.
마법사와 사제들까지 합치면 무려 마흔이 넘는다.
이 정도 전력을 가지고 두려움에 떨다 패배할 순 없었다.
“그러니 이길 수 있어요.”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다.
이길 수 있다, 이길 수 있다.
계수지는 속으로 계속 되뇌며 서우진에 대한 경외심을 느꼈다.
‘지금까지 우진 씨는 이런 놈들과 싸워왔던 걸까?’
탈로타인에서 서우진이 싸웠던 강가스테어도 마왕의 권속들 중 하나다.
그러니 눈앞의 짐승과 비교해도 결코 부족하지 않은 존재였을 터.
그런데도 서우진은 싸워 이겼다.
심지어는 상처 하나 없는 모습이었다.
질투도 느껴지지 않을 수준의 격차 아닌가.
분명 시작은 같았는데, 왜 이렇게 차이가 벌어진 건지…….
이해할 순 없었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이런 놈들을 상대해 왔기에 그토록 강한 거야.’
자신들이 고작해야 마수와 몬스터 따위를 사냥할 동안, 서우진은 차원이 다른 적들과 싸워왔다.
그리고 이젠 자신들도 해내야만 했다.
두렵고, 긴장되고, 자신감이 꺾였지만.
그래도 싸워 이겨야만 한다.
[용사들인가?]짐승의 입에서 인간의 말이 흘러 나왔다.
흠칫-!
용사들이 몸을 움츠리는 것이 느껴졌다.
음성 안에 담겨 있는 지독한 마기 때문이었다.
전투 경험이 부족한 그들로선, 고작 그것만으로도 육체가 굳어진 것이다.
계수지는 더 늦기 전에, 먼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너는 누구지?”
일단은 시간을 벌어야 한다.
모두 긴장을 풀고, 완전한 전투태세를 갖출 때까지.
지금 달려들어 봐야 필패다.
[나의 이름은 조라네스.]머릿속을 직접 울리는 듯한 음성은, 절로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벽을 부수는 자다.]‘벽을 부수는 자?’
왠지 그 안에 담겨 있는 의미를 대충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조라네스, 너는 거느린 마수가 없나 보군?”
반 슬레인과 충돌한 권속은 벌레들을 이끌고 있었다.
정말이지 셀 수도 없었다.
탈로타인을 공격했던 마수들은 비교조차 불허하는 숫자였다.
하나, 하나가 적지 않은 힘이 있었으니, 나단을 수호하는 건 쉽지 않을 듯했다.
그런데 병력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그 벌레들이 전부였다.
눈앞의 조라네스나, 서우진이 맡은 권속이 이끄는 놈들은 보이지 않았다.
[서두르지 말거라. 필요하다면 동원할 것이니.]그 말에 계수지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있다는 뜻이군.’
그냥 부리는 놈들이 없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아닌 모양이었다.
“우리를 상대하면서도 여유가 있다는 뜻이냐?”
한 발 뒤에 있던 구동환이 발끈하며 물었다.
그는 아무래도 이쪽이 무시당했다는 느낌에 분노한 듯했다.
‘이해를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구동환은 승부욕이 강한 사람이었다.
지면서도, 계속해서 자신에게 내기를 걸어올 정도였으니까.
그 호승심과 향상심만큼은 용사들 중 제일이었다.
그런데 조라네스가 무시하는 것 같자,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조라네스가 개의 것과 비슷한 입을 벌리며 쿡쿡- 웃었다.
화를 내는 구동환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내가 전력을 다하길 바란다면, 증명해 보이라.]콰과과과과과과과과곽-!
마기가 치솟아 오르며 주변을 뒤덮기 시작했다.
“크윽!”
“무, 물러서!”
그 압도적인 힘에, 사색이 된 용사들이 뒷걸음질을 쳤다.
제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건 고작해야 동료들과 S급 용사 셋이 전부였다.
계수지는 이를 악다물며, 마력을 폭발시켰다.
쿠우우우우우웅-!
마기와 충돌한 마력이 속절없이 밀렸다.
‘역시…….’
힘의 차이는 명확했다.
혼자서는 저 존재를 당해내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계수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뒤쪽에서 거대한 마력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때를 기다리던 동료들이 동시에 힘을 개방한 것이었다.
“쳐요!”
시간을 끄는 건 여기까지다.
지금부터는 힘 대 힘, 육체와 육체, 병기와 병기.
지닌 바 모든 것을 동원하여 적을 분쇄하는 것만 남았다.
“소환!”
가장 먼저 스킬을 사용한 건 김다혜였다.
그녀는 스케치북을 펼치며, 미리부터 준비하고 있던 것을 ‘소환’했다.
