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77)
477화.
‘검을 뽑았다!’
씁쓸함과 희열이 동시에 느껴졌다.
방심한 틈을 타 부상을 입히지 못한 건 아쉬웠지만, 그래도 검을 뽑게는 만들었으니까.
“뽑아야 할 것 같았나 보지?”
서우진이 아르제베토를 향해 이죽였다.
“…그러게.”
그녀는 얼굴을 굳힌 상태로 팔에 힘을 주었다.
엄청난 거력과 함께 서우진의 신형이 튕겨 나가듯 멀어졌다.
‘으음.’
손이 저릿하다.
본래부터 강하긴 했지만, 검을 뽑자 아예 다른 존재가 된 듯했다.
엉성하기 짝이 없던 주먹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첫 번째 검이라더니.’
그 이름에 걸맞았다.
“내가 검을 뽑은 게 대체 얼마만인지.”
아르제베토는 미소를 지었다.
천진난만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섬뜩하기 그지없는 표정이었다.
서우진은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따라 웃었다.
자신이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싫었기 때문이다.
“역시 ‘혼돈의 왕’이야.”
아르제베토는 손에 쥔 붉은 검을 한 바퀴 빙글 돌리며 말했다.
“나는 서우진이다. ‘혼돈의 왕’ 따위가 아니야.”
이제 와서 부정해 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었지만, 그런데도 정정해 주었다.
서우진은 서우진.
그 외에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싶지 않았으니까.
특히나 예언 같은 뜬구름 속의 존재가 되고 싶은 생각 따위는 눈곱만치도 없었다.
“그래, 그렇다 치고.”
아르제베토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그보단 서우진이 지닌 힘에 더 관심을 가졌다.
“네가 갖고 있는 힘은 뭐지? 마기도 아니고, 마력도 아닌데. 아, 물론 신성력은 더더욱 아니고.”
혼돈기.
그 이질적인 기운은 오직 서우진만이 지니고 있었으니, 그녀도 처음 느껴보는 종류일 터였다.
“궁금해?”
“응, 가르쳐 줄래?”
눈이 호선을 그리며 친근하게 물었다.
하지만 서우진은 피식- 웃을 뿐 말해주지 않았다.
“궁금하면 직접 알아보던가.”
타앗-!
‘혼돈 세계’가 아르제베토를 압박했다.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정말로 영역 내의 공간과 실재하는 물질들이, 그녀를 향해 짓쳐들었다.
그 사이로, 서우진의 신형이 파고든다.
‘카 라니엘’의 검광이 번뜩였다.
빛살과 같은 참격이, 아르제베토의 목을 노리고 날아갔다.
“제법이야.”
하지만 그녀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토록 빠른 공격에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붉은 검을 들어 검로를 방해했다.
키기기기긱-!
쇠가 갈리는 듯한 소음이 터졌다.
놀랍게도 ‘카 라니엘’은 붉은 검의 검신을 타고 빗겨 나갔다.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발휘하는 방어.
서우진은 스스로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몸을 휘청거렸다.
“하지만 아직 어설퍼.”
아르제베토가 마왕의 권속으로 살아온 세월이 어느 정도나 될까?
서우진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방금 전의 공방으로 짐작하건데, 고작 수십 년 정도에 불과하진 않을 것이다.
검을 다루는 기술만 보자면, 반 슬레인조차도 아득히 넘어설 정도였으니 말이다.
최소한 수백 년의 세월.
그 기나긴 시간 동안 갈고닦은 검이 분명했다.
서우진 역시 수많은 실전 경험을 쌓아왔다고 자부했지만, 아르제베토에 비하자면 조족지혈이었다.
그녀가 어설프다고 평할 정도로 말이다.
“크윽!”
전신에 혼돈기를 휘돌리며, 몸을 비틀었다.
그와 동시에.
쩌어엉-!
붉은 검이 ‘루덴 가르도’의 옆구리 부분을 가격했다.
숨이 턱- 하고 막혀온다.
엄청난 방어력을 자랑하는 갑주였는지라 뚫리지는 않았지만, 충격마저 흡수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콰과과과과광-!
힘을 이겨내지 못한 서우진이 땅을 나뒹굴며 멀찍이 튕겨 나갔다.
