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80)
480화.
아르제베토의 붉은 검은, 사신의 손길이었다.
한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반드시 베었다.
깊고 얕음의 문제일 뿐.
서우진의 전신에는 셀 수 없을 정도의 검흔이 새겨졌다.
놀랍게도 ‘루덴 가르도’조차 그녀의 검을 완벽하게 막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그 무지막지한 방어력 덕분에 지금까지 치명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빌어먹을.’
속으로 욕설을 토해냈다.
서우진이라고 해서 막아내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두 동원해 보았다.
오죽하면 ‘신속’을 사용해 멀찍이 도주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바뀌는 건 없었다.
붉은 검은 반드시 육체를 스쳐 지나갔으니까.
“크윽!”
붉은 빛이 터져 나오고, 길게 찢어진 ‘루덴 가르도’의 틈새로 피가 흘러나왔다.
“후우- 후우-”
저주받은 갑주와 전신을 보호하는 외피까지 단번에 베는 힘이라니.
어이가 없다 못해, 황당할 지경이었다.
“빠른데? 역시 ‘혼돈의 왕’이야.”
아르제베토가 붉은 검을 다시 한번 빙글 돌리며 말했다.
조롱하는 듯한 음성이었지만, 사실 그녀의 상태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
끝없이 밀리는 와중에도 서우진이 몇 번이나 ‘카 라니엘’을 박아 넣은 덕분이었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상체가 피로 물들어 있을 정도는 되었다.
“그래도 여기까지인 것 같지? 더 선보일 게 없다면, 그만 끝낼까?”
어차피 더 싸워봐야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 판단은 크게 잘못되지 않았다.
실제로 서우진은 아르제베토를 당장 막아낼 방법이 없었으니까.
그 많은 스킬을 사용했음에도 전혀 승기를 잡지 못했다.
고작해야 검을 뽑아 들게 만드는 것이 최선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것부터가 실수였다는 후회가 들긴 하지만 말이다.
“아, 혹시라도 기대하고 있는 거라면 그만두는 게 좋아.”
아르제베토가 뺨에 흐르는 피를 닦아내고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녀가 바라보는 방향은 반 슬레인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 쪽이었다.
“주신의 개들이 도착한 것 같은데, 녀석들이 와도 크게 바뀌는 건 없을 테니까.”
아르제베토는 서우진이 본 그 어떤 존재보다 강대한 마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도 딱히 신성력을 두려워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러냐?”
서우진이 헛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응. 나는 강하니까.”
사실이었다.
그녀라면 이전에 서우진이 만났던 주교 급 사제가 수십 명이 달라붙어도, 상처 하나 입히지 못할 것 같았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건 프레이야 정도인데…….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은데.’
‘신룡안’으로 확인한 결과, 그녀는 지금 반 슬레인과 함께 싸우고 있었다.
꽤나 선전하는 중이었지만.
‘그래도 단기간에 승부가 나진 않겠어.’
지금 당장 자신을 도우러 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니 결국은 혼자 싸우거나, 미약하게나마 사제들의 도움을 받는 게 전부일 것 같았다.
‘답도 없네.’
어쨌든 아르제베토를 이길 방법이 전무하다는 건 바뀌지 않는다.
“머리는 다 굴렸어? 다시 싸울까? 아니면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아니, 됐다.”
서우진은 고개를 저었다.
이것저것 고민만 하다간, 전투에 더욱 집중하지 못할 것 같았다.
방법이 없다면, 그냥 죽어라 싸우는 수밖에.
안 그래도 불리한 상황인데 집중력마저 잃는다면, 그땐 정말 끝이었다.
‘싸우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최소한 반 슬레인과 프레이야가 싸움을 끝내고 도우러 올 때까지는 버텨야만 했다.
서우진은 눈을 반개(半開)하고 혼돈기를 끌어올렸다.
‘‘마테아의 광명’이 있으니, 한 번 쯤은 살을 내주고 뼈를 치는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어.’
