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91)
491화.
숨결을 내뱉을 때마다 누런색의 뿌연 안개가 흘러나왔다.
마치 지옥의 맨 밑바닥에서부터 기어 올라온 듯한 유황 냄새가 풍겼다.
그르르르르르르-
언어는 없다.
그저 살의와 광기가 뒤범벅되어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을 찢어발길 듯한 포악함만이 존재할 뿐.
마왕의 권속 중 하나인 므락쿠는 눈앞에 펼쳐져 있는 거대한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참을 수 없는 살기가 줄기줄기 새어 나왔다.
하지만 참는다.
말하지 못한다고 해서, 지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한없이 야수에 가까운 므락쿠였지만, 최소한의 상황을 조율할 수 있는 머리는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는 황혼의 때.
그때가 사냥감들을 사냥하고, 먹어 치우기에는 가장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당장에라도 달려들어 모든 것을 씹어 삼키고 싶은 포식본능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그르르르르르르-
입안 가득 고인 침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런데도 참는다.
왕의 명이 있었으니까.
가까스로 본능을 억제한 므락쿠가 몸을 돌렸다.
유황 냄새가 담긴 누런 숨결이 자욱하게 번진다.
그런 놈의 뒤로 레닌스탕의 대도시, 다마이론이 평온한 저녁을 맞이하고 있었다.
* * *
“맞죠? 제 말 맞죠?”
이지아가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맞긴 뭘 맞아, 이 녀석아. 길안내는 병규가 다 했구만.”
서우진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리며 그녀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계속해서 잘못된 방향으로 드는 바람에, 그때마다 강병규가 바로 잡아줘야만 했다.
“그, 그래도 저 아니었으면 훨씬 더 오래 걸렸을 걸요?”
아니다.
정확히는 이지아 때문에 예상했던 것보다 반나절은 시간이 더 걸리고 말았다.
하지만 서우진은 굳이 그것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아주 약간의 도움이 된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뭐, 그래도 검문을 프리패스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되긴 했지.”
옆에 있던 강병규도 이지아의 편을 들어주었다.
“봤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녀석의 모습에, 서우진이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 고맙다. 됐어?”
서우진이 못 말리겠다는 듯 말하자, 그제야 만족한 기색이었다.
“그래서? 여기가 정확히 어딘데?”
“아, 여긴 교역도시 라이마론이라는 곳이에요.”
“교역도시?”
서우진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통 교역도시라고 하면, 사람들로 붐비지 않나?”
장사꾼이라던가, 상회라던가.
북적북적할 것 같은 이미지였는데, 라이마론은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다소간의 인파는 있었지만, 그들의 표정은 활기와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었다.
‘무서워하는군.’
두려움이 가득하다.
아직 마왕의 권속이 이 근방에 도달하기에는 시간이 조금 남아 있을 텐데…….
“그러게요, 본래는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이지아 역시 그제야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고개를 갸웃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엄청 신나는 곳이었거든요? 재미있는 것도 많았고. 아, 전에 왔을 때는 무슨 극단 같은 사람들이 와서 공연도 했…….”
끝없는 수다가 다시 이어졌다.
하지만 서우진은 그런 이지아에게 신경쓰는 대신, 다른 행동을 했다.
혼돈기를 일으켜 ‘신룡안’을 발동시킨 뒤, 주변의 정보들을 끌어모았다.
“들었나? 다마이론에서…….”
“몰살…….”
“시체조차 남기지 못…….”
조용히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음성이 귀에 들어온다.
‘다마이론?’
처음 들어보는 지명이었다.
하지만 유추를 해보자면, 아무래도 그곳이 마왕의 권속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된 모양이었다.
“엄청엄청 재미있었거든요? 그래서 좀 기대했는데, 오늘은 안 왔나 보네요?”
“지아야.”
“응, 네?”
서우진의 부름에, 이지아가 수다를 끝내고 무슨 일이냐는 듯 쳐다봤다.
