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84)
484화.
시간이 느려진다.
아니,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 처하자, 사고가 가속된 것이다.
계수지는 천천히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조라네스를 보며 눈을 부릅떴다.
불에 탄 짐승의 머리가 입을 벌리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초극의 경지를 뛰어넘은 존재가 보여주는 행동이라 하기엔, 너무도 원시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단순히 물어뜯기 위한 동작에 불과했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힘은 자신을 죽이기에 충분했으니까.
‘더 빨리!’
끌어모았던 마력을 사용해 스킬을 발동하려 했다.
하지만 너무도 느렸다.
조라네스의 속도에 비하자면, 굼벵이나 다름없었다.
‘죽음을 각오한 자의 움직임은 무섭구나.’
탈로타인에서 자신의 모습도 저러했을까?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죽어서라도 성문을 방어해 내겠다는 다짐 때문이었는지, 자신 역시 한계를 아득히 넘긴 상태로도 싸웠으니까.
‘저놈도 마찬가지일까?’
가속된 사고 속에서, 조라네스의 눈동자가 보였다.
죽음을 초탈한 이의 것으로 보기엔 지나칠 정도로 짙은 살기가 가득했다.
‘그렇게도 죽이고 싶은가?’
계수지는 그 끔찍한 악의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반드시 자신을 죽이고야 말겠다는 의지(意志)가 강하게 느껴졌다.
“막아야 해!”
박혜경의 화살 비가 날아들었다.
관통력보단 저지에 중점을 둔 듯, 화살촉은 그리 날카롭지 않았다.
퍼버버버버벅-!
순식간에 수십 발의 화살이 조라네스의 전면에 꽂혀들었다.
움찔-!
아주 약간 속도가 늦춰졌다.
그런데도 놈은 여전히 움직였다.
하늘탑의 마법사들이 발동한 속박 마법이 허무하게 뚫렸다.
사제들도 늦을세라 신성력을 퍼부으며 장벽을 세웠지만, 그 역시 간단하게 돌파되었다.
그야말로 사신의 손길이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는…….
그래도 가만히 서서 당할 수는 없었다.
‘이런 곳에서 죽을 순 없으니까.’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서우진과 동료들을 도와 전쟁에서 승리해야 하고, 그 이후에 남은 일에도 힘을 보태야만 했다.
이런 곳, 이런 상황에서 죽어서야, 다른 동료들을 볼 낯이 없다.
그 강력한 뜻을 이어받아, 마력이 가속했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쾌속한 질주.
마력 회로를 터트려 버리겠다는 듯, 미친 듯이 달리는 마력이 순간적으로 증폭했다.
그리고…….
“미르 잡이.”
손바닥이 원을 그린다.
유유자적(悠悠自適).
강렬함과는 거리가 먼, 부드러운 움직임이 앞으로 나서 조라네스의 손끝과 마주쳤다.
빙글-.
계수지가 손목을 꺾자, 산도 뚫어버릴 기세로 짓쳐 들던 조라네스의 팔이 궤도를 비틀었다.
놈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설마 자신의 힘이 이토록 쉽게 흩어질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눈을 부릅뜰 뿐.
계수지는 그런 조라네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한바퀴 돌렸던 손을 그대로 내리찍었다.
쿠웅-!
거대하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크기의 마력이, 손바닥을 타고 흐르며 놈을 향해 밀려들어 갔다.
[크어……!]녹아내린 얼굴이 일그러진다.
더없이 큰 고통에 비명조차 내지를 수 없었다.
하지만 계수지의 움직임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조라네스를 위에서부터 압박하던 힘의 방향을 바꿔, 그대로 머리를 비틀었다.
우득-!
놀랍게도 놈의 목에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까지.’
그녀의 레벨이 10정도만 더 높았다면, 조라네스의 목을 뽑아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부족하다.
이 뒤의 일은 동료들에게 맡기는 것이 더 확실했다.
“지금!”