즉사만 하지 않는다면, 아르제베토에게 커다란 부상을 입힐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단 한 번밖에는 사용할 수 없는 최후의 수단이긴 하지만…….
‘동귀어진.’
서우진은 마음을 단단하게 먹으며 땅을 박찼다.
* * *
서우진.
반 슬레인과 프레이야.
제국, 브로바이슨, 아이에르 연합군.
그리고 용사들.
이중에 가장 위태로운 전장은 어디일까?
쉬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곳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가장 힘든 곳을 뽑자면…….
바로 조라네스를 막고 있는 용사들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끔찍하리만치 위력적인 폭발과 함께, 계수지의 신형이 튕겨져 날아갔다.
“우우욱!”
간신히 방어를 하는 것엔 성공했지만, 그런데도 충격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했다.
내부가 진탕되는 느낌에 계수지가 결국 토악질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부끄러워하고 있을 여유 따윈 없다.
그녀의 머리를 뒤덮는 검은 그림자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크윽!”
입가를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주먹으로 땅을 쳤다.
콰앙-!
그 충격을 이용해 몸을 뒤집자, 방금 전까지 머리가 있던 곳에 발이 틀어박혔다.
쩌억- 하며 대지가 갈라지는 모습을 보니, 간담이 서늘해졌다.
‘죽을 뻔했어!’
조라네스이 행동은 모두가 위협적이었다.
단순히 주먹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그마저도 용사들의 목숨을 끊어내기엔 충분한 위력이 있었다.
덕분에 계수지를 포함한 용사들은 쉴 새 없이 움직여야만 했다.
스치기만 해도 엄청난 데미지를 입었으니까.
계수지는 입술을 깨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폭살!”
거대한 화살이 날아간다.
후방에서 박혜경이 쏘아낸 스킬이었다.
—!!!
폭음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폭살’이라는 스킬답게 계수지조차 놀랄 정도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맞았어요!”
화살은 용사들을 유린하던 조라네스의 등에 정확히 꽂혀들었다.
“방심하지 마세요!”
계수지가 환호성을 지르려던 용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직격을 당하긴 했지만, 고작 그 정도에 쓰러질 존재가 아니었으니까.
화아아아악-!
계수지의 예상은 맞았다.
연기 사이로, 짐승이 튀어나온 것이다.
부상은커녕, 생채기조차 나지 않은 모습이었다.
“돌개 지르기!”
기다렸다는 듯, 계수지의 주먹이 선회하며 그런 조라네스의 가슴으로 뻗었다.
쿠우우웅-!
회전하는 마력이 조라네스의 육체를 파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언니, 비켜요!”
계수지의 뒤로 이지아의 뾰족한 외침이 들려왔다.
몸을 비틀자, 커다란 건틀렛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며 조라네스의 턱에 꽂혔다.
우드드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제대로 먹힌 듯했다.
“물러나!”
하지만 기뻐할 틈은 없다.
한 방씩 사이좋게 먹였으니 이제 빠질 때였다.
계수지와 이지아는 한 치도 망설이지 않고 뒤로 몸을 날렸다.
사방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고작해야 한 시간여.
그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전투를 벌였기에, 모두 지친 것이다.
그나마 상태가 괜찮아 보이는 건 동료들과 엘리트 친구들이 전부였다.
물론 그들도 상당히 지치긴 했지만 말이다.
조라네스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충격이 큰 것일까?
돌아간 고개를 제자리로 돌릴 생각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해치웠나? 같은 말을 할 생각하지 마요.”
계수지가 문득 옆에 있는 구동환에게 말했다.
“제가 그렇게 눈치 없는 사람은 아닌데요?”
용사들의 레벨 업보다 효과가 좋은 치료 주문을 입 밖으로 내뱉을 정도로, 구동환이 생각 없진 않았다.
하지만…….
조라네스에게는 굳이 그런 주문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우득- 우드득-
부러졌던 뼈가 제자리를 되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조라네스가 고개를 돌려 정면을 쳐다보았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섬뜩한 모습이었다.