“다마이론이라는 도시, 알아?”
“다마이론이요?”
이지아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레닌스탕 제2의 수도라고 불리는 곳이에요. 한국으로 치면, 부산 같은 곳일 걸요? 그런데, 거기는 왜요?”
서우진이 다마이론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이 신기한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여기서 얼마나 걸려?”
“으음.”
단번에 계산이 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잠시 눈동자를 굴리며 생각을 해보던 녀석은,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 없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말을 타면 한 5일에서 일주일 사이 정도 걸릴 걸요?”
그리 멀지 않은 거리다.
말을 타고 그 정도라면, 용사들이 작정하고 달렸을 때 이틀쯤 걸린다는 뜻이었으니까.
“거기 엄청 큰 도신데. 크기만 따지면 레닌스탕의 수도보다도 클 거예요. 사람도 엄청 많고.”
그 말에 서우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조금 전 들은 음성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모두 몰살되었다고 했었나?’
한 왕국의 수도보다도 많은 인구가 있는 도시에, 생존자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 학살이 벌어졌다.
‘쯧, 분위기가 엉망일 수밖에 없었군.’
그만한 도시가 멸망했다는데, 평소와 같을 순 없을 것이다.
오히려 사람들이 패닉에 빠져 통제불능 상태가 되지 않은 것이 놀라울 정도였다.
‘이 도시 위정자들의 능력이 출중하든지, 아니면 레닌스탕 자체의 치안이 뛰어나든지.’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이 정도로 질서가 유지되고 있는 것만으로도 인상적이었다.
적들이 몰려온다는 소문이 돌자 마자 가장 먼저 도망을 쳐버린, 탈로타인의 영주와는 참으로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일단 묵을 곳을 찾자.”
말을 타고 5일, 용사의 속도로 2일.
그 정도라면 언제 이곳에 마왕의 권속이 도착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조금 더 괜찮은 곳에서 마주쳤으면 좋았을 텐데.’
라이마론은 농담으로라도 방어에 용이하다고 할 수 없는 도시였다.
교역도시라고 하더니, 성벽이 낮고, 출입이 자유로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서우진이 만나본 권속들의 수준이라면, 숨 쉬는 것보다도 쉽게 뚫을 수 있었을 것이다.
‘뭐, 단단히 방비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너무 빈약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일단은 이곳에 머물며 놈의 동태를 살펴보는 것이 나을 듯했다.
“아, 이쪽에 괜찮은 여관이 있어요! 전에 머물렀던 곳인데, 레닌스탕의 기사님들도 칭찬을 엄청 했던 여관이에요!”
오랜만에 돌아와서 그런 것일까?
이지아는 평소보다 훨씬 흥분한 기색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오, 나쁘지 않은데?”
구동환이 감탄했다.
그간 말을 타고 노숙만 하며 이동하다 보니, 웬만한 숙소라면 환영이었다.
그런데 이지아가 일행을 데리고 간 곳은, 그 웬만한 수준을 까마득히 넘어서 있었다.
“…이거 호텔 아니냐?”
강병규가 멍하니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그러게. 여관이라고 부르기가 미안하네.”
서우진 역시 동의했다.
7층짜리 커다란 건물은, 지구의 호텔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고풍스러운 디자인을 자랑하고 있었다.
“여기 어때요? 레닌스탕 전역을 뒤져도, 이만한 곳은 없다고 하던데. 아, 왕궁을 제외하면요.”
“마음에 들어, 지아야.”
계수지마저도 미소를 지으며 이지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만큼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다.
“헤헤.”
“당분간은 여기서 묵자.”
돈은 충분하다.
혹시나 가격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 할지라도 상관없었다.
그들의 뒤에는 아이에르의 사제들이 있었으니까.
“비용은 아이에르에서 부담하도록 하겠소.”
유로아가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를 꼽자면, 단연 제국이었다.