콰아아아아아앙-!
계수지가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조라네스의 신형이 바닥에 처박혔다.
크레이터가 음푹- 파이고, 거미줄 같은 균열이 널찍이 퍼져 나갔다.
“억겁 지옥염!”
“다크 인페르노.”
“타이탄 스매쉬!”
“청풍쌍월참!”
준비하고 있던 동료들의 스킬이 그런 조라네스를 향해 발동되었다.
타앗-!
자칫 휘말릴 수도 있었기에, 계수지는 ‘하늬걸음’으로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
천지가 개벽하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환한 빛이 주변을 밝게 비추었다.
레벨 업이었다.
* * *
로나인은 전장을 종횡무진했다.
신성력의 힘이 뒷받침해 준 덕에, 벌레들을 상대하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을 완전히 놓을 순 없었다.
로나인과 5천의 기사가 엄청난 수의 벌레들을 참살하긴 했지만, 그보다 수십 배, 수백 배는 더 많은 수가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이걸 다 처리할 수 있을까?’
지금이야 가능할 것처럼 보인다.
그저 시간의 문제일 뿐, 쳐죽이다 보면 언젠간 모두 치워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세상 일이 그렇게 쉽기만 하던가?
‘젠장.’
벌레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던 로나인이 얼굴을 찌푸렸다.
우왕좌왕하며 기사들에게 학살을 당하기만 하던 벌레들이,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움직임이 변했다.
‘나단을 노리는구나!’
기사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저 1초라도 빨리 나단에 도달하고 말겠다는 듯, 앞만 보고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로나인은 다급히 방향을 바꿔 놈들의 진로를 방해하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수천 마리가 죽어나가도, 놈들은 전혀 방향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야단났군.’
나단의 방어는 단단하다.
성벽도 높았고, 용사들이 미리 준비해 둔 장치들도 아직 건재했으니까.
게다가 성벽 안쪽에는 사제들과 신성기사단이 대기를 하고 있지 않던가.
그들을 생각해 보면 쉽게 뚫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로나인은 걱정으로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쉽게 뚫리지 않는다는 말이, 피해가 없다는 말과 같은 뜻은 아니었으니까.
분명 엄청난 희생자가 나올 것이다,
방비를 제아무리 잘해놓았다 해도, 저만한 수의 벌레들이 들이닥친다면 지옥이 펼쳐질 수밖에 없었다.
콰과과과과과광-!
마법 트랩이 발동했다.
수백 마리의 벌레들이 통구이로 화해 몸을 뉘었다.
하지만 놈들은 멈추지 않았다.
화아아아아악-!
나단 안쪽에 있던 사제들이 신성 마법을 사용하자, 또다시 벌레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이번에도 역시 놈들은 멈추지 않았다.
“발사아아아아아!”
루데인의 커다란 명령과 함께,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화살이 하늘을 가득 메우며 쏘아졌다.
퍼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벅-!
이번엔 꽤나 큰 피해를 주었다.
신성력이 깃든 화살이, 너무도 쉽게 벌레들을 꿰뚫었으니까.
그런데도 놈들은 여전히 달렸다.
나단의 성문이 열렸다.
안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신성기사들이 벌레들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수의 신성기사들이 질주하기 시작하자, 벌레들은 개미처럼 죽어나갔다.
제국의 기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돌진이었다.
신성력을 품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로나인은 그 모습에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저만한 전력이 밖으로 나왔으니, 벌레들도 조금은 움츠러들 것이라 여긴 것이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틀렸다.
저 빌어먹을 벌레들은, 계속해서 나단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고 있었으니까!
“막아라! 성내로 들어오는 것을 무조건 막아야만 한다!”
로나인이 큰 소리로 명령했다.
병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끓는 기름부터 시작해 무거운 바위까지.
인간과의 전쟁을 상정한 물자들까지 모조리 동원되었다.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창 한 자루만 달랑 들고 싸우는 것보단 훨씬 나을 것이란 판단에 준비해 둔 것들이었다.