[나쁘지 않구나. 과연 용사들이라 이건가?]순식간에 멀쩡해진 모습을 본 용사들이 헛바람을 집어 삼켰다.
무려 한 시간 동안 애를 쓴 후에야 간신히 처음으로 부상을 입혔다.
그런데 10초도 되지 않아 모두 회복하다니?
그 경이로운 회복속도에 기가 질릴 정도였다.
계수지 역시 미간을 찌푸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비릿한 피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야단났네.’
이대로면 승산이 없다.
지금도 한계에 달한 용사들이 몇 명이나 있다.
전투가 지속되면 지속될수록, 아예 움직이지도 못하는 이들이 나올 게 뻔했다.
심지어는 목숨을 잃는 용사가 생길 수도 있다.
‘시간을 끌면 우리가 더 불리해져.’
전투불능에 빠진 용사들의 수가 늘어나기 전에, 어떻게든 결착을 봐야만 했다.
‘대체 어떻게?’
조라네스는 강해도 너무 강하다.
지금까지 그들이 상대해 온 적들과는, 아예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그런 놈을 상대로, 어떻게 싸워야 승기를 잡을 수 있단 말인가?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뒤는 저희가 받치겠습니다.”
그때, 아이에르의 사제들이 말을 걸어왔다.
신성력이라면 조라네스에게도 타격을 입힐 수가 있긴 했다.
하지만 사제들의 수가 너무도 적었다.
수준 역시 기껏해야 하급 사제에 불과했는지라, 큰 도움을 바라기는 어려웠다.
해서 용사들의 회복만 맡긴 상태였다.
그런데 뒤는 맡기라니?
계수지는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뒤를 돌아봤다.
잔뜩 지쳐 있을 것이란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사제들의 표정은 평온해 보였다.
‘무슨 일이지?’
전세는 명백히 이쪽이 열악했다.
그런데도 저렇게 평온한, 아니, 화색이 도는 표정을 짓고 있다고?
괜히 기분이 상한 계수지가 얼굴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사제님들이 큰 도움을 주시고 있는 건 알겠지만, 싸움은 우리에게 맡겨주세요.”
쉽사리 달려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대다.
사제의 말만 믿고 조라네스에게 공격을 가하기엔, 상황이 그리 좋지가 않았다.
하지만 사제는 자신의 말을 굽히지 않았다.
“주신께서 보살펴 주실 겁니다.”
‘뭐지?’
광신도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신이 도울 테니, 너희는 나가서 싸우라는 뜻인가?
하지만 그런 의도로 말을 한 건 아닐 터였다.
아무리 봐도 사제들은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
계수지는 치밀어 오르는 궁금함을 참지 않고, 곧장 물었다.
“대체 어떻게 도와주실 거란 말이죠?”
기분 때문인지, 그녀의 음성에는 날이 잔뜩 서 있었다.
그 분위기에 사제들이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오해하신 모양이군요.”
그런데도 그들은 여전히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뒤를 가리켰다.
“말 그대로, 주신께서 보살펴 주실 거란 뜻이었습니다.”
그가 가리킨 곳은 나단 쪽이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신성력?”
빛의 정체는 눈앞의 사제들이 사용했던 신성력이 분명했다.
다만 다른 점은, 그 규모가 수십, 수백 배에 달한다는 것.
“기다리던 아이에르의 원군이 도착한 것 같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순백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이쪽으로 빠르게 다가오며 소리를 지르는 것이 보였다.
그 수는 무려 수백 명에 달할 정도였다.
“저건 설마?”
구동환도 그 모습을 발견하곤 눈을 크게 떴다.
아무리 봐도 사제들과 같은 옷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곧, 저들이 모두 사제라는 의미였다.
“뒤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그러니 용사님들은 걱정을 더는 하지 말고, 마의 종자를 처단하는 것에 힘써주십시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