하지만 가장 부자인 국가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아이에르의 예산은 제국과 비등하거나 그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서우진과 일행은, 여비 걱정 따위는 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 대단한 아이에르의 추기경과 함께였으니까.
“와아!”
이지아가 방방- 뛰며 여관, 아니, 호텔 안쪽으로 조르르 달려들어 갔다.
서우진과 일행이 그 뒤를 따랐다.
‘오?’
외관과 마찬가지로, 내부의 인테리어 역시 뛰어났다.
화려하지만 삭막했던 신궁이나, 신에 대한 찬미만 가득했던 총교단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고급스러웠다.
거대 국가의 왕궁들보다 뛰어난 여관이라니…….
황당할 지경이었지만, 어쨌든 일행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편안한 휴식만 취할 수 있으면 되었으니까.
“어서 오십시오.”
직원인지, 지배인인지 모를 중년의 남자가 정중하게 다가오며 일행을 맞이했다.
“당분간 이곳에서 묵으려 하는데, 혹시 방이 모자라진 않겠소?”
평소라면 서우진이 나섰겠지만, 이번엔 유로아가 앞장서며 물었다.
‘물주니까.’
돈을 내는 사람이 나서는 게 맞았기에, 서우진은 뒤쪽에서 가만히 안을 구경했다.
“방은 충분합니다만…….”
일행의 수가 50을 훌쩍 넘어선다.
그 많은 방이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이 공실이 꽤 많은 모양이었다.
‘이것도 다마이론에서 벌어진 일의 여파인가?’
서우진이 슬쩍 중년 사내의 표정을 살폈다.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긴 했지만, 감출 수 없는 기쁨이 엿보였다.
손님이 뚝- 끊긴 가운데, 이런 단체 손님들이 왔으니 좋아할 만도 했다.
“다만, 저희 여관은 선불인지라…….”
중년 사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이에르의 사제들이 있으니 돈을 떼어먹힐 염려는 없겠지만, 그래도 수가 많다 보니 조금 불안한 모양이었다.
“걱정하지 마시오. 셈은 미리 치를 터이니.”
유로아의 말에 그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럼 안쪽으로 들어가시지요.”
사내의 안내를 따라 체크인을 하러 걸음을 옮기던 서우진이 문득 물었다.
“장사가 잘 안 되나 봅니다?”
“…아무래도 세월이 하수상하다 보니, 예전 같지는 않습니다.”
사내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혹시 소문을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곳에서 일주일 거리밖에 되지 않는 다마이론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하더군요.”
“아, 네. 조금 전에 들었습니다.”
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일행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서우진을 바라봤다.
‘나중에 설명해 줄게요.’
입 모양으로 대충 둘러대곤, 사내를 쳐다봤다.
“그게 사흘 전입니다. 아직 다른 곳이 또 무너졌다는 소식은 들어오지 않았으니, 이 라이마론 역시 아직 위험하다는 뜻이겠지요.”
혹시 마왕의 권속이 이곳으로 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라이마론의 주민들은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만약의 일에 대비는 하고 있습니까?”
무겁지만, 혼란스럽진 않았다.
그 말은 치안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치안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사람이, 대비하고 있지 않을 리가 없지.’
서우진은 그렇게 생각했고, 사내는 그 예상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중앙에 이미 지원군을 요청한 상태이고, 병사들이 상비군을 모아 전시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그리 많지 않은 기사들까지, 끊임없이 도시 주변을 돌아다니며 순찰하고 있단다.
‘나쁘지 않아.’
서우진은 속으로 감탄했다.
이 정도의 대비라면, 훌륭하다 못해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물론, 적이 마왕의 권속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기사와 병사들이 아무리 많아도 놈을 막아내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다.
‘우리가 왔으니까.’
서우진이 고개를 돌려, 여관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약속해 줄 수 있다.
이곳에 발을 들여놓는 대가는, 목숨으로 치르게 해줄 것이라는 걸 말이다.
오