병사들이 준비하는 사이, 화살과 신성 마법들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아수라장을 뚫고, 결국 벌레들이 나단의 성벽에 도달했다.
쿠구구구구구구구궁-!
성벽이 울리는 것이 여기까지 보였다.
놈들은 단단한 성벽을 마치 육탄돌격으로 무너뜨리기라도 할 것처럼 몸으로 들이받는 중이었다.
“기름! 기름 가져와!”
끼에에에에에엑-!
뜨겁게 달궈진 기름을 뒤집어쓴 벌레가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뒤에서 밀려드는 다른 벌레에 의해 순식간에 모습이 사라졌다.
수십, 수백, 수천.
성벽 앞에서 엄청난 수의 벌레들이 죽어나갔다.
그럴수록 로나인의 표정은 더욱 굳어져만 갔다.
‘벌레들의 사체가…….’
성벽 앞에 쌓이며 점점 높이를 더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성벽을 넘어갈 수 있는 길이 생길 터.
그러면 끝장이었다.
복잡한 시가지에서 무수히 많은 벌레와의 전투라니!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의 두려움이 느껴졌다.
“백은 기사단은 성벽을 따라 돌입한다!”
로나인은 결단을 내렸다.
위험하기 그지없는 경로.
성벽을 따라가며, 쌓여 있는 벌레들의 사체를 모두 허물어 버리겠다는 생각이었다.
“단장님!”
당연히 반발이 뒤따랐다.
차라리 벌레들과 싸우다 죽으라면 웃으며 명령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단순한 자살행위나 다름없었으니까.
회피할 수 있는 곳도 없는 장소에서 벌레들과 맞서 싸우며, 사체들까지 치우라고?
가능할 리가 없었다.
백은 기사단이 아닌, 이곳에 있는 5천 명의 기사가 모두 투입된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뜻은 이루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고 말 것이다.
“차라리 뒤를 치는 게 어떻습니까? 그럼 놈들도…….”
“번복은 없다.”
그렇게 해서 벌레들의 움직임을 막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놈들은 오직 나단의 성벽을 넘어가 학살을 저지를 생각밖에 없다.
아무리 뒤에서 견제하고, 돌입을 한다 해도.
절대 방향을 바꾸지 않을 것이란 뜻이었다.
그러니 이게 최선이다.
“명령을 따르지 않을 생각이라면, 휘장을 떼어라.”
제국의 제1기사단인 백은을 상징하는 십자가.
왼쪽 어깨에 달려 있는 그 휘장은, 제국의 모든 기사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자신들에겐 자부심이었다.
그것을 떼어내라니…….
휘하의 기사들은 그 말에 입을 다물었다.
불명예보단 죽음을.
그것이 비록 아무런 의미도 없는 개죽음이라 하더라도, 명령 불복종으로 인한 불명예보단 낫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결국 그들은 로나인의 뒤를 따르기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남은 기사들은 엄호를 부탁한다.”
“그리하겠습니다.”
각 기사단의 단장들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로나인이라고 이 자리에서 죽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해 두어야만 했다.
“백은 기사단!”
상황이 정리되고, 결단이 서자.
로나인은 마력을 끌어올리며 크게 외쳤다.
“돌입한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
성벽이 가까워지며, 두려움에 가득찬 병사들의 표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로나인은 얼굴을 굳혔다.
저들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서라면, 응당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그것이 적진에 가장 먼저 달려드는 기사가 해야 할 일이었다.
“돌이이이이이입!”
오러가 줄기줄기 뻗어 나오고, 로나인과 백은 기사단이 성벽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콰과과과과과곽-!
사체들이 튀어올랐다.
역겨운 피와 체액이 몸을 뒤덮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여기서 1초라도 지체했다간, 그대로 벌레들에게 짓눌려 죽고 말 것이다.
로나인은 쉴 새 없이 검을 휘두르며, 선두를 뚫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