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86)
486화.
함성이 울려 퍼졌다.
승리가 확정 지어진 순간, 그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토해낸 병사들의 울부짖음이었다.
‘끝났다.’
서우진은 단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한 벌레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고생하였네.”
마베로돈과의 싸움을 승리로 이끌고 돌아온 반 슬레인이 서우진의 옆에 서서 어깨를 두드렸다.
“…고생은 영주님이 더 하신 것 같은데요.”
서우진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온몸을 자신의 피로 물들인 그의 모습은, 빈말로라도 괜찮아 보인다는 말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니, 이렇게 서 있는 것조차도 감탄스러울 지경이었다.
“허허- 보기보다는 괜찮다네.”
반 슬레인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역시 상태가 그리 좋은 것 같진 않았다.
그 작은 동작 하나에도 고통에 몸을 움찔거리고 있었으니까.
“조금 쉬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지금이야 전투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느끼지 못하는 듯했지만, 잠시 후에는 끔찍한 고통이 밀려들 것이 분명했다.
그때를 위해서라도 사제들에게 일단은 치료받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자네 말대로 하겠네.”
반 슬레인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미소를 지어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성벽에서 내려가지는 않았다.
오히려 밖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치열했던 전장을 바라봤다.
“어찌저찌 이기긴 했구먼.”
“…피해가 적지 않았습니다.”
권속들을 막아내는 사이, 평범한 인간들로 이루어진 병력에는 큰 피해가 발생했다.
나단의 성벽과 기사들의 분투가 있었음에도, 무려 4만 명에 가까운 병사들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그 모든 방어선을 뚫고 들어온 소수의 벌레들에게 당한 것이다.
“후우-”
반 슬레인이 한숨을 토해냈다.
“다행이라고 말할 순 없겠네만, 그래도 선전하기는 했군.”
“기사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이만큼 피해를 줄이는 게 불가능했을 겁니다.”
서우진이 나단으로 돌아오고 있는 기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무려 5천 기.
처음 벌레들을 막기 위해 성문을 나섰던 기사들의 수였다.
하지만 지금 돌아오는 건,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2천여 명.
일반 병사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힘을 지닌 기사들조차도, 저만한 희생자가 발생했다.
심지어 서우진이 제때 전투를 끝내고 도와주러 오지 않았더라면,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면 나단의 병력 역시…….
“그렇다 해도 역시 피해가 크긴 하네.”
진정한 마왕군이 이끄는 군세도 아니고, 고작해야 권속 중 하나가 지배하는 벌레들에 불과했다.
그런 놈들을 상대하는 것에도 이만한 피해를 입었으니, 훗날에는 얼마나 큰 희생자가 나올지 상상조차 되질 않았다.
“무거운 얘기는 다음에들 하시게나, 지금은 그저 승리를 만끽하고.”
그때, 뒤에서 낯익은 음성이 들려왔다.
서우진이 고개를 돌리자, 프레이야의 모습이 보였다.
“프레이야 님.”
“그간 잘 지냈느냐?”
그녀는 푸근한 미소와 함께 서우진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잘 지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용사 폐기 계획, 강가스테어, 그리고 아르제베토까지.
프레이야와 헤어지고 난 뒤 겪은 일들은, 하나같이 골치가 아픈 것들뿐이었다.
덕분에 농담으로라도 잘 지냈다고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리 보이는구나.”
프레이야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하였느니라.”
“감사합니다.”
말뿐인 위로였지만, 서우진은 꽤나 마음에 안정을 느꼈다.
그녀가 외모와는 달리, 꽤나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한테 덕담 듣는다고 생각하면, 뭐.’
조부모의 손에 자란 서우진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마음을 쏟는 성격이었다.
프레이야의 세월이 깊게 새겨져 있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 보니, 왠지 할머니가 마음을 써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충분히 위로가 되고도 남았다.
“아이에르가 너무 늦지 않아서 이만한 피해로 끝낼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녀와 아이에르 군이 하루라도 더 늦게 도착했다면?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병사들은 학살당했을 테고, 자칫하면 반 슬레인과 동료들도 무사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 참으로 다행이었다.