그 덕에 아르제베토를 압박하던 ‘혼돈 세계’의 힘도 사라졌다.
뭐, 애초에 별다른 효과를 보지는 못한 것 같지만 말이다.
‘크으으으으-’
서우진은 다급히 자세를 바로 잡았다.
옆구리 쪽에서 울리는 엄청난 통증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하지만 그것에 신경을 쓸 때가 아니었다.
어느새 자신을 따라잡은 아르제베토가 붉은 검을 찔러 넣고 있었으니까!
“신속!”
순간적인 가속으로 간신히 자리를 벗어났다.
콰아아아앙-!
고작해야 찌르기다.
그런데도 방금 전까지 서우진이 발을 딛고 있던 땅이 터져 나갔다.
‘이런 X발.’
지금 둘이 싸우고 있는 전장은 ‘혼돈 세계’의 영역이었다.
서우진의 의지가 강하게 깃들어 있는 세계라는 뜻이었다.
그런데도 파괴된다.
본래라면 서우진이 바라지 않는 이상, 티끌 하나도 손상되지 않아야 정상임에도!
땅거죽이 터져 나가고, 공간이 찢겨졌다.
그것을 본 서우진은 이를 악다물 수밖에 없었다.
‘혼돈 세계’에 ‘셀레스티얼 윙’, 그리고 ‘마왕화’까지.
그 모든 힘을 합친 것보다 아르제베토의 단순한 찌르기가 훨씬 더 강력하다는 말이었으니까.
간신히 사정거리에서 벗어난 서우진은 옆구리를 부여잡으며, 숨을 골랐다.
‘강한 건 알고 있었지만.’
단순히 풍겨오는 마기만 보더라도 강가스테어를 아득히 넘어서고 있었다.
그래도 충분히 상대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강가스테어를 사냥하며 레벨이 140에 도달했으니까.
물론 쉽지야 않겠지만, ‘마테아의 광명’을 사용한다면, 이번에도 어떻게든 될 것이라 여겼다.
‘오판했어.’
하지만 아르제베토는 서우진이 예상했던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
방심한 건 그녀가 아니라, 자신이었다.
얼마 되지 않은 짧은 공방이었지만, 서우진은 그 사실을 뼈저리게 체감했다.
‘어떻게 한다?’
승산이 없다고 해서 내뺄 수는 없다.
계수지에게는 무리하지 말고 힘들면 도망가라고 하긴 했지만, 자신은 그래선 안 된다.
그러니 어떻게든 저 빌어먹게 강한 놈을 상대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얘.”
아르제베토가 조롱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하지만 서우진은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들끓어 오르는 감정을 억지로 내리누르고, 방법을 강구하는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버겁구나.’
반 슬레인은 검을 잡은 손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그가 상대하고 있는 적이 본인보다 한 수 위였다.
‘아니, 그보다 더 높은가?’
두 계단, 어쩌면 세 계단은 앞서 걷고 있는 자일 수도 있었다.
본래라면 이렇게 맞상대하는 것도 불가능할 터.
그런데도 반 슬레인이 지금까지 버티고 서 있을 수 있는 건, 그저 그의 검술이 극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검만은 내가 앞선다.’
마베로돈이라는 이름의 권속은 정말로 강했지만, 그래도 검을 다루는 능력만큼은 반 슬레인이 더 뛰어났다.
그렇지 않았다면, 전투가 시작되고 5분도 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강하군.]‘인간치고는’이라는 뒷말은 애써 무시했다.
저것은 칭찬이 아닌, 그저 기만에 불과했으니까.
반 슬레인은 팔에 힘을 풀고, 검을 길게 늘어뜨렸다.
뚝뚝- 하는 소리와 함께 팔뚝을 타고 흐른 피가 땅에 떨어졌다.
현재 그의 상태는 처참했다.
전신이 날카로운 무언가에 베이고, 찢겨, 피칠갑을 한 모습이었다.
비록 치명상은 보이지 않았지만, 저만한 부상으로도 이미 위급한 상황이었다.
“그대 역시 대단한 실력일세.”