서우진조차도 경악하며 감탄을 금치 못했던 비밀병기.
전자기력을 사용해 금속 탄자를 가속해 가공할 속도로 쏘아내는 무기.
레일건(Rail gun)이었다.
수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총신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동시에 작동했다.
쿠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귀를 찢는 듯한 굉음과 함께, 무려 마하6을 뛰어넘는 금속 탄자가 조라네스를 향해 쇄도했다.
그야말로 찰나.
상식을 벗어날 정도로 쏘아진 금속 탄자는, 제아무리 마왕의 권속이라 할지라도 인지할 수 없…….
콰득-!
조라네스의 손아귀에 잡힌 금속 탄자가 우그러졌다.
김다혜의 비밀병기는, 그를 단 1밀리미터도 뒤로 밀어내지 못했다.
아니, 생채기조차 낼 수가 없었다.
계수지는 눈을 부릅떴지만, 놀라고 있을 여유 따윈 없었다.
‘벼락 밟기’를 사용해 순식간에 조라네스의 옆으로 돌아간 그녀는, 곧장 ‘나락 떨구기’를 사용했다.
발꿈치가 놈의 정수리를 향해 떨어져 내린다.
산도 주저앉힐 만한 위력.
그뿐인가?
어느새 변신한 구동환은 ‘진혼’을 든 채,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마법스킬을 사용했고, 다른 동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뒤쪽에서 굳어 있던 용사들도 반사적으로 스킬을 발동시켰고.
제대로 된 연계공격은 아니었지만, 상관없었다.
일단은 조금이라도 놈에게 부상을 입히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야만 이어지는 전투에 조금이라도 승기를 잡을 수 있었으니까.
한 순간에 수십 개의 강력한 스킬들이 조라네스의 몸에 꽂혀들었다.
비록 김다혜의 레일건은 막혔지만, 그에 못지않은 힘들이 육체를 부수기 위해 쇄도했다.
하지만…….
[가소롭다.]조라네스는 멀쩡했다.
그 어떤 충격조차 받지 않은 듯, 일말의 표정 변화도 없이 싸늘한 눈빛으로 계수지를 내려다 봤다.
움찔-
‘피해야 해!’
공격당한다.
본능적으로 그것을 깨달은 계수지가 발을 들어 조라네스의 복부를 걷어차고, 뒤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이미 늦은 것일까?
눈 깜짝할 새 놈의 손이 어느새 계수지의 턱끝에 다다라 있었다.
그저 단순히 손을 내뻗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힘은, 지금껏 그녀가 느껴보지 못한 수준이었다.
‘큰일……!’
못 막는다.
단 한 수에 죽진 않겠지만, 부상을 피할 순 없을 것 같았다.
계수지는 이를 악물며 최대한 충격을 줄이기 위해 팔을 들었다.
“비키시오!”
그때,
번쩍- 하는 섬광과 함께, 새하얀 빛이 떨어져 내렸다.
[크으윽!]놀랍게도 조라네스가 팔을 거두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 덕에 계수지는 무사히 몸을 피할 수 있었다.
‘신성마법?’
창졸지간이었지만, 새하얀 빛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바로 신성력이었다.
계수지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도운 이들을 바라봤다.
예상했던 대로 아이에르의 사제들이었다.
그들은 숨을 헐떡이며, 손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아무래도 무리를 해서 신성마법을 사용한 것 같았다.
힘겨워 하는 모습을 보면 더 이상의 지원은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계수지의 표정은 밝았다.
신성력이 놈에게도 통한다는 사실을 알아냈기 때문이었다.
“물러나요!”
계수지의 외침에, 추가 공격을 준비하던 용사들이 땅을 박차고 뒤로 물러났다.
“시간을 버는 데 집중해요!”
자신들만으론 무리다.
하지만 조금만 버틴다면, 아이에르의 지원이 도착할 터.
그때가 되면,
‘상대할 수 있어.’
고작 이 정도의 신성마법으로도 타격을 입었다.
비록 유의미한 부상을 입힌 건 아니었지만, 상관없었다.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는 아이에르 군에는 수백, 수천 명의 사제와 수만 명의 신성기사가 있었으니까.
그들과 힘을 합친다면, 조라네스라 해도 물리칠 수 있다.
‘그때까지 버틸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지만.’
그래도 희망이 보인다.
그것을 위해서라도, 지원이 도착할 때까지는 전력을 보존해야만 했다.
“방어에 치중합니다!”
공격은 그 이후에.
계수지는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눈빛으로, 조라네스를 노려보았다.
[나쁘지 않은 눈이다.]그것을 본 조라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그뿐.]마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너희는 오늘, 이 자리에서 죽을 것이니라.]조라네스가 사형선고를 내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