“서두른다고 하긴 했다만…….”
프레이야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서우진은 너무 늦지 않아 다행이라고 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어쨌든 늦었다는 말이다.
하루만 더 일찍 와서 미리 대비했다면, 병사들과 기사들의 희생도 크게 줄일 수 있었을 터인데.
최대한 급하게 움직인 결과였지만, 그래도 아쉬웠다.
“일단 사제들은 부상자들의 치료에 집중하라 명해두었다. 전사자의 수가 더 늘어나진 않을 게야.”
“신경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얼, 함께 싸우는 사이에.”
프레이야는 손을 내저었다.
‘크게 다친 것 같진 않아 보이는군.’
자잘한 부상은 있었지만, 반 슬레인에 비하자면 거의 멀쩡한 수준이었다.
‘역시 신성력인가?’
객관적인 실력만 보자면, 권속들의 힘이 두 사람을 앞섰다.
압도적이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홀로 합공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은 충분히 되었다.
그런데도 결국 승리는 반 슬레인과 프레이야가 가져갔다.
그건 곧, 그녀의 신성력이 전투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뜻이었다.
다른 전장도 마찬가지다.
아이에르 군은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신성기사는 5천이나 되는 제국의 기사들도 힘겨워하던 벌레들을, 그야말로 녹은 버터를 가르듯 갈라 버렸다.
사제들 역시 온갖 신성마법을 통해 아군에게는 힘을 주고, 적에게는 막대한 피해를 입혔으니…….
‘일석이조지.’
아군을 향한 버프와 적을 향한 디버프를 동시에 발동한다.
단순히 계산해도 두 배 이상의 효율을 보여줄 수 있는 힘이 아닌가.
“내가 말을 해두었으니, 자네는 어서 가서 사제들에게 치료를 받게. 그 꼴로 돌아다니는 걸 시온에서 알게 되면, 아주 난리가 나지 않겠나?”
“허허-”
프레이야의 격의 없는 말투에 반 슬레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함께 목숨을 걸고 싸운 전우였으니, 이런 말투가 오히려 기꺼운 듯했다.
“프레이야 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가봐야겠군요.”
서우진이 권했을 때는 버티더니, 이번엔 몸을 돌린다.
그녀의 호의를 거절하기엔 나이도, 작위도 밀렸기 때문이었다.
반 슬레인이 살짝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성벽을 내려가자, 걱정스럽게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서우진이 문득 입을 열었다.
“신성력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 겁니까?”
“…응?”
난데없는 질문.
프레이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우진을 돌아봤다.
“다시 한번 말해주겠느냐?”
“신성력 말입니다.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는 겁니까?”
그 힘이 마왕의 권속들에게 더없이 효과적으로 통한다는 사실을 안 이상, 어떻게든 손에 넣고 싶었다.
방법이 어렵다고 해서 그냥 포기하기엔 너무도 막강한 위력을…….
“주신을 믿으면 된다.”
“예?”
“신성력이라는 건 주신께서 믿음이 있는 자들에게 내려주는 은혜와 같은 것이니, 그분을 믿고 따르면 자연히 얻게 될 게다.”
아, 그런 메커니즘으로 돌아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러니까, 종교를 가지면 된다는 말입니까?”
“종교가 아니라 믿음이니라.”
그녀의 더없이 경건한 표정과 말투에 서우진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주신을 믿으라니.’
그게 단순히 머리로 ‘믿습니다!’ 하면 되는 건 아닐 테고…….
그 어떤 어려운 방법이라 해도 반드시 신성력을 얻고야 말겠다는 결심이 조금 흔들렸다.
“우리가 승리했다!”
“브로바이슨에 영광을!”
저 멀리서 게데인과 칼로인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잔뜩 흥분한 기색이 역력한 음성이었다.
승리, 그 자체보다는 이 전투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이 더욱 기쁜 듯했다.
서우진은 그 환호성을 들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포기해야 되나?’
신을 향한 믿음을 지닌다.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도저히 모르겠다.