반 슬레인의 음성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마치 아직 전투를 시작하지도 않았다는 듯,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그것을 본 마베로돈이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조라네스가 놀아주고 있는 애송이들 따위보다, 네가 훨씬 뛰어나구나.]용사들을 이야기함인가?
반 슬레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나보다 낫다네.”
용사들에겐 그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뿐이다.
잠재력이나 가능성을 따져 보면, 가장 약한 이도 자신보다 훨씬 대단한 존재다.
[그런가?]마베로돈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지만, 상관없었다.
지금 그의 상대는 용사들이 아닌, 자신이었으니까.
“그렇다네.”
반 슬레인이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감각을 넓게 퍼트렸다.
‘언제쯤 오시려나?’
혼자서는 상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저 버티는 것만으로도 힘겨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지원이 온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신성기사 중에서도 최고의 위치에 올라 있는 프레이야와 함께 싸울 수 있었으니까.
그때가 되면 마베로돈도 지금처럼 기고만장할 수는 없을 터였다.
‘아직 멀었는가?’
반 슬레인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슬슬 도착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아직 아이에르 군의 기운이 느껴지질 않았다.
[쉬는 시간은 이 정도면 되었겠지?]역시.
마베로돈은 반 슬레인이 시간을 끌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흔쾌히 넘어가 준 것이었고.
“조금 더 달라고 하면 주실 텐가?”
반 슬레인이 얼굴에 철판을 깔고 물었다.
[하하하하!]그러자 마베로돈이 폭소를 터트렸다.
저렇게 뻔뻔하게 요구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내 웃음을 그친 뒤,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싶지만, 아쉽게도 불가하다. 나도 이후에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으니.]본인이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도 않은 듯했다.
당연히 반 슬레인을 죽이고, 그다음의 일을 고민하고 있을 정도면 말이다.
반 슬레인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 참 아쉽게 되었군.”
어쩔 수 없이 조금 더 혼자서 버텨봐야 할 것 같았다.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반 슬레인은 늘어뜨렸던 검을 다시 곧추세웠다.
동시에 잠잠했던 마력이 들끓어오르며, 거대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힘을 아끼고 있었던가?]마베로돈이 눈을 살짝 크게 뜨며 물었다.
“그렇다네.”
지원군이 도착하면 사용하기 위해, 지금까지 아껴두었던 힘이다.
하지만 이젠 그런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밑천까지 탈탈 털어야 하겠구먼.’
그러지 않으면 죽는다.
지원이 채 도착하기도 전에, 머리가 달아나고 말 것이다.
결국 반 슬레인은 혼신의 힘을 다해, 마베로돈을 상대할 수밖에 없었다.
“받아보시게.”
은색의 뇌전이 번뜩인다.
길게 자라난 은발이 휘날리며 착시를 일으킨 것이다.
반 슬레인의 신형은 그야말로 전광석화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를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마베로돈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반 슬레인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달랐던 것이다.
[흡!]숨을 들이키며,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팔을 들었다.
쩌어어어엉-!
어느새 다가온 검이 팔과 충돌했다.
[이런.]마베로돈이 낭패로 가득한 탄식을 터트렸다.
지금껏 상처 하나 입지 않았던 육체에, 붉은색의 선이 그어졌다.
반 슬레인의 일격을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감히!]분노한 마베로돈이 마기를 터트렸다.
하지만 반 슬레인의 움직임이 조금 더 빨랐다.
쩌정- 쩌저저저정-!
1초에 수십 번.
마기의 폭발력이 닿기도 전에, 그는 수십 번의 참격을 날린 뒤 몸을 피한 것이다.
[크으으으!]피가 흘렀다.
반 슬레인과 비교하자면 생채기에 불과한 수준이었지만,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죽인다, 죽일 테다.]십(十) 자로 벌어진 입.
그 안으로 보이는 날카로운 이빨과 촉수가 반 슬레인을 향했다.
식인괴 마베로돈.
그 모습을 본 반 슬레인이 속으로 혀를 찼다.
‘조금 더 서둘러 주시지요.’
오래는 못 버틴다.
프레이야가 제때 도착하지 않는다면, 남은 것은 죽음뿐이었다.
반 슬레인은 간절히 그녀가 어서 오기를 바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