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85)
485화.
속도가 느렸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사체들의 산이 너무나도 거대했기 때문이었다.
선두에 선 로나인이 오러를 뿜어대고, 오백의 기사가 뒤를 받쳐 주었음에도.
여전히 속도는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이대로는 당한다.’
로나인이 벌레들의 사체를 무너뜨리며 흘깃- 주변을 살펴보았다.
엄호를 부탁했던 다른 기사단이 최대한 벌레들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 다른 방향에서 공격을 가하는 중이었다.
그런데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백은 기사단의 돌입 속도는 계속해서 느려졌고, 벌레들은 그들의 옆구리를 노리고 짓쳐들었다.
로나인이 이를 악물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스스로 걸어 들어온 길이다.
하지만 설마하니 이토록 빠르게 한계가 찾아올 줄은 몰랐다.
사체들의 산을 삼분의 일도 채 무너뜨리지 못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성벽 위에서도 자신들을 위해 계속해서 맹공을 퍼붓고 있었다.
화살과 마법, 뜨거운 기름과 바위덩어리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소용없다.’
그들에 의해 죽어나가는 벌레들은, 전체 수에 비하면 고작해야 한줌에 불과했다.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고작 그것들로 벌레들의 돌진을 막아내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했으니까.
검을 휘둘렀다.
가공할 파괴력이 담긴 오러가, 앞을 막고 있는 사체들의 산을 무너뜨렸다.
바닥에 가득한 놈들을 말이 짓밟았다.
피와 체액이 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로나인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아아…….’
한계에 봉착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타고 있는 말이 더는 달릴 수가 없었다.
방금 전, 벌레의 사체를 밟으며 달리다 다리가 부러진 것이다.
히이이이이이잉-!
고통에 찬 말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로나인이 위로 뛰어올랐다.
“단장님!”
그를 걱정하는 휘하 기사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행히 그들은 낙마하지 않고,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로나인의 말이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부단장이 선두에 나선 덕분이었다.
하지만…….
‘느려.’
부단장의 오러는 로나인의 것에 비해 한참 부족했다.
결국엔 앞을 뚫지 못하고, 강제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타악-!
간신히 몸을 뒤집어 제대로 착지한 로나인이 땅을 박차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저들만으로는 안 된다.
반드시 자신이 힘을 보태야만, 조금이라도 더 오래 달릴 수 있었다.
타다다다닷-!
느려진 말을 따라잡는 것쯤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괜찮으십니까!”
그를 발견한 휘하 기사들이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집중하라!”
지금은 반갑게 인사나 나누고 있을 틈이 없었다.
급한 대로 마력을 모조리 끌어모아, 전면을 향해 오러의 참격을 날렸다.
콰과과과과과광-!
거대한 폭발과 함께 벌레들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돌파하라!”
로나인은 한 기사의 뒤에 올라타며, 크게 외쳤다.
영락없이 전사한 줄로만 알았던 그가 돌아오자, 사기가 드높아진 백은 기사단은 다시 한번 힘을 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엔 때가 오고 말았다.
선두의 질주가 멈춰선 것이다.
“멈추지 마라! 계속해서 돌진하라!”
로나인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명령했다.
그런데도 기사단은 움직이지 못했다.
벌레들과 놈들의 사체에 가로막혀, 더는 질주를 할 수가 없었다.
“전원 하마(下馬)하여 놈들을 막아라!”
부단장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로써도 어쩔 수 없는 명령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앞으로 달려보려고 해도, 그것이 불가능했으니까.
‘끝이구나.’
로나인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이제 남은 것은 죽음뿐이라고.
이 자리가 자신들의 무덤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조금 허무했다.
제국의 제1기사단이라며 수많은 사람에게 추앙받던 자신들이다.
만약 죽는다면, 마왕과의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할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런데, 마왕의 얼굴은 구경도 하지 못하고 이딴 곳에서 벌레들과 함께 몸을 뉘일 줄이야.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로나인은 헛웃음을 흘리며, 말에서 내렸다.
달려드는 벌레들의 모습이, 징글맞았다.
파바바바바밧-!
검이 춤을 추고, 놈들이 썰려 나갔다.
백은 기사단은 그런 로나인의 움직임에 맞춰, 대열을 갖추었다.
그러곤 진격했다.
조금이라도 벌레들이 나단에서 떨어뜨리기 위해서…….
그렇게 얼마나 죽였을까?
한 200마리 정도는 세었지만, 그 후부터는 모르겠다.
검을 든 팔이 떨려오고, 자꾸만 눈이 감긴다.
벌레들의 이빨에 물어뜯긴 허벅지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나왔지만, 지혈을 할 틈도 없었다.
‘몇 명이나 살아 있지?’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벌써 몇 번이나 옆에 서 있던 부하들의 얼굴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사라진 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굳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비명소리가 몇 번이나 들려왔으니까.
‘더는 안 되겠다.’
끝없이 샘솟던 마력도 바닥이 났고, 찬란하게 빛나던 푸른색의 오러도 꺼진 지 오래였다.
이젠 제 몸 하나 가누는 것도 힘들었다.
악과 오기로 어떻게든 버텨내고 있었지만, 그것도 이젠 힘들었다.
“황제폐하를 위……!”
힘을 북돋기 위함일까?
발악하며 소리치던 기사 한 명의 목소리가 중간에 뚝- 하고 끊겼다.
로나인은 돌아보지 않았다.
아니, 돌아볼 수가 없었다.
지금은 자신의 눈앞으로 밀려드는 벌레들을 막는 것도 힘겨웠으니까.
“아아아아아악!”
“크억!”