* * *
제국의 국경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그저 국경을 넘어오는 이들의 신원을 파악하는 검문이 하루일과의 전부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비록 제국 내에서 벌어진 건 아니었지만, 마침내 강림 전쟁이 발발했으니까.
“소식 들었어?”
“브로바이슨이 난리가 났다며?”
당연한 말이었지만, 일반 병사들에게까지 소식이 전해지는 건 지구에 비해서 훨씬 느렸다.
덕분에 그들은 이제 막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정보를 들었다.
“과연 어떻게 될는지…….”
“브로바이슨은 그렇게 강한 왕국이 아니지? 놈들을 막아낼 수 있을까?”
“안 그래도 황제 폐하께서 그들을 돕기 위해 지원군까지 보내셨다네. 용사들도 함께 갔으니,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백은 기사단을 포함, 무려 열 개에 달하는 기사단과 용사 수십 명이 파견을 갔다.
그 정도의 전력이라면, 마왕군이 아무리 강력해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병사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긴, 용사들이 보통 사람은 아니니까. 전에 다른 곳에서 근무하던 녀석들 얘기를 들어보니까, 엄청나다고 하더라고.”
“자세히 좀 얘기해 봐.”
“한창 마수들이 날뛸 때 본 건데, 마법이랑 오러가 수백 개씩 날아다니면서 놈들을 썰고, 태우고, 볶고…….”
국경요새의 성벽 위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던 병사들이, 그렇게 잡담을 나누고 있을 때였다.
“응?”
한 병사가 문득 밖에서 뭔가를 발견하곤 고개를 갸웃했다.
“야야, 누가 오는데?”
그 말에 다른 병사들이 성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 누구지?”
그들이 경계하고 있는 방향에는 그 어떤 도시도 없었다.
그저 끝없이 펼쳐져 있는 숲, ‘팔로타인 라세’만이 존재할 뿐.
심지어 지금 그 광활한 숲은 마왕의 강람지가 되어 있지 않던가.
당연히 그쪽에서는 그 누구도 다가오지 않아야 정상이었다.
“보고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병사들은 얼굴을 굳히며 잠시 의논하고는, 이내 한 명이 보고를 하기 위해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사람… 맞지?”
거리가 멀어 정확히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두 발로 걷고 있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체형도 왠지 사람인 듯했고.
“설마 마수나 몬스터는 아니겠지?”
“에이…….”
남은 병사들은 살짝 불안한 표정으로 무기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설마설마하면서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사람이 맞는 것 같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접근하는 자의 모습이 조금 더 자세히 보이기 시작했다.
검은색의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확실히 사람인 듯했다.
마수나 몬스터였다면, 애초에 로브를 입고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정지! 더 접근하지 말고 그 자리에 멈추시오!”
목소리가 전달될 거리가 되자, 병사가 소리쳤다.
아무리 사람 같다고, ‘팔로타인 라세’ 쪽에서 온 이를 요새에 쉽게 다가오도록 둘 순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처음 봤을 때와 같은 속도, 같은 보폭으로.
계속해서 다가왔다.
“멈추라니까! 안 그러면 공격할 수밖에 없소!”
병사들이 얼굴을 굳히며 난간에 기대 놓은 활에 손을 뻗었다.
여차하면 화살이라도 쏴서 걸음을 멈추게 할 요량이었다.
그런 병사들의 마음을 눈치챈 것일까.
계속해서 가까워지던 이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너무 멀어서 잘 안 들렸었나 보네.”
“아니면 가는귀가 먹었던가.”
계속해서 경고를 하던 병사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몇 번이나 크게 외쳤음에도, 이제야 말을 듣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다시 한번 크게 소리쳤다.
“정체를 밝히시오! 적법한 통행 권한이 없다면 더는 접근할 수 없소!”
신원만 확인하면 된다.
그럼 쫓아내든, 들여보내든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병사들은 그에 대한 대답을 들을 수가 없었다.
콰과과과과과과곽-!
거대한 마기의 소용돌이.
흑색의 거친 광풍은 병사들과 요새를 단번에 휘감으며, 모조리 분쇄시키기 시작했다.
[왕이 오신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