점차 비명소리가 늘어났다.
힘이 떨어진 기사들이 하나둘씩 최후를 맞이하고 있었다.
눈에 들어오는 핏물을 거칠게 닦아낸 로나인은 이를 악물었다.
그러곤 자신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힘까지 끌어모았다.
‘딱 열 놈. 열 놈만 더 죽이자.’
그 이후엔 조금 쉬어야겠다.
로나인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며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하나, 둘, 셋.
벌레들의 몸이 쪼개졌다.
넷, 다섯.
속도가 느려진다.
점차 놈들의 갑각을 베어내는 것이 어려워졌다.
여섯, 일곱, 여덟…….
‘안 되겠다.’
최후의 최후까지 남아 있던 힘을 모두 사용했음에도, 결국 목표로 했던 열 마리는 채우지 못했다.
챙그랑-
손아귀에서 힘이 풀리며, 평생을 함께해 왔던 검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끝이다.’
아쉬웠다.
두 마리.
딱 두 마리만 더 죽였다면, 목표치를 채울 수 있었는데.
로나인은 두 눈을 부릅뜬 채 자신을 향해 짓쳐드는 벌레들을 노려보았다.
죽을 때 죽더라도, 결코 눈을 감은 채로 죽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서려 있었다.
‘오너라!’
입을 열어 소리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기에, 속으로 외쳤다.
그리고 이내, 1미터에 달하는 벌레들이 코앞까지 다가와 입을 벌렸다.
쩌어어억-!
날카로운 이빨이 눈에 박혔다.
인간 따위는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버릴 정도로 예리했다.
로나인은 그런 벌레의 이빨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아니, 받아들이려 했다.
갑자기 놈이 터져 나가지만 않았더라면 말이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곽-!
거센 바람과 함께, 달려들던 벌레들이 모조리 터져 나간다.
순식간에 주변이 피로 물들었다.
끈적끈적한 체액이 전신을 뒤덮었다.
토악질이 나올 정도의 악취가 풍겼지만, 로나인은 그딴 것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왜?’
벌레들이 저토록 쉽게 죽어버린단 말인가?
수백 마리, 수천 마리의 수준이 아니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만 단위의 벌레들이 터지고, 짓이겨지며, 박살이 나고 있었다.
로나인은 멍한 눈동자로 시선을 돌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바라봤다.
“…신수?”
잔뜩 갈라진 음성이었다.
그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드래곤의 모습을 한 채 미친 듯한 광풍을 일으키고 있는 신수였다.
‘휘라테온이었던가?’
분명 서우진이 어디선가 찾아내서 데리고 다니던, 바람의 신수였다.
멍하던 눈빛에 조금씩 힘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휘라테온이 나타나 벌레들을 학살하고 있다는 건, 한 가지 사실을 의미했다.
바로 서우진이 전장에 나타났다는 것.
‘설마 승리하셨단 말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신수가 이곳에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다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금 전까지는 서 있을 힘조차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왠지 기운이 났다.
그리고 마침내 발견할 수 있었다.
나단의 성벽 위에 올라서서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는 서우진의 모습을 말이다.
대체 언제, 어떻게 온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따위 것이 무슨 상관이랴.
지금 중요한 건 서우진이 돌아왔고, 이제 이 전쟁은 승리할 수밖에 없는데!
“우와아아아아아아아!”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나단의 성벽에서, 벌레들을 꿰뚫던 기사들에게서, 그리고 살아남은 부하들에게서.
로나인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살아남았구나.’
비록 엄청난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 덕에 이 싸움이 어떻게 끝나는지, 두 눈으로 확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잔뜩 달아오른 그의 육체처럼 뜨거웠다.
* * *
‘늦지 않았어.’
서우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여나 늦을까 싶어 얼마나 걱정했던가?
그런데 다행히 저들은 잘 버텨주었다.
물론, 피해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기사들의 피해는 꽤 컸다.
한눈에 봐도 처음 그들이 도착했을 때보다 절반은 족히 줄어들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서우진조차 정확한 수를 파악할 수 없는 벌레들을 상대로, 이만큼의 피해밖에 입지 않았다면 충분히 선전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기뻐할 일은 아니지만.’
서우진은 고개를 돌려 다른 전장을 확인해 보았다.
‘……다들 이겼군.’
반 슬레인과 프레이야.
그리고 용사들.
전원 전투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죽거나 크게 다친 이도 없는 듯했다.
아무래도 제때 도착한 아이에르의 사제들이 큰 도움이 된 모양이었다.
서우진은 다시 한번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벌레들을 향해 ‘카 라니엘’을 휘둘렀다.
별다른 스킬도 사용하지 않은 단순한 베기였음에도, 벌레들이 떼로 죽음을 맞이했다.
주변에서 승리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도 서우진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적은 강해.’
벌레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 이후로 나타날 존재들.
그중에서도 특히 마왕이 문제였다.
‘아직 내 실력으론 부족해.’
아르제베토를 죽이며, 서우진의 레벨은 150을 넘어섰다.
정확히 말하자면, 154레벨.
강력한 존재인만큼, 서우진이 얻은 경험치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다.
덕분에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는 것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그런데도…….
‘더 강해져야 해.’
적어도 아르제베토 정도는 굳이 ‘마왕화’를 하지 않아도 싸워 이길 수 있는 수준까지.
그 정도는 되어야, 그 빌어먹을 마왕과 제대로 된 싸움을 벌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떻게?’
서우진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단기간에 그만큼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상의를 좀 해봐야겠다.’
반 슬레인이라면 길을 가르쳐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단 그전에, 이 싸움을 마무리 지어야겠지만 말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